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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서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2년 5월
평점 :

일단 패턴이 그랬고, 프레임 자체도 어딘지 모르게 단조로운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 범타인지 잘 맞은 안타인지 좀체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런데 두 번째 작품 「이십 년 뒤의 숙제」를 읽으며 생각했다. 답장에 대한 답장이란 형태도 중요하지만 일방적 독백에서 발견되는 '시간과 공간의 단절'과 '마음의 기대'란 측면에서 보면 어떨는지, 하고. 『왕복서간』과의 접점은 없지만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면 레드(모건 프리먼)의 「지질학은 압력과 시간의 연구」라는 독백이 흐른다. 앞서 말했듯 패턴은 빤하지만 거기에서 찾을 수 있는 것 역시 '시간'이다. 사건의 시발과 한참 후의 소회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답장을 받고 재차 편지를 쓸 때까지 생각을 추슬러 펜을 잡는 시간의 공백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내가 보기에 시간의 흐름이란 질적인 변화를 동반한다. 또한 타자가 없으면 미래란 불가능하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내 삶은 타자의 시선 혹은 타자로 인해 과거와 미래가 다르게 보일 것이라고(전혀 달라질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ㅡ 타자와 관계하지 않으면 나의 내일은 오늘의 반복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과연 소설 속에서의 편지라는 것으로 내 생각을 오해되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까? 메를로 퐁티의 논의처럼 「말하는 사람의 말은 생각 자체이므로, 말하는 동안에(편지를 쓰는 동안에)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우리가 남과의 의사소통으로 인해 절망에 노출되기 쉽다고 해도 침묵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소설에서 인물들은 그들이 말할 수 있는 것을 넘어 그렇지 않은 것까지 써내려가고 있다. 여기서 재등장하는 것이 '일방적 독백'이다. 답장이라는 것을 보면 타자와의 의사소통은 쌍방의 모양새를 띠지만, 편지를 쓰는 동안에는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그 편지를 보낸 상대로부터 답장을 받을 때까지 시간의 단절이 발생한다(물론 '과거의 일'과 '현재'라는 점에서도 마찬가지). 상대방과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야말로) 그 시간의 단절이란 빈 공간에서 더욱 더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는지.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말이다 ㅡ 수록작 「십 년 뒤의 졸업문집」에서는 교묘한 위장도 가능했으니.
덧)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로 수록된 「이십 년 뒤의 숙제」가 가장 흥미로웠다. 여기에는 소담스런 반전까지 준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