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황문성 사진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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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책에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마음은 잘 들지 않지만 정호승이라면 읽을 만하다. 이해인 수녀의 추천사처럼 차 한잔 나누며 듣는 사랑의 고백서 같기도 하고 눈물겨운 참회록 같기도 하고 깨우침 가득한 교훈서 같기도 한 이 책은, 내 인생에 용기를 주지는 못하더라도 평범하고 진솔한 것을 시적 표현으로 버무려냈다는 점에서 가슴이 벅차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호승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 무거운 엉덩이를 지탱하며 둥실 떠 있게 한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자 그건 사회생활을 하는 저의 외면적 모습이고, 저의 내면적 영혼의 모습은 소가 아니라 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갈수록 저 자신이 너무나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가 동물 중에서도 개나 늑대라면 인생이라는 포식자를 향해 거세게 짖으며 달려들었을 것입니다. 만일 양 중에서도 거대한 뿔이 달린 산양이라면 그 뿔로 인생을 향해 격렬한 싸움이라도 한바탕 벌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정호승)은 강한 존재가 아니다. 당연히 사람을 둘러싼 주변 또한 그를 안온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강한 사람에게도 정으로 돌을 다듬듯 뾰족한 입김을 불어넣고 그렇지 않은 이에게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만 적당히 상처를 입힌다. 그럼으로써 점점 강한 사람이 되어 가는가하면 그렇지 않고 여전히 연약한 심상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있다. 바로 그 여린 사람들에게는 다시 정호승의 한마디가 전달될 것이다. 별것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평범함을 고귀함으로 바꿔버리는, 당신의 인생에 용기가 되어줄 한마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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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파일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4
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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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러를 잘 읽지 않는다. 한국 소설도 잘 읽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국 스릴러는 읽지 않는다. 『B파일』이 철저하게 시나리오 작업을 염두하고 영화로서 만들어졌다면, 오히려 그쪽이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래서이다. 한국 스릴러에서 잘 나타나지 않는 구석이 있었던 것은 반대로 좋았다. 그러나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고 난 후 느꼈던 기분은, 『B파일』은 재미없는 것 같으면서도 재미있고 재미있는 것 같으면서도 재미가 없다는 거다. 희한한 일이다. 조선족 은행원 리영민은 반드시 조선족이거나 은행원이 아니더라도 극의 진행에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고 민주일보 조성철 국장의 메모는 암호가 아닌 바에야 굳이 액자 뒤에 숨겨놓을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를 흉내 내는 것도 아니면서 원더랜드라는 이상스런 건물이라니.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ㅡ 이 이야기가 더 다듬어지고 다듬어져 책이 아닌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적어도 킬링타임용 공항 소설 언저리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아직 그럴만한 여지는 충분하다). 물론 읽는 사람에 따라 탄탄한 스릴러로서의 면모를 갖춘 소설의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바에야 한국 사회에 깊은 메스를 들이미는 것은 차치하고서, 날렵하고 빠른 몰입이 관건인 스릴러이니까. 최근 한국 소설에서 갈수록 많아지고 인기를 끄는 이야기가 ‘무기력 청춘’과 ‘이방인 명제’인데 『B파일』은 후자를 취함으로써 일단 안전한 발판은 디딘 셈이다. 더군다나 내가 본 『B파일』과 다른 사람들이 읽은 『B파일』은 분명 다를 것이므로 앞서 언급했던 것들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작가의 전작 『B컷』은 영상문자로 치환되어 영화화를 앞두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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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의 계보 - 마쓰모토 세이초 미스터리 논픽션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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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적잖이 당황했다. 분명 논픽션이라고 했는데 이건 소설이잖아……가 아니었다. 총 3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제목도 그럴싸하다. 「전골을 먹는 여자」, 「두 명의 진범」,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 ㅡ 카니발리즘을 떠올리게 하는 인육(人肉)의 희생양, 증거를 조작하는 사법부의 병폐, 문명이 단절된 산간 마을에서의 무차별 살인까지. 모두 실제 일어났던 일들인데, 타이틀의 미스터리(mystery)는 '신비'라는 뜻의 미스틱(mystic)에서 온다 ㅡ 계속 하면 misterie, mistere, mysterium, mysterion, mysteria, mystes, muo, mueo까지 갈 테니 여기서 끊자! 어쨌든 신비라는 단어를 내가 가지고 있는 사전(『현대 국어대사전』, 한서출판, 1973)에서 찾아보자면 이런 뜻이 나온다. 영묘하고 이상야릇한 비밀, 이론이나 인식을 초월한 일, 인간의 지력으로는 알 수 없는 비밀.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서 검색해도 크게 다르지 않은 뜻풀이를 찾아볼 수 있다. 세이초는 책에서 비일상적 공포를 선사하지만 모두가 실제 이야기이며 그 기저에는 평범한 일상이 깔려있다. 다시 말해 비일상이 일상을 침범하는 꼴이다. 으음, 그런데 이 미스터리라는 말 뒤에 '계보(系譜)'가 있군. 계보? 족보? 조상? 그 선단에는 뭐가 있을까? 신비스럽기까지 한 비일상적 공포의 시작과 끝에는 언제나 '인간'이 들러붙어있다. 너무나도 평범한 인간 한 개(個)가 어찌 보면 순식간에 불가해한 연유로 괴물이 되는 것이다 ㅡ 이 점에서는 심농(Georges Simenon)의 다음과 같은 말과 궤를 함께 한다.

