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쑤기미 - 멸종을 사고 팝니다
네드 보먼 지음, 최세진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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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정이 재미있다. 멸종, 기후 위기… 이런 키워드는 그간의 다종다양한 소설들에서 심심찮게 등장했던 것이지만, <독쑤기미…>에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됐다. '멸종 크레딧'이라는 것.

특정 종을 멸종시키려면 크레딧이라는 걸 제출해야 하는데 이 크레딧은 종의 지적 능력의 여부로 결정된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하나만 제출하면 되는 크레딧이, 지적 능력을 지닌 종을 멸종시키려 할 때는 열 세개가 필요하게 된다.

이야기는 여기서 비로소 시작되는데, 주인공 핼야드는 이 크레딧 시장에서 굉장히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미 멸종시켜버린 독쑤기미라는 종에게 지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린 것. 하지만 그는 빈털터리다. 해결책은 두 가지. 독쑤기미에 대해 연구한 과학자 카린을 설득해 독쑤기미에게 지적 능력이 없다는 거짓 보고서를 작성케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어딘가 살아 남아있을지 모르는 독쑤기미를 찾아내 멸종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것.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기후 위기를 전제한다. 멸종에 따른 허가증인 크레딧을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보존활동을 통해 크레딧을 확보할 것인가. 그리고 환경 거래 시스템, 이 크레딧 시장 하에서 얼마큼 이득을 보며 거래에 뛰어들 것인가.

마지막 에필로그는 보는 시각에 따라 안타까울 수도 당연한 결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인간이 우월한가 인간 이외의 동물이 우월한가에 대한 작가의 답이랄까. 자본주의 시스템에서의 각종 거래, 그중에서도 환경, 기후 위기와 엮어낸 기발한 아이디어가 그저 감탄스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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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바운드 하트
클라이브 바커 지음, 강동혁 옮김 / 고블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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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브 바커.. 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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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땅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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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물'이란 단어를 폄훼 가득한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키메라의 땅>은 재미있는 오락물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베르베르의 거의 모든 작품은 훌륭한 오락물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복잡하거나 거대한 담론으로 지적 허기짐(혹은 허영심)을 채워주려는 근사한 SF와는 접점이 옅어서, 필립 딕이나 아시모프 등으로 대변되는 일군의 작품들과 비교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과거 베르베르의 작품들을 읽어오면서 이 작가가 온갖 잡다한 아이디어로만 점철된— 끊임없이 자기 복제만 하는 라이트노벨을 쓰려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었다. 결론은 50/50. 그건 일정 부분은 맞았고 어느 정도는 틀렸다고 지금 와서 다시 생각을 고친다. 자신의 모든 작품에서 동일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비판의 대상인 동시에 영원히 하나의 세계관을 확장하며 거기에만 천착하는 집요함으로도 보이는 까닭에서다.

따라서 일종의 합리주의, 나아가 과학적 합리주의의 잣대를 들이미는 순간 베르베르 소설은 하잘것없는 졸작이 되어버린다. 다만 아쉬운 것은— 대개의 SF가 소위 '열린 결말'을 취할 수밖에 없고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은 장르의 특성상 당연한 것일 텐데, 그럼에도 말하고자 했던 테마를 매조지는 방식에 있어서 주요 개념이 얼기설기 휘발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으나 <키메라의 땅>을 읽고 나니 <파피용>이 자연스레 떠오른다(<제3인류>는 말할 것도 없이). <파피용>은 지구 이외의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는 내용이고, <키메라의 땅>은 반대로 우주에 있던 주인공이 다시 지구로 귀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물론 <파피용>은 목적지까지의 여정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고향에 도착한 이후를 쓴 <키메라의 땅>과 구조적으로 다르긴 하지만.

<키메라의 땅>은 인간과 짐승의 유전자를 이용해 혼종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인간인 사피엔스와 에어리얼, 디거, 노틱 3개의 종족. (유토피아를 꾀했으나 그것은 디스토피아와 다를 바가 없다— 또는 유토피아는 반드시 디스토피아로 귀결된다는 건 전작들과 대동소이하다) 이들 종족은 지식의 습득과 경험의 체득을 통해 인간이 자신들의 창조자이긴 하지만 결국 자신들과 다른 종, 그러니까 그저 4종족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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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 한 방울을 물에 떨어뜨린다고 하자. 두 물질은 대단히 단조롭고 매우 낮은 수준의 정보를 지니고 있다. 잉크 방울은 까맣고 물은 투명하다. 그런데 잉크가 물에 떨어지면서, 일종의 위기가 조성된다."

_베르나르 베르베르 <상상력 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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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는 자신의 다른 책에 '사물의 세계에서는 두 개의 파동이 만날 때 빚어지는 아주 다양한 모습을 고정시키기가 어렵지만, 생명의 세계에서는 어떤 만남이 고착될 수도 있고 기억 속에 머물 수도 있다'고 썼다. <키메라의 땅>은 어떨까. 이 세계에서는 사물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가 지닌 모습 모두가 나타난다. 그것은 창조자가 피조물을 파괴하건 피조물이 창조자를 배격하건 어느 쪽이든 간에 토머스 모어가 발붙일 만한 곳은 없어 보이고, 불안하기 짝이 없게만 느껴진다.

