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거슬러
토마스 에스페달 지음, 손화수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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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자의 부엌에서는 언젠가는 싱싱했을 과실의 부패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탐스런 엉덩이처럼 생긴 복숭아는 거뭇한 반점이 생기며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한다. 그의 조리대는 이미 시체공시소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먹지 못하게 된 복숭아를 종국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별수 없이 버려야 할밖에. 거실에서건 욕실에서건 남자는 이제 혼자다. 누군가의 저택 대문에 기대어 서서 섹스에 몰두했을 때, 풍만함을 지나 점차 두루뭉술해진 여자의 몸을 보았을 때,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내린 아이와 조우했을 때, 마침내 그녀가 죽었을 때, 그리고 복숭아가 썩어가는 것을 지켜보았을 때……. 남자는 천천히, 하지만 완벽하게 혼자가 된다. 젊음의 산물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남자는 알고 있었던가? 그는 빈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급기야는 정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토로한다. 집 안에 누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지하실에 앉아 있을 때의 기분과 집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 지하실에 앉아 있을 때의 기분은 천지 차이라면서 말이다. 어느 날엔가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는데 여섯 살짜리 이웃집 소녀가 여자의 안부를 묻는다. 언니는 어디 갔느냐고. 글쎄, 어딜 갔을까. 그녀의 그림자라면 아직도 집에 남아 있긴 한데……. 처음 책을 들었을 때는 시쳇말로 ‘보급형’ 부코스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웬걸, 부코스키보다는 에릭 오르세나의 기민한 서사와 닮아있었다. 부코스키라면 이런 식으로 괴로워하지 않는다. <여자? 밖을 나서면 널렸다. 담배와 술? 왜 괴로울 때만 그것들을 찾는가.> 대신 그의 사유는 무척이나 느리고 촘촘해서 깜박 잊고 틀어 둔 샤워 꼭지 같다. 그는 한 잔의 샴페인을 마치 한 방울의 샴페인처럼 삼킬 수 있는 남자였으나(p.15) 지금은 술에 취하면 바지에 오줌을 싼 것처럼 뜨뜻한 기운밖에는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그때만 존재감을 느낄 뿐이다.(p.226) 책상에 몸을 기대고 드레스를 완전히 걷어 올린 여자를 공격할 줄 알았던 남자는(p.18) 이제 누구를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하는 건지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p.227) ……그는 자연을 거스르려 하는가? 아니면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거스르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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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청접대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2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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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설에서 이야기되는 접대과, 정말 있었다. 고치 현청 홈페이지에 떡하니 ‘접대과’라는 링크가 있었던 거다. 그중 업무내용이란 항목이 있기에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것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관광객 접대, 관광지 미화 작업, 관광 가이드, 통역, 관광 안내 및 유도 표지 정비 등. 『현청접대과』의 무대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것도 공공성을 표방한 관청이다. ‘접대과’라는 다소 솔직한 명칭의 부서가 신설되지만 도대체가 이곳에 소속된 사람들은 융통성이라고는 없다. 소위 철밥통 기질이 충만한, 보신적 내용만 가득 담긴 서류뭉치와 위계체계에 찌든 공무원들이 있을 뿐이다. 그들의 목표는 현의 관광 부흥. 그러나 야심적으로 시도한 관광 홍보대사 아이디어는 처음부터 창의성이라고는 없이 다른 지자체에서 빌려온 것이고, 홍보대사 위촉 명함을 인쇄하는 데만 한 달이 넘게 걸린다. 소설에서 언급되는 ‘민간감각’의 부족이다. 단단한 수직 구조에 각 부서별 영역 주장까지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어 그들이 시도하려는 어지간한 일들은 생각대로 쉬 굴러가지 않는다. 뼛속까지 공무원 마인드. 튀지 않아야만 살아남는다. 그만큼의 예산을 들일 정도의 여력이 없다. 상명하복. 결재가 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좋은 아이디어라도 내게 공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으면 아예 잘라버린다……. 물론 이대로라면 정말이지 끔찍한 소설이 될 테지만, 당연히 이런 구조에 간섭하는 신선한 인력 투입이 존재한다. 바로 총무부 정보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젊은 여성의 스카우트다. 공무원이 아닌 ‘관청 바깥’에 있는 인물의 생각을 들어보려는 시도인데, 이 역시 꽉 막힌 공무원들이 마음을 열고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한 헛일일 수밖에 없다. 다소 젊은 마흔넷의 시모모토 과장이란 인물이 없다면 말이다. 소설을 읽을수록 이런 상사가 정말 현실에 존재하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한숨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외려 어딘가에는 이런 획일적이지 않은 사람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는 기분도 든다. 주인공 가케미즈도 가케미즈이지만 실은 시모모토 과장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없다면 부하직원의 입장에서는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는 법이다. 위에서 내려오는 서류대로 일을 진행하고 특기할만한 내용 없이 그대로 보고서를 올리는 구조, 이런 시스템에서라면 누구라도 의욕을 잃고 말 테니. ……과연 고치 현청 접대과는 행정이라는 굴레를 뚫고, 빤해 보이는 ‘지역 경제 활성화’의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을까? ‘접대 마인드’는 그들을 ‘인간을 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안내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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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동물기>

