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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와 진실의 빛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누쿠이 도쿠로는 야마모토 슈고로(山本周五郞) ㅡ 과거 나오키 상을 거절한 유일한 작가 ㅡ 상을 수상한 것을 '운'이라고 했는데 어찌됐든 그건 겸손의 (빈)말이고, 내 관심사는 작가의 『통곡』을 뛰어넘는 작품이 과연 언제 나올까 하는 것이었으므로 온 신경의 초점이 거기에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통곡』 다시 쓰기'가 가능할 것인지 어떤지가 가장 궁금했으나, 일단은 거기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일단 소설 속에서 드러난 '손가락 수집가'가 피해자의 집게손가락을 취하는 이유나 그 이전에 살인을 하는 이유 자체의 연결고리는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연쇄 살인마, 정보 유출, 수직적 경찰 조직이라는 케이스가 이미 소설 속에서의 '낡은 것'이라면, 여기에 인터넷이라는 '현대의 것'을 적절히 조합한 발상이 이 작품의 묘미라 하겠다. 인터넷과 휴대 전화를 통한 살인 현장 중계는 꽤나 당혹스럽다. 이것이 자기현시욕에서 기인한 것인지 필요에 의한 행동이었는지는 넘어가고, 역시 서술상의 흥미로운 점이라면 빠른 시점의 변화다. 하나의 군상극을 연상케 하는 이 기술은 단지 재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배경을 설명함으로써 앞서 언급한 '낡은 것'을 통해 '현대의 것'으로의 연착륙을 부각시키고 있다. '현대의 것'이라면 단연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통신망일 텐데, 콘센트에 꽂힌 지저분한 선들처럼 이야기가 진행됨과 동시에, 마찬가지로 익명의 세계라는 화두를 현실로 끌어들여와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잇는 하나의 접점에 무섭고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피력한다. 또 희한하게도 소설 속 인물(형사)들은 하나같이 중대한 문제를 떠안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가족'이다. 1차적 집단으로서의 전인적 상호관계가 결여된 가족, 밀착성과 연대성이 없고 역할수행이 이루어지지 않는 가족 간의 긴장과 의사소통의 부재. 이 문제점은 소설 속 범인인 '손가락 수집가'의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이들이 고민하는 것은 모두 가족과 가정이며, 그것보다 도드라져 보이는 인터넷이나 휴대 전화 쪽이 외려 전자를 뒷받침하고 끌어주는 조연의 역할을 하고 있다. 『후회와 진실의 빛』은 외관상 '경찰 소설'이다. 수사관들의 반목과 조직 내부의 움직임에 따라 소설의 발단과 결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설정된 것임에 불과하며 ㅡ 이미 시작부터 추측을 엇나가게 하는 기교일 뿐이다 ㅡ 그 뒤에는 엄연히 불안정한 사회적 배경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제로섬으로 보이는 어떤 뺄셈의 가치가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군상의 문드러진 폐부를 물밑에 감추어 놓음으로써 '후회와 진실'의 빛깔, 과연 그것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거다.
덧) 형사 하나를 이렇게까지 몰락시킬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나마 끝까지 수사에 관여한다는 점(링컨 라임처럼?)과 왠지 '손가락 수집가'의 마음이 투영된 것 같아 조금 안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