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일본에 있을 적에 도쿄 역에 있는 초밥집에서 일한 적이 있다. 거기에 야스다(安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내가 깨진 유리잔에 손을 다쳤을 때 「뭐! 세 바늘이나 꿰맸다고!」 라며 우울한 얼굴로 걱정을 해주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천성이 착했으며 약간 어눌한 기운도 있었다. 『점과 선』에서의 야스다는 정반대다. 이쪽은 철두철미한데 내가 아는 야스다 씨는 일일결산을 볼 때 계산을 틀리기도 하는, 말하자면 영락없는 사오십 대의 사람 좋은 아저씨였다. 도쿄 역 야에스(八重洲) 북쪽 출구께 있는 누마즈 우오가시즈시(沼津魚がし寿司)에 가면 야스다 씨를 만날 수 있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여간에 『점과 선』의 야스다는 그야말로 '시간의 천재'로 등장한다는 것. 하루 중 단 4분의 틈을 찾아낸 기막힌 우연은 소설을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일단 이 양반은 소설 첫머리부터 등장하는데, 이때부터 그에게서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독자들도 느끼게 된다(거의 범인을 밝히고 시작하는 것과 같다). 읽는 쪽은 그렇다 쳐도, 도리카이와 미하라라는 두 형사의 분투는 정말이지 끈질기기 짝이 없다. 끊임없이 열차가 드나드는 번잡한 도쿄 역 ㅡ 하루 종일 북새통인 13 · 14 · 15번 플랫폼을 무대로, 어떻게 13번 플랫폼에서 15번 플랫폼의 열차가 보이는지 그 4분간의 매직을 밝혀내기 위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라. 뭐, 하긴 미하라는 좀 '안락의자 탐정'처럼 보일만도 했지만 말이다. 긴자의 단골찻집과 노면전차에서 비로소 머리가 번뜩이는 이 사람은 참 한가한 형사라는 소리를 들어도 좋을 정도다 ㅡ 내가 뜨악한 것은, 위키피디아에서 '점과 선(点と線)'을 검색해보면 심지어 미하라에 대한 설명으로 '긴자에 있는 단골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게 취미'라는 결과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점과 선』에 등장하는 특급열차 '아사카제'다. 15번 플랫폼에 들어오는 이 아사카제 ㅡ 두 남녀가 밀월이라도 떠나려는 듯이 열차에 오르는 모습 ㅡ 를 13번 플랫폼에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가지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예상했겠지만, 둘은 나중에 시신으로 발견된다. 도리카이 형사가 식당 칸에서 발행된 것으로 보이는 영수증에 '1인'이라고 써진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발상은 좋았다. 이야기는 도리카이에서 미하라로 그 추리 영역이 옮아가는데(둘은 협력관계) 그게 좀 어설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어설픈 줄거리가 볼만 하다. 미하라 ㅡ 그의 추리과정 ㅡ 는 너무 야스다에 집착한 나머지, 꼭 하나씩 빼먹고서 나중에야 '아차, 그게 있었지' 하며 뒤늦게 느려터진 제 머리를 때린다. 이것은 도리카이가 지적한 '인간이 빠지게 되는 맹점'과,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경찰이라는 이미지를 당시의 시대상과 묶어 보여줌으로써 배가된다. 사족을 좀 붙인다면 『점과 선』을 썼을 당시의 작가와 도리카이라는 인물의 나이는 얼추 비슷한 것으로 보이는데 부러 이런 설정을 통해 그보다 다소 젊은 미하라와의 대비를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미하라가 한 발씩 늦는 것은 완전히 이해 못할 것도 아닌 듯싶다. 그가 수사 공조를 위해 타 지역 수사국에 보낸 전보의 회신만 해도 다음 날 돌아올 정도였으니까. 또 소설에는 공무원의 부정부패가 등장하는데 그 내용이 나오질 않는다. 소설이 연재됐을 당시를 살펴보건대 아마도 군수 물자나 도쿄올림픽에 관련된 사안은 아니었을까 하고 추(억)측해볼 뿐이다. 아, 이 소설의 특징이 하나 더 있다. '해답편' 내지는 '해설편'이 나중에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게 볼 수도 있지만 이게 편지라는 액자를 통해 밝혀진다는 점이다. 도리카이 형사와 미하라 형사가 주고받는 두 통의 우정 어린 편지로 말이다.





