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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셀러 - 소설 쓰는 여자와 소설 읽는 남자의 반짝이는 사랑고백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3
아리카와 히로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장렬했다, 소설을 쓰는 대가로 자신의 생명을 내주어야 하는 여자란. ……치사성뇌열화증후군. 사고(思考)하는 대신 수명을 잃게 되는 병이란다. 작가인 '그녀'의 머릿속에서 어느 날 퓽, 하고 나사가 날아가 버린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없이는 그녀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글을 쓴다. 훗날 그녀가 죽는다면 아마도 그 병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그런 병과 드잡이하면서. 간단한 스토리다. 하지만 이 Side A에 이어지는 Side B가 있기에 비로소 이 소설은 완전한 동체가 된다. 하나의 단편과 그 연작이 독자를 지켜낸다. 그런데 이야기(story)를 파는(seller) 것이 과연 생명과 맞바꾸는 대가로서 정당한 일이 될 수 있을까? 어쨌든 앞에서의 우울했던 감정이 이제는 좀 달라지겠지, 했는데 Side A가 끝나고 Side B로 넘어가는 그 시점부터 다시금 불안해진다. 시작부터 불길하다 ㅡ 「그렇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다.」 화자는 이 말에 동의하기 어렵고 슬픈 이유를 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다시 한번, 불행하게도 그녀의 머리에 망치질이 가해진다. 꼭 신이 팔짱을 낀 채 비웃으며 욕지거리를 하는 것만 같다. 가운데 손가락을 비죽 내밀고, 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까딱…….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반드시 거기서 사랑의 승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팔아서 역몽(逆夢)을 일으켜야 하니까.」 불행에 맞서 역몽을 기다리는 걸까, 아니면 이 자체가 '역몽 소설'인 걸까. 『스토리셀러』가 슬픈 이유는 자신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이야기를 잃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역몽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고 외려 역몽이 아니어서 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엄청난 추진력은 없지만 '재생해가는' 이야기 자체의 아우성이 담긴 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집단 트라우마에 따른 해석으로 무조건적인 수용을 요구하지 않는다. 역몽일지 아닐지는 ㅡ 이야기를 팔 것인지 아닌지, 이야기를 읽을 것인지 아닌지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