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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꿈꿀 권리
한동일 지음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수많은 동문들이 찾아와 소위 특강이란 것을 했었다. 생각해보면 참 대단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공허하기도 한 이야기들이었다. 아마도 당시는 지금보다 더 마음의 여유가 많았을 때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동일 신부의 이야기는 어떻게 다가올 수 있을까. 그의 글은 소설처럼 흥미로우며 하나의 성공담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재 내가 개인적으로 교우하는 사람들 중의 몇몇이 사회인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 그들 중의 어떤 이는 팍팍한 현실과의 타협에서 실패했고, 또 어떤 이는 새로운 꿈을 좇아 모험을 감행한 사람이었다. 현실에 도전장을 내민다는 것은 참 어렵다. 아니, 어렵다는 말로는 친절한 설명이 아니다. 이 세계를 살아나가면서 ‘현실’이라는 단어와 ‘이상’이라는 단어의 괴리가 좁혀진 적을 나는 잘 본 적이 없다. 언제나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해 인생을 꾸려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아버지 세대와 매한가지로, 내 또래 역시 어느 하나만을 취해야만 ‘손쉬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현실과 이상의 거리를 없앤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한동일 신부일는지 모른다. 그가 쉽게 좌절하는 습관을 버리고 ‘나’의 여집합 속에 내재된 가능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속뜻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말한다. 무수한 여집합들을 깨울 수 있도록 스스로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고. 자신의 꿈을 믿고 생각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긍정의 힘을 믿어야만 한다고 말이다. 오늘 나는 대학 시절 후배의,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많이 지쳐 보였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까. 우리 사회가 청년들을 점점 더 힘들게 하는 것이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의 철학이 빈곤하기 때문이라는 건, 비단 한동일 신부만이 느낀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힘들어하고 있는 후배에게, 무력함을 느끼며 그저 우두커니 서 있기를 거부하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