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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동물기>

조선시대 선비들은 동물을 어떻게 관찰하고 사유했을까. 현대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다소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있는 모양이다. 과학적인 접근법이 지금보다는 덜했을 테니 그럴만도 하다. 동물학적 지식보다는 당시를 살았던 저 옛날 사람들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올해의 판결>

<한겨레21> 취재팀이 2008년부터 선정한 사법부의 판결을 모았다. 살아있는 인간에게 법이라는 활자를 들이민 결과가 모든 경우에 있어서 타당했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국민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종전에 없던 새로운 법리를 제시한 판결들을 선정했다고 한다.



<세계문제와 자본주의 문화>

개정증보판이 참 많이도 나온 책. 세계를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누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을 법도 하건만 리처드 로빈스의 치밀한 논점은 그것을 말끔히 상쇄시킬만 하다.



<폴 존슨 근대의 탄생 1, 2>

19세기 초반 단 15년의 시간 동안 근대란 것이 탄생했다는 폴 존슨. 서지정보에는 '역사상 다시는 오지 않을 특별한 시대'라는 문구가 있는데, 글쎄, 대체 근대라는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지금을 '현대'라 부를 수 있기는 한가? 어차피 세월이 흐르면 지금은 후세들에 의해 과거로 불릴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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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세계의 역사와 지도를 바꾼 물고기의 일대기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거 세 차례에 걸쳐 벌어진 소위 '대구 전쟁(the Cod Wars).' 생선의 이름에 전쟁이란 단어를 붙이다니 이상할 법도 하건만 실상을 알고 보면 자연히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우리가 2차 세계대전이라 부르는 지루하고도 커다란 전쟁이 막을 내리고 나자 북대서양의 어족은 크게 늘어났고, 더불어 이때 각국의 어업에 관련된 ‘영해 문제’가 대두하게 된다.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영해선 안쪽으로 들어온 선박을 나포하고, 대륙붕에 기인한 영해에 관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중재를 요청하며, 해안 경비대 선박에 무기가 장착되는가하면 이 대구 전쟁은 공해상에서의 '범퍼카' 게임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변해버렸다.(p.200)― 지난했던 시간이 흐른 뒤 1976년, 유럽경제공동체는 200마일 영해를 선언하게 된다. 고기는 식용하고 간에서는 지방유를 뽑아내는 이 생선, 물론 어류 중 이 하나만이 뜨거운 감자는 아니다. 하나 언론에서 생선의 이름을 붙여 전쟁이라 일컫고 또 이것이 무려 세 번의 줄다리기를 거듭했다는 것은 다른 사례를 찾기 어렵다.



……트루먼은 선포했다. 「어업 자언의 보전과 보호에 대한 다급한 필요성에 비추어, 미국 정부는 해안 인접 공해상의 해역에 환경보호 구역을 수립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간주하는 바이다.」 (...) 이 선포가 나오자마자 전후에 새로운 민족주의 열풍이 불던 라틴아메리카가 이에 호응했으며 그중 여러 나라가 자국의 대륙붕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 본문 p.195~196



책을 쓴 쿨란스키조차도 대구(cod)라는 말의 기원은 알 수 없었던 모양이다. 대신 그는 이름에 얽힌 다양한 ‘설’을 전해준다. 영어를 사용하는 서인도제도에서는 소금에 절인 대구를 ‘소금 절임 생선(saltfish)’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소금 절임 생선은 속어로 여성의 성기를 의미한다고 한다. 또한 중세 영어에서 코드라는 말은 자루나 부대 혹은 음낭을 가리켰단다. 대구라는 생선이― 성행위를 삼가야 하는 날에 신앙심 깊은 가톨릭교도들이 먹는 식품으로 세상에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언어에서 대구를 지칭하는 단어가 어째서 성적인 암시를 얻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p.59) 그런가하면 우스갯소리에 가까운 이야기도 있다. 17세기 대구 어업 덕분에 가문의 부를 쌓아 올린 자들은 사람들로부터 '대구 귀족'이라 불렸다. 그러한 가문에 속한 사람들은 대구를 부의 상징으로 여겨 숭배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주(州)의 인장, 최초의 미국 주화, 대저택 계단에 장식된 도금한 나무 대구. 심지어 의사당에 매달린 나무로 조각된 대구 ㅡ 이것은 입법부의 이전 때 미국 국기로 감싸 호위가 붙어 옮겨졌다 ㅡ 도 있었는데, 쿨란스키는 이것을 두고 매우 어리석은 짓이라며 냉소를 보낸다. 이렇듯 『대구』는 제목 그대로 ‘대구’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나아가 그에 얽힌 천 년의 역사와 세계사의 추이를 톺아보기에도 손색이 없다. 90년대 후반 출간되어 『죠스』 이후 가장 많이 팔린 어류 관련 서적이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일지도.





