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맛 - 음식으로 탐사하는 중국 혁명의 풍경들
가쓰미 요이치 지음, 임정은 옮김 / 교양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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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의 매운맛을 즐겼다던 마오쩌둥이 「매운 것을 먹지 않으면 혁명을 할 수 없다」라고까지 했다던데, 일단 혁명은 차치하고라도 지금의 중국요리는 세계적인 성격까지 갖출 정도로 성장했다. 누가 그랬던가, 중국인들은 식탁 다리 빼놓고 네발 달린 것은 다 먹는다고. 그러나 본디 저 옛날부터 미주(美酒)는 있었어도 미식(美食)이란 것을 즐기는 문화는 송대에 이르러서야 발달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환관의 이야기가 흥미로운데, 권세를 부리기 쉬운 환관들이 비정기적인 수입, 즉 뇌물을 비롯해 산해진미와 진귀한 식자재에까지 눈을 돌렸다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잃어버린 남성성을 대신한 보상심리였을까? 바깥에서 궁으로 들어오는 고급 식자재는 환관이 관리하는 민간 중개업자를 거쳐 끝에는 엄청난 가격을 자랑했다. 이를테면 서태후가 먹는 달걀 하나는 단계적으로 여러 환관의 손을 거치게 되는데 그 금액은 오늘날의 물가로 보면 대략 십만 원에서 이십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환관들이 당대 요리 발전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는 것에서 어느 정도는 그들의 기여를 인정해주어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들 덕에 질 좋은 식재료의 경로가 확립되고, 고급 식자재가 요리법과 더불어 시중 음식점으로 퍼졌으며, 궁중에서 만들던 요리가 진화해 더욱 세련된 음식의 형태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ㅡ 글쎄, 아무리 중국요리의 역사가 환관 요리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고는 해도 너무한 처사일지도. 어쨌든 다소 지난했던 시기를 건너뛰어 공산당 정부의 베이징 그리고 국민당 시대로 가 보면 중국요리는 물론이거니와 세계 각국의 요리 또한 인기를 모으게 된다. 미군이 있었으니 관련 물자가 여기저기서 흘러들었던 탓이었을 거다. 뜻밖에도 여기서 내가 한 가지의 '꼰대스러움'을 느끼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첫머리에 언급한 마오쩌둥에게서였다. 그는 생선 머리 탕인 다터우위탕(大頭魚湯)을 즐겨 먹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좀 우습다. 생선 머리를 먹으면 대뇌가 발달하여 똑똑해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난다거나 하는 식이라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마오쩌둥의 생선 머리 탕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문화혁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오늘날 대통령이 똑똑해지고 싶다며 총명탕(聰明湯)을 들이켜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혁명의 맛』은 이후에도 대기근과 홍위병, 덩샤오핑, 홍콩요리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음식과 맛의 여로에 오른다. 자, 다소 신기하게도 보이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동침이 가능해진 중국(특히 베이징)이라고 하면 언뜻 개혁이나 개방과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는데, 때로는 옛 맛을 잃어버려 탄식을 자아내게도 하지만 동시에 보다 세련되어지고 또 새로운 맛의 탄생이라는 점에서도 유의미한 대목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사회경제적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변하는 것이겠으나,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초라한 음식을 먹는 것이 부르주아 계급 타도를 위한 혁명적 행동으로 인식되던 때는 지났다. 저자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나라에서는 경제와 미각의 발달이 동시에 진행된다고 보았는데 이 책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그렇다고 느낄 수가 있다. 문화의 흐름이란 거대한 강물과도 같아서 인위적인 간섭으로는 막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그의 물음대로 과연 음식 문화를 지탱하는 것은 무엇일까? 