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사고방식
노먼 빈센트 필 지음, 이갑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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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법학, 역사, 동양고전에 관심이 있어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조금씩 공부해왔는데, 인문학이 인격수양에 많은 도움이 되고, 삶의 지혜도 가르쳐 주지만 선뜻 마음을 정하고 공부하기가 쉬운 학문은 아닌 것 같다. 좀 부드럽게 글을 써야지 하며 생각은 하는데, 늘 딱딱한 글이 되고 만다. 법률조문은 정교하기 이를데 없고 역사나 고전도  마니아가 아니고선 딱딱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부드럽게 풀기 위해 가끔 자기계발서나 문학작품을 읽게 되는데, 부정적인 소식이 난무하는 시대에 마음의 지침서로 삼을 수 있는 자기계발서 몇 권은 꼭 필요할 것 같다. 나는 많은 계발서 중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노먼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을 애용한다. 대학 다닐 때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용이 좋아서 종종 펼쳐본다. 
 
기독교적 성향이 강한 책이라 종교가 다른 사람들은 꺼려할 수 있겠지만 인류 보편적인 명언을 다루는 차원에서 삶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근심, 걱정, 좌절, 불행, 질병이 닥쳤을 때 마음을 컨트롤 할 수 있게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기서 벗어나는 방법들을 알려주니 정신적으로 참 유익했다. 시중에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마음의 위로를 주는 심리학 서적이 난무하지만 역시 독자들로부터 오랜 사랑을 받은 그 분야의 고전을 따라잡을 수는 없는 것 같다. 카네기 행복론이나 인간관계론도 좋고, 지그지글라가 쓴 자기계발서도 그런 분야의 책이다.
 
'적극적 사고방식' 제목부터  눈에 쏙 들어왔는데 내용도 정신적인 힘을 북돋우는 그런 구절이 많다. 예를 들면, "오늘 하루 멋진 날이 펼쳐질 것이다. 나는 오늘 일어나는 모든 일을 훌륭하게 처리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몸도, 마음도, 감정도 모두 양호한 상태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멋진 것이다. 나는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들, 현재의 모든 일들, 그리고 미래에 생겨날 모든 일들에 감사한다." 이런 구절을 반복하여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마음의 처방전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행복을 불러들이는 구절들이 가득하다. 책 속 어떤 부분을 펼쳐서 읽더라도 좋은 내용이 많아서 밑줄을 그어 놓고  그 부분들을 찾아 읽고 되뇌인다. 한참을 따라읽고 반복하여 쓰고 소리내어 다짐을 하다보면 마음에 잔잔한 긍적적 반향이 일면서 번뇌가 사라지고 자신감이 조금씩 생겨난다.
 
근심, 걱정은 잠시 없앴다고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떤 때에는 가만히 있으면 사라질 걱정들이 애써 붙들고 있기 때문에 나를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모든 생각은 잠시 머무르다 사라지는 것이다. 옛 사람들이 하루에 사람들은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는데 이렇듯 정신은 끊임없이 여러 생각들로 반복된다. 
 
우리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일들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의식적으로도 가질 필요가 있다. 온통 세상이 부정적인 뉴스와 사건들로 정신을 혼탁하게 하는 요즘, 자신의 온전한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주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생각의 늪에 빠져 버리면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 모든 일에 너무 집착을 하지 말고 다 지나가는 일이라고 놓아주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부정적인 생각이 내 머리에서 떠오를 때 그것을 떨칠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을 외면서 항상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사람에 따라 인생을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으로 살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천양지차이고, 일의 성과도 크나큰 차이를 보인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싶다면 반드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먼저 생을 살다간 선조들이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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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오경 - 인간의 도를 논하다
공자 지음, 김동휘 옮김 / 신원문화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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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공자는 유학(儒學)의 창시자로서 그의 사상은 평등하게 다스리는 것을 근본으로 하고 ()’을 핵심으로 하였다. 그는 천하를 다스리는 도리를 말할 때 고상한 품성으로 나라를 다스리면 마치 북두성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움직이지 않아도 뭇별들이 그를 에워싸고 도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비유하였다.