『점과 선』은 TV아사히 개국 50주년을 기념해서 2007년에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2부작인데 러닝타임이 4시간 정도 된다. 영상은 서로 나이가 들어버린 도리카이 형사의 딸과 미하라 형사의 재회로 시작되며, 약간 어설픈 감이 있어서 소설로 읽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비토 다케시 ㅡ 기타노 다케시, 도리카이 형사로 분(扮) ㅡ 특유의 '눈 찡긋거림'이 살아있고(허허……), 시체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를 묻는 미하라의 질문에 「살고 싶다」고 대답하는 벙거지 모자를 쓴 이 노형사의 중얼거림만큼은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영상물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세이초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는데, 희한하게도 이 소설에서는 약간 의문이 드는 구석이 몇 있다. 의문이든 억측이든 일단 찔러보겠다. 여기서부터는 책을 읽어봐야 이해할 수 있을 텐데 ㅡ ①역에서 사람을 기다릴 때는 보통 대합실에 있지 않나? 그런데 '역 플랫폼이 아니라 대합실로 마중을 나오라고 한 까닭'에 대해 미하라가 생각하는 이유가 나옴으로써 문제는 그의 추리가 아니라 세이초에게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②초반부에 야스다가 레스토랑에서 나와 도쿄 역까지 5분 만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그것을 설명하며 5시 35분에 레스토랑에서 출발했더니 도쿄 역에는 6시 조금 전에 도달했다는 부분. ③당시를 생각해볼 때 가시이 역(어디라도) 앞의 과일 가게가 밤 11시까지 영업했다는 것도 약간 미심쩍다. 자, 이것들을 상쇄할만한 크나큰 충격이 있을는지? 어쨌거나 나는 범죄의 완성도나 틈 없이 몰아가는 일련의 추리 과정이 매력적인 이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일본의 철도(망)에 경의를 표하고 싶은 심정이다.



각설하고, 시간을 해결했더니 사망 장소가 달라지고, 사망 장소를 해결하려니 시간상 범인의 알리바이가 완벽해지는 이 두 번 세 번 꼬아지는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좀처럼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나조차도 '4분간의 트릭'을 깨려고 책과는 별도로 아예 시간표를 따로 만들어볼 정도였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점과 선』이 어떻게 사회파 소설일 수 있는가 하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트릭 외의 이야기가 있으니 어떻게 봐도 좋다는 생각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트릭에 더 비중이 있다 보니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뿐이다(오히려 여기서의 것이 '알리바이 깨뜨리기'의 원형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왜 살인이 일어났는지를, 살인 계획이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나왔는지를, 모든 것이 해결된 후 괴상한 현실의 양태를 봐야 할 것이다 ㅡ 그리고 맙소사, 나는 범인조차 동정해버리고 만다……. 음, 세이초 얘기를 할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멘트도 이제는 식상하군) 중의 하나는 발군의 '제목 짓기'이다. 『点과 線』은, 악마의 시간이 무너져 떨어져 있는 두 개의 点이 비로소 線으로 이어지려는 찰나 또 다른 点이 발견되고 먼저 존재했던 다른 線과 맞닿아 새로운 線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우라질!). 부추기는 건 아니지만 혹 이런 식의 범죄를 기획하고 있다면 하지 않는 게 좋다. 머리가 아플 테니까. 내가 알기로 도리카이 · 미하라 콤비는 '점과 선 2탄' 격인 『시간의 습속(時間の習俗)』에서 재등장한다던데, 이 『점과 선』이 소세키의 '선생님의 유서'(나쓰메 소세키, 『마음』)의 형태인 것에 비해 또 얼마나 멋진 소설일까를 기대하게 한다.



덧) 일본 문예춘추사의 마쓰모토 세이초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판을 본떠, 2012년 한국어판 『점과 선』에도 삽화와 열차 운행표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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