적어도 여기서 중국의 여러 풍경들을 통해 그 답을 어렴풋하게나마 제시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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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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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징표였던 매혈(賣血)이 생계수단으로 변하고 '자라 대가리' 노릇을 한 허삼관은 아Q의 정신승리를 물려받아 제 피를 쭉쭉 뽑아낸다.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은 땀으로 번 것이고 매혈로 번 돈은 피를 흘려 번 돈이므로 함부로 쓸 수는 없는 일이다, 라는 것이 그의 철칙 아닌 철칙. 그러면서 돼지간볶음 한 접시와 따뜻하게 데운 황주 두 냥이면 되었건만, 불행하게도 피를 팔다 쓰러져 도리어 수혈을 받는 처지에 몰리는가하면 이제는 나이가 들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진 늙은이의 피만 남았으니, 이를 피로 흥한 자 피로 망한다 한들 누가 말을 보탤 수 있을까. 결혼하기 위해 피를 팔고, 외도의 대가인 선물을 사기 위해 피를 팔고, 아들놈이 저지른 폭행을 수습하기 위해 피를 팔고, 또 한 번 중병에 걸린 아들을 위해 피를 팔고, 마지막으로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피를 팔고, 그러다 결국엔 죽어 나자빠지는 거지, 뭐……. 아무튼 헌혈(獻血)과 매혈은 분명히 다르고, 매혈에는 목적성이 뚜렷한데다가 거기에는 또한 모종의 손씻이도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허삼관은 매혈(賣血)뿐 아니라 매혈(買血)도 한다. 그는 아내 허옥란과 결혼하기 전 그녀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팔십삼 전을 쓰고 장인 될 사람에겐 황주 한 병과 담배 한 보루를 내놓게 되는데, 시간이 흘러 세 명의 아들 중 장남이 허삼관의 씨가 아니라는 게 드러나기 때문이다ㅡ 「이런 창녀 같은 년. 그러고도 서방질한 적이 없다고 떠벌려.」 이러니 보라, 허삼관이 어디 제 피만 판 것인가? 남의 피 또한 돈을 지불하고 사들인 것이나 매한가지였던 셈인 것이다. 희한한 것은, 남의 자식을 때려눕혀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피를 판 것도, 또 간염에 걸린 아들을 위해 피를 팔게 된 것도 죄다 '남의 씨'를 위해서였다는 사실이다. 아내 허옥란의 실언 ㅡ '그때 딱 한 번' ㅡ 으로 밝혀진 바로 그 장남 말이다. 육십이 되어 몸은 쇠잔해졌을지언정 꼬장꼬장한 입담만큼은 여전한 허삼관, 삶 전체를 매혈을 통해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던 허삼관, 아비 된 자의 자존감을 버리고 양심과 가족을 택한 허삼관, 어느 쪽이든 간에 모두 허삼관의 맨 얼굴이며 채플린식 희비극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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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빨간책 - 디지털 시대, 가축이 된 사람들을 위한 지적 반동
백욱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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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백욱인이 한국어로 옮겼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의 『디지털이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하루에 최소한 3시간 정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이렇게 몇 년 동안 해왔지만 아직도 가끔씩 컴퓨터에 대하여 좌절감을 느낀다. 컴퓨터를 이해하기란 은행 청구서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이 책이 나온 것은 20년 전이고, 이제 우리는 컴퓨터와 더불어 스마트폰을 통해 손가락을 적당한 각도로 옴직거리는 것만으로도 월드와이드웹의 거미줄 속을 제멋대로 돌아다닌다. 어디 돌아다니기만 할까. 언젠간 호수만 바라보던 나르키소스마냥 무언가에 홀려 거기에 빠져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나 또한 스마트폰을 소유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하루 몇 시간 동안이나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내 얼굴 아래에 있는 목주름이 독서에 의한 것인지 상념에 잠긴 흔적인지는 구분할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우리는 인터넷과 그것을 쉬 가능케 하는 스마트폰과의 혼연일체를 이루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때때로 기계 팔(셀카봉)에 협력을 요청해 제 얼굴을 찍어대기 바쁘다.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기생수(寄生獸)』에서처럼 눈과 입을 떼어 손에다가 붙여버리고 나면 ㅡ 나와라, 만능 팔! ㅡ 스마트폰 다루기가 좀 더 편해질까? 그때가 오면 우리는 반인반기(半人半機)를 버리고 조립(組立)인류란 말을 국어사전에 등재시켜야 할 것 같다.