 

제경공(齊景公)이 공자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를 묻자 공자는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이처럼 제각기 도리를 다하고 제 자리를 지키면 된다.”고 대꾸하였다. 그러자 제경공이 그 말씀이 옳습니다. 군주가 군주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않고, 아들이 아들답지 않다면 나라에 양식이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어디에 제가 먹을 것이 있겠습니까?”하고 수긍하였다.

    

노나라의 대부인 계강자(季康子)가 정사를 다스리는 도리를 묻자 공자는 소위 다스릴 ()‘이란 바를 ()‘과 같은지라 정도(正道:바른 길)를 가야 한다. 당신이 먼저 정도를 가면서 남들의 본보기가 된다면 그 누가 감히 정도를 가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하고 대꾸하였다. 계강자가 또 정도를 가지 않는 자들을 죽이면서 모두 정도를 가게 하면 어떻겠는가?”하고 물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바로 당신인데 왜 다른 사람을 죽이겠는가? 당신이 선을 행하면 백성이 저절로 당신을 따라 선해질 것이다. 윗사람들의 품성은 바람과 같고 아래 사람들의 품성은 풀과 같아 바람이 풀 위를 스쳐 지나가면 풀은 그 바람에 따라 넘어가기 마련이다.”라고 답하였다.

   

계강자는 나라에 도적이 많아 근심하면서 공자에게 청문하자 공자는 만약 당신이 청렴하여 탐욕을 버리면 도적들도 고무되어 부끄러운 줄 알게 되고 더는 도적질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고 대꾸하였다. 그때 계씨 가문은 노나라의 권세가였는데 계강자는 더구나 직계를 뛰어넘어 계승권을 탈취하였기에 공자의 답변에는 계강자에 대한 풍자의 의미가 다분히 담겨 있다.

   

섭공(葉公: ‘잎 엽자가 지명이나 인명으로 쓰일 때는 으로 읽음)이 정사를 다스릴 문제를 묻자 공자는 가까이에서 다스림을 받는 자들이 기뻐서 순종하고, 먼 곳에 있는 자들이 귀의하여 따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자공이 정사를 다스리는 도리를 묻자 공자가 양식을 저장하고, 무기를 간수하며, 백성들에게 신심을 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자공이 이어 부득이한 경우에 그중의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할까요?”하니 공자가 서슴없이 무기를 버려야 한다.”고 하자 자공이 또 나머지 두 가지 가운데서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하니 공자는 양식을 버려야 한다. 자고로 인생은 한번 죽기 마련인데 백성들이 신심(信心)을 잃게 되면 국가가 일어설 방도가 없다.”고 대꾸하였다.

   

자장이 정사를 다스리는 도리를 묻자 공자는 마음속에 선함을 간직하고, 피로를 무릅쓰고, 진리를 실천함에서 힘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고 하였다. 자로가 정사에 대해 묻자, “백성들 앞에서 솔선수범하고 이신작칙(以身作則 : 남보다 먼저 실천하여 모범을 보임으로써 일반 공중이 지켜야 할 법칙이나 준례를 만듦)하는 것이다.”고 대꾸하였다. 자로가 더 상세히 알려달라고 하니 태만하지 말지어다.”고 덧붙였다.

   

중궁이 계씨의 가신으로 있으면서 정사에 대해 묻자, “관리들의 모범이 되고, 아래 사람들의 과실을 관대히 처리하고, 덕성과 재능을 겸비한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중궁이 덕성과 재능을 겸비한 인재를 어떻게 알고 등용하겠습니까?”하고 재차 물으니 네가 알고 있는 인재를 먼저 등용하라. 네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야 남들이 그를 내버려 두겠느냐?”하고 대꾸하였다.

