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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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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말은 옳다. 도시는 본래 잉여 생산물이 사회적, 지리적으로 집적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 때문에 도시화는 언제나 일종의 계급 현상이었다. 잉여가 어디서, 누구에게서 추출되건 그것을 사용할 권한은 소수(예컨대 종교적 과두지배자나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에 사로잡힌 전사)의 손아귀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p.28) 그런데 그 도시/도시화가, 온 지구를 덮었다. 하비가 주장하는 도시권에 대한 요구는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그의 말대로 자본가는 일정량의 화폐를 가지고서 하루를 시작한 후 그 이상의 화폐를 챙겨(이윤을 얻어) 하루를 마친다. 여기서 ‘자본주의적 도시화’가 탄생한다. 아마도 도시인(특히 돈이 많은)들에게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하비는 극심한 소유적 개인주의라는 신자유주의 윤리가 인격을 사회적으로 형성하는 규범으로 작용한다고 했는데, 이는 사적 소유권 자체나 사적 소유권을 신성시하는 가치관의 신자유주의적 보호는 엘리트는 물론이고 하위 중간 계급에게도 정치적 헤게모니의 한 형태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중산 계급화, 고급 주택의 건설, 도시 환경의 악화……. 그는 부르주아 이론에 통찰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반면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적 유물론에 입각해서 높게 치솟는 임대료와 잔혹한 약탈을 지주와 상인 자본가가 노동자 계급의 생활 영역까지 파고들어 고통을 강요하는 착취의 이차적 형태라고…….」




소비는 어떤가? 멀쩡한 제품을 고장 나기도 전에 새것으로 바꾼다. 가령 10년 쓸 자동차를 3년 쓰고 버릴 때, 소비자는 자동차 가격의 30퍼센트만 지불한 게 아니다. 100퍼센트 다 지불하고, 실제로는 30퍼센트만 소비하는 것이다. 그럼 나머지 70퍼센트는? 그것은 아마 기호의 값일 게다. 자본주의는 사물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한 상품과 다른 상품의 차이를 소비한다. 사물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기호를 소비한다.


―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그는 자본주의를 어른들의 디즈니랜드라고 설명한다. 인간이 상품과 상품 ‘사이’를 소비하고 그 ‘차이’를 지불하기 위해 일하는 거대한 꿈의 세계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만 얘기해서는 다소 말랑말랑할 수 있으니 다시 하비에게로 돌아가자. 위에서 인용한 유리 같은 설명과 함께, 어쨌든 자본은 다양한 방식으로 (수작을 걸며) 재생산되기 마련이다. 여기에 자본가 계급의 권력이 도시 형성 과정을 지배할 능력이 있다면 ‘자본의 도시화’가 진행되고, 도시가 형성되는 과정은 정치투쟁과 사회투쟁 및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하나의 장이 되어버린다. 도시를 만드는 구성 부분 중의 하나는 건설 노동자(도시 건설자)이지만 그러한 자본이 최종 소비되는 메커니즘 속에서는 이런저런 잉여 가치가 생산된다. 문제는 도시 생활의 생산과 재생산에 투입되는 노동의 상당 부분이 임시적이고 불안정하며 이동이 심한데다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p.225)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도시 전체를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가 ― 미시적 수준의 조직에 매몰된 진보 세력(노동자협동사업이나 연대경제)을 끌어내 반자본주의적 정치를 이론화하고 실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 ― 하는 물음이다. 하비는 물질적 제약을 넘어설 때 진정한 자유의 세계가 시작된다는 마르크스를 인용하면서, 반자본주의 투쟁을 위해 도시를 되찾고 조직하는 것은 그 위대한 출발점이라고 했다. 「도시 네트워크를 통한 운동은 계급적 지배와 상품화된 시장의 결정이라는 제약을 넘어서 보편적인 인간성이 꽃피는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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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는 패러디다 -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 읽기와 쓰기 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 총서 5
조현준 지음 / 현암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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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면 버틀러가 쓴 『젠더 트러블』의 결론 <패러디에서 정치성으로>에서 따온 제목일까. 그러나 버틀러는 앞의 책에서 결론에 다다르기 전 이미 젠더 연기(performance)에 대해 말했다. 현재 우리는 중요한 육체성에 관한 세 가지 우연적 차원에 직면해 있는데, 바로 섹스와 젠더 정체성 그리고 젠더 연기라고 말이다. 책에서 젠더 패러디는 이렇게 정의된다. 패러디되는 원본이 제도와 규범으로 만들어진 이상성에서 기인한다면 결국 패러디는 원본이 아닌 특정 관념을 모방하는 것이 된다고(이 시점에서 벌써 원본과 모방본의 구분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젠더 패러디는 젠더가 그 양식에 따라 스스로 형태를 갖추는, 원래의 정체성 자체가 원본 없는 모방본이라는 것을 폭로한다. 더 정확히 말해 그것은 사실상, 그 효과로 인해 모방본의 위상을 띠게 되는 생산물이라는 것이다.」(앞의 책) 그녀에 의하면 '사람'이란 '젠더의 인식 가능성(gender intelligibility)'이라는 합의된 기준에 따라 젠더가 될 때에만 비로소 파악되기 때문에, '정체성'에 관한 논의는 젠더 정체성 논의에 앞서서는 행해질 수 없다. 정체성이라는 것이 특질이 아닌 규범적 이상이며 담론적 관행의 결과라면(물론 그럴 수 있다, 아니면 이미 그렇게 되었거나), 당연하게도 논의는 더욱 더 복잡한 스펙트럼을 향해 간다. '남성'과 '남성다움', '여성'과 '여성다움'은 '나와 너'만큼 다르다.



