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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페셜 에디션 한정판)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의 소개를 간단히 읽었을 때는, 저자가 꽤 나이가 많은 분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이 부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너희들 몇 살이라고 했지? 스물 아홉? 서른? 요즘 여자애들은 서른만 넘으면 나이 들었다고 한숨을 푹푹 쉰다며? 웃기지 말라고 해. 인생은 더럽게 길어. 꽤 살았구나 해도, 아직 한참 남은 게 인생이야. 이 일 저 일 다 해보고 남편 자식 다 떠나보낸 뒤에도 계속 살아가야 할 만큼 길지. 100미터 경주인 줄 알고 전력질주 하다 보면 큰코다쳐. 아직 달려야 할 거리가 무지무지하게 많이 남았는데, 시작부터 힘 다 쏟으면 어쩔 거야? 내가 너희들한테 딱 한마디만 해줄게. 60 넘어서도 자기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게 뭔지 잘 찾아봐. 그걸 지금부터 슬슬 준비하란 말이야. (중략)."
"닥치는 대로 부딪쳐 봐. 무서워서, 안 해본 일이라서 망설이게 되는 그런 일일수록 내가 찾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이책의 156페이지)
스물 아홉, 서른이 아니라 그보다 오래 살게 되면 그 때 겪는 고민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만, 책을 읽어보니, 저자가 스물 아홉에서 서른이 되는 한 해의 이야기를 주로 적어간 글이었습니다. 아마리라는 가명을 쓰는 저자는 개인적인 내용을 가급적 적지 않으려 했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그 때의 심정을 담담하게 쓰고 있습니다. 읽는 사람에게 굳이 감정적으로 동조해 줄 것을 강요하지 않는 점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요인이었습니다만, 어떤 상황에 처하고, 그것을 이겨가기 위한 작은 노력이 시작되고 계속된 것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겪어가는 듯한 공감을 주었습니다.
스물 아홉의 파견 사원 아마리는 이런 사람이었을 겁니다. 자신이 만든 틀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데, 사실 사는게 그 틀에 그다지 맞지 않았습니다. 스물 다섯에 남자친구는 그를 부담스러워서 떠났고, 아버지는 갑자기 뇌경색으로 중환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만두었던 회사는 다시 취직하기 어려워, 파견사원을 계속 하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본래대로라면 스물 다섯에는 동경대 남자친구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면서 평온하게 살 인생이었을텐데, 현실은 파견사원으로 고달픈 하루하루이기에 직장에서도 늘 정직원 여사원과 비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조금은 궤도이탈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아주 사소하지만 변화를 원하는 마음이, 한 해 동안을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해 줬을 겁니다. 그 딸기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저는 그 딸기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어떤 계기로 확 바뀌기는 쉽지 않고, 또 아마리 처럼 몇 년 뒤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그런 순간이 되기는 더더욱 쉽지 않을 테니까요. 그 일년 간 그녀는 자신의 꿈인 라스베가스 행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데 까지는 뭐든 죽기살기로 해보겠다고, 그러기 위해서 이전에 가졌던 자기자신이 만든 선입견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할 수 없어, 나란 사람은 할 수 없어, 그런 나약함을 벗어던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이 우리가 실화를 소재로 한 책을 읽고, 이런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게 되는 계기인 것 같습니다. 저도 예전엔 이러한 사람으로 이러한 인생을 살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막연히 산다는 건 결국 공상속에서 사는 것일 뿐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조금씩 자신을 바꾸고 어려움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이지만, 바꾸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생각해보면 한참 젊은 나이에 불과한, 스물 아홉에서 끝나는 시간을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서른, 마흔, 그리고 더 오랜 시간을 살아갈 겁니다. 잠시 잘 풀리지 않는 순간을 맞을 땐 이것이 지금 끝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조금은 다른 전환점을 맞고 싶습니다. 그래도 노력은 해야겠지요. 아마리가 맞은 전환점도 그 노력이 있었기에 전환점이 된 것이고, 자신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인데, 정말 절실한 사람의 마지막 시도였을 테지만, 이 책에서는 앞서 말한것처럼 그것을 그다지 과장되지 않게 담담히 적고, 오히려 꿈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을 보다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읽으면서 그의 노력하는 모습에 대해서 조금은 자연스럽게 보고 넘겼던 점이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그 고된 노력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그 사이에서 친구를 얻고 조언자를 만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애쓰며 조금씩 달라져가는 내용이 즐겁기에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고통스럽고 힘든 것만을 참아낸다는 이야기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된다면 조금은 읽는 사람도 부담스러웠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