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와 이발사
에트가 힐젠라트 지음, 배수아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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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 채플린이 생각나는 거지…… 그래, 그랬다. 그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가 먼저 있었다. 영화에서 채플린은 히틀러를 풍자한 힌켈이란 인물과 유대인 이발사로 번갈아 등장했었다(여기에는 슐츠라는 인물도 나온다! 심지어 한나까지!). 힌켈과 닮은 이발사가, 여기 『나치와 이발사』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등장한다. 우선 독일인 막스 슐츠가 있고 유대인 이치히 핀켈슈타인이 있다. 이 '슐츠-핀켈슈타인' 공식은 시종일관 샴쌍둥이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둘은 어릴 적 친구였지만 슐츠는 하켄크로이츠 완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친구 핀켈슈타인과 그의 부모를 사살한다. 히틀러유겐트에서 크리스탈나흐트, 홀로코스트까지 이어지는 고리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이 대량 학살범인 슐츠는 쫓기는 신세가 되어, 자신의 분신(으로서) 핀켈슈타인으로 변모한다. 그러니까 막스 슐츠는 신분을 위장하여 이치히 핀켈슈타인이 되어버린 거다. 그것도 머리와 가슴속까지 진심으로 변한 채! 수용소에서 페놀 주사로 처형을 하던 슐츠는 어느새 아이들에게 비타민 주사를 놓게 되고, 핀켈슈타인을 사살할 때 눈을 보지 않으려 뒤에서 총을 쐈던 그는 이제 택시 앞좌석에 앉아 납치범을 등 뒤로 상대하고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왠지 미국식 사르카즘이 곳곳에서 엿보이는 이 작품은 스물여덟을 못 채우고 요절한 로커들 같아서 일견 하드코어의 냄새를 풍긴다. 그도 그럴 것이 막스 슐츠는 빈번하게 변신을 해대며 계속해서 절정을 맞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약간 머리가 이상한 아이에서 지식이 풍부한 소년으로, 이발사로, SS 대원으로, 대량 학살자로, 유대인 중소 암거래상으로, 그리고 또 당황스럽게도 해방 투사가 되었다. 제 손으로 죽였고 친구였던 이치히 핀켈슈타인의 신분으로 위장해서 말이다. 대체 변곡점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녀를 생각하기만 하면 나는 달려가서 그대로 부딪치고 싶은 욕구, 산산이 부숴버리고 싶은 욕구, 완전히 집어삼켜서 내 살로 만들어 버리고 싶은 폭발적 욕구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귀중한 정액이 분출된다……. 그리고 정액을 소진하고 나면, 삼킨 것을 다시 뱉어 내고 싶고, 다시 끼워 맞추고 싶고, 쓰다듬고, 화해하고 싶어진다…….
ㅡ 본문 p.460



『나치와 이발사』는 가해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거짓 할례로 유대인이 된 슐츠, 그는 팔레스타인으로 밀입국하려는 배 안에서 한나란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나중에 그녀는 정신이 나간 채 날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정신병원에 구금당한다. 그런데 1984년에 만들어진 《버디》란 영화를 볼작시면 거기에서도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다. 병원에서 탈출하려고 옥상으로 올라간 버디가 아름다운 몸짓으로 뛰어내리는 장면. 그래, 그 장면이다. 새처럼, 두 팔을 쫙 펴고서 말이다(버디의 실어증은 이 소설에서 슐츠의 아내로 등장하는 미라로부터 발현된다. 굳이 연결하려면 뭐 그렇다는 거지). 어찌됐든 간에 이런 소설은 가해자가 어떤 대가를 받음으로써 피해자를 위로하는 형태가 되어야만 할 것 같기도 하다. 복수는 나의 것? 하지만 그렇다고 힐젠라트가 꼭 그렇게 써야만 할까? 아니지, 그건 동어반복이다. 의미가 없는 거다. 소설 속에서 슐츠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것이 외려 병원에서 날고 싶어 하는 한나의 모습을 상징할 수도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ㅡ 사실 좀 억지스러운 감은 있지만. 게다가 지방 법원 판사 볼프강 리히터와 카드 게임을 하다 격정에 사로잡혀 「이제 아시겠죠, 판사님, 내가 바로 막스 슐츠입니다!」라고 울부짖는 슐츠의 모습은 포의 「고자질하는 심장」과 묘하게 오버랩되지 않던가. 미친 것 같은 슐츠와 그렇지 않은 독자의 틈새(포의 작품도 마찬가지), 그 공백이야말로 치가 떨리는 폴란드의 숲을 어느 쪽에서 바라봐야 할 것인가를 모호하게 만든다. 우리에게 평화만 있었다면! 그래, 오직 단 하나 평화만 있었다면! 하지만 안타깝게도 단 하나 그것이 없었다!(p.512) 그래, 그렇게 된 거야. 말하자면 그런 거지.



