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아멘 아멘 - 지구가 혼자 돌던 날들의 기억
애비 셰어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이미 아는 물음인데도 다른 답을 취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외려 정답을 맞히는 것이 부적절해 보이는 건 왜일까. 심장은 깨져있고, 펼쳐진 침대 시트는 눅눅하고, 폐활량이 77퍼센트로 늘어나고, 684번 고속도로가 일어나지도 않을 두려움을 보여주더라도 ㅡ 끊임없이 날카로운 것들을 모으고 하루에 몇십 분씩 기도를 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월터 핫도그 가게가 무사하건 말건 ㅡ 흑마술 같은 급류를 피하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애비가 일종의 자해라고 생각하는 살을 꼬집거나 머리를 때리는 행위는 나 역시 겪어서 알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행동들을 본 적이 있다. 대학 시절 만나던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이야기 속 애비와 비슷한 상황이 오면(그렇게까지 심각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엄지손톱으로 집게손가락 언저리를 마구 찔러대곤 했다. 내가 그것을 하지 못하게 잡으면 그녀는 내 손을 으스러지도록 세게 쥐었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제이가 되지 못했다.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극지에 서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진실은 결코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으므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본질의 문제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도 그녀와 애비가 '인간의 망실(亡失)'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것이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님(원서 쪽을 검색해보니 거기에선 'G-d'로 표현한 것 같다)도 어찌할 수 없는 게 삶과 죽음이라면, 우리는 애비처럼 지고의 진리인 인간을 통찰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생활세계(lebenswelt, lifeworld)에서 뻗어간 메를로-퐁티의 아카이브가 그러하다. 「지각된 광경은 순수 존재를 갖지 않는다.」 그가 인간 개체를 '함몰'과 '주름'이라 비유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썩 괜찮은 이야기로 보인다. 결국 궁극적으로 가능성(으로서)의 자유의 여지를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애비의 강박증을 보면 심지어 읽는 사람까지도 거기에 시달릴만한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나는 정말이지 너무도 지긋지긋했다!). 삶의 무수한 문제들 중 내가 가장 큰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오늘은 또 누가 내 손에 죽어나갈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네, 아니오'라는 양자택일을 들먹이는 우스꽝스러운 일련의 사유가 하-님의 이름에 입맞춤할 수밖에 없는 귀결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애비와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지구가 혼자 돌던 날들의 기억'으로 남기거나 아니면 지구 밑에 가라앉아서 축을 따라 함께 순회하며 연극을 벌이는 또 하나의 양자택일과 투쟁해야 한다. 그러니 ㅡ 엄마의 말대로, 쉬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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