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리스트 - 문학과 예술 속의 목록사: 호메로스에서 앤디 워홀까지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3
움베르토 에코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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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샘플 교정지를 본 게 지난 8월이었다. 그 때만 해도 『궁극의 리스트』가 이렇게 <징그러운> 책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맙소사!). 200점에 가까운 삽화와, 역시나 징그러운 뱀과 같은 인용 텍스트(인용문을 읽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응당 완벽하게 읽을 수 없으리라 확신하지만, 극악무도한 발췌로 인해, 아직 오지 않은 두려움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저자가 밝힌, ㅡ 이 책은 <기타 등등>이라는 말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서문) ㅡ 시작부터 엄습하는 <궁극의 두려움.> ㅡ <기타 등등>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축복인 셈이다. 바흐의 <무한히 상승하는 카논>이나 에셔의 판화 작품들을 생각해 보라.

『궁극의 리스트』는 리스트, 즉 <목록의 의미>를 탐구한다. 목록의 의미란 건 어쩌면 욕망의 산물일 거다. 집을 나서기 전 장바구니에 넣을 것을 미리 적는 것, 읽어야 할 책 제목들을 소위 위시 리스트로 만드는 것, 그리고 여기에 다 열거할 수 없는 <기타 등등>의 목록을 작성하는 행위와 그 목록들! 그리고 이것은 ㅡ 전쟁과도 같고, 악마조차 굴복시킬 수 있는 이 책은 ㅡ 중심도 없고 가장자리도 없으며, 그래서 입구와 출구도 없(어 보이)는 리좀rhizome형 프레임을 본문에서 언급하고, 또 책 자체도 이 형태를 취하는 동시에 독자의 인내심의 역치 값을 자극한다. 왜냐하면 언뜻 보기에도 세상에 무한히 존재하는 목록들을 텍스트 안에 오롯이 목록들의 목록으로서 활자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역시 서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목록을 조사하는 것은 어떻게든 우리가 이 책에 포함할 것을 추려 내는 작업이었다기보다는 제외해야 할 모든 것을 추리는> 작업인 셈이니까 말이다. 유한한 글자들로 무한의 조합을 만드는 것은 시작이 <유한>에서 출발하기에 신의 영역에 가까이 다가가려 한 행위라 한다면, 이 책의 집필 ㅡ 목록들의 목록을 만드는 것 ㅡ 은 애초에 그 발단이 <무한>에 있기 때문에 신의 능력을 거부하고 그것을 뛰어넘으려 한 게 아닐까. 그래서 더욱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귀결되고 말이다 ㅡ 그렇다고는 해도 로스앤젤레스를 <기타 등등>의 도시이며 <목록 도시>라 설명한 부분은 정말 멋지지 않은가?

저자는 수많은 그림과 글 등(역시 기타 등등)에서 무한을 암시하는 목록들을 뽑아낸다 ㅡ 흥미로운 사실은, 고대 중국에 <목록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했다는 것이며, <list>란 단어가 <마음에 들다>, <바라다>란 뜻도 지니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인간의 (무언가를 범주화시키려는) 욕망이 복잡해지는 사회를 만남으로써 거침없이 똬리를 트는, 그 목록(의 작성)들의 의미를 역설한다. 물론 ㅡ 목록의 텍스트를 얼마나 압축하고 걸러냈는가 하면, 고작(!) 400여 쪽에 불과한 끝맺음을 보면 알 수 있다 ㅡ 계속해서 <무한>이라는 단어를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이 <유한한> 한 권의 책이라는 형태로 온전히 표현할 수는 없다. 무한한 것을 유한성에 입각해 집어넣은, 무한성을 띠는 유한한 이 책을, 다시 무한할 수밖에 없는 감상과 상념을 유한한 글로 쓰려 하는 시도 역시 <기타 등등> ㅡ 여기서의 <기타 등등>은 다소간의 의미를 함축한다 ㅡ 으로 끝나겠지만. 왜 우리는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그것에 매달리고 의미를 부여해 왔는가 하면, 질서를 추구하는 욕구와 대상의 이해라는 큰 개념으로 (일단은)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목록들에는 제각각 의미가 있을 터인데, 그 <목록의 의미>를 알아보자면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지 않을까? 어쩌면, 그래서 이 『궁극의 리스트』는 (어쩔 수 없이) 불가능한 것을 추적하는 어트리뷰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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