 

 

어떤 이유 때문에 한 남자가 범죄를 저지르고 (...) 그는 더 이상 인간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게 되고 하나의 괴물이 되어 버린다 (...) 단 5분 만에 사람들은 그를 혐오의 눈길로 바라본다 (...) 혹시 재판에 참석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경관 사이에 앉아 있는 그 사내의 고독은 아주 인상적이다. 그는 더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이제 아무도 자신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수록된 사건들이 갖는 날카로운 비명에 비해 세이초의 붓은 건조하다. 그는 책에 이런 말을 써놓았다. 「사건의 배경이 평범하면 평범할수록 이야기의 비참함은 극적으로 고조된다. 무대가 단조롭기에 드라마가 보여 주는 자극은 희석되지 않고 박력을 띠어 간다. 담담하게 서술하며 단순하게 구성된 문장으로 기괴한 내용을 전달할 때 활자의 행간에서 무시무시한 박진감이 솟구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문장을 꾸며 봐야 호소력과 설득력이 감쇄되는 무익한 작업일 뿐이다.」 특히 첫 번째 이야기 「전골을 먹는 여자」를 읽으면 고개를 주억거리리라. 한 여자를 데려다놓고 그녀가 딸을 죽였다는 의심을 품은 형사가 「당신 계속 거짓말하고 있지? 도라(딸)는 왜 죽였어!」라고 윽박지르자 그녀는 이렇게 대꾸한다. 「먹었어.」(부모와 딸 모두 지적 장애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범죄는 우리 옆구리 근처에서 어정거리며 존재해왔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그땐 그랬지' 라는 말이나 '추억은 방울방울'처럼 항상 포근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 거다. 「두 명의 진범」은 역자 후기에도 나오듯 사법체계에 서있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자신감 과잉이 초래하는 엉뚱한 결과를 얘기한다. 여기서는 '단승식이건 복승식이건 상관없잖아' 하는 식의 작태를 볼 수 있다. 또한 재판관의 심리와 주관이 사건의 증거 판단과 양형(量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피력하는 세이초 나름대로의 추론도 음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시 심농을 불러본다.

 

 

나는 범죄자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취급한다. 그래서 그들을 감옥에 처넣어 버린다. 야수들처럼 우리에 가둬 버린다. 나는 검사가 아니라 의사와 심리학자들이 그들을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모든 직업에 실습 과정이 있는 만큼, 검사들이 타인을 심판하기 전에 수감자로 감옥에서 여섯 달을 보내거나.

 


고립된 산간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 또한 실제 사건이 아니었다면 쉽게 믿지 못할 이야기다 ㅡ 뭐, 임성훈 아저씨처럼 '세상에 이런 일이!' 하고 외칠 일이 어디 이것 하나밖에 없으려고(사건의 무대는 임성훈 씨의 노래 「시골길」처럼 '내가 놀던 정든 시골길'이 아니니까). 이것은 도이 무쓰오란 청년(그는 마을의 성 풍속과 폐병이라는 콤플렉스로 인해 이웃들과 단절된다)이 같은 마을 사람 서른 명을 잔인하게 죽인 일이다. 여기에는 범인의 피해망상이란 부분도 있겠지만 마을 사람들의 그를 보는 시선 또한 분명 도화선이 됐다고 본다(의사가 흰 가운이 아닌 캐주얼한 니트에 청바지를 입고 있다면 우리가 느끼는 신뢰도에 변화가 생길까?).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적지 않겠다 ㅡ 다만 『미스터리의 계보』에 실린 모든 사건이 헤비급 펀치의 위력을 지녔다는 것만 언급해둔다. 이 책에 있는 이야기들과 비슷한 소설이나 영화는 엄청나게 많을 거라 생각한다. 반면 세이초는 범죄의 전모를 해체하고 조립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소설 만들기'가 아닌 '논픽션'을 택했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가지고서 말이다. 이 의구심은 말미의 조영일 문학평론가의 해설에 달린 각주를 보면 어느 정도 해소된다.

