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의 계보 - 마쓰모토 세이초 미스터리 논픽션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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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적잖이 당황했다. 분명 논픽션이라고 했는데 이건 소설이잖아……가 아니었다. 총 3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제목도 그럴싸하다. 「전골을 먹는 여자」, 「두 명의 진범」,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 ㅡ 카니발리즘을 떠올리게 하는 인육(人肉)의 희생양, 증거를 조작하는 사법부의 병폐, 문명이 단절된 산간 마을에서의 무차별 살인까지. 모두 실제 일어났던 일들인데, 타이틀의 미스터리(mystery)는 '신비'라는 뜻의 미스틱(mystic)에서 온다 ㅡ 계속 하면 misterie, mistere, mysterium, mysterion, mysteria, mystes, muo, mueo까지 갈 테니 여기서 끊자! 어쨌든 신비라는 단어를 내가 가지고 있는 사전(『현대 국어대사전』, 한서출판, 1973)에서 찾아보자면 이런 뜻이 나온다. 영묘하고 이상야릇한 비밀, 이론이나 인식을 초월한 일, 인간의 지력으로는 알 수 없는 비밀.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서 검색해도 크게 다르지 않은 뜻풀이를 찾아볼 수 있다. 세이초는 책에서 비일상적 공포를 선사하지만 모두가 실제 이야기이며 그 기저에는 평범한 일상이 깔려있다. 다시 말해 비일상이 일상을 침범하는 꼴이다. 으음, 그런데 이 미스터리라는 말 뒤에 '계보(系譜)'가 있군. 계보? 족보? 조상? 그 선단에는 뭐가 있을까? 신비스럽기까지 한 비일상적 공포의 시작과 끝에는 언제나 '인간'이 들러붙어있다. 너무나도 평범한 인간 한 개(個)가 어찌 보면 순식간에 불가해한 연유로 괴물이 되는 것이다 ㅡ 이 점에서는 심농(Georges Simenon)의 다음과 같은 말과 궤를 함께 한다.

 

 

어떤 이유 때문에 한 남자가 범죄를 저지르고 (...) 그는 더 이상 인간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게 되고 하나의 괴물이 되어 버린다 (...) 단 5분 만에 사람들은 그를 혐오의 눈길로 바라본다 (...) 혹시 재판에 참석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경관 사이에 앉아 있는 그 사내의 고독은 아주 인상적이다. 그는 더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이제 아무도 자신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수록된 사건들이 갖는 날카로운 비명에 비해 세이초의 붓은 건조하다. 그는 책에 이런 말을 써놓았다. 「사건의 배경이 평범하면 평범할수록 이야기의 비참함은 극적으로 고조된다. 무대가 단조롭기에 드라마가 보여 주는 자극은 희석되지 않고 박력을 띠어 간다. 담담하게 서술하며 단순하게 구성된 문장으로 기괴한 내용을 전달할 때 활자의 행간에서 무시무시한 박진감이 솟구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문장을 꾸며 봐야 호소력과 설득력이 감쇄되는 무익한 작업일 뿐이다.」 특히 첫 번째 이야기 「전골을 먹는 여자」를 읽으면 고개를 주억거리리라. 한 여자를 데려다놓고 그녀가 딸을 죽였다는 의심을 품은 형사가 「당신 계속 거짓말하고 있지? 도라(딸)는 왜 죽였어!」라고 윽박지르자 그녀는 이렇게 대꾸한다. 「먹었어.」(부모와 딸 모두 지적 장애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범죄는 우리 옆구리 근처에서 어정거리며 존재해왔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그땐 그랬지' 라는 말이나 '추억은 방울방울'처럼 항상 포근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 거다. 「두 명의 진범」은 역자 후기에도 나오듯 사법체계에 서있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자신감 과잉이 초래하는 엉뚱한 결과를 얘기한다. 여기서는 '단승식이건 복승식이건 상관없잖아' 하는 식의 작태를 볼 수 있다. 또한 재판관의 심리와 주관이 사건의 증거 판단과 양형(量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피력하는 세이초 나름대로의 추론도 음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시 심농을 불러본다.

 

 

나는 범죄자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취급한다. 그래서 그들을 감옥에 처넣어 버린다. 야수들처럼 우리에 가둬 버린다. 나는 검사가 아니라 의사와 심리학자들이 그들을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모든 직업에 실습 과정이 있는 만큼, 검사들이 타인을 심판하기 전에 수감자로 감옥에서 여섯 달을 보내거나.

