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 펭귄클래식 109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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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타이틀 자체가 ‘사물들’이다. 사물이라면 실질적인 것일 텐데, 그럼 대체 뭐가 실질적인 거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Das Parfum)』에 나오는 ‘길에서는 똥 냄새가, 뒷마당에서는 지린내가, 계단에서는 나무 썩는 냄새와 쥐똥 냄새가 (...) 부엌에서는 상한 양배추와 양고기 냄새가, 환기가 안 된 거실에서는 곰팡내가, 침실에는 땀에 절은 시트와 눅눅해진 이불 냄새가, 거리에는 굴뚝에서 퍼져 나온 유황 냄새와 무두질 작업장의 부식용 양잿물 냄새가, 도살장에서는 흘러나온 피 냄새가...’와 같은 것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체가 있다면 손으로 만질 수 있어야 하는데 냄새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페렉이 말하는 그 ‘사물들’,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불길한 재료와도 같은, 보잘것없고 시시한 보물들처럼, 어지러울 정도로 평범한, 때로는 황홀한 향기를 풍기는,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박제된 것처럼 움직임이 없는 날카롭고 매서운’ 형이하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사전적 의미의 사물들만이 남는다. 

 

『사물들』의 1장을 지배하는 어투가 그저 추측을 하는 것인지 응당 그렇게 되고야 만다는 단정을 하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수십 수백 가지의 사물들을 비추며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앵글로 인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니. 그럼 이것들은 모두 우리가, 그들이 숨도 쉬지 않고 창조해낸 ‘나의 사물들이 될 목록’이 아닐까. 자, 그럼 보자.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곳곳에 나타나는 추측형 혹은 미래형의 시제다. 아직 나에게 오지 않은 것, 아직은 내가 만지고 소유할 수 없는 것. 이것은 아직 오지도 않은 두려움에 두려워하는 형국이 된다. 삶은 팩시밀리로 재단되고 세련된 고급 실크로 꿰매지며 그에 따른 사물들은 애너그램처럼 순서만 바뀌어 같은 모습으로 출현한다. 이렇게 그들은(우리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 사물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being human’이 아니라 ‘being thing’으로의 전환이 일어나는 거다 ― 페렉은 이런 식으로 인간의 이름보다도 사물의 이름을 몇 곱절이나 많이 드러내 보인다(실제로 제롬과 실비라는 이름이 과연 몇 번이나 등장하는지를 세어 보라). 

 

그럼으로써 또 한 가지의 명제, 예컨대 사물에도 카스트가 존재한다는 것, 수많은 사물들 중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 또한 우리는 인식할 수 있다. 페렉이 그 많던 사물의 나열을 잠시 끝내고 제롬과 실비의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찰나 터져 나온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질문거리였다’는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사물들이었다’로 대체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이 ― 실체라고 부를 수 있는 ― 사물들이, 그들의 눈앞에는 실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들을 소유할 수 없다. 존재하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유령의 초상화를 그리는 게 가능한 일일까? 결국 『사물들』은 human과 thing의 대치상황을 만들어놓고, human의 거죽을 모두 벗겨 에코르셰가 될 때까지 thing을 활용한다. 즉 thing은 주체가 되고 human은 객체가 되는 거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의 그들의 미래, 혹여 경쾌하고 산뜻하게 보일지라도 역시 재차 ‘사물들’로 돌아가고 마는 장면들에서, 그들은 페렉이 구현한 포식자에게 소비되고 만다. 마치 영겁회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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