 

 

세이초에게 있어 범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겠다. 하나는 개인적인 선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범죄이고, 다른 하나는 유전적 기질이나 사회적 압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범죄다. 이때 세이초는 정확히 전자에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후자에는 논픽션이라는 형식을 부여한다. 바꿔 말해, 전자의 경우 범죄 행위가 그것을 저지른 자에게 절대적으로 귀속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등장인물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소설)과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저 옛날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는 범죄의 동기를 감정, 사욕, 이상심리, 신념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다시 세분화될 수 있다. ㉠감정 : 연애, 원한, 복수, 우월감, 열등감, 도피 등. ㉡사욕 : 물욕, 유산 문제, 자기 보호 등. ㉢이상심리 : 살인광, 변태심리, 예술로서의 살인, 각종 콤플렉스 등. ㉣신념 : 사상, 정치, 미신, 종교 등에 기초한 범죄. ……아무리 범죄자가 뭐 빠지게 뛰어봐야 이 동기들 중의 하나에는 걸려들 것 같다(『미스터리의 계보』에 등장하는 범죄자들은 어느 쪽에 속할까) ㅡ 일본의 추리소설 비평가 곤다 만지(権田萬治)는, 세이초 작품에 등장하는 범죄의 동기는 이러한 분류를 뛰어넘는 것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세이초는 인물보다는 그 인간을 둘러싼 환경(사회? 시스템?)을 앞세운다. 그리고 이것을 '픽션'이 아닌 '논픽션'으로 썼다. 그럼에도, 그로테스크한 묘사를 가미해 소설로 꾸미지 않았음에도, 나는 곳곳에서 공포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당사자에겐 전혀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니겠지만, 그제(2012. 6. 2) 「그것이 알고 싶다」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25년 만에 죽었다 살아 돌아온 한 남자의 얘기를 다뤘다. 그는 1987년 당시 19살에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병원에서 수술한 후 연고가 없는 '무명남'으로 처리되어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그 후 정신병원 관계자, 행려자 보호책임을 지고 있는 구청 등에서는 제대로 된 신원조회나 그의 가족을 찾아주려는 노력을 다 하지 않았다. 19세 청년이 40대 중년이 되어 25년 만에 노모 앞에 나타난 것이다(엄밀한 의미에서 범죄는 아닐지라도 당국의 무관심이 문제가 된다). 만약 당신의 가족이 같은 일을 겪었다고 생각해보라. 아니면 당신의 가족 중 한 사람이 25년간 복역한 후 출소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그 사람이 정말 범죄를 저질러 옥살이를 한 것이 아니라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수감되었다고 한다면, 진실이 규명돼도 그땐 이미 늦은 것이다 ㅡ 그것도 사법체계의 권력자들에 의해 증거가 조작된 것이 결정적 원인이라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지적 장애가 있어 딸을 죽여 그 살을 먹고도 태연자약했던 여자, 나병(癩病)에는 인육이 효능이 있다는 민간 속설 때문에 소년을 죽인 남자, 증거 보강을 위해 상황을 조작하는 경찰, 고립된 산간이라는 지역성 · 얼마간의 이상심리 · 폐병 콤플렉스라는 복합적인 요인이 비극을 부른 대량 살인. 나는 『미스터리의 계보』에서 세이초의 다큐멘터리를, 무미건조한 문장 때문에 외려 머리털이 곤두서는 소설 같은 현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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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스러운 탐정들 1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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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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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63 -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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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1

 

 