 


고립된 산간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 또한 실제 사건이 아니었다면 쉽게 믿지 못할 이야기다 ㅡ 뭐, 임성훈 아저씨처럼 '세상에 이런 일이!' 하고 외칠 일이 어디 이것 하나밖에 없으려고(사건의 무대는 임성훈 씨의 노래 「시골길」처럼 '내가 놀던 정든 시골길'이 아니니까). 이것은 도이 무쓰오란 청년(그는 마을의 성 풍속과 폐병이라는 콤플렉스로 인해 이웃들과 단절된다)이 같은 마을 사람 서른 명을 잔인하게 죽인 일이다. 여기에는 범인의 피해망상이란 부분도 있겠지만 마을 사람들의 그를 보는 시선 또한 분명 도화선이 됐다고 본다(의사가 흰 가운이 아닌 캐주얼한 니트에 청바지를 입고 있다면 우리가 느끼는 신뢰도에 변화가 생길까?).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적지 않겠다 ㅡ 다만 『미스터리의 계보』에 실린 모든 사건이 헤비급 펀치의 위력을 지녔다는 것만 언급해둔다. 이 책에 있는 이야기들과 비슷한 소설이나 영화는 엄청나게 많을 거라 생각한다. 반면 세이초는 범죄의 전모를 해체하고 조립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소설 만들기'가 아닌 '논픽션'을 택했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가지고서 말이다. 이 의구심은 말미의 조영일 문학평론가의 해설에 달린 각주를 보면 어느 정도 해소된다.

 

 

세이초에게 있어 범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겠다. 하나는 개인적인 선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범죄이고, 다른 하나는 유전적 기질이나 사회적 압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범죄다. 이때 세이초는 정확히 전자에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후자에는 논픽션이라는 형식을 부여한다. 바꿔 말해, 전자의 경우 범죄 행위가 그것을 저지른 자에게 절대적으로 귀속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등장인물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소설)과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저 옛날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는 범죄의 동기를 감정, 사욕, 이상심리, 신념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다시 세분화될 수 있다. ㉠감정 : 연애, 원한, 복수, 우월감, 열등감, 도피 등. ㉡사욕 : 물욕, 유산 문제, 자기 보호 등. ㉢이상심리 : 살인광, 변태심리, 예술로서의 살인, 각종 콤플렉스 등. ㉣신념 : 사상, 정치, 미신, 종교 등에 기초한 범죄. ……아무리 범죄자가 뭐 빠지게 뛰어봐야 이 동기들 중의 하나에는 걸려들 것 같다(『미스터리의 계보』에 등장하는 범죄자들은 어느 쪽에 속할까) ㅡ 일본의 추리소설 비평가 곤다 만지(権田萬治)는, 세이초 작품에 등장하는 범죄의 동기는 이러한 분류를 뛰어넘는 것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세이초는 인물보다는 그 인간을 둘러싼 환경(사회? 시스템?)을 앞세운다. 그리고 이것을 '픽션'이 아닌 '논픽션'으로 썼다. 그럼에도, 그로테스크한 묘사를 가미해 소설로 꾸미지 않았음에도, 나는 곳곳에서 공포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당사자에겐 전혀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니겠지만, 그제(2012. 6. 2) 「그것이 알고 싶다」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25년 만에 죽었다 살아 돌아온 한 남자의 얘기를 다뤘다. 그는 1987년 당시 19살에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병원에서 수술한 후 연고가 없는 '무명남'으로 처리되어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그 후 정신병원 관계자, 행려자 보호책임을 지고 있는 구청 등에서는 제대로 된 신원조회나 그의 가족을 찾아주려는 노력을 다 하지 않았다. 19세 청년이 40대 중년이 되어 25년 만에 노모 앞에 나타난 것이다(엄밀한 의미에서 범죄는 아닐지라도 당국의 무관심이 문제가 된다). 만약 당신의 가족이 같은 일을 겪었다고 생각해보라. 아니면 당신의 가족 중 한 사람이 25년간 복역한 후 출소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그 사람이 정말 범죄를 저질러 옥살이를 한 것이 아니라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수감되었다고 한다면, 진실이 규명돼도 그땐 이미 늦은 것이다 ㅡ 그것도 사법체계의 권력자들에 의해 증거가 조작된 것이 결정적 원인이라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지적 장애가 있어 딸을 죽여 그 살을 먹고도 태연자약했던 여자, 나병(癩病)에는 인육이 효능이 있다는 민간 속설 때문에 소년을 죽인 남자, 증거 보강을 위해 상황을 조작하는 경찰, 고립된 산간이라는 지역성 · 얼마간의 이상심리 · 폐병 콤플렉스라는 복합적인 요인이 비극을 부른 대량 살인. 나는 『미스터리의 계보』에서 세이초의 다큐멘터리를, 무미건조한 문장 때문에 외려 머리털이 곤두서는 소설 같은 현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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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스러운 탐정들 1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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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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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63 -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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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1

 

 

