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드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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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든 것에 부패의 씨앗이 들어 있어요. 사물에는 쇠퇴라는 씨앗이. 사람에게는 죽음이라는 씨앗이.」(p.43) 노스페라투는 뱀파이어와 동의어다. 죽은 후 무덤에서 깨어나 사람의 피를 갈구하는 귀신. 그것은 독일 출신 무르나우 감독의 동명 영화 《노스페라투》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ㅡ 심지어 이런 요소는 나날이 인기를 얻어 영화와 소설뿐만 아니라 게임에까지 적용되었는데, 캡콤에서 만든 <마계촌>, 또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에는 '언데드'가 등장한다. 더욱이 뱀파이어는 살아있는 자들의 피를 원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조금만 찾아보면 볼테르 역시 이에 대해 언급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영국과 파리에는 세리, 사업가와 같이 일반인들의 피를 빨아 먹는 이들이 있다. 진짜 뱀파이어는 공동묘지가 아니라 궁정에서 살고 있다.」 블라드는 이브와 만날 때 욕실에 있었다. 여기에 피는 등장하지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에르체베트 바토리라는 여인이다. 저간의 사정은 차치하고, 어느 날 그녀는 잘못을 저지른 하녀를 때리다가 그 하녀의 피가 자신의 얼굴과 팔에 튀게 된다. 그것을 닦던 바토리는 하녀의 피가 닿은 쪽 피부가 하얗고 탱탱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이 마흔이었던 그녀는, 젊은 여성의 피로 목욕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긴다. 『블라드』는 루마니아의 체페슈를 모델로 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역시 바토리라는 여인의 냄새가 풍긴다. 그녀 역시 피 자체만이 아니라 피를 흘리며 괴롭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즐겼던 것이다 ㅡ '철의 처녀'나 '철의 새장' 같은 고문 도구들은 이 바토리로부터 시작되었다. 자, 블라드는 루마니아에 위치한 고대 왈라키아 왕국의 왕자였고 그의 아버지 이름은 블라드 드라쿨(Vlad Dracul)이었다. 루마니아에서 '드라쿨'이란 말은 악마나 용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당시 블라드가 사용했던 문장 역시 용이었으니 그 이름의 기원을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으리라 ㅡ 역시 그가 즐겨 사용했던 처형 도구인 꼬챙이는 루마니아어로 체페슈(tepes)이다. 그런가하면 (사족이겠으나) 『드라큘라』를 탄생시킨 브램 스토커는 뱀버리 교수라는 사람을 알게 되어 동유럽의 뱀파이어 설화에 대해 듣고는 드라큘라 백작에 대한 착상을 얻게 되는데, 그의 소설 속에서 뱀파이어를 연구하는 반 헬싱의 모델이 이 뱀버리 교수라는 해석도 있다. 또한 스토커가 만들어낸 일종의 '법칙'도 실로 꽤 고정화되었다(송곳니, 신사적인 면모, 박쥐로의 변신, 마늘, 십자가 등등). 이러한 것들은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모든 매체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로 굳어지고 말았다. 아마도 뱀파이어의 요건이나 스토리는, 어느 순간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축적된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블라드』도 충실하게 기존의 설정을 가지고 오긴 하지만,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그랬던 것처럼 '기독교'와 '위대한 나라 영국'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이브가 다니는 직장과 인생이라는 저주, 그 저주를 탐내는 블라드의 역사와 인간의 음험함만 있을 뿐. ㅡ 「모든 것에 부패의 씨앗이 들어 있어요. 사물에는 쇠퇴라는 씨앗이. 사람에게는 죽음이라는 씨앗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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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깎기의 정석 - 장인의 혼이 담긴 연필 깎기의 이론과 실제
데이비드 리스 지음, 정은주 옮김 / 프로파간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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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원과 윤오영의 두 노인이 제각기 독을 짓고 방망이를 깎던 때와 비교한다손 치더라도 데이비드 리스의 연필 깎기는 시공의 차만 있을 뿐 독과 방망이의 경우에 비해 손색이 없다. '연필 깎기의 정석'이라거나 '장인의 혼이 담긴 연필 깎기의 이론과 실제'라는 문구만 들었을 때는 거의가 키치적인 사유의 산물이려니 했다. 「내 평생 이렇게 요염하고 도도한 연필은 처음 봅니다.」 맙소사. 연필을 두고 요염하다느니 도도하다느니 하는 말이야말로 처음 듣는 바이다. 너무 뾰족해서 기절할 뻔했다고? (하이데거를 들먹이며) 그의 연필 또한 '손안의 것'이라고? 펜은 칼보다 강하지만 연필은 그 펜보다도 한 수 위라고? 