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산속의 불곰과 사냥 이야기로 출발했는데 어느덧 <에일리언>, <전설의 고향>의 '내 다리 내놔', 일본 신화의 '요모츠시코메', 로빈 쿡스러운 의학 호러가 한꺼번에 믹스돼서 흘러간다. 띠지 문구처럼 무서워도 너무 무섭다….(띠지는 보통 버리는데 이 블랙핑크 띠지는 색감이 이뻐서 일단 킵)원제는 '요모츠이쿠사'ヨモツイクサ(黃泉軍)영화 <사랑과 영혼>(원제: ghost)과 <미녀 삼총사>(원제: charlie's angels)처럼 국내로 들여오며 제목 바꾸기 모범 사례 중의 하나가 될 것.민속학 호러를 아궁이 삼아 불을 때서는, 테크노 스릴러를 총총 썰어 넣고 이토 준지 풍 양념으로 간을 한 뒤에, 내가 정녕 이 결말을 마음에 들어하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운 맺음으로 끝내버리고 만, 기이한 소설. 개인적으로 최근 읽은 <긴키 지방의…> 보다는 좋았다.공포의 매력은 '안전하게 그것을 추체험할 수 있는 것'이란 작가의 말.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있는 자신은 현재 '안전한 상태'에 있으므로 — 감상자가 직접적으로 위험에 빠져있지 않기 때문에 — 공포 그 자체를 매력으로 느끼고 거기서 무서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낀다는 뜻일 터.상당히 오래된 영화 <아라크네의 비밀> 이후 매력적인 '거미 이야기'를 접한 경험이 거의 없었는데 치넨 미키토의 <이메르의 거미>는 그중에서도 꽤 수작이라 생각한다. 홑눈 8개, 다리도 8개… 읽는 내내 괜히 몸 여기저기가 가려운 것 같아서 혼나긴 했지만 근래 읽은 호러 중 거침없이 추천.
책 출간을 맞아 진행된 작가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 <소년 농성>이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했다는 걸 완독한 뒤에야 문득 느낀다. 인식하지 못했는데 쪽수를 확인하니 5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었으니까. 그만큼 가독성이 좋고 지루할 틈이 없다. 식당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이지만 경찰 쪽의 상황과 교차되며 시선이 분산되고 그때그때 분위기의 환기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리라.소설은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시작하다가 <네고시에이터>의 모습을 띠고 나아간다. 살해된 어린아이의 시신이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범죄가 발생했을 때 최우선으로 소환되는 용의자('유주얼 서스펙트'라는 단어 자체가 이를 의미한다 — 해당 지역 내의 전과자 등)로 한 불량 소년이 지목되고, 그는 경찰의 권총 한 자루를 탈취해 또래의 종범과 함께 식당을 점거, 농성에 들어간다.그 닫힌 장소는 불우한 아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으로 인질은 식당 주인과 아이들 몇. 흥미로운 포인트는 탈취한 총을 든 소년의 '요구 조건'과 '음식 조리'다. 어떤 장치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소년 농성>에는 식당 주인의 요리 과정이 심심찮게 묘사되고 있다. 장시간의 농성에 따른 허기라는 측면에서, 또 무대가 음식점이니만큼 이는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건 앞서 언급한 작가의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다. 예컨대 학대를 받으며 지낸 아이들 — 평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 — 불우한 아이들에게 잘 차려진 정식 같은 음식은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 따라서 아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이 무대라는 것과 잘 맞아떨어지며 가정 학대, 돌봄과 빈곤 문제 등이 소설의 주제로서 자연스레 연착륙한다.동시에 소년은 요구한다. 자신은 범인이 아니니 진범을 찾아내라고. 이 지점에서 빤한 결과로 가는 건 아닌가 하고 내심 염려가 됐다. 그러니까 그 말대로 진범을 찾고, 인질들의 스톡홀름 증후군과 함께 용의자 소년의 불우한 성장 과정의 부각…… 물론 어느 정도는 맞다. 그런데 <소년 농성>은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교집합 속 미묘한 위치에 서 있다. 위에 적었듯 두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경찰의 조사로 속속 드러나는 추하고 안타까운 탁상행정과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는 청소년 문제 등이 기묘한 맥놀이가 되어 그려지는 까닭이다._덧붙이자면 이 소설에는 욕설이 꽤 많이 나오는데 해당 일본어 표현이 좀처럼 없거나 한국보다 무미건조(?)한 관계로 이걸 어떻게 살리는가 하는 것을 번역의 주안점에 둘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말맛을 살리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우니 — 하물며 최근 청소년의 그것이라면 더욱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