어업 기술(항해술, 레이더, 기상에 관한 무전 연락 등)이 날로 발달함에 따라 물고기를 포획하는 데에도 위험성이 다소 줄어들기는 했으나, 이 어업의 현대화로 인해 케이블이나 트롤망(저인망), 롤러에 끼는 또 다른 종류의 사고가 발생한다. 현대식 트롤선(저인망어선)에서는 기계에 끼어 죽는 것이 주된 사망 원인이라고 한다. 80년대 중반 캐나다의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캐나다의 어민 10만 명당 212명이 일을 하다가 사망했는데 이는 다른 업종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숫자이며, 90년대 중반 미국에서 일 관련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10만 명당 5명이었던 반면 어민의 경우에는 10만 명당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p.148) 쿨란스키는 사고 비율이 높은 이유 중의 하나를 어부들의 부족한 잠이라고 본다. 식탁에 올릴 생선 한 마리를 잡기 위해 그들은 충분한 수면도 취하지 못한 채 생활전선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도심에서 일어난 버스 사고가 떠오른다. 15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하고 과로에 시달렸다는 해당 기사의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우려를 표시했다(정확한 원인은 사고 당시의 블랙박스 기록을 확인해야 하겠지만 그가 ‘과로’에 시달렸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인간이란 족속은 육류만으로는 살 수 없는 동물인가 보다. 물고기를 잡는 동시에 한편에서는 즉시 그것을 냉동할 수 있는 고성능 선박으로 어류들을 ‘쓸어 담은’ 결과, 지난 90년대 이후로 우리의 대구는 멸종에 가까운 재앙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이 무분별한 남획은 각국의 저간의 사정과 기업들의 이익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탓에 논의를 풀어나가기가 상당히 어렵다. 쿨란스키에 의하면 UN 식량농업기구가 추적하는 물고기 유형의 약 60%는 완전히 이용되거나 과도하게 이용되거나 심지어 고갈된 것으로 분류된다(이 책이 출간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10년 도 더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19세기에 들어서자 소금에 절인 대구는 고삐 풀린 상업주의를 무엇보다도 잘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즉, 모뤼(morue; 프랑스어로 대구를 뜻한다)는 상업에 의해 격하된 뭔가를 의미했다. 「그래, 그래. 너한테서 소금기를 없애주마. 이 대구(grande morue)야!」 에밀 졸라의 1877년 작 소설 『목로주점』에 나오는 대사다. 루이 페르디낭 셀린(소설가)은 언젠가 별들이 '투 모뤼(tout morue; 너무나 대구 같은)'하다고 쓴 적이 있는데, 이는 별들이 소금에 절인 대구로 만들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우주가 값싸지고 뒤틀렸다는 뜻이다.


