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를 읽는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나. 모교의 Y 교수(아니, L 교수였나?)는 '꼬실라이제이션'을 위한 방편이라고 했다. 원서 한 두 권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 여학생들로부터 선망(?)의 시선을 받을 수 있다나 뭐라나. 적어도 나에겐 그런 허망함 따윈 없었고 자연스레 도일(渡日)하면서 많이 읽게 된 것으로 기억된다. 당연하게도, 일본이니까 일본어로 된 책을 볼 수밖에 없었던 거다……. 파트타임 월급의 대부분은 책과 음반을 구입하는 것에 써버렸었다. 유메노 규사쿠의 『도구라 마구라』와 그의 단편집, 사와키 도고의 『천국의 문』, 마쓰오카 게이스케의 시리즈들, 무라카미 류의 단편집, 우타노 쇼고의 『시체를 사는 남자』 기타 등등. 이 서점, 저 서점, 역 안의 가판대를 가리지 않고 책이 있는 곳이라면 발을 멈췄다. 귀국할 때 EMS 보내는 것도 일이었지만. ……원서를 읽는다는 것은 어렵다. 아무리 전공이라지만 한국어가 아니면 반드시 힘든 부분이 생긴다. 번역이라도 해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더 그랬을 테지. 어쨌든 의미만 알고 가면 됐으니 '죽을 정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역시 세로쓰기는 익숙하지가 않다. 아직까지도 일본문학을 많이 읽고는 있지만 지금은 주로 번역본을 찾는다. 요컨대 귀찮은 거다. 그런데 막상 읽다 보면 이따금씩 정말 괴상한 번역들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심지어 원서에는 이러저러하게 써졌을 거란 추측이 가능할 정도로. '그런 표현이었다면 이렇게 옮겨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번역본이긴 하지만 일본산(産) 책, 특히 문학이라면 역자를 소개한 페이지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그러다 보면 무슨 공학을 전공했거나 하는 다소 엉뚱한 사람들도 있다. 요즘은 일본어 한 두 마디씩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런 건가, 하다가도 그래도 이건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번역이란 건 ㅡ 누군가의 부업이 아니라 적어도 전공자가 뛰어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전문화가 필요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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