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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땅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평점 :
'오락물'이란 단어를 폄훼 가득한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키메라의 땅>은 재미있는 오락물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베르베르의 거의 모든 작품은 훌륭한 오락물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복잡하거나 거대한 담론으로 지적 허기짐(혹은 허영심)을 채워주려는 근사한 SF와는 접점이 옅어서, 필립 딕이나 아시모프 등으로 대변되는 일군의 작품들과 비교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과거 베르베르의 작품들을 읽어오면서 이 작가가 온갖 잡다한 아이디어로만 점철된— 끊임없이 자기 복제만 하는 라이트노벨을 쓰려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었다. 결론은 50/50. 그건 일정 부분은 맞았고 어느 정도는 틀렸다고 지금 와서 다시 생각을 고친다. 자신의 모든 작품에서 동일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비판의 대상인 동시에 영원히 하나의 세계관을 확장하며 거기에만 천착하는 집요함으로도 보이는 까닭에서다.
따라서 일종의 합리주의, 나아가 과학적 합리주의의 잣대를 들이미는 순간 베르베르 소설은 하잘것없는 졸작이 되어버린다. 다만 아쉬운 것은— 대개의 SF가 소위 '열린 결말'을 취할 수밖에 없고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은 장르의 특성상 당연한 것일 텐데, 그럼에도 말하고자 했던 테마를 매조지는 방식에 있어서 주요 개념이 얼기설기 휘발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으나 <키메라의 땅>을 읽고 나니 <파피용>이 자연스레 떠오른다(<제3인류>는 말할 것도 없이). <파피용>은 지구 이외의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는 내용이고, <키메라의 땅>은 반대로 우주에 있던 주인공이 다시 지구로 귀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물론 <파피용>은 목적지까지의 여정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고향에 도착한 이후를 쓴 <키메라의 땅>과 구조적으로 다르긴 하지만.
<키메라의 땅>은 인간과 짐승의 유전자를 이용해 혼종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인간인 사피엔스와 에어리얼, 디거, 노틱 3개의 종족. (유토피아를 꾀했으나 그것은 디스토피아와 다를 바가 없다— 또는 유토피아는 반드시 디스토피아로 귀결된다는 건 전작들과 대동소이하다) 이들 종족은 지식의 습득과 경험의 체득을 통해 인간이 자신들의 창조자이긴 하지만 결국 자신들과 다른 종, 그러니까 그저 4종족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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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 한 방울을 물에 떨어뜨린다고 하자. 두 물질은 대단히 단조롭고 매우 낮은 수준의 정보를 지니고 있다. 잉크 방울은 까맣고 물은 투명하다. 그런데 잉크가 물에 떨어지면서, 일종의 위기가 조성된다."
_베르나르 베르베르 <상상력 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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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는 자신의 다른 책에 '사물의 세계에서는 두 개의 파동이 만날 때 빚어지는 아주 다양한 모습을 고정시키기가 어렵지만, 생명의 세계에서는 어떤 만남이 고착될 수도 있고 기억 속에 머물 수도 있다'고 썼다. <키메라의 땅>은 어떨까. 이 세계에서는 사물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가 지닌 모습 모두가 나타난다. 그것은 창조자가 피조물을 파괴하건 피조물이 창조자를 배격하건 어느 쪽이든 간에 토머스 모어가 발붙일 만한 곳은 없어 보이고, 불안하기 짝이 없게만 느껴진다.
모든 생명체의 불행은 상상과 비교로 촉발한다. <키메라의 땅>에 존재하는 에어리얼, 디거, 노틱 이들 종족도 매한가지라서, 자신들의 모습과 타 종족과의 조화로운 생활에 안주하지 못하는 것이 비극의 씨앗을 맺는다. 우월감은 배척으로 이어지고 배척은 공격성과 분노의 전조다(그런데 베르베르의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세계관에서 모든 비운의 시작은 인간으로부터 생겨난다 — 이 점은 타당하기도, 모순되기도). 그리고 서로에 대한 불신의 팽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주인공은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앞서 언급했듯 SF의 장르적 특성에 매력을 느끼는 독자라면 <키메라의 땅>은 영 탐탁지 않을 거다. 나조차도 베르베르의 작품들을 흔히 연상되는 SF에 빗대어 읽고서 다소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재차 말하지만 그건 그의 소설을 읽는 방식에서 옳은 선택이 아니다. SF 요소가 가미된 블랙코미디로서의 독서라면 어울릴 거라고 생각한다. '이미 세상은 망했으니까 다 엿이나 먹으라지'가 아니라 '망한 건 망한 거고, 거기서 뭐라도 좀 건져보자'의 독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