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허수아비가 춤을 춘다. 불어치는 바람에 맞춰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허수아비는 누가 옷을 입혀주지 않고 말뚝을 박아주지 않으면 아무짝에 필요가 없다. 옆의 누군가가 절망을 섞어 부르는 노래에도 신경쓰지 않는다. 허수아비니까. 오늘 아침, 신문에서 <탐욕에 눈먼 권력에 국민은 절망합니다>란 헤드라인을 달고 이 『허수아비춤』의 출간 소식이 기사화된 것을 보았다. 내가 보기에 기득권은 불법과 탈법을 일삼고 바깥 소리에는 외면하고 있지만, 국민도 그들을 외면한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허수아비다.

책을 읽다가 <백성은 바다요, 권세는 그 위에 뜬 일엽편주一葉片舟다>라는 문장을 발견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구절인 것 같아 생각을 거슬러보니, 그래 이거였다. 저 옛날 맹자의 <백성이 귀중하고 군주는 가볍다>, 순자의 <군주는 배요, 뭇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실을 수도 있고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란 말이었다. 바로 중민重民사상이다. 이건 백성의 의지와 원망을 반영한 것이다. 다시 『허수아비춤』으로 돌아가면, 불법 비자금을 조성하여 로비를 하고 그룹 후계자의 경영권 및 재산권 상속을 추진하는 과정이 등장인물들을 통해 펼쳐진다. 정말 <세금 내라는 것 다 내고는 사업 못해 먹는다>란 말이 맞는 걸까. 소시민인 내 눈으로 보건대, 글쎄.

어릴 적 <훌륭한> 사람 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여기서 조금 눈目이 트인 사람이라면,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하겠지. 그런데 한발짝 더 나가면,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게 나을 거다. 사는 평생 타인에게 폐 끼치지 않는 사람은 없기에. 이건 거꾸로 봐도(당하는) 마찬가지다. 그 <폐弊>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지. 『허수아비춤』에서는 어마어마한 로비 자금을 뿌리는 기업, 그 기업을 까는(!) 기사를 실어 광고 압박을 당하는 신문, 상명하복과 검사동일체 원칙으로 표현되는 검사들, 돈을 받고 거짓 증언을 하는 노조 간부, 공모에 가담했지만 회장이 내린 스톡옵션이 적어 다른 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간부 등이 등장한다. 매일 저녁 아홉시 땡 하면 으레 들리는 소리. 그런데 그 뉴스보다는, 상류 사회의 치마 속을 한층 더 불편하게 까발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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