물론 페트로스키의 『연필』을 읽었을 적에는 정말이지 멋지다고 생각했다(절판에서 벗어나 재출간될 수 있기를!). 그렇지만 『연필 깎기의 정석』은 그야말로 '연필 깎는 법'을 알려 줄 뿐인 거다 ㅡ 다행히도 처음 몇 쪽을 읽는 순간 의심은 곧 사그라졌지만. 「나의 도구 세트에서 연필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작업용 앞치마이다. 앞치마를 두른 남자는 프로페셔널해 보이는 법이다.」 지당한 말씀. 캐주얼한 니트에 물 빠진 청바지, 개구리 똥색 스웨이드 구두를 신은 의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가 그에게서 느끼는 신뢰도는 백색 가운을 입었을 때보다 몇 계단은 떨어질 것이다. 뾰족하게 깎아진 연필이 고객에게 안전히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비닐 튜브와 눈의 피로를 최소화하면서 오랫동안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끔 해 주는 (LED 조명이 달린) 머리띠형 확대경, 족집게로 채취한 연필밥, 주문 번호와 날짜 그리고 뾰족함의 등급이 포함된 별도의 라벨과 인증서까지 ㅡ 이 인증서는 일명 '뾰족함 인증서'로, 그와 함께 「뾰족한 연필은 위험한 물건이므로 주의해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다. 희한한 것은 목차를 살펴보다가 발견한 것으로, '샤프펜슬에 대한 짧은 소견'이라는 제목의 장(章)이었다. 그런데 웬걸, 그 장은 단 한 쪽으로 끝나고 만다. 더군다나 오로지 한 문장밖에는 적혀 있지 않다. 「샤프펜슬은 순 엉터리다.」 이자는 장인답게(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전동식 연필깎이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는 전동식 연필깎이를 두고, 사무용품 업계에 사람의 심리를 교묘히 조작하는 자들이 넘쳐난다는 증거라는 둥 연필을 깎는 과정에서 기계가 인간을 소외시키는 방식이라는 둥 일견 궤변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면서도 전동 연필깎이 사용법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것은 '전동 연필깎이가 있을 법한 집에 무단 칩임을 하여 문제의 기계(빌어먹을 전동 연필깎이!)를 찾아내 콘센트를 뽑아낸 다음 나무망치나 쇠망치를 이용해 그 연필깎이를 개박살 낸 후 ‘Your problem is resolved’라는 메모를 남기고서 탈출하는 것'이다……. 우습게도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뒤 엘카스코 M430-CN 제품이 갖고 싶어졌다. 그것은 이중날 회전식 연필깎이로, 예산 문제만 없다면 기꺼이 책상 위에 들여놓고 싶은 물건 중의 하나일 것임에 틀림없다. 이 제품의 매력은 바로 위에 달린 유리창일 텐데, 연필깎이 윗부분에 투명한 유리를 덧대어 절삭날이 돌아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예산이 문제된다면 데이비드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잘 깎아진 연필을 주문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는 있다. 연필 한 자루에 35달러만 내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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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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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이라 할 만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목적은 사회의 망탈리테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으니 이런 인터뷰 형식을 띤 것에는 찬성하는 바이다. 더군다나 이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역시 인간의 상상력이므로. 『걸리버 여행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인류의 역사는 탐욕, 파벌 싸움, 위선, 배반, 잔혹성, 분노, 광기, 증오, 시기, 정욕, 적의, 야심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악의 결과인 무수한 음모, 반란, 살인, 대량 학살, 혁명, 추방으로 가득하오……. 나는 당신네 원주민들 대부분은 땅 위를 기어 다니도록 자연이 허용한 작고 추악한 해충 중에서도 가장 해로운 종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소.” 그런가하면 데이브 그로스먼은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진 해크먼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배트 21》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이 영화 속에서 한 공군 장교는 여느 때와 달리 근거리에서 직접 살해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몸서리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제임스 본드, 루크 스카이워커, 람보, 인디애나 존스를 통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무자비하게 수백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을 보게 된다. 