젠더는 섹스라는 상위 카테고리 아래에 있는가? 다시 말해 젠더는 섹스의 규제를 받고 있는가? 사실 나는 버틀러의 논의를 재구성할 수밖에 없을 테지만, '성 정체성'이라는 묘한 꼬리의 폭력성에만큼은 단순한 익살스러움 이상의 거부감을 느낀다. 성 정체성과 젠더가 한데 묶여(혹은 동일시되어) 펼쳐지는 살풍경들은 '배제당하는 삶'으로 정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사람이 반드시 여성다움을 지녀야 한다거나 페니스 달린 남성이 반드시 남성다워야 한다는 생각에는 나는 이미 저쪽 건너편에 있다(여성과 남성에 '다움'을 붙이는 것도 여기서는 조심스러워진다). 버틀러는 섹스와 젠더를 모두 같은 젠더라 주장하지만, (만약) 섹스(생물학적 몸의 차이)와 젠더(문화적, 사회적인 동일시 양식)로 구분하게 된다면ㅡ 그런 상태에서 보편적 합리성이라는 말을 갖다 붙여 섹스의 다양성과 젠더의 다양성을 일치시킬 수만은 없다(페미니즘이 때로는 정당하지 못한 얼굴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동시에 남성과 여성을 주체와 타자로 놓을 수도 없다. 정말 섹스와 젠더 그리고 섹슈얼리티를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있을까? (언제나) 명확하게 답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내리기에도, 버틀러를 읽기에도 곤란한 처지에 놓인다. 또 헤게모니의 질서라는 것이 의심스러워지고 내부와 외부/중심과 주변의 논리에 입각해 정체성/정체성들을 구분할 수 있을까 하는 저울의 한 편 위에 서게 된다. 그러므로 결국 버틀러(를 포함한 페미니즘 일반)를 정의하는 것에도 많은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심지어 '페미니즘'이 반드시 여성이라는 집단적 범주를 가정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뒤따라온다면 더욱 곤란한 것이다ㅡ 말 그대로 '트러블'이다. 그러므로 안티고네가 여성/여성다움을 대표하는지 어떤지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도 있고 아니면 영원히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는 몸의 구멍과 요철이 주는 혼돈스러움에서 젠더라는 기표를 의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덧) 만약 『젠더 트러블』 읽기에 실패했다면 '주디스 버틀러 읽기'에 해당하는 이 책으로 대신할 수 있을 테지만, 어쨌거나 이것은 버틀러를 개괄하는 데 의미가 있으므로 다시 그녀의 책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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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 스티븐 킹 걸작선 1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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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스스로가 『캐리』를 두고, 고등학교를 상당히 보편적인 방식으로 남성 및 여성 포식자들의 지옥으로서 관찰한다고 말했다.(스티븐 킹 『죽음의 무도』) 그러면서 드 팔마로 영화화된 《캐리》와 자신의 소설이 성공을 거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캐리의 복수는 체육 시간에 체육복 바지가 강제로 끌려 내려진 적 있거나 자습실에서 안경에 다른 애들의 엄지손가락 지문 세례를 받아본 적 있는 학생들이 찬성할 만한 복수인 것이다. 캐리의 체육관 파괴 장면에서(그리고 빠듯한 예산 탓에 영화에선 빠졌지만, 책 속에서 캐리가 집으로 돌아가며 벌이는 파괴적인 행진 장면에서), 우리는 사회적으로 짓밟힌 자들이 꿈꾸는 혁명을 본다.」 킹이 아쉬워했던 점은 작년에 리메이크된 영화에서 다소 해소되었을지 모르겠다ㅡ 그러나 과거보다 영상이 조금 더 세련되게 표현되었다는 것 외에는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클로이 모레츠를 제외하면).





