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첫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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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이었나. 출판사는 다르지만 같은 역자가 옮긴 『무라카미 라디오』 ㅡ 당시에는 심플한 제목이었고, 단 한 권밖에 나오지 않았었다 ㅡ 라는 책이 있었다. 그 후 10년도 더 지난 지금,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가 세 권으로 재출간됐다(이 책은 그 첫 번째). 그쪽 사정에 밝지 않으니 지금도 계속 연재를 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에세이만큼은 쭉 써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조만간 그의 새 소설도 국내에 번역될 것 같긴 한데, 소설은 차치하고라도 나는 오히려 에세이 쪽이 더 소설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말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현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소설, 뭐 이런 논리라면 설명이 되려나. 어떤 작가가 됐건 소설보다는 조금 어깨에서 힘을 뺀 듯한 논조의 글을 읽게 되면 새롭고 재미난 발상이란 것이 더 풍경화처럼 느껴지는 까닭이다(그렇다고 푸근하다거나 반대로 뒤통수를 때릴만한 충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ㅡ 아베 고보의 작품에서였나, 풍경화는 자연 경관이 살벌한 지방에서 발달하고 신문은 인간관계가 소원한 산업 지대에서 발달한다는 문장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우리도 매일같이 자고 일어날 때 살풍경한 느낌을 받고 있으니까 말이다. 더구나 에세이집이란 건 태생이 단속적이라서 화장실에 가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야구 중계를 보는 틈틈이 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지간한 중편 소설보다는 빨리 읽게 된다. 아마도 흡연자의 경우 담배 한 개비 피우는 사이에 두세 편 정도는 후딱 읽어버리지 않을까(나는 그렇다). 그래서 아무 곳에나 도그지어를 만들어 놓고 나중에 다시 읽는다고 해도 '이게 무슨 말이지'와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차피 소설 같긴 하지만 분량이나 흐름으로 따지면 장편(掌篇)의 느낌일 테니까. 하루키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에 '안녕을 말하는 것은 잠시 죽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고 썼다. 그는 '안녕'을 말해도 바로 죽지는 않는다고 토를 달았지만 실은 어떨까. 일단 한번 말해 볼까. 안녕?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2001년이었나. 출판사는 다르지만 같은 역자가 옮긴 『무라카미 라디오』 ― 당시에는 심플한 제목이었고, 단 한 권밖에 나오지 않았었다 ― 라는 책이 있었다. 그 후 10년도 더 지난 지금,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가 세 권으로 재출간됐다(이 책은 그 첫 번째). 그쪽 사정에 밝지 않으니 지금도 계속 연재를 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에세이만큼은 쭉 써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조만간 그의 새 소설도 국내에 번역될 것 같긴 한데, 소설은 차치하고라도 나는 오히려 에세이 쪽이 더 소설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말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현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소설, 뭐 이런 논리라면 설명이 되려나. 어떤 작가가 됐건 소설보다는 조금 어깨에서 힘을 뺀 듯한 논조의 글을 읽게 되면 새롭고 재미난 발상이란 것이 더 풍경화처럼 느껴지는 까닭이다(그렇다고 푸근하다거나 반대로 뒤통수를 때릴만한 충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 아베 고보의 작품에서였나, 풍경화는 자연 경관이 살벌한 지방에서 발달하고 신문은 인간관계가 소원한 산업 지대에서 발달한다는 문장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우리도 매일같이 자고 일어날 때 살풍경한 느낌을 받고 있으니까 말이다. 더구나 에세이집이란 건 태생이 단속적이라서 화장실에 가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야구 중계를 보는 틈틈이 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지간한 중편 소설보다는 빨리 읽게 된다. 아마도 흡연자의 경우 담배 한 개비 피우는 사이에 두세 편 정도는 후딱 읽어버리지 않을까(나는 그렇다). 그래서 아무 곳에나 도그지어를 만들어 놓고 나중에 다시 읽는다고 해도 ‘이게 무슨 말이지’와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차피 소설 같긴 하지만 분량이나 흐름으로 따지면 장편(掌篇)의 느낌일 테니까. 하루키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에 ‘안녕을 말하는 것은 잠시 죽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고 썼다. 그는 ‘안녕’을 말해도 바로 죽지는 않는다고 토를 달았지만 실은 어떨까. 