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슬립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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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열병, ‘함께 갇힌’ 사람들에 대한 증오감으로 발현되어 사소한 다툼, 환각, 폭력 행사, 최악에는 살인까지 벌어진다. 곱상한 문학 앞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린 『샤이닝』은 《데스티네이션》의 모태라 할 만한 가운데 먼 훗날 『닥터 슬립』까지 오며 어린 댄을 콜 시어에서 존 콘스탄틴으로 성장시켰다― 「I see dead people.」 → 「This is Constantine. John Constantine, Asshole.」 ……『샤이닝』의 후속작 치고는 전작에 비해 공포의 강도가 조절되어 있기도 하고, 또 킹 자신이 죽은 잭과 같은 경험(알코올 중독)을 했으며 이번에는 그의 아들이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굳이) 집어넣음으로써 어찌 보면 킹 스스로의 치유 일환으로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결과적으로 전작과 함께 보면 말랑말랑하다고 해야 할 듯도 하다. 『샤이닝』에서 킹은 무엇을 보여주었던가. 미친놈과 미친 재주를 가진 미친놈의 아들이었다― 원작자는 한숨을 쉬었을지언정 내 판단으로는 큐브릭의 영화도 꽤 괜찮았다고 생각한다(소설 『샤이닝』의 미친놈 이름은 잭이고 영화 《샤이닝》에 출연해 미친놈 역할을 한 남자 이름도 잭이며, 내가 영화의 백미로 꼽는 것은 웬디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다. 그녀 스스로도 개의치 않고 주위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그게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그 미친놈의 아들은 커서도 제 버릇 남 못 준 채 고급 기술 ‘샤이닝’을 한 번 더 발휘한다. 다만 『샤이닝』에서 잭을 고용해 일을 꾸민 것이 오버룩 호텔 자체였다면 『닥터 슬립』에서는 약간 모호해진다. 그러므로 공포란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발생하지만 희한하게도 그 공포를 몰고 오는 자를 가장 친숙한 가족으로 설정했던 전작과는 다르다― 벌집에 손을 집어넣을 때의 기분을 기억한 채 이번에는 달큼한 꿀도 한 줌 집어 먹는다. 『닥터 슬립』은 샤이닝을 구사할 줄 아는 자들의 머릿수를 조금 더 늘리고, 거기에 요리사 딕과 217호실의 메이시 부인 등을 다시금 소환하고 있으며, 댄보다 더 강력한 샤이닝을 지닌 소녀 아브라를 짝지어주어 역시 샤이닝을 쓸 줄 아는 집단 트루 낫(true knot)과의 대결 구도를 만든다(어딘지 모르게 『조이랜드』의 냄새가 나고, 트루 낫이 다소 손쉽게 처리된 것이 아쉽다). 그리고 전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어린 댄은 멀리 떨어진 딕에게 구조 요청을 하고, 여기서는 성장한 댄에게 반대로 어린 아브라가 깜찍한 SOS를 보내면서부터(hEll☺) 이야기는 시작된다. 완결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린 이 ‘오버룩 2부작’은 그야말로 소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시작부터 불길했던 살아 움직이는 호텔 이야기는 펑크 냄새 물씬한 소설로 탈바꿈했고, 철저하게 고립된 일상의 공포를 뽐내던 것은 (당장은 모르지만) 영화 제작 예산을 한껏 부풀려 놓으며 다시 콜로라도의 오버룩에서 끝을 맺는다……. 『닥터 슬립』을 읽는 데에 『샤이닝』 읽기가 반드시 필요한 것만은 아닙니다, 라고는 해도 내가 보기엔 전작의 독서가 동반되어야 할 것만 같다. 아니면 차라리 『샤이닝』만이라도 읽어 보기를. 그러면 자연스럽게 꼬마 대니가 살이 쪘는지 키가 컸는지 여자관계는 무탈한지 궁금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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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7-2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저도 이 소설 보면서 좀 펑키한 걸 !!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로 만든다면 < 리포맨 > 처럼 만들면 재미있겠군. 했는데 영화 예고편 보니 정말 욕나오더군요...

그레코로만 2014-07-29 15:08   좋아요 0 | URL
영화로 만들어지나요? 한번 찾아봐야겠군요!
 