음험하고 섹슈얼한 도입부를 가장 매력적인 장면으로 꼽는 것은 어쩌면 내가 인간 말초의 근저에 존재하고 있는 생물학적인 부분, 달리 말하면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일차원적인 살갗, 가족에게조차 치부로 여겨질 수 있다는 우려, 그래서 복수심을 갖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ㅡ 드러나지 않았어야 할 것이(알지 말았어야 할 것이) 드러났다, 영원히 팬티 속에 감춰졌어야 할 것이 ㅡ 본능에 가까운 감정에 기인하고 있는 까닭에서일 것이다(주디스 버틀러라면 어떻게 바라보았을지). 소설은 온통 붉은 이미지로 점철되어 있는데, 바로 생리혈과 돼지 피가 그것이다. 캐리는 첫 장면에서도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마지막에 가서도 파티에 모여든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다. 염력이라니, 말이 안 되는가? 소설이란 것은 적어도 그 안에서만큼은 진지함을 확보하려는 야심이 있기 마련이다. 샤워실에서의 캐리는 생리혈을 쏟아내고 탐폰 세례를 받지만 나중에는 거꾸로 밖으로부터 온 피를 뒤집어쓴다. 그러고는 탐폰을 던졌던 이들에게 적절한 반응을 되돌려준다. 킹은 자신이 만들어낸 고등학교 무대를 개미 사육장이라 표현했는데ㅡ 여기에서 고등학교라는 단어만 손으로 가리게 되면 일종의 인종 차별, 계급 짓기, 불안한 남성과 학대받는 여성 중심의 구조가 보인다. 순식간에 내가 '어린 애새끼들' 중의 하나가 되어버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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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하버쿡 젭슨의 진술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7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송기철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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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찮은 넘버링 000부터 시작해서 007번이자 8권 째인 『J. 하버쿡 젭슨의 진술』까지 왔다. 솔직히 말해 코난 도일은 그간 (어쩔 수 없이) 셜록 홈스를 제외하면 물음표만 둥둥 떠다니는 작가였다. 정말이지 감가상각 없이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의 수상쩍은 작품집이 출간되었고, 내용마저 머리를 싸맨 채 범인을 밝혀야 하는 '추리물'이 아니었다. 해양구조 컨설턴트(salvage specialist)를 표방한 트래비스 맥기도 아닌 바에야 '해양 미스터리'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기에는 다소 느른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출판사 사장님의 인용을 일부 재인용하자면ㅡ 망망대해를 느릿하게 떠도는 배 한 척, 선장도 선원도 없고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그러나 평온한 상태로 발견된 마리설레스트 호의 실화를 바탕으로 코난 도일이 소설을 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ㅡ 뭔가 악몽 이면의 실상/실상 이면의 악몽이라든지, 책을 펼쳤을 때는 보무당당했지만 정작 다 읽고 난 뒤엔 희열에 찬 죽상을 하게 되더라도ㅡ 이 책을 끝장 보지 않으면 일종의 부작위범이 되어 영원한 불귀의 객이 될 것만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정념에 휩싸이고 말았다. 어딘지 모르게 말레이시아 실종 항공기처럼 소설 같은 현실을 마주한 터라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공포를 탐구하는 데는 포의 것보다 못하다는 생각이다. 목침으로 제격인 『우울과 몽상』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면서 맛보았던 흉흉한 정신 상태까지는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이야기의 구성과 전개는 기가 막히다. 특히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수록된 단편 「가죽 깔때기」를 최고로 꼽고 싶다. 가죽으로 만든 깔때기라는 것도 괴상하기는 매한가지이지만ㅡ 라이어넬 데이커라는 사위스런 취미를 가진 남자를 등장시켜 금방이라도 일이 터질 것처럼 음험한 묘사를 잔뜩 늘어놓고는 끝에 가서 '꿈'으로 매조져버리더니, 이번에는 다시 현실의 가죽 깔때기로 돌아오는 모양새가 짐짓 존 딕슨 카의 『화형 법정』 읽기로도 이어질 수 있겠다는(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본 이야기 역시 당연히 재미있고. 바다 한가운데서 발견된 주인 없는 선박, 마녀 재판, 미라와 동방의 언어, 차가운 고립의 공포 이 네 가지를 주제로 한 단편집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지만 그것이 코난 도일의 소설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재차 말하지만 셜록 홈스의 망령에 사로잡힌 현대인에게 도일의 시리즈 외 작품이라는 것은 상당히 놀랄 만한 일일 테니까.