일단 한번 말해 볼까. 안녕?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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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 상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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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책, 두껍다. 해도 해도 너무 두껍다. 두 권 합쳐 1,100쪽이 조금 안 되니까 고래가 숨을 쉬러 물 밖에 나올 때처럼 독자들도 이따금씩 책을 덮고 딴짓을 좀 해야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뿐이라면 애초 말을 안 꺼냈을 거다. 『진상』, 엄청나게 느리다. 여기에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한데, 집어넣은 이야기가 다채로워서 아마도 앞서 말한 '딴짓'은 이 부분에서 다소간 해소되지 않을까 싶다. 백화만발(百花滿發)이랄까, 그러면서도 초(楚)나라 장왕(莊王)의 삼년불비(三年不飛)랄까, 끝까지 곧장 읽어 내려가면 분명 뿌듯한 감개가 있으리라. 더구나 이만한 분량을 소화해 냈다면 어느 자리에 가서도 당당히 뽐낼 수 있다. 1,000쪽이 넘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현대사회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으니까(사실일지도 모른다!). 물론 한 가지 핸디캡이라면 핸디캡이겠지만 시대물 ㅡ 그것도 '에도 시대물'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독자들이 가지는 반감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번이 어쨌느니 마치가 어쨌느니 나가야가 어쨌느니 하는 것들, 거기다가 가게 이름과 수많은 등장인물들까지, 현대물이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숱한 고유명사로 인해 자연스레 형성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보르헤스에 의하면 이 '문제'라는 단어는 근본적으로 음험한 소망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바로 적절치 못한 해결책을 조장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반대로 말해서 이 '문제'라는 허들만 넘게 되면 혹은 이것을 '문제'로 취급하지 않으면 꽤 쉬운 형태로 『진상』 읽기에 돌입할 수 있다 ㅡ 친절하게도 책 뒷날개에 등장인물을 따로 모아 놓았으니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이것마저 싫다면 그냥 가만히 서서 아웃되는 게 좋을 정도다. 패스트볼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서 기습 번트를 시도했는데 난데없이 체인지업이 들어와 포수 파울 플라이로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까딱하다간 더블 플레이를 내줄 수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지 정보에 '기적의 신약 영묘왕진고(靈妙王疹膏)를 둘러싼 비밀'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잠깐 동안 저 옛날의 '호랑이 연고(tiger balm)'를 떠올렸다……. 어쨌든 그 시절이라고 달랐겠냐마는 일단 신약이니 백신이니 하는 말에는 임상실험, 독과점, 라이선스와 같은 단어들이 뒤따르곤 하는데, 『진상』은 바로 그것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에 쫄깃한 사리라도 하나 추가하듯 앞서 언급했던 '다채로운 이야기'도 버무려져 있고. 특히 두드러진 것은 ①외모가 남녀 관계에 미치는 영향 ②장남이 아닌 남성의 삶 ㅡ 이 두 가지인데, 어느 쪽이나 볼 안쪽에 스리가 생긴 것처럼 까다롭기 짝이 없다. 무말랭이같이 생겼든 거부감이 들 정도로 잘생겼든 간에, 다소간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미추를 다룬다면 역시나 보르헤스의 문제(음험한 소망)가 끼어들 여지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장남이 아닌 남성의 삶이란 건 또 어떻고. 지금이야 많이 누그러졌을지도 모르지만, '가업은 장남이 이어받는다'는 통념이 있다면 그 형제들은 그저 쓸모없는 터럭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편집자 후기에 보다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ㅡ 당연한 말이지만 작가는 이 쓸모없는 터럭을 보다 매력적으로 그려 놓아서 '쓸모없음의 쓸모'를 증명해냈다. 『진상』은 ㅡ 진상(眞相) 또는 진상(進上) ㅡ 신약 왕진고를 둘러싼 과거의 살인 사건, 남녀의 외모, 장남이 아닌 남성, 이것을 줄기 삼아 읽어 나가면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것은 등장인물 개개인의 묘사인데, 외모, 성격, 언변, 무력 등등 꽤 자세하다 싶을 정도로 나와 있어서 흡사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 2013』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하기야 사스콰치같이 생긴 게 아닌 바에야, 안되는(못생긴) 놈은 뭘 해도 안된다, 안되는(못생긴) 놈은 하다못해 제비뽑기를 해도 안된다, 따위의 말이 통할 리도 없는데다가, 굉장한 미소년으로 그려지는 유미노스케 역시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남성적인 멋은 찾아보기 어려워서 외려 징그럽게 느껴지기도 하므로, 어찌 보면 이것도 쓸모없음의 쓸모라는 밸런스가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ㅡ 그래서 역시나 유미노스케의 개성보다는 헤이시로의 내레이션 쪽이 더 설득력 있다. 