덧) 원래의 소설은 결말에 주인공 막스 슐츠가 죽고 나서 신과 대면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독일어판에서는 이 내용이 삭제되었다. 전쟁의 상처가 아직 깊은 독일인과 유대인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음을 고려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독일어판 수정 부분은 후에 출판사(열린책들) 카페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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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 십자가 모중석 스릴러 클럽 31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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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 십자가』는 접근성이 비교적 용이한 주제를 택해서인지 스릴러로서는 캐트린 댄스 시리즈 첫 번째 작품 『잠자는 인형』 쪽이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은 있으나, 사이버월드의 공간적 특질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미스디렉션을 활용함으로써 꽤 멋진 수사극이 되었다. 먼저 컴퓨터가 있는데, 1972년 전 세계의 컴퓨터는 15만 대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기계를 다루는 데는 깜빡이는 스위치를 누르고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 결과 오늘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컴퓨터와 무지막지한 인터넷 속에서 작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여기에 하나가 더 있다. 모순어법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나 비행기 기내 음식(airplane food)이란 말처럼 서로 명백하게 모순되는 두 단어를 하나로 결합한 합성어를 가리킨다. 중복어법은 모순어법과 정반대이다. 최상의 모순어법에 상을 준다면, 틀림없이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는 용어가 일등을 차지할 것이다.(니콜라스 네그로폰테 『디지털이다』) 가상현실은 가공의 것을 마치 현실적인 것처럼 만들 수 있는데, 그것은 현실보다 더 실감나는 것일 수도 있다 ㅡ 이를테면 운전면허 학원의 오락기 같은 물건 앞에 앉아서 주행연습을 한다든지 오락실의 레이싱게임 기계에 동전을 넣고 드리프트를 경험해본다든지 하면서 말이다. 문제는 가상현실이라는 인터넷 공간에서 공급과 수요가 불분명해짐에 따라 그에 따른 볼트와 너트가 어긋날 수 있다는 것. 『도로변 십자가』는 그래서 이게 어떤 식으로 엇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다. 이야기의 시작에는 우선 십자가가 있다. 교통사고로 죽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도로변에 놓아둔 자그마한 십자가. 고약하게도 캘리포니아 1번 고속도로의 가장 안전한 구간에 놓인 십자가와 장미 한 다발은 추모를 위한 것이 아닌 살인 예고장이었다. 이제 십자가는 공포의 상징으로 변모해 고속도로뿐만이 아닌 곳곳에서 발견되기에 이른다. 살인방법? 위에서 말했다시피 인터넷, 블로그와 웹사이트에 남겨진 개인정보를 수집해 생활패턴을 조사한 범인이 차례차례 범행을 저지르는 거다.



