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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감각 : NASA 57년의 이미지들
이영준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6년 5월
평점 :
빌어먹을 영화들 때문에 우주와 관련된 시설 일체가 휴스턴에만 있는 줄 알았던 시절과 달리, 이 빌어먹게 아름다운 사진들 덕분에 이제는 별의별 기계장치에도 어느 정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허블 천체망원경을 보수하고 귀환하며 태양을 가로지르는(정말이지 외롭게만 뵈는)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 달에 착륙하는 순간을 '터치다운(touchdown)'이라 명명한 아폴로 11호 비행 계획도, 이런 게 정말 있었나 싶을 만큼 어안을 막히게 만드는 미스 나사 선발 대회, 내 정강이께 난 터럭 같은 유로파의 자잘한 표면들……. 이영준의 표현대로 망막에 일어난 빅뱅일는지 모르겠다. 내 눈앞에 보이고 실제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 적도 없고 가볼 수도 없을 알지 못하는 것들을 사진을 통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달과 우주에 기계를 보내고 사람을 태워 보내는, 참으로 신통방통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갖가지 물체들과 연구들. 얄팍한 책 한 권이지만 내겐 우주 삼라만상을 죄다 보여주는 것만 같다. 「현재 스마트폰은 1969년 나사가 보유했던 슈퍼컴퓨터보다 고성능이다. 하지만 나사는 그 슈퍼컴퓨터로 달에 유인우주선을 보냈고, 나는 돼지에게 새를 쏘아 보내고 있다.」 모바일게임 앵그리 버드의 어느 유저가 한 말이란다. 연필의 흑연 가루가 전자기기를 망가뜨릴 우려가 있어 우주에서만 사용할 볼펜을 따로 개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코웃음을 쳤는데, 위의 모바일게임을 빗댄 유머를 들으니 기분이 한없이 묘해지기만 한다. 쿠키와 스테이크 등이 마련된 우주 음식은 어딘지 모르게 더 기기묘묘하다. 사진 위쪽에 음식물이 떠다니지 않도록 고정할 수 있는 스프링이 보이고, 포장을 뜯는 용도로 여겨지는 가위 때문에 꼭 수술대를 보는 것만 같다ㅡ말미에 위치한 안형준의 한국 로켓 붐 관련 글까지 읽고 나면 '외국엔 인공위성이 있고 한국엔 거수기가 있다'라는 50년대 후반 신문 만평의 뜨악함이 뒤미처 따라온다. 그리고 종종 나는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엊그제 일어난 일도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는데 어떻게 저 옛날 우주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 수가 있는 거지, 하며 미래의 미국 대통령이 '이 모든 것들은 쇼였으며 허구였다', '어떻게 사람이 달에 갈 수가 있겠나'라는 양심선언을 할 때가 올는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