강대국의 경제학
글렌 허버드 & 팀 케인 지음, 김태훈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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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반적으로 다소 낙관적이고 다소 보수적이랄까(너무 거시적이어서 그럴지도). 물론 현실적이기도 하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한 수 접고 들어가므로. 책은 로마의 붕괴나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등을 사례로 들며 현대의 재정 문제를 꼬집는데, 일단 지금 현실을 보자. 미국의 실업수당 신청 건수가 지난 몇 년보다 낮아진 것의 이면에는 다른 거품이 있는 게 아닐까? 미국의 경기는 회복하고 있는 것일까? 달러의 노후대책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주가 상승은 결국엔 착시적 허울이 아닐까? 실업자들이 경기 회복에 참여하고 있기는 한 것일까? 중국이나 유로의 움직임은? 물론 이러한 물음들은 유의미해 보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 책에서 다루기에는 성격이 다르기도 하다. 나는 전쟁과 다툼을 넘어 경제(혹은 불황)에 관해서도 이따금씩 존 레논의 노랫말을 생각하곤 한다. 나라가 없다고 생각해 보라, 죽고 죽이는 것도 없고 종교도 없이. 그러면 어떤 국가든 다른 나라에 대해 눈치싸움이나 치킨게임을 하고 있는 와중에 이런 말이 가당키나 한가, 하는 반문이 되돌아온다. 현실의 괴리를 증폭시켜 지극히 이상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안 될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의 논의가 불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전 세계인들은 쓸데없는 곳에 돈을 쏟아 붓고 쓸모없는 것에 열을 올리며 사용하지도 않을 것을 분석하고, 쪼개고, 구축하면서 낭비한다. 경제 위기? 몰락? 당연하다. 경제는 곧 정치라는 명제 하에서는 기존의 정치구조가 옷을 갈아입지 않는 한 개혁과 타개는 없다. 세제 개혁을 통해 기업 소득에 대한 세율을 삭감하는 것이 반드시 신규 고용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우방끼리 토지와 기업에 대한 직접 자산 투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만이 반드시 동맹 협정과 유대라고 볼 수는 없다(그들만의 리그는 또 다른 고립자를 낳는다). 내가 처음에 낙관과 보수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강대국의) 경제의 더러운 뒷면을 노골적으로는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목적은 국가의 흥망성쇠와 그 패턴, 번영, 경제 불균형을 역사적 관점에서 살피는 것이므로― 로마, 중국, 스페인 일본 등의 성장과 몰락을 주시한다. 로마에서는 재정, 통화, 규제를, 과거 중국과 스페인에서는 해상 교역의 축소와 재산권을, 일본에서는 잘못된 부양책을 분석하고 있다.




현대 유럽의 경제 위기, 다종다양한 패권 다툼, 당파적 양극화, 재정 적자 등은 어느 한 국가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이 경제 문제를 두 저자의 말대로 이데올로기와 정책 대립을 넘어 조금은 큰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고립의 위험은 얼마간 설명하면서도 팽창의 이면에는 약간 소홀한 듯한데, 그러면서 이 같은 ‘몰락’을 막기 위해 자유시장 확대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거기에는 책의 제목처럼 ‘균형’이 반드시 들어가야 옳다(그러나 현실이 과연 그렇게 흘러가줄까?). 두 저자는 강대국 쇠퇴의 이유를 경제적 속성과 침체된 정치 체제에서 찾는다. 이를테면 과잉 팽창, 과도한 군사 지출 역시 경제의 균형을 잃게 만들 수 있으나 그것이 성립하지 않는 반례가 너무 많으므로 폴 케네디가 『강대국의 흥망』에서 주장한 제국의 과잉 팽창 요인을 제거한다(케네디 스스로도 군사력을 경제적 생산력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정치 체제가 발전하지 못하면 경제 또한 그러리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다시금 <경제=정치> 혹은 <경제≒정치>라는 수식이 성립하고 ‘신고전’이나 ‘케인스’와 같은 말이 득세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제도라는 것은 경제적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체계화하는 일종의 제약이다(반대로 그 제도를 입맛에 맞추기 위해 경제적 파워(로비)를 가동시키지 않던가?). 경제력 혹은 제도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고, 몰락의 증거에서 반추할만한 것을 찾아내는 작업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다. 뜀박질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바람을 기다리는 것은 우매한 행동이다. 하물며 100달러짜리 지폐가 누군가 주워 가기를 기다리면서 길에 떨어져 있는 경우는 좀처럼 없으니까 말이다.(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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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백과사전 - 고대부터 인간 세계에 머물렀던 2,800여 신들 ㅣ 보누스 백과사전 시리즈
마이클 조던 지음, 강창헌 옮김 / 보누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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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함께 출간된 『악마 백과사전』도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일단 이 책부터 집어 든다. 이미 한차례 러셀의 거대한 책 『악의 역사』(전4권: 데블, 사탄, 루시퍼, 메피스토펠레스)로 어지러웠던 가운데 이번에는 수많은 신들을 맞이했다. 학창 시절 일문학을 전공한 탓에 아마테라스오오가미(天照大神, 아마테라스오‘미’가미로도 읽는 모양)며 스사노오노미코토(須佐之男命)며 하는 길고도 긴 이름들을 외우고 다녔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신 백과사전』은 그야말로 신들의 집합체이면서도 악마스럽기 그지없는 목록이다. 어느 종교이건, 어느 나라이건, 어느 신화이건 간에 신은 비슷한 종류의 신비로움과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 이를테면 창조와 관련되었거나 기후를 관장하는가하면 풍요로움 혹은 공포를 가져다주는 형태로― 동시에 그들은 인간과 같이 섹스를 통해 자손을 낳고 직립보행을 하며 시시콜콜한 장난을 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신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비슷한 상상력을 갖고 있는 인간이 그들을 만들어낸 것이므로.