할리우드식 사르카즘이야 그렇다 치고, 스티븐 킹만의 악랄하고 무자비하게 긴 괄호 세례(공공연하게 '부연의 king'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내 말 믿으시라, 내 글에서의 괄호 중 쓸데없는 것은 수천 개 중에서 한두 개밖에 없으니까, 라고 속삭이는 일종의 서브텍스트처럼)에 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가 10살로 접어들던 해의 극장에서 늙고 탐욕스러운 비행접시인이 등장하는 《지구 대 비행접시》에서 공포의 씨를 보지 못했다면 지금의 작가 스티븐 킹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만약 그가 어릴 적부터 공포 영화를 접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공포 문학, 호러 문학의 방향 제시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우왕좌왕했을지도 모른다(킹 이전의 위대한 작가들도 있었지만). 『11/22/63』도(작가가 소설 속에서 비유한 '제목에 항상 숫자가 달리고 살인마가 거리를 활보하는 영화'의 느낌과 아주 살짝 비슷하달까) 이 '만약'이라는 하나의 명사에서 출발하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과거 여행이다('즐거운 여행'은 아니고). 제목의 숫자는 미국의 35대 대통령 케네디가 사망한 날이다. 1963년 11월 22일. 그러니까 '만약' 과거로 돌아가서 케네디의 암살을 막는다면, 하는 게 골자가 되겠다. 소설에서, 식당 창고의 '토끼 굴'을 통하면 1958년 9월 9일 11시 58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여기서 시간을 가지고 장난친 수많은 영화를 떠올려볼 수 있을 텐데 이 소설은 약간은 다른 설정을 취한다. 과거로 갔다가 다시 현재로 오게 되면 지금의 상황은 변했을지 몰라도, 다시 한 번 과거로 가게 되면 항상 1958년 9월 9일 11시 58분부터 시작한다는 거다. 그때부터 리셋이 된다. 토끼 굴을 통과해 과거로 가는 순간 현재의 상황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버린다. 하나 더. 『드래곤볼』의 '정신과 시간의 방'처럼, 과거에서 얼마를 머물러도 현재에서의 시간은 고작 2분밖에 지나질 않는다. 오늘 아침 6시 정각에 토끼 굴을 통해 1958년으로 돌아가 10년을 지내다 와도 현재는 아침 6시에서 2분이 지나간 6시 2분이다(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생기는 신체의 변화는 현재로 돌아와도 이어진다). 그럼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갈 때마다 1958년일 텐데, 케네디가 죽은 1963년까지 가려면 5년씩, 즉 한 번 실패해서 두 번째로 갔다 오면 나이가 10살은 먹어서 돌아오는 것이다. 여기(현재 시점)에선 2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어디선가 주워들은 결말은 조 힐(킹의 아들이며 그 역시 작가다)의 의견이 반영되었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그 끝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국내 출간이 이루어지기 전에 출판사의 배려로 가제본을, 그것도 1권만 읽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번역본도 동시 출간이 아니라 일정에 맞추어 따로따로 나온다고 하니, 1권의 끝에서 어쩔 줄 몰라 어렵사리 미소를 쥐어짰던 주인공이 된 심정이다. 말인즉슨, 우리의 주인공이 케네디의 죽음을 막을 것인지 어떤지는 이 소설의 끝장을 봐야 한다는 말이다. 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Pt.2


