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뮤니케이션북스 지만지 시리즈의 보급판(문고본이라 하긴 힘들지만)이나 범우문고,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일신추리문고, 과거 열린책들의 Mr. Know 시리즈, 그리고 북스피어의 에스노벨(에스프레소 노벨라) 등등, 이 정도밖에 문고본 혹은 페이퍼백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알고 있는 문고본 형식을 띤 책들은 이게 다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한국 출판시장에 나온 문고본은 희귀할 정도다. 국내 출판시장의 여러 가지 특성도 있겠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싶다. 물론 수요도 썩 많아 보이지는 않으나 공급 역시 원활치 않은 게 사실이다. 반대로, 출판사의 경영상의 이유도 있겠으나 독자의 인식 역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책의 본질은 읽는 데에 있는 것이지 소장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니 당연히 하드커버는 소장가치가 높다, 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진정 책을 아낄 마음이라면 장정에는 구애되지 않아야 하는 게 맞다. 물론 외형에서 오는 소장의 가치(장기 보관)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모든 경우에서 질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ㅡ 당연히 문고본이라 해서 다음날 바로 책 귀퉁이가 찢겨져버린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값싼 종이를 사용한다거나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다는 이유로 문고본이 싫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당최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문고본이란 '태생적으로 그런 것이다.' 이를테면 가수들의 정규앨범과 미니앨범의 차이쯤 되려나. 당연히 여기에는 기획부재로 인한 무분별한 작품 선정이나 고전의 재탕은 없어야 한다. 참신한 기획과 정가제도(유통구조 개선도 함께) 그리고 독자들의 인식제고가 동반된다면 문고본의 활성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정말 그럴까?) ㅡ 덧붙여 잠재적 수요를 깨우는 기획 역시 필요하다. 심지어 문고본으로 선집이 아니라 전집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예컨대 한 작가의 저작을 출간하기로 결정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비록 졸작일지라도 모두 다 출간하는 기획 말이다(열린책들 홍지웅 대표의 말). 그런데 그렇게 해서 그 작가의 작품이 '뜨면' 다른 출판사에서 저작권 계약을 하고 출간하기 시작할 수도 있다는 게 최대의 문제로 남는다. 전집을 내고자 하는 출판사에게 선의로 저작권을 양보하는 일도 있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모든 경우에 해당될 수는 없다. 어쨌든, 에스노벨 시리즈 001 『위대한 탐정 소설』(북스피어, 2011)의 발행인의 말에 적힌 것처럼 ①장르 문학 작가가 썼다면 픽션도 좋고 논픽션도 좋다, ②분량은 길지만 않으면 단편도 좋고 중편도 좋다, ③어떤 책에는 논픽션 하나만 실릴 수도 있고 어떤 책에는 단편 두 개만 실릴 수도 있고…… 와 같이 자유롭게 출간하다보면 독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분명히 반응하게 되어있다. 왜? 좋은 기획이 있으면 구입하는 독자가 있으므로. 그럼 그게 꼬리를 물고 자꾸만 문고본이 생산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문고본(또는 페이퍼백)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그리고 앞서 다소 희망적으로 휘갈긴 게 사실이지만…… 한국 출판시장에서의 문고본이 성공하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한다. 그럼에도 얌체같은 생각에, 누군가는 꼭 문고본을 출간해줬으면 한다. 진부한 말이지만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어도 ㅡ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ㅡ 좋은(재미있는) 책은 반드시 독자가 알아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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