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매미 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7
하무로 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쇼를 인용하기는 싫지만(나는 그의 비즈니스가 싫다) 마침맞은 구절이 눈에 띄었으므로 한번 적어 보겠다. 그가 말하길 무(無)는 피안의 향기다. 무는 초월의 세계를 향해 활짝 열린 가슴이며, 일천 장의 연꽃잎이 만개하는 것이다. 이 무는 붓다가 니르바나(涅槃)라고 부른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이 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할 텐데, 무는 단순히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무는 충만하다. 가득차서 흘러넘친다. 무는 단순한 부재 상태로 생각해서는 안 되며 그것은, 그러니까 무(nothingness)는 물질이 아닌 것(no-thingness)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무는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저녁매미 일기』에서는 그런 냄새가 난다. 향(香)내처럼 아무것도 없는 냄새가. 분명히 우여곡절(이 단어는 인간의 난장판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도록 권하는 기분이 든다)은 있다. 하지만 무엇이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도다 슈코쿠의 할복은 자살의 형태를 띠고 있긴 하지만 그건 그저 모양새에 지나지 않는다 ―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이 군대에 들어가면서 ‘자원입대’한다고 하는 경우처럼. 하지만 반대편에 서서 보게 되면 그의 죽음은 사회에 융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융화되지 않을 때에도 그를 기다리는 것은 이번에도 역시 죽음임에 틀림없다. 어느 쪽도 매한가지니, 그는 융화되는 쪽을 택한다. 비정상적 사회라 욕보이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룬다. 그는 부패한 게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설령 그럴지라도 기꺼이 그 게임에 참여한다. 지금 생각하면 독창적인 죽음이다. 동시에 그것이 그를 타인으로 하여금 독창적인 존재로 인식케 한다. 물론 집단의 일원으로 있으면서도 일면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집단 논리로 볼 때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라는 집단은 개인을 군중의 일부로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다는 쇼자부로가 이쿠타로의 돌멩이를 피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대로 밀고 나간다. 하무로 린의 소설은 나오키 상을 받을 만하다. 굉장한 대작이어서라기보다는 나오키 상에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주인공을 만들어 놓고 전개시키는 양태는 놀라울 만큼 선선하면서도 치열하다. 결국 아무것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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