여기서 요점은 우리 사회의 다른 부분들에서처럼 미디어는 살해의 본질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 주는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나서서 누군가를 죽이려드는 사람은 좀처럼 없지만 익명성 뒤에 숨어 폭력을 가하는 것을 즐기는 이들은 쉬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살인이나 실제적인 폭력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며, 타인에 대한 시기, 질투, 모략, 음해, 불분명한 정보에 의한 맹목적 과신 등을 통해 눈앞에 드러나는 현상보다도 훨씬 복잡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소설에서 드러나는 것은 단연 ‘불분명한 정보’로 야기되는 인간의 쓸모없는 상상력과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려는 심리일 것이다. 비밀리에 진행되는 인터뷰는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여실히 보여 준다. 그들은 익명이 보장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보상을 누릴 수 있다고 여기며 익명성이 가져오는 파괴적인 결과에는 너나없이 나 몰라라 한다. 그럴 경우 자신이 믿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그런 결과를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자들의 묘한 혼합이 이루어져 일종의 반사회적 행동이 유발되기도 한다. 루시퍼 이펙트로 알려진 필립 짐바르도는 이러한 익명에 대해 얘기한다. 익명성은 가면뿐만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을 대우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부여할 수 있다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특별한 개성을 지닌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 관리하는 구별되지 않는 ‘타인’으로 대우하거나 나의 존재를 무시하면, 나는 곧 익명의 인간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이다. 바로 『Q&A』에서 보이는 인터뷰의 그것이다. 그들은 애초 익명이라는 것이 전제되지 않았으면 사용하지 않았을 단어들을 쓰고,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실에 기억이라는 이름을 씌워 끄집어내는 척하며, 상상에 상상을 더하는가 싶다가는, 또 거기에 거짓말이라는 조미료를 첨가한다. 만약 공개된 장소에서의 인터뷰라면? 거리 한복판에서 진행되는 뉴스 프로그램이었다면? 아마도 그들은 성심성의껏, 고매하고 나약한 소시민 흉내를 냈을 터다. 인터뷰가 ‘비공개’로 시작되었다는 점, 그리고 누구나가 자신의 일이 아니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는 ‘불손한 생각’이, Q에 따라야 할 온당한 A를 찾을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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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 케이스북 셜록 시리즈
가이 애덤스 엮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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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셜록. 어쩌다 우리가 홈스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는가. 셜로키언들의 압사당할 정도의 주석과 멋들어진 삽화로 중무장한 고급 하드커버가 셜록 홈스의 ‘끝판 왕’이라고 생각했을 적에는, 적어도 그때는 그것이 추론의 과학을 예술로 승화시킨 모델에게 합당한 대우라고 여겼음에 다름 아니다. 환상보다 더 환상 같은 환상을 만들어낸 위대한 자를 단순히 ‘셜록’이라고만은 부를 수 없었던 것일 터다. 더욱이 밀레니엄을 지나오면서 몇 차례나 거듭된 셜록 홈스 이야기들과 더 이상은 새로울 것이 없었던 책들 또한 쏟아지기를 반복했는데, 그 중에서도 대중의 시각적인 측면을 즐겁게 했던 것은 가이 리치 감독이 연출한 영화 정도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러구러 봐줄 만하다고는 생각했으나 그것은 (자질구레한 각론은 차치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그러니까 ‘현대’라는 딱딱한 단어와는 달리 낭만을 추구한 멜랑콜리함이 버무려졌다는 딱 그 정도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What the hell are you doing?” “Boooored!” 사실 나도 좀 지겨웠다. 그리고 홈스에 대한 관심이 잉걸불처럼 조금씩 사그라지고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 내 예상보다는 조금 빨리 ―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셜록 홈스가 등장했다. 두어 번쯤은 ‘재해석’이라는 무미건조한 명사를 들이밀며 매력적인 천재 소시오패스(사실은 정신 이상자)를 과거로부터 불러오리라고 말이다. 물론 21세기의 드라마로 현현된 홈스는 과거의 망령(이라면 불손할까도 싶지만)에서는 멀리 떨어진 인물로 돌아왔다. 지금 우리가 가죽 소파에 팬티 바람으로 앉아, 오프닝 시그널이 주는 ‘영국식 우울록’에 버금갈만한 멜로디 하나조차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누구나 어림짐작할 수 있는 그런 홈스가 아닌 전혀 다른 형태로.