보안등급이나 위기경보를 보면 주의(yellow), 경계(orange) 순으로 위험도의 색깔이 변화한다. 또 노란색은 유다의 옷 색깔이라든지, 까만색은 죽음의 의미를 담고 있어 검은 고양이를 마녀의 종이라고 여겼다든지(그런가하면 초록색은 행운의 색인 동시에 불행의 색으로 취급된다) 등등. 그러나 나로서는 소설에 등장하는 다소 컬러풀한(?) 카드맨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그저 제이크의 세계가 바뀐 정도에 따라 카드맨도 옷을 갈아입는 게 아닐는지. 종국에 일이 틀어지자, JFK는 제이크로부터 팽(烹) 당하긴 했지만 ㅡ 어떤 의미에서는 말이다 ㅡ 딱 이 정도가 나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의 발단에는 여자가 있으니까. 새디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숙녀니까. 단 고민되는 것은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을 저장할지 다음번에 새로 시작할 마음으로 과감히 꺼버릴지 하는 건데…… 나도 아이팟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게임을 하다 보면 이런 기로에서 고민하곤 하니까 말이다. 'resume'을 누를지 아니면 'abandon'을 누를지. 전자는 계속 이어서 할 수 있지만 이미 지나온 것을 바꿀 수는 없고, 후자는 누적된 것을 다 잃어버리지만 처음의 시점부터 아예 다른 방향으로 시작할 수 있다(그럼에도 애쉬튼 커처는 아예 스스로를 죽여 버리기도 하지). 물론 어느 쪽이든 간에 5, 60년대의 것들을 엿볼 수 있는 독자들만 좋은 일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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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5
우타노 쇼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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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노 쇼고 曰, 「いろいろな意味で今までにやったことのないこともやっているので、何とも言えません。読んだ人がどういう風に感じるのかが、楽しみというか怖いというか。今回はシンプルに物語を書くことを心がけてつくったので、そのあたりを読んでいただければと思います。」 이대로라면 '참 속 편한데' 라기보다는 '쿨해도 너무 쿨한 거 아냐?' 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얄밉다. 내용도 현실성이랄지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긴 해도 짐짓 모르쇠로 방어하는 무관심한 필치는 발군이다. 소설은 작가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든가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 또는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과 궤를 함께하지 않을까 했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져버렸다. 그것도 뒷맛이 좋지 않고, 씁쓸하게. 그런데 말인즉(표현이 이상할까?), 슬픈 것도 재미의 일종이고, 무서운 것도 재미의 한 축이며, 심지어 짜증이 난다 하더라도 넓은 의미로 보자면 그것 역시 재미의 하위 카테고리에 들어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한 번 더 꼬아서, 그러니까 '히라타의 간파(혹은 오해)'가 의도된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들지만 말이다(아니면 마스미 역시 결과를 예측했으면서도 의도한 것이라면). 그 이후는 작가가 알아서 할 일이고. ……'마지막 5페이지로 세계가 반전'이라는 식의 가열한(!) 일본 측 카피가 절반의 성공으로 느껴질 만큼, '몸서리가 쳐지다'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어이쿠 하고 놀라기는 했다. 앞서 말한 '부족한 개연성' 보다는 이쪽이 낫달까, 아니면 미스터리 같지 않은 미스터리랄까. 우타노 쇼고답다.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의 세계에서 대체 누가 헌신했고 누가 구원받았나? 누가 거짓말을 했고 누가 보상받았나? 누가 주체이고 누가 객체인가?



저자 인터뷰 ①


저자 인터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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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집사를 믿지 마라 스펠만 가족 시리즈
리저 러츠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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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무리 '전형적'이란 관형사인지 명사인지 구분이 잘 안 가는 표현을 질릴 대로 우려먹어서 이제는 신물이 난다고 해도 이번 한 번만은 더 써야겠다. 『네 집사를 믿지 마라』는 전형적인 칙릿에다가 전형적인 미국식 사르카즘(이것도 많이 썼지, 참)으로 똘똘 뭉친 소설이라는 것. 지금 나는 책을 완독하자마자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더 이상 협박, 사건, 사고(라 부를 수 있다면) 도청, 사기, 감시 따위에 놀아나고 싶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이지처럼 서류 보관실에 11시간이나 감금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싫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족속은 뻥 뚫린 곳이건 폐쇄된 곳이건 상관없이 어느 한군데에 붙박여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군대에 있을 적에 지뢰를 밟은 채로 17시간이나 있어봤지만 그런 건 일반적인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물론 거짓말이다). 그나저나 이 품행제로 스펠만들에게는 도저히 희망이 안 보인다. 개과천선? 인과응보라면 몰라도 그들에게 참사람이 되라는 식의 간곡한 부탁은 차마 하지 못하겠다 ㅡ 어렸을 때(적어도 바지에 오줌을 지릴 정도의 나이가 지나서), 친구를 골탕 먹이기 시작하면 그 친구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 때까지 끝장을 보는 녀석이 한둘쯤은 있지 않았나.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기지만 이들이 한데 뭉쳐 사는 이유는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것밖에는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말장난? 장전 준비. 휴대전화 몰래 보기? 이미 완료. 남의 집 쓰레기봉투 훔치기? 돈만 준다면야. 싫어하는 티셔츠 억지로 입히기? 선동 시작. 애인이 다른 남자와 선보는 것? 참을 만큼 참았다. 여긴 웬일이냐고 묻는 말에 그냥 지나가다가 들렀다고 말하기? 다들 그러지 않나. ……『네 집사를 믿지 마라』를 읽는 데는 번역의 묘미도 한몫 했다고 본다. 시리즈를(본작은 네 번째) 통째로 읽지는 않았지만 전작들이 어땠을지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작가가 페이지의 하단에 넣은 각주만 해도 그렇다. 최소한 이자벨이란 인물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은 곳곳에 널린 각주만으로도 충분하다(상당한 센스다). 소설은, 조금은 악랄한 시트콤처럼 보이는데 ㅡ <프렌즈>의 정색한 조이보다 더! ㅡ 그래서 더 흥미로운 것이리라(적어도 여든 넘은 남자가 위트를 가지고 사는 모습은 언제 봐도 멋지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 시리즈가 20편이나 30편이 훌쩍 넘게 출간되어 그들의 세월을 훑을 작정이라면 나는 더 이상 읽을 용의가 없다(이유는 이미 앞서 밝혔다). 물론 다섯 번째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아마 여섯 번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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