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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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표창원의 『보수의 품격』이나 지승호가 쓴 다수의 인터뷰집을 비롯한 『강신주의 맨얼굴...』 등을 읽어 보았다면 표창원이라는 자의 생각, 인터뷰어로서 지승호가 가진 능력을 잘 알고 있으리라 본다. 사법부는 전문성이 없으며 동네 아저씨들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비공식적이며 사적인 자리에서는 연예인이나 대통령 이름을 부르는 것에도 별다른 호칭이 필요 없으므로. 그러나 이것이 표창원이라면, 경찰이었던 그의 입에서 나온 사법부에 대한 비수라면 어떨까. 그는 올곧은 인사이더이고자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 우리는 영화 《인사이더》의 제프리 위건드를 보아서 익히 알고 있질 않나.

여기, 표창원의 일화가 하나 있다. 영국 유학을 끝낸 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에게, 영국 경찰은 여고생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근방에 살았던 표창원의 DNA가 필요하다며 협조를 요청했다. 자,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다. 수많은 미제 사건과 측근을 사면시키기 위해 국가권력을 사용하는 대통령을 보며 그들은 정의를 우습게 본다고 했다. 그까짓 것, 그 정의 지킨다고 비용이 얼마나 들 것이며 이익이 얼마나 될 것이냐, 하는 생각. 정의에 비용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으로 안다. 그러나 지금 이 사회에서는 정의에 관한 문제가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고 동시에 신뢰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나는 표창원의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으나 범죄나 정의를 대하는 관점에서라면 얼마든지 손을 들 수 있는 것이다. 『공범들의 도시』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지만 주요한 축은 범죄를 통해 본 한국 사회를 진단해보고자 하는 것일 게다. 이를테면 ‘대문을 열지 못하는 한국 경찰’에 대해 언급하며 시스템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처럼. 미국이나 영국 등지에서는 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을 땐 가차 없이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고 했다. 만약 허위 신고이거나 오인이었다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끝이 난다. 그럼 그 뒤는? 시에서 보상하게끔 되어있는 것이다. 경찰은 법 집행에 대해 수행 의무가 있고, 피해에 대해서는 손실보상을 하지만 고의나 과실이 아닌 한 법의 보호 하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우리의 경찰은 친절하게 열어 달라고 부탁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고 안에 있는 사람이 노상 ‘아, 예, 그렇군요’ 하며 지시에 따를 리 없다. 문을 부수면 그 행위의 주체자인 경찰에게 책임을 묻고 형사, 민사상의 소송을 당하니까. 손실보상 제도? 지금은 제도가 마련되기는 했지만 글쎄, 앞으로도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 알 수 없다. 경찰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적극적이어야지 소극적이게 되면 도루묵이 될 테니 말이다 ―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 목격한 것도 비슷한 맥락인 데다가 그 사건에는 플러스알파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미묘한 생물체라서 섣불리 유형화시키고 예단할 수 없다. 나는 모든 시스템이 적절하다고는 보지 않으나, 다종다양한 환경과 변수가 시민들을 위협하게 내버려두고 또 범죄를 저지르거나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자라난 사람을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니 반드시 그들을 도와줄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를테면 사후관리랄까. 재범률을 낮출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조치와 무조건 괘씸죄를 들먹여 징벌을 가하려는 것보다도 예방에 힘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한국 사회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으니 한 번 범죄에 발을 들였던 사람들이 다시 손을 대는 경우는 무척이나 많다. 비슷한 맥락으로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매한가지. 보자. 떠들썩한 범죄가 발생하면 흔히 그 가해자 이름으로 사건의 파일명이 만들어진다. 예컨대 ‘조두순 사건’처럼. 미국을 보면 메건법과 제시카법이라는 성범죄자 관련법이 존재한다. 메건법은 성범죄와 관련해 기소된 적이 있는 자의 이름, 나이, 주소 등을 공개하고 그 거주 사실을 알려주는 법이다. 그런가하면 아동 성폭력범에 대해 최하 25년형을 받게 하고 출소 후에도 평생 전자발찌를 착용해 감시하는 제시카법이 있다. 이 이름들은 모두 피해자의 이름을 딴 관련법이다. 표창원은 말한다. ‘사회적 태도’가 다른 것이라고. 그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는 피해자임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 피해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순간, 주변으로부터 이상한 시선과 멍에가 씌워지기 때문에 피해자를 노출시키지 말자는 것. 그에 따르면 그러한 상처를 당한 피해자에게 가장 좋은 치유책은 점진적 노출이다. 조금씩 피해자의 피해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주고 스스로 직면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인데, 피해자를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당신은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시티즌 인 유니폼(citizen in uniform). 제복 입은 시민. 경찰은 시민의 일부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특히 표창원이 아웃사이더가 되어야만 했던 이유는, 역시 국정원 사건이 도화선이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를 조직 밖으로 내보내 외려 온당한 목소리를 내게 만든 것은 그가 인사이더였을 당시의 조직이었음에 틀림없다. 권은희 수사과장의 경우만 보더라도 조직을 보호하지 않는 인사이더는 그 조직 내에서 내몰리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조직이라는 체계, 사회라는 시스템이 유독 한국 사회에서만 이다지도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다시 ‘시티즌 인 유니폼’이다. 우리 스스로도 견고한 조직들을 염려하지 않고 있다. 겉으로는 진실과 정의를 원하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 조직에서 튀어나와 입바른 말을 하는 자들을 사회부적응자 취급하거나 멸시해버린다. 그런 결과 발생하는 것은 의심과 경계, 피해의식뿐인 것이다. 공범들의 도시? 맞다. 나도 공범이고 당신도 공범이다. 우리가 이 사회를 제로섬게임에 끌어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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