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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 - 라만차 돈 키호테의 길
서영은 지음 / 비채 / 2013년 8월
평점 :
느닷없이 하나의 시상식이 떠오른다.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올림픽 육상 경기 시상대에 섰던 세 명의 청년들, 그리고 블랙 파워 살루트. 인종 차별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었으나 안주한 세속에의 정복이란 측면에서는 돈 키호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는지도 모른다(라 만차 파워 살루트!). 첫 장 <높이 쳐든 오른손>이란 제목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시위’를 보자면 더욱 그러하다. “저는 고향을 떠났습니다. 토지도 저당 잡혔습니다. 안락을 버리고 자신을 운명의 팔에 맡기어 운명이 이끄는 대로 갈 뿐입니다. 저는 지금 사라진 편력기사도를 다시 부흥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여기서 넘어지고 저기서 쓰러지며, 이곳에서 떨어졌다가 저곳에서 다시 일어나며, 과부를 구원하고 처녀를 보호하고, 유부녀와 고아를 도와줍니다.” 어찌 보면 산초는 그에 비해 유약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녹슨 칼과 창, 투구를 쓴 돈 키호테에게는 그가 반드시 필요충분조건으로 작용할 터다. 성스럽고도 성스러운 로시난테도 매한가지. 돈 키호테가 처음 공격한 사람은 마부인 듯한데(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책에 나온 표현을 옮기자면 ― 그런 성스런 말을 채찍으로 때리며 겨우 짐 실어 나르는 용도로나 부리는 사람, 즉 마부들과의 싸움은 곧 세상 사람들의 상식과의 싸움으로 볼 수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면 좁힐수록 현실에서의 삶은 평안해진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자꾸만 꿈틀거리는 이상을 향한 부딪침은 쉬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눈을 비비고 보니 내가 잠이 들었던 게 아니라 기실 깨어 있었다는 걸 알았어. 하여튼 거기 있는 게 정말 나인지, 또는 가짜 허깨비인지 알아보려고 머리와 가슴을 만져 보았더니, 촉감이나 느낌이나 스스로 자문자답하여 보아도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것과 똑같이 내가 거기 있는 것이 확실했어.” 예의 그 ‘동굴 탐험’이다. 이상과 현실의 폭을 좁혔다면 애초에 밧줄 따위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는 반드시 밧줄이 필요했다. 동굴로 내려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상으로 올라가기 위한 밧줄이. 풍차를 향한 대립에서도 역시 돈 키호테의 이상과 산초의 현실이 대립한다. 둘시네아 쪽도 다를 것은 없다. 왜소한 현실에 현현된 가공의 인물인 그녀가 진실로 현실이겠는가, 이상이겠는가? 모든 위대한 것은 광장이나 명예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또한 어디에 뭐가 있을지 알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므로 ― “이쯤에서 그만합시다.”는 안온함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날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