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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 - 궁궐에 핀 비밀의 꽃, 개정증보판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데비 존스의 강제된 심장처럼 궁녀들은 스스로를 다잡아야 했다. 자신의 감정은 태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우리가 보는 궁녀는 흔히 후궁이 되기 위해 왕을 유혹하는 형태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흥미 위주에 불과하다. 실제로 왕은 자신의 관할을 벗어나는 궁녀에 대해서는 그녀들의 선발권조차 없었다고 한다. 당연히 대비나 세자궁의 궁녀 등 자신의 관할이 아닌 궁녀는 왕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어쨌든 궁녀라는 이름으로 살아간 사람들에 대해 내가 가장 궁금하게 여겼던 것은, 대체 궁녀는 어떤 일을 하는가, 였다. 우선 조선 시대 중앙 정부의 문반과 무반을 합한 전체 정원은 5,000명이 안 되었던 것에 비해 조선 후기 궁녀의 수는 500-6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즉, 중앙 정부 공무원의 1할 이상을 차지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 그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아침저녁 문안 인사, 자수, 바느질, 서적 관장, 글 낭독, 필사, 왕 수행, 수라 및 음식물 거행, 세탁, 등촉 담당, 청소……. 그야말로 궁녀라 함은 가사 노동을 위한 존재가 아닌가. 이래서는 왕의 잠자리 상대를 하기는커녕 평생 자기 업무에 종사하는 전문가로서의 면모가 보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여기서 자연스레 의문이 이어진다. 그녀들의 보수에 관해서다. 이 의문은 바로 해결되었는데, 조선 시대 궁녀들은 월급을 받았단다. 궁녀들이 받는 보수에는 의전, 선반, 삭료 3가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의전은 1년에 두 차례 지급하는 옷값이고 선반은 식사 제공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까 의전과 선반은 옷값과 밥값이므로 지금의 복리후생비 정도가 될까. 그리고 삭료라는 것이 바로 봉급 ㅡ 월급이다. 다시 말해 궁녀들은 월급 외에 옷값과 식사를 제공받았던 것이다. 그럼 월급은? 월급은 금전이 아닌 현물로 제공되었는데 쌀, 콩, 북어, 이렇게 3가지였다고 한다. 또한 직급과 근무 연수에 따라 차등 지급이란 개념이 있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 체계적인 시스템이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참 고단한 일을 하면서도 그녀들은 ㅡ 특히 아주 어린 나이에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궁녀로 선발된 경우 ㅡ 성(性)이 금지된 생활을 해야 했다는 점이다. 잠시 동안이 아니라 평생 말이다. 『속대전』에 나온 다음의 법조문을 보면 그것이 강제적으로 금지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궁녀가 밖의 사람과 간통하면 남자와 여자는 모두 즉시 참수한다. 임신한 자는 출산을 기다렸다가 형을 집행한다. 출산 이후 100일을 기다렸다가 형을 집행하는 예를 따르지 않고 즉시 집행한다.
물론 현직 궁녀의 경우에 비해 출궁한 궁녀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했다고는 하나, 이것은 사랑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되니 살벌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간통'이란 단어는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 쓰는 말이 아닌가? 책을 더 읽어보니, 상궁과 나인 등 정식 궁녀는 기본적으로 왕이나 세자 등 '주인의 여자'로 간주되었단다. 참으로 인간적인 성욕을 초월해서, 한편으로는 그런 욕망을 삭이면서 처절하게 살아갔다고도 볼 수 있겠다……. '궁녀'란 사람들에 대해 많은 궁금한 것들이 있겠지만 그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은 그녀들이 하는 일과 보수에 관해서였다. 또 실제로 나는 거의 그러한 점에 대해서만 썼다. 『궁녀』에는 궁녀의 자격, 궁녀의 선발 과정과 조직구조, 그네들의 수절(성과 동성애도 포함된다)을 비롯해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으니 영화 한 편을 보는 기분으로 이 책을 집어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