실상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인터넷이라는 허구적이면서도 실질적인 공간에는 우리의 개인정보들이 널려있다. 간단히 취미부터 성격, 어떤 타입의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매일 몇 시에 일어나 어느 길로 조깅을 하는지 등등. 소설의 범인은 어렵지 않게 정보들을 수집해나간다. 한 가지 더. 용의자로 지목된 소년은 온라인게임에 빠져있는데 이것도 현실을 모방해 만들어졌다는 점, 그리고 범인이 제임스 칠턴이 만든 사이트 <칠턴 리포트>와 접점이 있다는 ㅡ 역시 가상세계에 펼쳐진 현실이라는 ㅡ 점에서 소설은 시종일관 가상과 현실을 잇고 있다. 두 개의 비누 A와 B가 제조된다고 치고, 둘 중에 A는 훌륭하지만 B는 끔찍하다고 해보자. A는 그것의 훌륭한 화학적 성분을 내세우고 또한 뛰어난 화학자들의 증언을 보태서 광고된다고 하자. 그리고 B는 할리우드의 이름난 미녀들의 얼굴을 곁들여서 그냥 그것이 최고라는 노골적인 문구만으로 광고된다고 하자. 만일 인간이 합리적인 동물이라면 B보다는 A가 더 많이 팔릴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누가 그렇게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믿겠는가?(버트런드 러셀 『과학의 미래』) <칠턴 리포트>에 생겨나는 반응과 댓글들은 이러한 논의를 반증한다. 현대 세계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쾌락이 오로지 거대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이나 정부에 의해서만 제공될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의미심장한 측면이긴 하지만,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그에 버금가는 쾌락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즐거운 마음으로 보낼 수 있는 여가 시간을 기꺼이 포기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만이 잘못된 쾌락의 결함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읽을거리는 신문사가, 우리의 오락거리는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우리의 교육은 국가가, 우리의 정치적 견해는 정당이 제공한다. 따라서 우리가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모든 활동에서 이제 우리는 고립적인 단위체가 아니라 특정한 사회 조직에 의존해 있는 존재인 셈이다.(앞의 책) 그런데 변칙은,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누군가도 인터넷 선을 통해 접속해있지 않겠는가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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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허풍담 1 - 차가운 처녀
요른 릴 지음,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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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돌격!! 크로마티 고교』, 『GTO』, 『오늘부터 우리는』을 보며 갑작스레 웃음을 터뜨릴 때면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친놈처럼 뭘 그렇게 꺽꺽대고 있냐.」 그 말씀을 들을까 두려워 혼자 있을 때만 읽어야 했다. 그렇게 웃다가 눈물을 흘리며 책을 덮었는데 벌써 3권 째를 다 보고 있었고, 이 양반 이거 안데르센이나 이솝처럼 이 세계의 모든 이야기를 늘어놓을 기센데, 하는 생각이 들어 기가 막혔다……. 『북극 허풍담』 시리즈는 북극의 그린란드 북동부에 사는 사냥꾼들의 이야기다. 표지 뒷면 카피에 있는 ‘북극 시트콤’이란 문구를 나는 책을 다 읽고서야 이해했고 3권 이후(4~10권)가 나올 때까지 대체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기다려야할까를 고민했다.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우스우냐하면, 쉽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짐짓 진지한 얼굴로 엉뚱한 소리를 할 때의 그런 종류다. 분명 처음에는 조팝나무 씨만 한 크기에 불과했다. 근데 이게 제정신이 아닌 사냥꾼들에서라면 달라지는 거다. 일단 1권에서 고추 달린 놈들밖에는 없는 얼음덩이 위에 난데없이 사과 도넛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여자 엠마가 등장한다. 엠마, 이 발칙한 계집…… 이라고 하기엔, 그녀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그린란드 북동부 남자들을 들었다 놨다 난리굿을 피운다. 그런데 2권에 가서는 가관이다(불쌍한 피오르두르……). 이건 글로는 도저히 쓸 수 없다. 예컨대 이런 거다.

 

 

클릭!

 

 

레우즈는 이곳 북극에 ‘문명’을 가져왔다. 그는 기지에 딸린 오두막 하나를 허물어 그 널빤지를 가지고 화장실을 만든다. 쓸데없이 완곡한 레우즈는 함께 사는 동료 시워츠에게도 화장실 사용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은 레우즈의 것이기 때문에(이런 심리는 대체 뭐야?). 시워츠는 화장실을 쓰기 위해 ㅡ 맙소사, 북극에선 엉덩이 사이로 강한 바람을 맞으며 쭈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는 게 당연한 일인데도 대체 왜! ㅡ 그 대가로 한 달에 한 번씩 양동이를 비우게 된다. ‘똥’이 담긴 양동이를. 그런데 이 양동이란 것이 꽁꽁 얼어 있으니 거실에서 화덕의 열기를 쬐어 덩어리 가장자리가 녹아야만 해변까지 가서 버릴 수가 있는데, 일은 거기서 터져버린다. 시워츠가 양동이를 막 불 위에 얹었는데 묶어둔 개들이 사납게 짖기 시작했다. 그것은 곰을 보고 짖는 소리였음이 확실했기에 시워츠와 레우즈는 그대로 총을 들고 뛰쳐나간다. 그들은 보란 듯이 곰을 잡아 집에 돌아왔다. 그때 이미 양동이 속에서 탁탁 튀는 소리가 나고, 내용물은 거품을 내며 양동이 밖으로 천천히…….