각설하고…… 라기에는 좀 뜬금없지만, 그럼 자, 이제 『진상』을 읽을 시간입니다(더 이상 쓰기가 귀찮은 감도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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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5 0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5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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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의 피츠제럴드 사랑은 끔찍하다. 이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에도 피츠제럴드에 관한 에피소드가 (또!) 들어있다. 그러나 피츠제럴드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어떻게든 유명해지고 큰돈을 손에 넣어야 했다는 것에 비해 하루키 쪽은 야구장에서 외야로 날아가는 공을 보며 소설가가 되자고 한 모양이니, 그런 면으로 보자면 이쪽은 어쩐지 박력이 조금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느낌도 있다. 물론 독자들이 피츠제럴드의 글에 대한 신뢰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는 것처럼 하루키의 작품에도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뭐 어느 쪽이든 작가란 모름지기 글만 잘 쓰면 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지만. 하루키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 혹은 가장 마음에 다는 것은 나에게는 단편 「토니 타키타니(トニー滝谷)」 쯤이 될 것이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어째서 이름이 ‘토니 타키타니’여야만 했는가, 에 초점을 맞추면 더 흥미가 생긴다. 80년대 중반 하루키가 하와이를 여행했을 때의 일인데, 중고 할인매장에 들어갔던 그는 ‘TONY TAKITANI’라는 글씨가 인쇄된 노란색 티셔츠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 역시나 ‘타키타니’라는 발음 때문이었는지 하루키는 글자의 주인이 일본계 미국인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어 그 티셔츠를 구입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토니 타키타니」라는 단편이 탄생했고, ‘토니 타키타니’의 정체는 당시 하와이 주 상원의원 선거운동을 위해 만든 옷이었다는 것이 십수 년이 흘러 밝혀진다. 일련의 메커니즘을 보면, 이렇듯 대부분의 소설은 별다른 계기 없이 우연찮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피츠제럴드처럼 경제적으로 절실했기 때문에야말로 좋은 작품이 나오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그런 케이스는 드물지 않을까. 하루키의 편집자 중 하나는 ‘작가란 원고료를 받으면서 성장해가는 존재’라고 했다던데 왠지 피츠제럴드는 그런 호사는 누리지 못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가하면 하루키란 작가는 어느 쪽일까 하는 것을 굳이 따져 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개인적으로는) 불편하거나 불쾌한 소설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세이까지 그런 것은 아니니까, 지금도 어떻게든 하루키의 글은 끊임없이 읽고 있는 셈이다. 본인은 ‘당신 에세이에는 아무런 메시지도 없다, 흐물거리기나 하고 사상성도 없고 종이 낭비다’라는 말도 들은 적이 있는 모양이지만, 아무렴 어때. 에세이란 다 그런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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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 봄꿈
한승원 지음 / 비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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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원님 밥상에는 콩잎 반찬이 열두 가지요, 만호원님 밥상에는 감태 반찬이 열두 가지라……. 콩잎 반찬, 감태 반찬이 열두 가지씩인데, 그 밖의 반찬은 얼마나 많겠는가. 강진 고을, 보성 고을, 해남 고을에는 호랑이가 한 마리씩만 사는데, 장흥부에는 웬일인지 세 마리가 사네. 장흥성 안에 사는 부사가 그 한 마리요, 강 건너에 있는 벽사역의 찰방이 또 한 마리요, 남쪽 바닷가 회진성의 만호가 다시 또 한 마리네. 장흥부 사람들은 그 세 마리나 되는 호랑이한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가진 것들을 모두 바쳐야 하므로 유달리 원한이 많네. 그래서 이 탐진강이 밤이면 우는 것이여.”(p.238) 전봉준은 우금치에서 패한 뒤 지난날의 부하였던 김경천의 밀고로 인해 일본군에게 신상이 넘겨졌다. 그리고 한양으로 압송되어 죽임을 당했다. 