질량 없이 부유하는 것들의 집합소인 사이버스페이스에선 살을 맞대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가능할 듯싶다. 나는 여기에 있는 이 정보(자료)를 저편으로 옮길 수도 있고 키보드를 몇 번 두드려 끼니를 해결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타인을 궁지로 몰고 매도하여 그/그녀로 하여금 죽음으로 이르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저런 사상가들 혹은 철학자들의 말을 끌어오지 않아도, 그럴 능력도 없고, 이용자의 주권이란 측면에서 볼 때 우리의 수동성은 분명해졌다. 이는 그리 호들갑 떨 일이 아닌데, 나는 인터넷을 통해 일종의 관계를 맺기보다는 그저 다종다양한 배열에 합류하고 만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인터넷 빨간책』이 실은 내가 심오한 척하는 감상을 주절거릴 만큼 슬쩍 읽을 만한 책은 아니어서, 가요의 노랫말을 빌려 앞서 말한 '배열되는 기분(배열 속에 합류되는 기분)'을 설명할 정도의 깜냥만 부려본다. 「공중전화를 걸면서 나누던 우리들의 지난날의 얘기들은 퇴색되고 너, 나, 아니 우리 모두가 핸드폰을 가진 자가 멋있다고 느끼고 있어.」(클론 「다 잘못됐어」)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의 책이 출간되었을 즈음 나온 노래인데,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잘못됐다'는 것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가로지르는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사실은 이 뜻이 아닐지라도). 하여간 이 비유가 어울리는지 어떤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가상의 공간과 더불어 집 밖 거리에서마저 우리의 처신이 희석되는 한편 말을 잘 듣는 집짐승이나 짐말이 되어 임시적 거처를 기웃거리는 뜨내기가 되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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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스
마커스 세이키 지음, 정대단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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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 소여에 의하면 SF란 '현재에는 없을지라도 인간의 인식이 닿을 수 있는 부분'을 다루는데 『브릴리언스』가 이 정의에 얼마나 들어맞을는지는 모르겠다. 근미래, 사이버펑크, 하드SF, 소프트SF 등의 말을 갖다 붙여도 얼추 비슷한 내용을 품고 있으면서, 또 결정적으로 여기에 뮤턴트(돌연변이)가 등장하는 이야기여서ㅡ 영화 《엑스맨》처럼 분류되어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거나 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장애로 바라보기도 하는 서번트 증후군에서 출발한 이 소설은 특수한 능력을 가진 '브릴리언트'들에 의해 꾸려진다. 이들은 하나가 흥하면 하나가 망하는ㅡ 이를테면 천재와 장애라는 플러스마이너스의 개념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과 똑같으면서도 저마다 초인(超人)과 같은 특수능력을 지니고 있다. 상대가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늘어놓는지를 파악하거나 숫자와 곡선으로 이루어진 그래프와 데이터만으로 점쟁이처럼 뒷일을 맞히는가하면(사실 점쟁이들보다 훨씬 낫지만) 벽을 통과해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널 수 있는 브릴리언트들이 등장하는데, 주인공 닉 쿠퍼는 공정국(어감만으로도 친근감이라고는 전혀 없다) 소속의 브릴리언트로 나랏밥을 먹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지만 거물 테러리스트를 검거하는 것만은 그다지 여의치 않다…… 라는 것이 『브릴리언트』의 시작이다. 인구 백 명당 한 명 꼴이라던 브릴리언트는 일견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 정도로 취급될 법하지만 그들이 작심하고 일을 벌이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때로는 전쟁이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일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하고. 하여 쿠퍼가 스스로 경찰 무리에서 빠져나와 테러리스트 쪽에 붙어먹으며 그들을 와해시키려는 배신자 역할을 떠맡는다, 라는 것이 소설의 기본 구조다. 대강 알아본 바에 의하면 소설은 단권으로 끝나지 않고 총 삼부작의 형태를 취하고 있단다. 그래, 그래야지. 기껏 뮤턴트라는 것을 설정해놓고 이렇게 끝내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단 삼부작 중 이 『브릴리언트』는 일종의 전초전에 해당할 듯싶고, 종반의 「누구에 의해?」라는 이 한마디 물음이 인류간의 다툼을 촉발한 계기로써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며 명료하게 설명해주는 대화로 끝이 난다. 「그런 짓을 하고도 밤에 잠이 옵니까?」 「그래서 수면제를 먹지. 철 좀 들게.」 뒷사람의 마지막 문장 뒤에는 생략된 말이 있는데, 이 지구가 만들어져 멸망할 때까지 변하지 않을 단 하나의 논리가 숨어있다. 부디 책에서 확인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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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정부 10년 무엇을 남겼나>
한국 보수가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는 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는 과거보다 발전해왔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이는 소기의 목적 혹은 절반의 성공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듯하다. 그리고 자, 다시 보수가 정권을 잡은 10년이 지나간다. 이제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훈민정음의 길>
훈민정음 창제의 비밀(이 뭘까?)과 역사를 재조명했다고 한다. 식자라 불리기도 하는 꼰대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신구의 충돌, 이런저런 잡음들……. 왜 없었겠는가?



<시간 연대기>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저 옛날 역사의 때부터 현재까지를 톺아보며 시간에 대해 고찰한다. 글쎄, 해가 지는 것이 아니라 휴대전화의 숫자로만 때를 확인할 수 있는 지금의 현대인들을 보건대, 그들로 하여금 어떤 사유로 이끌어갈지.



<한국 공산주의운동사>
한국의 공산주의, 사회문화적 배경, 발전과정, 그들을 이끌고 따랐던 이들, 지하운동…… 제목 그대로 한국 공산주의가 어떻게 태동하고 지내왔는지 살핀다. 신간평가단으로 선정되지 않아도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사회를 보호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하는가. 아니, 이는 동의어일지도. 전쟁이 반드시 필요했던 역사는 아예 존재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그저 필요로 인해 누군가를 해하거나 죽이는 일들 말이다. 푸코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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