조선시대 선비들은 동물을 어떻게 관찰하고 사유했을까. 현대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다소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있는 모양이다. 과학적인 접근법이 지금보다는 덜했을 테니 그럴만도 하다. 동물학적 지식보다는 당시를 살았던 저 옛날 사람들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올해의 판결>

<한겨레21> 취재팀이 2008년부터 선정한 사법부의 판결을 모았다. 살아있는 인간에게 법이라는 활자를 들이민 결과가 모든 경우에 있어서 타당했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국민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종전에 없던 새로운 법리를 제시한 판결들을 선정했다고 한다.



<세계문제와 자본주의 문화>

개정증보판이 참 많이도 나온 책. 세계를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누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을 법도 하건만 리처드 로빈스의 치밀한 논점은 그것을 말끔히 상쇄시킬만 하다.



<폴 존슨 근대의 탄생 1, 2>

19세기 초반 단 15년의 시간 동안 근대란 것이 탄생했다는 폴 존슨. 서지정보에는 '역사상 다시는 오지 않을 특별한 시대'라는 문구가 있는데, 글쎄, 대체 근대라는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지금을 '현대'라 부를 수 있기는 한가? 어차피 세월이 흐르면 지금은 후세들에 의해 과거로 불릴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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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세계의 역사와 지도를 바꾼 물고기의 일대기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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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거 세 차례에 걸쳐 벌어진 소위 '대구 전쟁(the Cod Wars).' 생선의 이름에 전쟁이란 단어를 붙이다니 이상할 법도 하건만 실상을 알고 보면 자연히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우리가 2차 세계대전이라 부르는 지루하고도 커다란 전쟁이 막을 내리고 나자 북대서양의 어족은 크게 늘어났고, 더불어 이때 각국의 어업에 관련된 ‘영해 문제’가 대두하게 된다.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영해선 안쪽으로 들어온 선박을 나포하고, 대륙붕에 기인한 영해에 관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중재를 요청하며, 해안 경비대 선박에 무기가 장착되는가하면 이 대구 전쟁은 공해상에서의 '범퍼카' 게임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변해버렸다.(p.200)― 지난했던 시간이 흐른 뒤 1976년, 유럽경제공동체는 200마일 영해를 선언하게 된다. 고기는 식용하고 간에서는 지방유를 뽑아내는 이 생선, 물론 어류 중 이 하나만이 뜨거운 감자는 아니다. 하나 언론에서 생선의 이름을 붙여 전쟁이라 일컫고 또 이것이 무려 세 번의 줄다리기를 거듭했다는 것은 다른 사례를 찾기 어렵다.



……트루먼은 선포했다. 「어업 자언의 보전과 보호에 대한 다급한 필요성에 비추어, 미국 정부는 해안 인접 공해상의 해역에 환경보호 구역을 수립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간주하는 바이다.」 (...) 이 선포가 나오자마자 전후에 새로운 민족주의 열풍이 불던 라틴아메리카가 이에 호응했으며 그중 여러 나라가 자국의 대륙붕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 본문 p.195~196



책을 쓴 쿨란스키조차도 대구(cod)라는 말의 기원은 알 수 없었던 모양이다. 대신 그는 이름에 얽힌 다양한 ‘설’을 전해준다. 영어를 사용하는 서인도제도에서는 소금에 절인 대구를 ‘소금 절임 생선(saltfish)’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소금 절임 생선은 속어로 여성의 성기를 의미한다고 한다. 또한 중세 영어에서 코드라는 말은 자루나 부대 혹은 음낭을 가리켰단다. 대구라는 생선이― 성행위를 삼가야 하는 날에 신앙심 깊은 가톨릭교도들이 먹는 식품으로 세상에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언어에서 대구를 지칭하는 단어가 어째서 성적인 암시를 얻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p.59) 그런가하면 우스갯소리에 가까운 이야기도 있다. 17세기 대구 어업 덕분에 가문의 부를 쌓아 올린 자들은 사람들로부터 '대구 귀족'이라 불렸다. 그러한 가문에 속한 사람들은 대구를 부의 상징으로 여겨 숭배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주(州)의 인장, 최초의 미국 주화, 대저택 계단에 장식된 도금한 나무 대구. 심지어 의사당에 매달린 나무로 조각된 대구 ㅡ 이것은 입법부의 이전 때 미국 국기로 감싸 호위가 붙어 옮겨졌다 ㅡ 도 있었는데, 쿨란스키는 이것을 두고 매우 어리석은 짓이라며 냉소를 보낸다. 이렇듯 『대구』는 제목 그대로 ‘대구’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나아가 그에 얽힌 천 년의 역사와 세계사의 추이를 톺아보기에도 손색이 없다. 90년대 후반 출간되어 『죠스』 이후 가장 많이 팔린 어류 관련 서적이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일지도.