ㅡ 본문 p.61






책 말미에는 50여 쪽이나 할애되어 지난 6세기 동안 이루어진 대구 조리법이 덧붙어 있는데 이것은 천 년에 걸친 대구의 역사를 우스꽝스럽고도 자못 진중하게 인식되게끔 만드는 장치임에 분명해 보인다. 물론 쿨란스키의 글은 역사이며 사실이지만 『대구』는 하나의 소설처럼 읽히고 있다(멜빌의 그것과는 또 다른 흥미로움이 있다). 생선 한 마리의 역사가 곧 세계의 역사와 지도가 될 수 있다는 것에도 동의하는 바이다ㅡ 생선 저미는 기계, 생선 냉동법의 연구, 수산물 회사의 설립, 급속 냉동 공정 개발……. 그는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길이가 약 1미터나 되는 대구의 민담으로 시작하여 대구의 몰락까지,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과 인간의 마지막 유대가 머지않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려스런 목소리로 다룬다. 흰 살 생선 중에서도 살이 하얀 편이어서 격찬을 받고 접시 위에서는 빛을 발하며 2할에 가까운 단백질을 함유한 대구. 살은 먹고 부레는 접착제에 사용하고 껍질은 먹거나 가죽으로 가공되었던 대구. 쿨란스키는 끝에서, 포유류는 한 번에 100만 개의 알을 낳지는 않는다며 포유류를 죽여 없애는 것보다는 물고기를 죽여 없애는 쪽이 더 어렵다고 중얼거린다. 그러고는 덧붙인다. 천 년에 걸친 대구 사냥 이후에 우리는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자, 그럼 이제 책에서 쿨란스키가 묘사한 어느 항구의 풍경으로 눈을 돌려 보자. 대구를 잡아 온 배가 항구로 들어온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어획량이 충분치 않다. 생선을 사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 누군가 어부에게 묻는다. 「도대체 나머지 물고기는 다들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어떤가. ‘투 모뤼’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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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재판 -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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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무엇보다 속독과는 거리가 먼 내 습성을 우선 탓해야 할 테지만, 든든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잠이 들 때까지ㅡ 꼭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깔끔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백 퍼센트 법정에서만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딱딱하게 굳은 느낌이 없고, 꽤 오래 전에 출간된 작품임에도 거리감이라고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현직 판사(동시에 그는 추리 소설가이다)마저 어느 작품보다 실제에 가깝고 법적 오류 또한 전혀 없다고 하니 이야기의 무대만큼은 구조가 완벽한 셈이다.

한 남자가 법정에 섰다. 두 번의 살인과 두 번의 사체유기. 그는 앞서 발생한 사건에서의 사체유기 한 건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죄를 부정한다. 소설은 법원에 출입하는 법정기자의 시선으로 진행되는데, 그는 재판을 연극에 비유한다면 그것은 각본도 연습도 없는 즉흥극이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움직일지도 알 수 없다고 단언한다.(p.182) 이 이야기도 법정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모든 동작이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실로 다이내믹한 동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기할만한 것은, 주인공이 내연녀와 남편을 살해하고 두 시신을 유기했다는 죄목으로 피고석에 앉아있는 남자가 아니라 그의 변호를 맡은 젊은 변호사라는 점이다. 또 하나, 묘하게도 과거 텔레비전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다루었던 '죄와 길' 편을 떠올리게끔 하는 부분도 있다. 피고(명예훼손죄)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는지를 검증하기 위해 그와 잘 알고 지내는 증인을 소환하는 장면 말이다ㅡ 당시 극 속에서 증인은 피고에게 불리한 증언만을 쏟아내었다. 나는 그저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만 여겼었는데, 이것이 실제 법정에서 원고 측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론이었을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렇게 피고인이 공소사실의 태반을 부정하는 상태라면 공판부의 검사도 뜻대로 다루기가 어렵다. 때문에, 먼저 피고인의 성격을 증명할 수 있는 증인을 몇 명 내세워 피고인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인상을 준 다음 범죄 사실을 입증한 전례도 내 경험으로는 몇 건이나 있었다.
ㅡ 본문 p.91