만일 자연에 있는 모든 물체가 그 물체의 보호자나 수호자로 고려되는 어떤 영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인간의 행위는 그 물체의 물리적 상태뿐만이 아니라 영적 차원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도살하기 전에, 벌채하기 전에, 여행을 떠나기 전에, 집을 짓기 전에 그에 상응하는 정령의 승인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 서론









네덜란드의 판화가 에셔의 『Flor de Pascua(부활절 꽃)』에 수록된 작품 《The Scapegoat(희생양)》이다. 그의 작품 특징은 반복과 순환의 고리인데, 악마가 신의 그림자일지 아니면 신이 악마의 방어기제일는지 알쏭달쏭하다― 이런저런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신과 악마라는 것은 그들의 관계가 일종의 대용품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신은 이를테면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다가 자연계를 지배하지만 때로는 인간에게 화복이 아닌 재앙을 내리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어쩌면 신이 있기 이전에 악마의 존재가 먼저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현실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공포와 팍팍함에 대항해 신이 발명되었을지 모른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신의 성격은 추상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지적 수준이나 사회적 발전 등과 상응한다. 특히 자연신은 지구상의 모든 자연현상에 대응한다기보다 인간과 자연의 생활관계에서 기인한 측면, 그러니까 인간의 생활 자체와 관련이 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심지어 그들 사이에도 인간과 똑같이 ‘계급’이란 것이 존재한다). 아폴론(apollo)은 활과 화살을 들고 다니는 사냥꾼들의 신이며 제피루스(zephyrus)는 봄의 도착을 알린다. 넵투누스(neptunus)는 물과 관련된 농경 신에서 출발했고, 달의 여신 디아나(diana)는 숲에 살면서 동물들을 보호하며, 바쿠스(bacchus)는 담쟁이 덩굴이나 포도로 만든 관을 쓴 술과 도취의 신이다. 이렇듯 인간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신을 등장시킴으로써 그들을 경배하는 것과 함께 자연 자체를 성스러이 여겨 풍요로운 앞으로의 삶과 정신적 안정화를 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한정된 세계관으로부터 우주관으로, 또 지배의 법칙 혹은 질서를 부여해 창조된 신들은 악마와 함께 인간이 정비한 생명과 힘의 관념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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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별 1 ㅣ 유다의 별 1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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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를 '대원님'이라 부르는 사이비 종교인 백백교(白白敎)의 이야기. 듣기로, 백백교 신도가 교주를 만날 때에는 다섯 가지 계율이 적용되었다고 한다. 깨끗한 마음가짐으로, 교주의 얼굴을 쳐다보지 말아야 하고, 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아야 하며, 질문하는 것은 금기인 동시에 오로지 절대 복종의 대답만을 해야 했다고. 이 단체는 당시 민중을 현혹해 재물을 편취하고 여신도들을 속여 간음하는가하면 배신의 조짐이 보이는 신도들을 아무도 모르게 납치하여 살인을 저질렀다ㅡ 전국에 산재한 소위 비밀 아지트에서 300구가 넘는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중 '천원 금광 사무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수시로 빈 화약을 터뜨린 양주 봉암산 기슭은 금광을 가장해 시체를 처리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하나 더,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뜨악한 것이 있다. 경찰에 쫓기다 자살한 교주 전용해의 두개골이 '범죄형 두개골의 표본'으로 국과수에 보관되어 오다가 비인도적 인체 표본 전시라는 진정에 폐기가 결정돼 지난 2011년 화장되었다는 사실이다. 소설 『유다의 별』은 여기서 출발한다. 당시 교주였던 전용해라는 인물은 열 개가 넘는 가명을 사용했다. 또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진을 남기지 않았으며 그의 인상착의는 체포된 백백교 간부들의 진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도진기의 상상은 실체가 불분명한 전용해란 인물의 죽음과 그의 후손 그리고 백백교와 '낡은 광목천 끈'으로 이어지고, 소설은 몇 가지의 소소한 트릭과 함께 꼬이고 뒤집히는 가설과 검증이 계속해서 뒤섞인다. 최근 과거의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이 인구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유다의 별』은 처음부터 비밀스럽고 뒷맛이 좋지 않을 것 같은 소재를 취함으로써 발단의 몰입에는 일단은 성공했다. 나머지는 읽는 사람의 몫이다. 재미? 당연히 있다. ……그런데 제목은 카(John Dickson Carr)의 소설에서 따온 것일까? 『유다의 창』에서처럼 여기에도 밀실 살인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야기의 줄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덧) '한국형 추리소설'이란 이상한 명칭에 대하여: 요즈음 날이 거듭되면 될수록 '한국형 추리소설'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쓰이고 있는데, 나는 그 뜻을 당최 이해할 수 없다. 한국적 요소나 문화가 간섭하면 모두 '한국형'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유다의 별』은 분명히 그렇게 부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할 바에야 차라리 한국'의' 무엇 무엇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 아니면 아예 빼시라. 대체 뭐가 한국'형'이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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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7-20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형 추리소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네요... 한국형 추리소설이 대체 뭐지 ???!!

