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1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시리즈 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권일영 옮김 / 검은숲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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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전 일본의 3인조 록 밴드를 하나 알게 되었다. 그런데 희한하기도 하지. 그들의 이름은 '인간의자(人間椅子).' 바로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 제목이다(밴드명처럼 그들의 음악 역시 란포의 작품을 제재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래 사진은 최근 발매된 19번째 정규 앨범 『怪談 そして死とエロス(괴담 그리고 죽음과 에로스)』 커버). 그들도 그들이지만 가수의 이름에 영향을 준 란포의 작품이라니, 새삼 대단하고 신기하게 느껴진다.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라서 더욱 그럴는지도. 마쓰모토 세이초와 더불어 역시 개인적으로 가장 즐겨 읽는 추리, 범죄소설 역시 란포의 것인데, 그가 남긴 유명한, 그리고 이제는 상투적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범죄의 구분이란 것이 있다. 바로 범죄의 동기를 감정, 사욕, 이상심리, 신념 네 가지로 나눈 것이다. ㉠감정 : 연애, 원한, 복수, 우월감, 열등감, 도피 등. ㉡사욕 : 물욕, 유산 문제, 자기 보호 등. ㉢이상심리 : 살인광, 변태심리, 예술로서의 살인, 각종 콤플렉스 등. ㉣신념 : 사상, 정치, 미신, 종교 등에 기초한 범죄. 란포의 범죄 구분은 대략 이와 같고, 과거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전3권)이 있어 그쪽에 실려 있던 단편이 이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1』에도 수록되었다. 반복이라면 반복이나 그의 단편뿐 아니라 장편까지도 꾸준히 번역한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결정판이 될 수 있으리라. 또한 앞서 언급한 범죄의 구분은 란포의 작품을 통해 죄다 맛볼 수 있을 테고.





이번 결정판 1권에는 란포의 단편 세 편,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애벌레」, 「천장 위의 산책자」와 장편 『거미남』이 수록되었다. 오시에(押絵)라는 것은 (역주를 옮기자면) 두툼한 종이를 사람이나 새, 꽃 모양으로 잘라 솜을 얹은 다음 예쁜 천으로 싸서 판자 등에 붙이는 전통 공예를 말하는데, 입체적으로 보이는 아래 사진을 통해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크기가 작아 잘 전해지지 않을 것 같지 하지만).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는 제목처럼 오시에 공예품을 옆구리에 낀 채 여행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쪽은 범죄를 다룬 소설은 아니고 소위 환상성이 짙은 작품이랄까, 나르키소스의 다른 버전 같은 느낌을 준다. 과거 다른 판본으로 이미 읽었음에도 그때의 읽는 맛과 재미가 다시금 떠오르는 작품이고, 「인간의자」와 함께 내가 강한 애정을 느끼는 단편 중의 하나이다. 이를 지나 「애벌레」로 가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심한 반발을 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전쟁 이후 부상을 당한 군인, 처참하게도 머리와 몸통만 남게 된 한 남자를 '애벌레'로 묘사해 당국으로부터 판매금지 처분을 받기도 한 작품으로 란포가 지닌 괴이한 상상력의 극단에 속한 단편일 것이다. 「천장 위의 산책자」는 아케치 고고로('코고로'가 익숙할지도 모르겠으나 외래어표기법에 의해 일본어 어두 무성파열음을 예사소리로 나타낸 것일 테니 이해해야 한다)가 등장해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인데 어딘지 모르게 아마추어 분위기가 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확증도 없고, 임의로 증거물을 만들어 범인으로 하여금 범죄를 인정하게 만들며, 더군다나 고고로 자신은 본인의 판단이 맞는지 틀리는지의 여부만 확인하고 싶을 뿐 범죄자의 처벌은 제 소관이 아니라는 자세를 취한다. 장편 『거미남』은 범죄 활극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숨 돌릴 틈 없이 몰아치는 이야기의 진행이 매력적이다. 란포가 구분한 범죄의 종류 중 이상심리가 간섭하고 있으며 '거미남'의 치밀한 범죄 계획이 소설 자체를 이끌어나간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여기에도 탐정 아케치 고고로가 등장한다).





특기할 만한 점 하나.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1』은 초판 한정으로 다른 사양의 제작 방식을 선보인다. 권별 케이스, 본문, 커버가 따로 만들어졌는데 그중 본문은 누드사철로 제본되었다. 사철은 말 그대로 실로 꿰맨 것이고, 이를 책등이 그대로 노출되어 옛 서책 같은 느낌을 주도록 했다. 결정판 2권, 3권…… 등 훗날 계획은 모르겠으나 일단 1권을 놓고 보자면 초판 한정판과 일반판의 차이는 크게 누드사철이냐 아니냐의 구분이다. 또 일반판은 분권 없는 일반 하드커버로, 외려 그쪽이 더 튼튼하다고 여기는 독자들도 있는 모양이니 이는 개인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되겠다. 역자에 의하면 이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은 일본에서 가장 최근에 출간된 30권 분량의 문고판을 사용했고 그쪽의 편집 방식도 그대로 옮겨왔다. 해제, 본문 내용에 덧붙여 란포 자신의 '자작 해설'까지 곁들인 것이다. 각 작품의 정보는 물론이거니와 창작 의도, 당시 집필 환경, 소소한 에피소드 등이 실려 있다. 이런 만듦새에도 불구하고 일단 1권에 수록된 단편을 기존에 읽었던 사람이라면 반복에 의한 실망을 다소 느낄는지도 모르겠지만, 편집부에선 일단 각 권마다 장편을 반드시 한 편 이상 넣는다는 기준을 정했다고 하니 새로이 출간되는 결정판을 주저 없이 집어 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번역도 믿고 읽을 만한 역자에 의한 것이어서 염려를 놓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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