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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 영국식 살인의 쇠퇴 ㅣ 위대한 생각 시리즈 6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나폴레옹(『동물 농장』)과 빅 브라더(『1984』)에만 급급했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오웰이 썼던 소설의 범주에 속하지 않은 글들도 속속 번역되어 왔다. 이 『영국식 살인의 쇠퇴』도 그런 맥락 위에 서 있는데 과거 이런저런 에세이를 묶은 책에 포함되었던 글이 중복되기도 한다(어쩔 수 없는 일일까)ㅡ 그러니까 우리는 같은 글을 이미 여러 번 읽은 셈이며, 심지어 이 책에 수록된 각각의 글들은 그 성격이 일관성 있게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설켜 중구난방의 편집을 자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식 살인의 쇠퇴』를 읽는 자들의 공통된 이유는 (장담하건대) 저자가 오웰이라는 점일 터다. 그렇다면 왜 오웰인가? 그 연유는 특히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의 영향이 지배적임에 틀림없다. 오웰은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인간들을 그림으로써 독자들에게 투쟁의 대상을 심어주었다. 그는 이 세계를 둘러싼 현상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짚어내는 것에 자질이 있었으며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까지 터득했다. '왜' 그래야 하는 것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세상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누가' 알려줄 수 있는지를, 소위 문학성이 담보된 글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환멸에의 각성을 꾀하도록 도왔다(그중에서도 《트리뷴》지에 썼던 고정 칼럼 <As I Please(나 좋을 대로)>는 ㅡ 말 그대로 '오웰 마음대로' ㅡ 짧은 호흡으로 보다 큰 울림을 선사한다). 또한 식민지 경찰과 부랑자, 접시닦이 등을 거친 그의 손은 '예술이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나는 이 책에 대해서(적어도 오웰의 글 자체에 관해서만큼은) 이러쿵저러쿵하며 평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오웰'이라는 단어 자체를 읽어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