책 말미에서 발견한 사장님의 변
: 많이 팔릴 만한 종류의 시리즈가 아니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내고 싶어서 냈어요. 팔리면 팔리는 대로 안 팔리면 안 팔리는 대로 이 시리즈는 계속 낼 생각입니다. 좋아하거든요, 이런 내용의 글을. 다만 시리즈 가운데 몇몇 권은 재쇄를 찍을 여력이 없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말인데, 절판되기 전에 사두시면 좋겠습니다.



덧) 난 몽땅 가지고 있지요. 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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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 1 - 사도세자 이선, 교룡으로 지다
최성현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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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지붕 가마가 언제까지고 철옹성이 되어 주려나. 왕의 길이란 생사의 경계, 그 칼날 위라고 했으니 말이다. 「종기란 놈은 주변에다 범 아홉 마리와 뱀 일곱 마리를 쳐 둘러놓으면 맥도 못 추고 물러가게 돼 있다.」 떠돌이 약쟁이의 부적이 썩어 빠진 정치 모사꾼들에게도 효험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같이 돌멩이를 던지자고 요구할 때 이선(李愃, 사도세자)은 돌멩이를 던지지 않았고, 그 이유로 돌멩이를 든 자들의 돌팔매는 세자에게로 향했다.(p.98) 『역린』은 소모적인 굿판이 되고 만 정조 암살 계획을 다루고 있는데, 아마도 곧 개봉할 영화 《역린》은 정조 암살 모의 당일의 하루 동안만을 다루고 있는 모양이어서 그에 앞서 읽어두면 (필시) 좋을 듯싶다.



내전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궁녀들이 사는 내명부에서는 어떤 궁녀가 후궁으로 물망에 오르는지, 새로 착공하는 궁궐 공사는 어떤 것이 있는지, 지방관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누가 있는지, 누가 어떤 벼슬에 오르고 누가 누구를 탄핵하는지…….


ㅡ 본문 p.114



사람 하나를 죽이는 일에는 품이 많이 들고 쉽지도 않다. 하물며 밖에서 왕을 암살하려 하니 이렇듯 내부의 일을 속속들이 꿰차고 있는 조력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소설은 정조 암살 계획 전, 그의 아버지 이선이 살아있을 적부터 큼직하게 훑어 내려오고 있으므로 영화가 시작되는 시점 이전의 이야기에서 출발하고 있다. 영조의 아들 이선, 그의 동갑내기 아내 홍씨, 그녀의 아버지(호조판서), 며느리보다 어린 계비, 당파와 궁의 내부 인물들이 얽히고설킨 가운데 표적은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李祘, 정조)에게 향한다. 일견 『역린』 1권은 임오화변, 내달 출간될 2권은 정유역변을 다룰 것인데, 아비와 아들이 모두 죽었거나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역사적 사실을 그리고 있기 때문인지 소설은 딱딱하면서도 자못 스릴러의 냄새가 풍긴다. 특히 여기에는 훗날 정조를 해하려 하는 살수 집단의 구성 과정 묘사를 비롯해 노론인 아버지와 척을 지게 된 남편 이선과 정치판 사이에서 어린 아들을 지키기 위해 헤매는 세자빈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어느 때이건 정치 놀음의 혀 위에 선 자들과 그들만의 사회는 불변의 무대라는 것이 재차 확인된다. 아름다운 고담준론은 마타도어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입과 손이 빠른 이들은 난장판 속에서 획책의 꾼이 되어간다ㅡ '난장(亂場)판'이라는 말은 여러 사람이 어지러이 뒤섞여 떠들어 대거나 뒤엉켜 뒤죽박죽이 된 곳을 의미하는데, 우스꽝스럽게도 '난장'의 본뜻이 선비들의 작태를 묘사하는 말이었다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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