어업 기술(항해술, 레이더, 기상에 관한 무전 연락 등)이 날로 발달함에 따라 물고기를 포획하는 데에도 위험성이 다소 줄어들기는 했으나, 이 어업의 현대화로 인해 케이블이나 트롤망(저인망), 롤러에 끼는 또 다른 종류의 사고가 발생한다. 현대식 트롤선(저인망어선)에서는 기계에 끼어 죽는 것이 주된 사망 원인이라고 한다. 80년대 중반 캐나다의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캐나다의 어민 10만 명당 212명이 일을 하다가 사망했는데 이는 다른 업종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숫자이며, 90년대 중반 미국에서 일 관련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10만 명당 5명이었던 반면 어민의 경우에는 10만 명당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p.148) 쿨란스키는 사고 비율이 높은 이유 중의 하나를 어부들의 부족한 잠이라고 본다. 식탁에 올릴 생선 한 마리를 잡기 위해 그들은 충분한 수면도 취하지 못한 채 생활전선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도심에서 일어난 버스 사고가 떠오른다. 15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하고 과로에 시달렸다는 해당 기사의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우려를 표시했다(정확한 원인은 사고 당시의 블랙박스 기록을 확인해야 하겠지만 그가 ‘과로’에 시달렸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인간이란 족속은 육류만으로는 살 수 없는 동물인가 보다. 물고기를 잡는 동시에 한편에서는 즉시 그것을 냉동할 수 있는 고성능 선박으로 어류들을 ‘쓸어 담은’ 결과, 지난 90년대 이후로 우리의 대구는 멸종에 가까운 재앙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이 무분별한 남획은 각국의 저간의 사정과 기업들의 이익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탓에 논의를 풀어나가기가 상당히 어렵다. 쿨란스키에 의하면 UN 식량농업기구가 추적하는 물고기 유형의 약 60%는 완전히 이용되거나 과도하게 이용되거나 심지어 고갈된 것으로 분류된다(이 책이 출간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10년 도 더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19세기에 들어서자 소금에 절인 대구는 고삐 풀린 상업주의를 무엇보다도 잘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즉, 모뤼(morue; 프랑스어로 대구를 뜻한다)는 상업에 의해 격하된 뭔가를 의미했다. 「그래, 그래. 너한테서 소금기를 없애주마. 이 대구(grande morue)야!」 에밀 졸라의 1877년 작 소설 『목로주점』에 나오는 대사다. 루이 페르디낭 셀린(소설가)은 언젠가 별들이 '투 모뤼(tout morue; 너무나 대구 같은)'하다고 쓴 적이 있는데, 이는 별들이 소금에 절인 대구로 만들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우주가 값싸지고 뒤틀렸다는 뜻이다.


ㅡ 본문 p.61






책 말미에는 50여 쪽이나 할애되어 지난 6세기 동안 이루어진 대구 조리법이 덧붙어 있는데 이것은 천 년에 걸친 대구의 역사를 우스꽝스럽고도 자못 진중하게 인식되게끔 만드는 장치임에 분명해 보인다. 물론 쿨란스키의 글은 역사이며 사실이지만 『대구』는 하나의 소설처럼 읽히고 있다(멜빌의 그것과는 또 다른 흥미로움이 있다). 생선 한 마리의 역사가 곧 세계의 역사와 지도가 될 수 있다는 것에도 동의하는 바이다ㅡ 생선 저미는 기계, 생선 냉동법의 연구, 수산물 회사의 설립, 급속 냉동 공정 개발……. 그는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길이가 약 1미터나 되는 대구의 민담으로 시작하여 대구의 몰락까지,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과 인간의 마지막 유대가 머지않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려스런 목소리로 다룬다. 흰 살 생선 중에서도 살이 하얀 편이어서 격찬을 받고 접시 위에서는 빛을 발하며 2할에 가까운 단백질을 함유한 대구. 살은 먹고 부레는 접착제에 사용하고 껍질은 먹거나 가죽으로 가공되었던 대구. 쿨란스키는 끝에서, 포유류는 한 번에 100만 개의 알을 낳지는 않는다며 포유류를 죽여 없애는 것보다는 물고기를 죽여 없애는 쪽이 더 어렵다고 중얼거린다. 그러고는 덧붙인다. 천 년에 걸친 대구 사냥 이후에 우리는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자, 그럼 이제 책에서 쿨란스키가 묘사한 어느 항구의 풍경으로 눈을 돌려 보자. 대구를 잡아 온 배가 항구로 들어온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어획량이 충분치 않다. 생선을 사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 누군가 어부에게 묻는다. 「도대체 나머지 물고기는 다들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어떤가. ‘투 모뤼’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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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재판 -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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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무엇보다 속독과는 거리가 먼 내 습성을 우선 탓해야 할 테지만, 든든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잠이 들 때까지ㅡ 꼭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깔끔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백 퍼센트 법정에서만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딱딱하게 굳은 느낌이 없고, 꽤 오래 전에 출간된 작품임에도 거리감이라고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현직 판사(동시에 그는 추리 소설가이다)마저 어느 작품보다 실제에 가깝고 법적 오류 또한 전혀 없다고 하니 이야기의 무대만큼은 구조가 완벽한 셈이다.

