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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모형의 밤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여기, 나카지마 라모식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 세이초(松本淸張)나 하루키(村上春樹)의 글을 읽으면 ‘아, 이건 세이초다’, ‘음, 이건 하루키군’ 하는 식으로, 라모의 글을 마주하면 역시 의외로 ‘오호 역시 라모인가’ 하고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다(사실 이런 작풍은 그의 글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어쨌건 라모의『인체 모형의 밤』은 호러를 얘기한다기보다는 인간을 얘기하기 위해 그저 호러라는 형식을 빌려왔다고나 할까, 뭐 그런 기분이다. 개인적으로는『오늘 밤 모든 바에서』나『가다라의 돼지』를 통해 어느 정도 내성(?)을 기른 다음 이 단편집을 읽는 게 낫지 않을까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인즉슨 장편과 단편은 그 맛도 다르거니와 특히 이 책에는 기이하고도 무서운(그리고 이따금 웃기고 재미있는), 그러면서도 애초 논리건 뭐건 개의치 않는 이야기들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글쎄, 각 작품의 끝에 가서는 ‘뭐야 이건, 대체 왜 결말이 이렇게 돼버린 거지’ 하고 애면글면 머리를 긁어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재미있으니 됐잖아’ 식으로 후루룩 읽어버리면 된다. 그럼에도 때로 약간 찜찜하고 불쾌하고 씁쓸하고 애잔한 구석이 느껴지는 건, 별 것 아닌 이야기라도 인간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려나 ― 추리소설로 치면 소위 ‘사회파’ 쯤이 될까. 어떤 이야기는 엄청 무시무시하고, 어떤 이야기는 황당하기 그지없고, 어떤 이야기에서는 웃음보가 터지고, 어떤 이야기는 끔찍하다 못해서, 집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데도 괜스레 주위를 한번 둘러본다든지 하게 된다.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감상은 하나같이 ‘기발하고 아름답다’는 건데, 이 감상 또한 기이한 점이라면 기이하달밖에.
덧) 나는 수록작품 중「세르피네의 피」를 필두로「굶주린 귀」,「건각(健脚) - 국도 43호선의 수수께끼」,「무릎」,「피라미드의 배꼽」,「Eight Arms To Hold You」등에 특히 애착이 가는데(사실 거의 다) 그 중「굶주린 귀」는 압권이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일상에 보다 가까워서일지도. 벽에 유리컵을 대고 컵 바닥에 귀를 누른 채 옆집의 소리를 듣는다, 라는 건 왠지 무섭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