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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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이라 할 만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목적은 사회의 망탈리테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으니 이런 인터뷰 형식을 띤 것에는 찬성하는 바이다. 더군다나 이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역시 인간의 상상력이므로. 『걸리버 여행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인류의 역사는 탐욕, 파벌 싸움, 위선, 배반, 잔혹성, 분노, 광기, 증오, 시기, 정욕, 적의, 야심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악의 결과인 무수한 음모, 반란, 살인, 대량 학살, 혁명, 추방으로 가득하오……. 나는 당신네 원주민들 대부분은 땅 위를 기어 다니도록 자연이 허용한 작고 추악한 해충 중에서도 가장 해로운 종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소.” 그런가하면 데이브 그로스먼은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진 해크먼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배트 21》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이 영화 속에서 한 공군 장교는 여느 때와 달리 근거리에서 직접 살해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몸서리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제임스 본드, 루크 스카이워커, 람보, 인디애나 존스를 통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무자비하게 수백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을 보게 된다. 여기서 요점은 우리 사회의 다른 부분들에서처럼 미디어는 살해의 본질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 주는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나서서 누군가를 죽이려드는 사람은 좀처럼 없지만 익명성 뒤에 숨어 폭력을 가하는 것을 즐기는 이들은 쉬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살인이나 실제적인 폭력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며, 타인에 대한 시기, 질투, 모략, 음해, 불분명한 정보에 의한 맹목적 과신 등을 통해 눈앞에 드러나는 현상보다도 훨씬 복잡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소설에서 드러나는 것은 단연 ‘불분명한 정보’로 야기되는 인간의 쓸모없는 상상력과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려는 심리일 것이다. 비밀리에 진행되는 인터뷰는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여실히 보여 준다. 그들은 익명이 보장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보상을 누릴 수 있다고 여기며 익명성이 가져오는 파괴적인 결과에는 너나없이 나 몰라라 한다. 그럴 경우 자신이 믿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그런 결과를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자들의 묘한 혼합이 이루어져 일종의 반사회적 행동이 유발되기도 한다. 루시퍼 이펙트로 알려진 필립 짐바르도는 이러한 익명에 대해 얘기한다. 익명성은 가면뿐만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을 대우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부여할 수 있다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특별한 개성을 지닌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 관리하는 구별되지 않는 ‘타인’으로 대우하거나 나의 존재를 무시하면, 나는 곧 익명의 인간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이다. 바로 『Q&A』에서 보이는 인터뷰의 그것이다. 그들은 애초 익명이라는 것이 전제되지 않았으면 사용하지 않았을 단어들을 쓰고,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실에 기억이라는 이름을 씌워 끄집어내는 척하며, 상상에 상상을 더하는가 싶다가는, 또 거기에 거짓말이라는 조미료를 첨가한다. 만약 공개된 장소에서의 인터뷰라면? 거리 한복판에서 진행되는 뉴스 프로그램이었다면? 아마도 그들은 성심성의껏, 고매하고 나약한 소시민 흉내를 냈을 터다. 인터뷰가 ‘비공개’로 시작되었다는 점, 그리고 누구나가 자신의 일이 아니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는 ‘불손한 생각’이, Q에 따라야 할 온당한 A를 찾을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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