 

 

이것만 있으면 다행이지. 왠지 시워츠만 이런 일을 겪는 것 같아 미안한데, 이것도 시워츠의 이야기다. 어느 날 그가 썰매를 몰고 가던 중이었다. 얼음덩이 사이의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정말이지)영악한 곰 한 마리가 그가 지나가는 순간 썰매 위로 몸뚱이를 날린 사건이다. 썰매는 박살났지, 개들은 썰매 끈에 엉켜버렸지, 아연실색한 시워츠는 냅다 도망치고 만다. 분노에 찬(!) 곰은 시워츠를 따라 전력질주 하는데, 그는 죽을힘을 다해 뛰면서 방한복을 벗어 옆으로 던져버렸다. 곰은 잠시 멈추고 방한복에 찝쩍대다가 다시 시워츠를 쫓았다. 시워츠는 이미 셔츠를 벗어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고 곰이 가까이 오자 셔츠를 옆으로 던졌다. 곰은 이번에도 셔츠에 눈이 팔렸다가 다시 그를 향해 질주한다. 그렇게 시워츠는 사냥 오두막에 도착할 때까지의 100m 되는 거리를 스트립쇼를 하며 달아난다. 이렇게까지 곰이란 녀석이 비상한 머리를 지녔었나. 놈은 시워츠가 들어간 오두막에서 10m쯤 떨어진 바위 위에 엎드리기도 하고 마침내 그가 잠들자 지붕 위로 올라가기까지 한다! 비장한 장면인데도 왜 이렇게 웃음이 나지……. 『북극 허풍담』은 전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걸 대체 몇 번이나 울면서 봐야 한단 말이냐……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까지 슬금슬금 들기 시작했다. 「젠장! 이 빌어먹을 더럽게 웃긴 .txt를 .avi로도 만들어줘!」

 

 

덧) 아래의 셔츠는 『북극 허풍담』 출간 기념으로 제작된 거라는데, 운 좋게도 얻어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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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페우스의 영역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수현 옮김 / 펄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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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페우스의 영역』의 출발점은 조금 특이하다. 여기에는 사사키 아쓰시란 소년이 등장하는데(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할 만큼 이 양반의 인물설정은 어쩐지 유기적이다 못해 '치열'하다. 게다가 이 소년뿐만이 아니라 일련의 작품에는 반복되는 인물들이 자주 나온다),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DVD와 함께 만들어진 소책자에서 과거의 작품연표를 작성했는데 아마도 『나이팅게일의 침묵』이란 작품에 등장했던 사사키 아쓰시의 나이가 틀어져버린 듯하다. 그럼 그를 5년 동안 잠들게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쓴 것이 이 『모르페우스의 영역』 제1장이라고 알고 있다. 응? 이런 이유로 소설이 탄생한다는 건 좀 억지스럽잖아 라고 하기엔, 뒤에 가서 기가 막히게 터뜨려주고 있다(소년의 각성 과정과 부모의 이혼은 부자연스럽게 생각되지만). 어쨌든 이건 메디컬도 뭣도 아닌 (메디컬의 탈을 쓴)드라마라고 결론내리고 싶다. 자, 불치병을 앓는 소년 하나가 있다. 미래의 기술이 개발되기까지 5년간의 콜드 슬립(인공 동면)이 결정되고 그는 수조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5년 뒤 눈을 뜨게 되고, 거기서부터 비로소 이야기가 풀어진다. 여기에 나오는 <동면 8원칙>에는 이런 항목들이 있다. 4항, 동면 선택자는 각성 뒤 1개월의 유예 기간을 거쳐 이전의 자신과 연속한 생활 또는 타인으로서의 새로운 생활, 이 양자 중에서 선택한다. 5항, 동면 선택자가 과거와 별개의 속성을 택한 경우, 이전 속성은 동면 개시 당시로 소급해 사망 선고된다. 6항, 이전과 연속성을 가진 속성으로 복귀했을 경우, 사회에 동면 사실 공개를 요한다……. 실은 이 내용이 시발점이자 도화선으로 작용하고, 동면에 빠진 소년을 관리하던 센터 직원 히비노 료코가 충격적인 행동을 개시함으로써 이야기는 급격히 바빠진다 ㅡ 이 행동으로 말미암아 『모르페우스의 영역』은 후속편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딱히 할 얘기는 없다. 5년간 잠들어있던 소년이 깨어난 후의 이야기는 헤살이 되므로. 의료 시스템을 따라가지 못하는 의료 정신의 부실한 상태? 그런 걸 굳이 얘기해서 뭐하나. 읽어보면 알 것을. 하나만 언급하자면 이런 식으로 (말이 안 나올 만큼)뒤통수를 꽝, 하고 맞은 적은 최근 몇 년 들어 처음이다. 그런즉슨, 이건 다음 이야기가 꼭 나와 줘야 한다니까.

