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폴리앵에 지다 매그레 시리즈 3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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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폴리앵에 지다Le Pendu de Saint-Pholien』. 200페이지 남짓한, 그래서 순식간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끝나고 마는, <매그레 컬렉션>의 세 번째 작품. 그러나 도입부에서, 앞선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만은 알아챌 수 있다. 순전히 우연에서 발단한 ㅡ 물론 그 우연이 수상함이라는 것과 매듭지어져 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그 우연이라는 게, 곳곳에서 드러나기도 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표출되기도 하지만, 그 우연이, 내 이웃, 혹은 내 속에서 이상한 기운이 꿈틀댈 때 솟는, 그런 감정이기 때문에 더 이상 우연이 아니게 된다. 결코 쓸 일이 없을 것 같던 칼날은 비틀비틀, 절대 아물 수 없는 상처는 가닐가닐. 그래서, 누군가는 죽고, 죽인 자는 발 뻗고 잠을 못 잔다. 순전히 무겁게 짓누르는 분위기와, 시종일관 쫓고 쫓기는 사람들로 인해, 생폴리앵에서 지고 만 자의 정체가 드러난다. 무의식적으로 물에 떠밀고, 무의식적으로 사람에게 달려들고, 그렇게 과거가 펼쳐진다. 이 소설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일이었다.>로 시작하듯,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악행을 저지른다, 자신도 모르게.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우리가 어떤 일이 악행인 줄 알면서 자발적으로 그 일을 저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만일 악행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무지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그런데 그 무지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도 용납될 수 있을까?

 

 


사람 죽일 때요… 제정신이 아니겠죠.
그러니까… 죽이겠죠?
죽이는 순간에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짧은 순간에 제정신을 차릴 순 없겠죠……?
그러면 정말 그건 순간의 죄일 테죠?

ㅡ 장진, 『장진 희곡집』, 열음사, 2008
 

 



「열린책들에서는 한 작가나 사상가의 저작을 출간하기로 결정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 주는 기획, 설혹 그것이 그 작가의 졸작이나 숨기고 싶은 작품일지라도 모두 다 보여 주는 기획을 한다.」 홍지웅 사장이 쓴 일기의 한 구절이다(『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열린책들, 2009). 물론, 조르주 심농도 이렇게 선언한 바 있다. 「나는 내 작품의 대부분, 예를 들어 매그레 컬렉션 전체를 출간한다는 조건으로만 번역권을 준다.」(『Buzzbook vol.2 조르주 심농』, 열린책들, 2011) ……그래도 그렇지 75권이다. 하지만 작품이 거듭될수록, 금단이랄까, 중독이랄까, 뭐 이런 느낌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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