소시오패스는 자신의 매력을 남을 이용하는데 종종 사용하며 지루함을 쉽게 느낀다. 어디 그뿐인가? 위험해 보이는 일에 흥미를 느끼며(당연히 흥미가 사라지면 금방 포기한다) 때로는 잔인한 취미도 서슴지 않는데다가 말을 교묘하게 구사해서 타인을 유혹하거나 착취하기도 한다.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은 채 남을 잘 속인다는 건 덤이라고 치고. 여기에, 지구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 중 대부분에 속할 게 빤한 우리(존)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그런 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냥 받아들이고, 그들의 칭찬을 전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되며 소시오패스를 이겨보겠다고 아득바득 애를 쓰는 것은 소모적인 전투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그들을 현실세계로 이끌면 이끌수록 우리(존)는 외려 거기에 이용당할 뿐이니까. 당연히 그들의 능력 또한 부러워할 게 못 된다. 그러니까 존은 이렇듯 항상 셜록의 비위를 맞추며 뛰어다닐 수밖에 없다.





BBC판《셜록》은 위에서 언급한 재해석을 과거 시점으로 보지 않고, 너나없이 보도블록 위에서 마음껏 프리 허그를 하고 스마트폰의 촉감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라는 달콤하고도 팍팍한 현실로 끌고 왔다. 누구나 인정하다시피 결과는 실로 대단한 연착륙이었다. 셜록 홈스의 괴팍한 인물상은 물론이거니와 ― 미국의『피플』지는 다음과 같은 말로《셜록》에 대한 감상을 대신했다. “Is Benedict Cumberbatch the best-ever Sherlock Holmes? I think so.” ― 모리아티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마이크로프트의 인물 설정 또한 훌륭하며, 더군다나 시리즈 전반에 걸친 미니멀한 오프닝 시퀀스에다가 런던 날씨 같은 우중충함까지 그 영상미를 돕고 있다. 정말이지 칭찬해줄 만한 일이다. 짝짝짝.





이『셜록: 케이스북(Sherlock: The Casebook)』은 지금까지 방영됐던《셜록 시즌 2》까지의 보고서이자 기록물이다. 다음 작품이 기획되었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인터넷 곳곳에서 촬영지 사진이 떠돌아다니는가하면 아예 드라마에 나왔던 셜록의 휴대 전화 문자 알림음까지도 제 전화기에 다운로드받아 설정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니,《셜록》의 인기는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을 듯하다. 책을 열면 첫 장부터《셜록》의 탄생이 시작된다. 마이크로프트로 분했던 마크 게이티스(방송작가이자 연기자)의 말 한마디는 그것을 오롯이 설명해 준다.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결국 화제에 오르는 건 늘 셜록 홈스였다.” 이러니《셜록》이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었겠나? 한 가지 약간 징그럽다고(?) 느꼈던 부분은 그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유일하게 떠오른 인물이었다고 언급한 점이다. 이거야말로 신을 믿지 않는 자라도 어쩔 도리가 없는 디렉터의 ‘촉’일 것이다. 다음 말은 더 가관이다. “일단 베네딕트를 셜록에 낙점하자 ‘연기를 잘하는 사람’을 뽑으려던 기준이 ‘누가 베테딕트와 잘 어울릴 것인가’로 바뀌었다.” 마틴 프리먼은 이렇게 조금은 허무맹랑한(?) 캐스팅의 희생자로 낙점되었다. 땅. 땅. 땅.