피고를 궁지로 몰기 위해 세 명의 증인이 법정에 들어선다. 그러나 주인공인 변호사는 그러한 증언들을 너무나도 간단히 물리치고 만다. 세 명의 타자(증인)가 날린 장타성 라이너를 외야수가 스탠드 코앞에서 깔끔하게 잡아낸 셈이다.(p.138) 과거 피고와 거래를 했던, 선물 거래 시장에서 일하는 증인이 말한다. 「시장에는 '팔고, 사고, 쉬어라'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피고석에 앉은 지쳐 보이는 남자는 발버둥 쳤고, 사랑했고, 애달플 뿐이다. 그는 말한다. 「저는 근거 없는 압박에 익숙해진 나머지 저항을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입니다.」 대체 누가 멋대로 타인을 논하는가. 이 소설은 60년대에 출간된 것으로 인간이 인간에게 받는 모욕 중 '차별'을 매개 삼는다. 그러므로 겉표지에 적힌 카피마저도 살 떨리는 비수가 된다.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이것은 작중에서도 그 근저가 되어 직접적으로 나타나는데, 피고의 애독서로 언급된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의 『파계』가 그것이다ㅡ 더군다나 작가 자신도 매한가지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살아왔으며 그 개인사를 투영하여 『파계 재판』을 썼을 것이다. 그나 피고가 죄인이라면 그들은 법이 아닌 세상이 만든 죄인일 터다. 그렇기에 더더욱 화자인 법정기자의 말대로 '생명을 지니고 유전하는 인간의 생활을 법률적인 칼날로 도려내는' 것이 양날의 검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생길밖에. 다만 구조적인 측면에서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변호인인 햐쿠타니 센이치로의 날카로운 변호의 뒷배에 재력(財力)이 풍부한 아내가 있었다는 점이다. 일개 변호사가 작품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변론을 조사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을 텐데, 아내의 수완으로 인해 그는 무적의 슈퍼맨처럼 그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가 증인을 심문하며 마술사의 금언(金言)을 언급하는 부분 ㅡ 오른손으로 미술을 부리려면 왼손으로 관객의 시선을 모아라 ㅡ 은 그래서 다소 빛이 바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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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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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이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무래도 폴리 마칭어의 우호적인 것(friendly)과 위험한 것(dangerous)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이러한 세계는 경계선, 통로, 문턱, 울타리, 참호, 장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ㅡ 슈미트의 적(敵)을 떠올려 보라 ㅡ 만약 그런 의미를 넘어서게 된다면 오늘날에는 삶의 모든 영역이 '난교 상태'로 특징지어진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p.15) 그러나 내가 이 두 가지 세계에 틈입해 교집합의 목록 속에 들어간 인간이라 느끼게 되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긍정성의 과잉? 일종의 비만 상태? 물론 오웰과 헉슬리가 보는 양상은 조금 다르나 그것에는 표면과 이면이라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정보의 차단을 두려워한 오웰과 과잉 정보로 자기중심적이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 헉슬리. 오웰의 디스토피아에서는 인간들이 고통으로 통제되지만 헉슬리의 세계에서는 쾌락에 의해 지배된다. 그들은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의 주체로 각각 우리가 증오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라 했다. 한병철 교수에 의하면 우리는 헉슬리의 세계에서 범퍼카를 타고 있는 중이다. 멜빌의 소설에 등장하는 바틀비에게서 탈락된 것이 주어인지 목적어인지, 아니면 하다못해 보조 동사 can이나 will 따위였는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나조차도 의심스러운 까닭이다ㅡ 그러나 다시 한 번 저자의 주장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오늘날의 사회인을 성과주체라 했다, 아마도 성능 없는 성과를 올려야만 하는 must라는 단어 하나만큼은 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노동사회, 성과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며 계속 새로운 강제를 만들어낸다 (...) 그렇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이로써 지배 없는 착취가 가능해진다. 우울증,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나치 강제수용소의 무젤만(영양실조로 고통 받는 수감자들)과 유사한 증상을 나타낸다 (...) 우리는 후기근대에 신경 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노동하는 동물 역시 일종의 무젤만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물론 이들은 강제수용소의 무젤만과 달리 영양 상태가 좋고 몸에 지방이 과다한 경우도 드물지 않긴 하지만 말이다.


