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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철학하기 - 낯익은 세상을 낯설게 바꾸는 101가지 철학 체험
로제 폴 드르와 지음, 박언주 옮김 / 시공사 / 2012년 9월
평점 :
오줌을 누면서 물을 마셔본 적이 있는지……. 물어본 내가 잘못이다. 나도 (아직) 해보지 않았다. 오줌이 나올 때 물을 마시기 시작한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는 이 책도 인정하고 있다. 너무도 황당한 느낌일 거라는 걸. 나는 이걸 실행에 옮기지 않았지만 몇 초 만에 아주 기이한 현실과 조우하리라는 예상을 한다. 「당신의 몸은 안이 훤히 보이는 것 같고, 물이 안과 밖을 부드럽게 순환하는 것 같다. 우주의 흐름 같기도 하고, 전자동 세탁기 같기도 하다.」(p.57) 왜 이런 짓을 해야 한단 말인가. 저자의 말대로 하나의 의문에서 비롯하는 정신적 혼란을 인식하게 만들기 위해서? 한 가지만은 자명하다. 이 책에 나온 대로만 하면, A라고 인식했던 것과의 괴리감을 느낄 수 있다. 정말로 누구도 너무나 이상하고 너무나 그럴듯하지 않은 생각을 할 수는 없으며 그런 생각은 이런저런 철학자들이 이미 다 했나?(데카르트) 글쎄,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대체 누가 오줌을 싸대면서 물을 마신단 말이야!
철학에 대해 ㅡ 누구는 아무런 체계를 갖지 않은 채로 체계적인 정신이 되고자 노력하는 한 방식이라 했고, 누구는 우리가 아직 적절하고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탐구라 했으며, 또 누구는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 했고, 또 다른 누구는 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도 잘 모르겠다. 아니 전혀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철학은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거라고. 이런 얘기를 하자면 '이 나라의 지식인들과 철학자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가'에서부터 시작해서 '시국이 어쩌고저쩌고'까지 가므로 과감하게 버린다. 철학의 이미지는 어렵고 난해하다는 것이 지배적인데 이것은 편견에서 사실로 변했다. 현대(현재)를 보면 철학이 그렇게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니까. 하여간에 철학은 행동하는 거다. 행동해야 비로소 '느끼고 인식한다.'
보편적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야말로 철학은 때로 용이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개개인의 철학자들이 중요하고 우리 각자의 인식이 중요해진다. 새로운 시선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에 나온 것들 중에 나에게 가장 어려운 ㅡ 뭐 이것만 어렵겠냐마는 ㅡ 것은 '손목시계 벗어 던지기'다. 밖에 나갈 때 손목시계를 차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렇다고 3분에 한 번씩 시계를 들여다봐야 불안한 마음이 억제된다는 건 아니고, 그냥 뭔가 찜찜하다. 내가 원할 때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은 정말이지 갑갑한 노릇이다. 게다가 나는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시계는 보기조차 어렵다. LED의 점멸보다 바늘이 움직이는 쪽이 훨씬 수월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디지털시계를 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런 내가 만약 시계를 버리고 휑한 손목으로 외출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현기증이 날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긴장상태에 놓여있을지도 모르고. '숫자판과 시곗바늘이 행사하는 구속과 폭력'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 이 책의 주안점인데, 나는 이것만은 해보지 않을 작정이다. 오줌을 누면서 물을 마시는 것 정도는 한번쯤 시도해볼 수 있어도(이게 더 이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