한 남자가 법정에 섰다. 두 번의 살인과 두 번의 사체유기. 그는 앞서 발생한 사건에서의 사체유기 한 건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죄를 부정한다. 소설은 법원에 출입하는 법정기자의 시선으로 진행되는데, 그는 재판을 연극에 비유한다면 그것은 각본도 연습도 없는 즉흥극이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움직일지도 알 수 없다고 단언한다.(p.182) 이 이야기도 법정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모든 동작이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실로 다이내믹한 동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기할만한 것은, 주인공이 내연녀와 남편을 살해하고 두 시신을 유기했다는 죄목으로 피고석에 앉아있는 남자가 아니라 그의 변호를 맡은 젊은 변호사라는 점이다. 또 하나, 묘하게도 과거 텔레비전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다루었던 '죄와 길' 편을 떠올리게끔 하는 부분도 있다. 피고(명예훼손죄)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는지를 검증하기 위해 그와 잘 알고 지내는 증인을 소환하는 장면 말이다ㅡ 당시 극 속에서 증인은 피고에게 불리한 증언만을 쏟아내었다. 나는 그저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만 여겼었는데, 이것이 실제 법정에서 원고 측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론이었을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렇게 피고인이 공소사실의 태반을 부정하는 상태라면 공판부의 검사도 뜻대로 다루기가 어렵다. 때문에, 먼저 피고인의 성격을 증명할 수 있는 증인을 몇 명 내세워 피고인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인상을 준 다음 범죄 사실을 입증한 전례도 내 경험으로는 몇 건이나 있었다.
ㅡ 본문 p.91


피고를 궁지로 몰기 위해 세 명의 증인이 법정에 들어선다. 그러나 주인공인 변호사는 그러한 증언들을 너무나도 간단히 물리치고 만다. 세 명의 타자(증인)가 날린 장타성 라이너를 외야수가 스탠드 코앞에서 깔끔하게 잡아낸 셈이다.(p.138) 과거 피고와 거래를 했던, 선물 거래 시장에서 일하는 증인이 말한다. 「시장에는 '팔고, 사고, 쉬어라'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피고석에 앉은 지쳐 보이는 남자는 발버둥 쳤고, 사랑했고, 애달플 뿐이다. 그는 말한다. 「저는 근거 없는 압박에 익숙해진 나머지 저항을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입니다.」 대체 누가 멋대로 타인을 논하는가. 이 소설은 60년대에 출간된 것으로 인간이 인간에게 받는 모욕 중 '차별'을 매개 삼는다. 그러므로 겉표지에 적힌 카피마저도 살 떨리는 비수가 된다.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이것은 작중에서도 그 근저가 되어 직접적으로 나타나는데, 피고의 애독서로 언급된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의 『파계』가 그것이다ㅡ 더군다나 작가 자신도 매한가지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살아왔으며 그 개인사를 투영하여 『파계 재판』을 썼을 것이다. 그나 피고가 죄인이라면 그들은 법이 아닌 세상이 만든 죄인일 터다. 그렇기에 더더욱 화자인 법정기자의 말대로 '생명을 지니고 유전하는 인간의 생활을 법률적인 칼날로 도려내는' 것이 양날의 검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생길밖에. 다만 구조적인 측면에서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변호인인 햐쿠타니 센이치로의 날카로운 변호의 뒷배에 재력(財力)이 풍부한 아내가 있었다는 점이다. 일개 변호사가 작품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변론을 조사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을 텐데, 아내의 수완으로 인해 그는 무적의 슈퍼맨처럼 그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가 증인을 심문하며 마술사의 금언(金言)을 언급하는 부분 ㅡ 오른손으로 미술을 부리려면 왼손으로 관객의 시선을 모아라 ㅡ 은 그래서 다소 빛이 바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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