ㅡ 본문 p.43~44



죄다 피로사회를 살아가는 피로한 인간들일는지. 부정의 부정을 통해 관철되었던 것들이 이제는 긍정의 긍정을 통하는 메커니즘으로 변한 것일는지. 그가 말하듯 '~해서는 안 된다' '~해야 한다' 즉 'No'로 대변되었던 규율사회에서 'Yes we can'이 지배하는 과다 긍정의 사회로 변모한 게 맞는 것일는지. 물론 이러한 성과사회(피로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내기도 한다.(p.24) 저들은 하나같이 머뭇거리고 부정하고 생각하며 사색에 잠길 줄을 모르는 인간들이 되어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그는 여기서 잠시도 멈추지 않는 기계를 예로 들며 니체를 역설적으로 데려온다. 「활동적인 사람들은 보통 고차적 활동을 하는 법이 없다 (...) 이런 점에서 그들은 게으르다.」 그리고 다시금 파멸하지 않고는 바라볼 수조차 없는 근원적 이질성의 대상으로 메두사를 끄집어낸다(「메두사는 아마도 최고도로 극단화된 형태의 면역학적 타자일 것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과다 긍정/긍정성의 폭력은 박탈보다는 포화를, 배제보다는 고갈을 자양분 삼아 자라나고 있는 것만 같다. 그에 의하면 병원,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으로 이루어진 푸코의 규율사회는 더 이상 오늘의 사회가 아닌 것이 된다. 그것들은 모두 피트니스 클럽, 오피스 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 유전자 실험실로 이루어진 사회로 대체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복종보다는 성과를, 복종적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로 불러야만 한다고 말이다. 실로 우리는 벤야민의 아케이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피지배의 속박 아래 복종만 하는 인간에서 노동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으로.



니체라면 대중의 현실이 되려고 하는 인간형을 가리켜 주권적 초인이 아니라 그저 노동만 하는 최후의 인간이라고 했을 것이다 (...)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물론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ㅡ 본문 p.28



이것은 행복을 파는 가게가 있다면 돈을 주고라고 그것을 취하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고,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p.29) 그러므로 종국에 착취자는 피착취자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게 되며 그들은 각성바지가 아닌 한 몸이 되고 마는 것이다(사유하는 것마저 '계산하다'는 말과 동일시된다). 그는 활동적일수록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믿음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했다ㅡ 이것은 어딘지 모르게 자유의지 자체를 환상이라고 했던 샘 해리스의 말과 닮아있다. 그는 나르시스적 개인은 의도적으로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거나 뭔가 완결하기를 회피한다는 세네트의 논의 또한 부정하는 쪽을 택하기보다는 더욱 확고히 하려 한다. 외려 어떤 목표를 달성했다는 느낌 자체가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이다.(p.90) 그렇다면 피로사회로 상징되는 이러한 과잉 긍정과 과잉 활동에는 '중단하는 본능'이 반드시 필요할 것만 같다. 그게 아니라면 (과잉) 긍정을 부정하려는 시도라도 해보아야지.



도대체 어떤 빌어먹을 인간이 자명종 소리에 새벽 여섯 시 반에 깨어나 침대에서 뛰쳐나오고, 옷을 입고, 억지로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오줌을 누고, 이를 닦고, 머리를 빗고, 본질적으로 누군가에게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주는 장소로 가기 위해 교통지옥과 싸우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하는 삶을 기꺼이 받아들인단 말인가?


ㅡ 찰스 부코스키



저자가 아무리 칸트의 (인간에게 보상하는 기관으로서의) 신을 언급하며 그 신이 기만하지 않고 신뢰할 만한 존재라고 해도(그렇게 믿든 비꼬는 것이든) 나는 그 말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신은 그가 없애고자 하는 자를 일단 미치게 만든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책과 저자의 사유는 피로사회의 정점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리로 향해 가는 접점 언저리에 있는 것인가. 이러한 이야기는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 그러니까 대중이라는 다수의 무리에 의해 개인이 겁박되는 것이 전제되었기 때문일까. 개인은 (비록 영민할지라도) 힘이 없다. 사회라는 괴물에게 온전히 헤게모니를 넘겨준 채 거세되었을 뿐이다. 이 얄팍하고 무자비한 책을 맺는 그의 마지막 문장이 또렷한 것은, 나 역시 피로사회에 갇힌 피로한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죽을 수 있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살 수 있기에는 너무 죽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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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배려와 관용을 나누는 <예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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