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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6월
평점 :
스기무라의 인생행로야 예견된 것이긴 했다. 그런 식의 부적합한 생활이 가능할 리 없으니까 말이다. 연작이니만큼 더치고 더친 이야기들의 과정에서 스기무라의 터닝 포인트가 어느 시점에서 나올까 하는 것만이 중요한 과제였을 듯하다. 『누군가』와 『이름 없는 독』에 이은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운전기사의 죽음과 뺑소니, 청산가리에 의한 죽음에 이어 이번엔 다단계다. 다만 『화차』에서만큼의 집약된 표현이 다소 아쉬운데, 『솔로몬의 위증』에서 느꼈던 감정과 대동소이해 '역시 미야베 미유키는 시대물인가' 하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한 소설이 될 것만 같다. 버스가 통째로 납치되고, 느닷없이 권총을 든 노인이 나타나는가하면 나중에는 경찰의 진입에 자살해버린 범인이 인질범들에게 거액의 위자료를 보낸다. 애초 스기무라 시리즈가 범죄 집단에 맞서는 공권력을 다룬 이야기이거나 혹은 치밀하게 만든 알리바이를 깨는 본격물이라든가 하는 거창한 스토리가 아닌 바에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자그마한 버스나 공원 벤치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것 같은 수수한 노인이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는 것은 일견 이치에 맞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작들에 비해 아쉬운 점은 앞서 언급한 『화차』의 경우와 같은 구성이 아닌 (미안한 말이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사족에 가깝다고 느껴질 만한 부속물들의 서술이랄까, 설명하기 다소 모호하지만 좀 늘어져 있다는 기분이 강하게 든다. 여기서 대개의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아, 그간 읽어왔던 일본 장르문학의 전형이로구나, 하고 무릎을 칠는지도. 그러니 시리즈의 차기작은 이런 악평 아닌 악평에 분기탱천해 스기무라 사부로의 본격적인 새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