‘분홍색 연구’라는 파일럿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셜록》의 한 시즌은 거의 영화 세 편으로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 제3화 ‘잔혹한 게임’에 나오는 사건들 중 하나만 잘 손봐도 너끈히 한 편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걸 셜록이 단 15분 만에 해결한다면 굉장히 훌륭할 것이라는 마크 게이티스의 기상천외한 착안에는 살짝 움찔했지만. 물론『셜록: 케이스북』에는 우리가 텔레비전만을 통해 접했던《셜록》의 비화나 아기자기한(실로 깨알 같은) 주석까지도 엿볼 수 있다. ‘분홍색 연구’에서 택시 기사 제프를 추격했던 셜록과 존의 동선이라든지, ‘벨그레이비어 스캔들’ 편에 등장하는 셜록의 ‘그 여자’ 아이린 애들러와의 문자 메시지 내용, 셜록과 존이 살고 있는 허드슨 부인의 집에 들여놓은 갖가지 물건들 ― 이를테면 임대보증금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벽을 향해 난사한 총탄(스마일 엠블럼으로 가려놓긴 했지만), 황소인지 버팔로인지 알고 싶지도 않은 박제 머리에 걸친 헤드폰이라는 21세기의 물건, 셜록의 생각으로 허드슨 부인이 수프 육수를 만드는 데에 사용할 것이라 의심치 않는 ‘빌리’라는 이름의 해골, 부엌을 채운 각종 화학약품과 현미경 그리고 플라스크 따위, 죽은 후 일어나는 침의 응고 시간을 재겠다고 냉장고에 넣어놓은 잘린 사람의 머리…… 이러니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셜록이란 인물을 우리가 사랑하지 않으며 추앙하지 않고 어찌 배길 수 있으랴.





또 하나《셜록》에서 건져낼 수 있는 것이라면 모리아티의 재발견이라는 것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책에는 모리아티 역으로 분한 앤드류 스콧의 인터뷰 역시 실려 있다. “로시니의 <도둑까치>를 들으며 춤을 추는 장면이 기억난다. 사실 이 장면은 대본에도 나와 있지 않다……사람들은 크림색 넥타이를 매는 악당이 어디 있느냐며 걱정들을 많이 했다…… 난 모리아티의 약점을 조금도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런. 그는 천성이 능글맞은 건지도 모를 일이다. 모리아티 역을 연기했던 다른 배우들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하기는커녕 그저 대본만 주구장창 77번씩이나 읽었다니. 그러나 셜록의 진정한 숙적은 그의 형 마이크로프트가 아니라 짐 모리아티였으니 그의 캐릭터는 셜록만큼이나 퍽 중요한 셈이었다. 배트맨과 로빈…… 아니 배트맨과 조커처럼. 심지어 나는 ‘sherlock’과 ‘moriarty’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유튜브 페이지를 검색한 결과 누군가가 게시한 아래의 영상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언뜻 보면 셜록의 팬이 만들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영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리아티가 함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모리아티는 셜록이란 인물의 중요도에 뒤지지 않는다.

클릭





BBC 드라마의 짜릿한 흥미로움을 배가시키는『셜록: 케이스북』은 다양한 재미를 갖추고 있다. 모리아티의 휴대 전화 착신음이 왜 하필이면 비지스의「Staying Alive」로 채택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대체 누구에게 물어볼 것인가? 심지어 셜록이 애들러의 금고를 열 때 외쳤던 ‘바티칸 카메오스(vatican cameos)’가 무슨 뜻인지는 또 어떻게 알아낼 거고(나는 셜로키언은 아니라서 설명해 주지 않으면 모른다). ‘배스커빌의 사냥개들’의 원문 ‘The Hound of Baskervilles’를 ‘The Hounds of Baskerville’로 S자 하나만 옮긴 것은(이것 역시 눈치 채지 못했다)? 《셜록》이 가상의 병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하우스》와 묘하게 크로스 오버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 나는 셜록과 하우스 둘 다 약물에 중독된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 그리고 셜록의 하숙집은 221번지 B호인데 하우스의 아파트는 221B호라는 것 따위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또 다른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의도적으로 홈스(holmes)와 발음이 비슷한 제목(home과 뜻이 같은 house)을 사용한데다가,《하우스》에 등장하는 제임스 윌슨과 존 왓슨의 이니셜이 동일하다는(J.W.) 점 등등. 아, 내가 무릎을 쳤던 놀라운 것 하나 더. 존은 코난 도일의 원작『주홍색 연구』에서는 어깨에 총상을 입었지만『네 개의 서명』에서는 상처가 다리로 옮겨가는가하면 나중에는 그저 ‘사지 중의 하나’에 총상을 입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미안하다, 이것도 몰랐네). 그래서《셜록》에서는 이 사항을 존이 팔과 다리에 모두 총상을 입은 것으로 보이게 묘사했고, 정신적인 요인 때문에 절름거리는 것으로 그렸다고 한다. 셜록이 “Afghanistan or Iraq?” 하고 묻는 것도 그래서였다고.