그레코로만 2014-07-20 20:35   좋아요 0 | URL
결국엔 다 '한국산'....ㅋㅋ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류시화 지음 / 연금술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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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일문학을 전공한 자가 아니더라도 음악, 드라마, 영화 혹은 일본어 자체에 매력을 느끼고서 접근하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학교에 다닐 적 다니자키니, 시가니, 간이니, 도손이니, 다자이니, 소세키니 하며 원서를 낀 채 공부하던 때와는 또 다르다. 이것은 와카나 하이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특히 하이쿠는 굉장히 짧으면서도 계절어가 들어가야 한다는 제약 아닌 제약 때문에 일반인들에 알려지기가 더욱 손쉬운 것이 사실이다(무시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아마도 바쇼의 <古池や蛙飛こむ水の音,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는 하이쿠를 접해 본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와카의 기존 운율(5.7.5.7.7)에서 앞의 17자만 따로 떼어낸 것에 대해 이어령은― 하이쿠는 시인의 영역이고 나머지 14자는 신의 영역이라 표현한 바 있다. 아마도 와카의 입장에서 보면 생략된 14자는 미완의 상상 혹은 가려진 침묵이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이쿠는 역시 손가락 마디 하나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길이로 더욱 매력적인 것이 되었고, 또 반대로는 쓰이지 않은 것에 대해 안에서 밖을 향하는 (어디로든 뻗을 수 있는) 궤적을 지님으로써 찰나의 미학을 도탑게 한다.




時鳥厠半ばに出かねたり
소쩍새가 부르지만 똥 누느라 나갈 수 없다.



내가 유일하게 외울 수 있는 소세키의 시다. ‘악명 높게도’ 수상 주최 초대를 거절하며 쓴 것이라 하이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음직하다. 비슷한 맥락 때문인지 소세키의 이 시를 읊을 때면 사람들은 60년대 국회의사당 앞에서 울린 신동엽의 일갈을 함께 떠올리는 모양이다. 「국회의원 두 개에 10원! 국회의원 두 개에 10원!」 신동엽은 정치인의 값을 똥금에 비하지 않을 수 없었고 소세키는 기름진 만찬보다도 자신의 소설 집필이 더 중요했다. 쉽게 돈을 벌고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자들을 욕하는 재미가 양쪽에서 느껴진다. 이러한 제목 없는 한 줄의 짧은 시는 죽은 이를 그리기도 하고―<骸骨や是も美人のなれの果, 미인이었던 그대의 마지막도 해골이구나(소세키)>, 계절 자체를 묘사하기도 하며―<五月雨に鶴の足短くなれり, 장맛비 내려 학의 다리가 짧아졌어라(바쇼)>, 때로는 존재의 근원을 묻기도 한다―<蜘蛛に生れ網をかけねばならぬかな, 거미로 태어나 거미줄 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교시)> 그리고 지금, 지하철 스크린도어에도 시가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다. 짧은 것도 있고 긴 것도 있는데 차량이 들어오기 전 짧은 순간을 이용한 점이 눈에 띈다(몇 년 전 시를 모집하는 공모전 요강에는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 안 된다고 적혀 있었는데― 문학의 힘, 시의 힘, 글 한 자락의 힘을 너무 나이브한 측면으로만 접근한 것 같아 아쉬운 대목이다). 산문과 달리 시는 분량이라는 것에 연연하지 않으니 짧은 하이쿠처럼 간결한 문장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하이쿠가 본래 일본의 것이라는 점에서 가능하면 원문 그대로 읽어야 맛이 살지만, 때로는 우리말로도 짧게 지어 보고 느낌으로써 순간의 번뜩임을 구현해내는 것 또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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