덧) 그나저나 료코가 아프리카 노르가 공화국에서 만난 영사관 의무관은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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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부식 열도 1 금융 부식 열도 시리즈 1
다카스기 료 지음, 이윤정 옮김 / 펄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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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니토모 야스유키의 『돈이 울고 있다』란 만화를 아는지. 엘리트 은행원이 대부업체 지점장이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만화인데 이 『금융 부식 열도』와 궤를 같이 하는 접점은 '돈'이 되겠다. 자본주의의 오래된 테마는 역시 돈과 금융이니까, 당연히 돈의 움직임과 그것이 어디서 머물고 어디가 종착역인지를 따라가는 그림은 언제나 흥미롭다. 가장 접근성이 좋은 주제는 부정한 돈의 흐름과 변제에 관한 것이겠고. 그들이 입에 달고 사는 '잃어버린 10년'이건 '잃어버린 20년'이건 간에 거품경제로 인한 자산가격의 빠른 성장 속도는 원칙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거품이 끼고 말았다. 언뜻 보면 그야말로 '진흙 속에서 핀 연꽃'인데 돋보기를 들고 자세히 관찰해보니 결국 '시체꽃'이었다는 뭐 그런 얘기가 되려나……. 『금융 부식 열도』는 딱딱하면서도 무시무시한 '부식'을 타이틀에 넣음으로써 거품도 거품이지만 거기서 파급되는 '돈의 맛'을 보여주고 있고 ㅡ 배금주의, 더티 머니, 유불리를 따지는 괴수들이 한데 모여 총체적 난국이란 퍼즐의 조각으로 분(扮)한다. 일단은 다케나카라는 주인공이 있다. 이 평범한 은행원의 시선을 빌려 일본의 거품 끼고 부식된 경제를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절대 권력에 가까운 파워를 지닌 사토라는 교리쓰 은행 비서역(도쿄대 출신으로 설정)과 출신대가 달라 어디든 갖다 쓰고 버릴 수 있는 부하직원의 인상도 묻어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은행장의 딸 스캔들로 시작되는데, 후자의 이유가 없다면 굳이 교리쓰 은행 도라노몬 지점 부지점장인 다케나카란 인물을 사토가 캐스팅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스기모토가 사토의 심복인 스기모토가 다케나카의 입행 동기라는 점도 한몫했겠지만). 어쨌든 소설은 다케나카가 본점 총무부 주임 조사역으로 발령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다케나카와 함께 등장하는 인물들은 셀 수 없이 많지만(100명 가까이 되려나) 소설 속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것은 다섯 명 안팎이다. 이들을 줄기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다케나카 스스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발령에 그는 은행 주주총회에서 여론을 장악하는 총회꾼 ㅡ 주주총회에 참석해 금품을 목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거나 돕는 소액주주 ㅡ 들을 전담하는 '섭외반' 근무를 하게 된다. 총회꾼들 중에는 조직 폭력단과 우익 단체도 있는데 다케나카에게 내려진 임무는 주주총회를 대비한 스캔들을 막으라는 것. 은행 회장과 그에 줄을 대는 비서역의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 고민하는 다케나카의 첫 번째 사건은 불법 융자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야기가 되지 않으니 앞서 말한 일본 경제의 총체적인 문제, 거품 경제를 들쑤셔대야 한다. 돈은 회사에의 투자 등 유익한 곳에 쓰이지 않은 채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로 이어진다. 실제로 80년대 말 도쿄의 땅값이 미국 전 국토의 땅값과 맞먹는다는 수치가 나오지 않았던가. 이것이 거품이다. 사람들은 일본의 경제가 성장과 발전의 일로를 걷는 것으로 착각했다. 힘 있는 원맨에 의한 실력행사는 물론이거니와 금융계, 주택 문제, 그와 얽히고설킨 정치적 알력까지. 이 버블이 쉬이 사라질까? 붕괴는 되었지만 잔재물이 남았다.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거기에 자금을 대주고(부정 융자), 리베이트를 챙기고, 부실 채권이 될 줄 뻔히 알면서도 지옥문으로 들어간다(실은 복마전일지도). 작가는 다케나카로 하여금 거물 해결사 고다마와 만나게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ㅡ 고다마는 주인공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기 때문에 그저 박력 있는 인물로 생각될 수 있지만 그 역시 깨끗하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거품이 만들어낸 인물이다. 『금융 부식 열도』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태생이 거품이라고 해도 좋다.

기업은 은행주를 매각하고 은행은 기업주를 매각해 주식 시세가 떨어진다. 은행은 실질 이익의 감소로 인한 경영 부진에 빠지고 은행의 신뢰도 저하는 또다시 은행주의 매각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금융채 구제에 혈세를 사용할까? 대형 은행을 구하기 위해 공적 자금을 투입할까? 아니면 돈 자체를 거세해야 이 세계가 편해질까? 썩어빠진 관료주의와 맞물린 부식된 경제 블랙홀이 『금융 부식 열도』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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