자. 까칠하고, 안하무인에, 인간미도 없고 사회성마저 제로다. 그러나 예리한 날붙이같이 움직이는 두뇌와 기네스북 선정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이 다루어진 인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셜록 홈스는 가뿐히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출연했던 배우들이 말하는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코난 도일의 원작과 비교해 볼 수 있는 페이지, 그리고 셜록과 존의 대화를 포스트잇으로 풀어놓은 감각 있는 편집까지(한글과 매치되는 서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셜록 홈스를 좋아하고 드라마까지 섭렵했으며 다음 시즌 방영분을 기다리고는 있지만 아직『셜록: 케이스북』은 읽지 않은 자, 그대에게 화 있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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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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떤 일이 벌어져도 끝에 가서는 하나의 귀결로 마무리될 것이라 짐작했다. 그 ‘어떤 일’이란 바로 타이틀처럼 K ․ N에게 일어난 비극인데, 『제노사이드』의 신인류, 『13계단』의 사형 제도와 함께 여기서는 임신과 중절을 다룬다. 《시사매거진 2580》이나 《PD수첩》이 자칫 선정적일 수 있는 소재를 보도와 함께 버무렸다면 이 『K ․ N의 비극』은 같은 것을 소설로 만들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교고쿠 나쓰히코가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 우부메(産女) 전설을 차용하려는 듯싶다. 우부메는 하반신이 피로 물든 채 아이를 안고 나타나 지나가는 이에게 아이를 맡긴다. 만일 그 갓난아이를 안게 되면 그 아이는 점점 무거워지는데, 안고 있던 자가 무게를 견뎌내면 우부메는 성불한다, 는 내용이다. 대신 이 소설에서는 아이를 임신한 채 죽은 여자의 정념이 빙의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일반적인 혹은 사회 통념적 냄새가 나는 명제 하나. 남편 슈헤이는 천인공노할 개새끼이고 아내 가나미는 힘없는 약자라는 뉘앙스를 풍기고는 있으나 이것이 작가가 의도한 것이라면 나는 외려 다카노 가즈아키 자신이야말로 천하의 악독한 자라고 본다. 그러나 그럴 의도가 명백히 있었다고는 할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임신한 가나미는 출산을 원했기 때문이다(순서야 어찌 됐든).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은 둘 모두의 책임이다. 콘돔이라는 (엄청난 위력을 지닌) 얇은 비닐 쪼가리와 사후 피임약,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ㅡ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ㅡ 여자건 남자건 매한가지이므로(《투캅스 2》의 이 형사마저도 의도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지). 적어도 내가 보기엔 광범위한 익명의 ‘그 남자’도 같은 맥락이다. 『K ․ N의 비극』은 강간과 같은 범죄를 다루지 않았다. 부부간의 일이다. 그러므로 자칫 이상적인 해답을 요구하는 신파로 흐를 수 있다고 보는 거다. 범죄의 피해로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면, 어지간한 세간의 시선으로는 중절 수술을 필요악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권유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소설 속에 드러나는 이야기보다도 더 절실한 경우라면 어떨까. 생명 의식? 좋다. 선악과 시비? 그것도 좋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섹스를 쾌락의 관념으로 보든 생명을 잉태하는 성스러운 관념으로 보든 섹스 후에 벌어질 일만은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 사이의 섹스로 계획에 없던 임신을 했다고 하여 낙태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윤리적인 문제로 출산을 했지만 경제적인 이유(이 문제가 가장 클 터다) 등으로 아이를 버리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가. 윤리를 거스를 수 없으니 반드시 출산해야 한다, 이런 생각부터가 글러 먹은 것은 아닐까? 분명히 자신들의 아이라는 제2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꼴이다. 내가 보는 『K ․ N의 비극』은, ‘빙의’라는 현상을 들이밀지 않았다면 ‘피임을 생활화합시다’ 식의 빤한 논리로 흐를 뻔한 소설이다. 소재 자체가 너무 쉽게 들여다보이는 까닭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차라리 그쪽은 제쳐 두고(맨 처음에 썼듯 결국 하나의 귀결로 향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아내 가나미에게 빙의 현상이 나타났을 때의 기술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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