할리우드식 사르카즘이야 그렇다 치고, 스티븐 킹만의 악랄하고 무자비하게 긴 괄호 세례(공공연하게 '부연의 king'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내 말 믿으시라, 내 글에서의 괄호 중 쓸데없는 것은 수천 개 중에서 한두 개밖에 없으니까, 라고 속삭이는 일종의 서브텍스트처럼)에 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가 10살로 접어들던 해의 극장에서 늙고 탐욕스러운 비행접시인이 등장하는 《지구 대 비행접시》에서 공포의 씨를 보지 못했다면 지금의 작가 스티븐 킹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만약 그가 어릴 적부터 공포 영화를 접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공포 문학, 호러 문학의 방향 제시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우왕좌왕했을지도 모른다(킹 이전의 위대한 작가들도 있었지만). 『11/22/63』도(작가가 소설 속에서 비유한 '제목에 항상 숫자가 달리고 살인마가 거리를 활보하는 영화'의 느낌과 아주 살짝 비슷하달까) 이 '만약'이라는 하나의 명사에서 출발하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과거 여행이다('즐거운 여행'은 아니고). 제목의 숫자는 미국의 35대 대통령 케네디가 사망한 날이다. 1963년 11월 22일. 그러니까 '만약' 과거로 돌아가서 케네디의 암살을 막는다면, 하는 게 골자가 되겠다. 소설에서, 식당 창고의 '토끼 굴'을 통하면 1958년 9월 9일 11시 58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여기서 시간을 가지고 장난친 수많은 영화를 떠올려볼 수 있을 텐데 이 소설은 약간은 다른 설정을 취한다. 과거로 갔다가 다시 현재로 오게 되면 지금의 상황은 변했을지 몰라도, 다시 한 번 과거로 가게 되면 항상 1958년 9월 9일 11시 58분부터 시작한다는 거다. 그때부터 리셋이 된다. 토끼 굴을 통과해 과거로 가는 순간 현재의 상황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버린다. 하나 더. 『드래곤볼』의 '정신과 시간의 방'처럼, 과거에서 얼마를 머물러도 현재에서의 시간은 고작 2분밖에 지나질 않는다. 오늘 아침 6시 정각에 토끼 굴을 통해 1958년으로 돌아가 10년을 지내다 와도 현재는 아침 6시에서 2분이 지나간 6시 2분이다(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생기는 신체의 변화는 현재로 돌아와도 이어진다). 그럼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갈 때마다 1958년일 텐데, 케네디가 죽은 1963년까지 가려면 5년씩, 즉 한 번 실패해서 두 번째로 갔다 오면 나이가 10살은 먹어서 돌아오는 것이다. 여기(현재 시점)에선 2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어디선가 주워들은 결말은 조 힐(킹의 아들이며 그 역시 작가다)의 의견이 반영되었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그 끝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국내 출간이 이루어지기 전에 출판사의 배려로 가제본을, 그것도 1권만 읽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번역본도 동시 출간이 아니라 일정에 맞추어 따로따로 나온다고 하니, 1권의 끝에서 어쩔 줄 몰라 어렵사리 미소를 쥐어짰던 주인공이 된 심정이다. 말인즉슨, 우리의 주인공이 케네디의 죽음을 막을 것인지 어떤지는 이 소설의 끝장을 봐야 한다는 말이다. 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Pt.2


보안등급이나 위기경보를 보면 주의(yellow), 경계(orange) 순으로 위험도의 색깔이 변화한다. 또 노란색은 유다의 옷 색깔이라든지, 까만색은 죽음의 의미를 담고 있어 검은 고양이를 마녀의 종이라고 여겼다든지(그런가하면 초록색은 행운의 색인 동시에 불행의 색으로 취급된다) 등등. 그러나 나로서는 소설에 등장하는 다소 컬러풀한(?) 카드맨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그저 제이크의 세계가 바뀐 정도에 따라 카드맨도 옷을 갈아입는 게 아닐는지. 종국에 일이 틀어지자, JFK는 제이크로부터 팽(烹) 당하긴 했지만 ㅡ 어떤 의미에서는 말이다 ㅡ 딱 이 정도가 나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의 발단에는 여자가 있으니까. 새디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숙녀니까. 단 고민되는 것은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을 저장할지 다음번에 새로 시작할 마음으로 과감히 꺼버릴지 하는 건데…… 나도 아이팟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게임을 하다 보면 이런 기로에서 고민하곤 하니까 말이다. 'resume'을 누를지 아니면 'abandon'을 누를지. 전자는 계속 이어서 할 수 있지만 이미 지나온 것을 바꿀 수는 없고, 후자는 누적된 것을 다 잃어버리지만 처음의 시점부터 아예 다른 방향으로 시작할 수 있다(그럼에도 애쉬튼 커처는 아예 스스로를 죽여 버리기도 하지). 물론 어느 쪽이든 간에 5, 60년대의 것들을 엿볼 수 있는 독자들만 좋은 일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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