전봉준의 삶은 흔히 이런 말로 요약된다. “민중을 반침략, 반봉건의 방향으로 각성시킴으로써 이후의 사회변혁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의 진전에 원동력이 되었다.” 물론 그의 개혁안이 갑오개혁에 부분적이나마 수용되었고 무장 항거 정신은 항일의병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점 또한 역사책은 빼놓지 않는다 ㅡ 또한 미숙한 형태의 코뮌(집강소)까지. 그러나 『겨울잠, 봄꿈』은 1894년 겨울, 전봉준이 민보군에게 붙잡혀 한양으로 끌려가는 여정만을 꾸미고 있다. ‘봄꿈’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볼까. ①봄날에 나른해져 깜빡 잠든 사이에 꾸는 꿈. ②달콤하고 행복한 것을 그려 보는 꿈. ③한때의 덧없는 일이나 헛된 공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어느 쪽이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누가 콩잎 반찬을 먹고 누가 감태 반찬을 먹든, 누가 땅덩어리 하나를 놓고 아귀다툼을 하건 간에, ‘봄꿈’이란 건 요원한 일일 뿐이다. “장군은 사진기 렌즈를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탐관오리라고 생각하고 똑바로 노려봐주시오.” 애초부터, 망나니에 의해 목에서 피가 솟구칠 때까지도 그런 눈빛이었을지 모른다. 녹두꽃(전봉준)이 떨어지니 청포장수(민중)가 울지 않을 수 있겠나. 고부 관아에 쳐들어간 후 나타난 안핵사 이용태로 불거진 또 한 번의 무장봉기, 그리고 기치로 내건 보국안민(輔國安民). 그때의 네 가지 군율은 이렇다. 사람을 죽이지 말고 물건을 해치지 말 것,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평안하게 할 것, 왜적을 몰아내고 성도를 깨끗이 할 것, 한양으로 진격하여 세도가들을 몰아낼 것. ……이 역시 봄꿈이었던 것일까. 더욱 서글픈 것은 오늘날에도 우리는 봄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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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와 몬스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8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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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작가의 『모르페우스의 영역』을 읽고 나서 후속작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번엔 『스카라무슈 문』이라는 실체가 있는(!) 작품을 연재 중이라고 하니 오히려 『나니와 몬스터』 보다는 그쪽에 거는 기대가 더 커졌다. 어떤 의미로 보자면 『나니와 몬스터』는 절반의 완성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소설은 실제 존재했었고 앞으로도 나타날 인플루엔자 소동과 언젠가 하시모토 전 오사카 지사가 언급한 제2수도 건설에 관한 내용을 버무려 놓아, 현대 의료계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냈다는 점만으로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관료’와 ‘공무원’이란 단어의 어감 차이가 상당하듯 ‘횡단적 조직방어 회의’인 동시에 ‘불상사 뒷수습 회의’에서 보이는 가스미가세키는, 한국의 청와대와 국회가 언제나 뜨거운 감자인 것처럼 난도질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 앞서 언급한 의료계의 폐단과 일본의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도주제를 끌어옴으로써 한층 현실감을 부여했다. 어느 날 나니와라는 도시에 신종 인플루엔자 ‘캐멀’이 발생하고 매스컴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우려하며 호들갑을 떤다. 인플루엔자 감염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검출 키트의 배분은 물론이거니와, 환자가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니와 시는 폐쇄되어 버린다. 여기에 보수를 넘어 수구적이기까지 한 의료계와 정치계가 끼어들게 된다. 작가가 소재로 썼던 인공 동면이나 장기 이식과 달리 『나니와 몬스터』는 그 무대를 좀 더 넓혀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한 손에는 잡히지 않는다(그러니 후속작이 필요하다!). 의료가 정치에 복수할 빌미를 줬는가 아니면 정치가 의료에 복수의 빌미를 제공했는가 하는 것은 점점 그 의미가 옅어지고 만다. 피차일반인 기성세대의 ‘꼰대주의’에 불과하니까. 듣자 하니 『스카라무슈 문』은 이 『나니와 몬스터』의 바이러스 이야기에 이어 백신을 둘러싼 사건 중심이라고 한다. 필연적이다. 『나니와 몬스터』에 등장했던 ‘스카라무슈’가 이번엔 전면에 드러나는 것일까, 하는 추측도 가능케 하고. 더군다나 『스카라무슈 문』을 읽으려면 이 소설을 읽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게 어느 정도는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했다가 차기작이 내용상 연결된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안심했기 때문에, 이제 『나니와 몬스터』의 결말에 대한 물음표는 없어졌다. 그러니까 일단 읽으면,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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