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공복에 감촉이 쓴 담배를 물고 그 연기에 얼굴을 파묻은 채 읽는 씁쓸한 맛. 포지티브하려야 할 수 없는 정신이 겪는 금속피로. 인간이 인간을 죽인다. 하긴 인간만이 인간을 죽이는 법이다. 인생에서, 정당한 사유로 받는 레드카드가 아닌 이상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칙패로 어깨를 늘어뜨리고 한쪽 입꼬리에 비웃음을 틔운 자기 자신을 거울로 보고서 <괴물>이라 말할 수 없다면 그는 <인간으로서 실격>이다. 감당하기에 벅찬 울분과 허무함을 떠안은 채 감정의 울타리를 부여잡고 치를 떨어도 해는 쨍쨍하다. 세상은 인간의 복수형이라 했던가? 인간은 모두 거울 뒤편에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모두 사기꾼이다. 한 개가 끝나면 또 한 개. 이것이 지나면 또 다른 저것이 기다린다. 내가 물러나면 또 다른 나인 너, 가 다시 나타난다. 뫼비우스의 띠. 구겨진 종잇조각의 이기주의다. 카드게임에서 패배한 자에게 가해지는 어쩔 수 없는 살점의 압류押留. 그렇다고 해서 원래의 발라내진 살을 되찾을 수는 없다. 가진 것을 다 잃기 전까진 모르는 거다. 장난감같이 귀여운 지우개들이, 깜찍하게도, 주인공 요조에게서 그 자신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렸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이 흐른다. 시간도 흐르고 사람 또한 흐른다. 총에 맞아 죽으나 치통으로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 아닌가. 해는 뜨지만 달은 기울지 않던가. 제 몸을 악덕 속으로 밀어넣고 방관자의 입장이 되어서 바라보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인간으로서 실격이라는 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일본의 문학평론가 오쿠노 다케오奧野健男의 해설에서처럼 『인간실격』이 갖고 있는 (문학상의) 약점이라면 얼마든지 지적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에고이즘, 위선, 악마성을 온전히 품고 있다는 점에서는 (작가의 인간적인 면은 들추지 않고) 실격이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