모든 생명체의 불행은 상상과 비교로 촉발한다. <키메라의 땅>에 존재하는 에어리얼, 디거, 노틱 이들 종족도 매한가지라서, 자신들의 모습과 타 종족과의 조화로운 생활에 안주하지 못하는 것이 비극의 씨앗을 맺는다. 우월감은 배척으로 이어지고 배척은 공격성과 분노의 전조다(그런데 베르베르의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세계관에서 모든 비운의 시작은 인간으로부터 생겨난다 — 이 점은 타당하기도, 모순되기도). 그리고 서로에 대한 불신의 팽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주인공은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앞서 언급했듯 SF의 장르적 특성에 매력을 느끼는 독자라면 <키메라의 땅>은 영 탐탁지 않을 거다. 나조차도 베르베르의 작품들을 흔히 연상되는 SF에 빗대어 읽고서 다소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재차 말하지만 그건 그의 소설을 읽는 방식에서 옳은 선택이 아니다. SF 요소가 가미된 블랙코미디로서의 독서라면 어울릴 거라고 생각한다. '이미 세상은 망했으니까 다 엿이나 먹으라지'가 아니라 '망한 건 망한 거고, 거기서 뭐라도 좀 건져보자'의 독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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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의 도쿄 도시 산책 시리즈
양선형 글, 민병훈 사진 / 소전서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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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결국 문단으로 튀어나와버린 송곳. 자신의 동성애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등단한 퀴어. 할복은 말할 것도 없고,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모두 포함한)'미치다'라는 동사가 잘 어울리는 록스타. 어쩌면 그는 작가가 되기 위해 작가라는 직업을 연기하고 있었는지도.

'도시 산책 시리즈' 두 번째로 출간된 <미시마의 도쿄>는 결핍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금각을 불태우고 본인이 생각하는 미(美)와 죽음을 완성하고자 스스로 자살을 선택했던 미시마 유키오의 흔적을 훑는다.

도쿄 곳곳을 산책한 저자는 미시마가 "사무라이 도덕에 기입된 의례로서의 자살, 죽음의 '형식'을 육체로 반영하며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할복은 당대의 일본에서 '미적 형식'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며 그것은 아름답지 않다고 했다. 물론 이 저돌적이고 노골적이며 동시에 자신의 문학을 뒤집어쓰려 했던 미시마의 삶은 그렇다. 그러나 그가 펜으로 써냈던 파격과 미성숙함, 덧없음 그리고 비극적인 미를 두고도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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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인 건 이미 나에게는 원수야."

(소설 <금각사> 中 미조구치의 읊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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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의 소설 <금색(禁色)>은 아름다움과 자기연민을 버력으로 하여 영영 화해할 수 없는 욕망들을 그리고 있다.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게 되는 육욕과 이상, 통념 앞에 선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거리를 배회하고 부유하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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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에게 사회 체제 내부에서 게이가 점유하는 이 '무목적성'이야말로 그들의 아름다움을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퀴어 판타지를 가능케 하는 원리다. 가족 제도와 사회 체제 내부에서 어떤 기능과 협력도 수행하지 않고, 이를 생래적으로 거부하거나 적어도 그로부터 이탈해 방황하는 자인 게이의 아름다움."

(본문 이곳저곳에있는 QR코드로 저자의 또 다른 글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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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의 인물들은 늘 좌절하는 — 그래서 자신을 좌절케 하는 그 무엇을 소멸시켜 버린다 — 것만 같다. 바다의 세계와 남성다움을 찬미했던 <오후의 예항>의 소년 노보루도 그랬고,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대상을 불살라버린 뒤 한 것이라곤 담배 한 모금을 빠는 것뿐이었던 <금각사>의 미조구치도 그랬다. 거기에 냉소를 지을지 그 투명성에 공감할지는 우리 자유이나, 어리고 유약한 소년의 정신에 일종의 '(번듯하지만 실은 처절한)형식'을 입힘으로써 꾀하고자 했던 '미의식과 죽음'은, 미시마에게 아름다움 그 자체로 남아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미시마가 실험했던 작품들은 철저하게 비극의 세계를 그린다. 그리고 그것을 자양분 삼아 인물들로 하여금 삶을 달리게 하고 '한계라는 영광'을 맛보게 한다. 이토록 강박적일 수가 있을까. 이다지도 위험천만한 폭로로 그들을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 세워야만 했을까. 우리는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을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 것일까. 작가는 이미 죽고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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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범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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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뛰는 형사‘의 고전미. 조금 더 노력하면 사사키 조나 마츠모토 세이초에 근접할 수 있겠음. 고다이 형사 시리즈의 전작 <백조와 박주>에 약간의 세련미 첨가 버전. 한번에 엮어지는 굴비 마무리가 살짝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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