   

자하가 노나라 거부읍(莒父邑)의 장관이 되어 정사를 다스릴 도리를 물으니 공자는 급히 성사하려 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탐내지 말아야 한다. 급히 성사하려고 하면 급할수록 이를 수 없고, 작은 이익에 눈이 어두우면 대사를 망치게 된다.”고 일깨워 주었다. p.6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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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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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신영복 교수님 별세 1주기를 맞았다.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멀어진다.'는 말처럼 교수님이 돌아가시고 출판물도 없고 해서  한동안 교수님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1주기가 된 요즘, 방송이나 인터넷 매체에 고인을 추모하는 소식이 올라와 다시 교수님을 상기하게 되었다. 법정스님도 돌아가신 후 한동안 세간의 관심을 받으시다 어느 순간 잠잠해졌다. 아무리 유명한 분도 결국 현생에 없으니 대중들의 관심에서 서서히 잊혀 가는게 세상의 이치인가 보다.
 
교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펴낸 '담론'을 진작에 사두었다가 이 핑계 저 핑계로 읽는 것을 미루어 두다가 근래 고인의 소식을 듣고 책을 꺼내 읽었다. 작가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좋은 책을 펴내려고 심혈을 기울이겠지만 나는 많은 작가 중에 유시민 씨와 신영복 교수님의 글을 가장 좋아한다. 유시민 작가의 글은 읽으면 글맛이 있다. 깊이도 있고 책을 들면 손에 놓기가 어려울 정도로 재미에 빠져 책에 몰입한다. 약간 진보적이고 사회비판적인 시각에서 글을 쓰지만 그게 저급하지 않고 논리정연해서 작가의 주장에 수긍하게 된다.
 
그런데, 신영복 교수님의 글은 더욱 내공이 깊다. 작가의 장단점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신영복 교수님의 글은 어떤 작가보다도 묵직하고 깊이가 있다. 물론 인생과 관련한 거창한 화두를 주제로 삼고, 심오한 동양철학을 강의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처음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 아주 딱딱하고 무미건조하다. 고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읽으면 정말 난해하고 재미가 없지만 몇 번을  되새기며 읽다보면 교수님의 진가가 드러난다. '강의'가 그랬다.
 
교수님의 삶이 고단해서 그런지, 글에 인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20년의 감옥생활이 없었다면 독자들이 깊이 있는 교수님의 글을 접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후의 문학작품이 고난과 슬픔 속에서 창작되듯이 교수님도 혹독한 감옥생활을 겪었기에 글이 더욱 중후하고 사색적이 된 것 같다. 고인의 말처럼 감옥에서 최대한 적은 책으로 오랫동안 읽을 책을 구하다 보니 동양고전을 읽게 되었는데, 그게 오히려 평상시에 접하기 어려운 동양고전을 섭렵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담론'도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가 붙었듯이, 평소 강의했던 내용을 다듬은 글에다, 감옥생활 이야기를 덧붙여 펴낸 책이다. 보통 사람같으면 감옥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조차 하기 싫을 것인데, 고인은 감옥생활을 통해 삶을 오히려 한 단계 승화시켰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어떻게 그토록 긴 세월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올곧게 살 수 있었는지, 범상치 않은 삶에 숙연해진다.
 
나라가 혼란한 이 때, 이제 세상의 큰 스승들이 하나, 둘 떠나고 시대의 스승이라 불릴 분들이 많지 않다. 소인배들이 온통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도, 최소한의 수오지심조차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아 개탄스럽다. 인문학을 배우는 가장 큰 목적은 '정직하고 양심있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고도의 청렴성과 양심을 가진 분들이 맡아야 한다. 국민을 행복하게 하려는 소양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것은 나라의 불행이요, 국민의 불행이다. 책임자의 지위에서 국민을 리더하는 정치인들이 교수님의 주옥같은 글을 많이 읽어서 정말로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공직자가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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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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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읽은 지가 2년정도쯤 된 것 같다. 정확한 내용은 다 기억할 수 없지만 경제학 분야의 여러 학파를 소개한  기억이 난다.  법학이나 경제학 같은 분야는 그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에 따라 관점이 여러 학설로 나눠지듯 경제학도 세계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학설로 나눠진다. 복잡다기한 경제학 분야에 주류 학설은 존재할 수 있어도 한가지 학설이 복잡한 경제현상을 다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다양한 경제현상을 설명하는 학설 중에 여러 학설을 통합한 절충설이 다수설이다.
 
장하준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현재 경제계의 주류(신자유주의)와는 상반되는 노선을 걷고 있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자신의 시각에서 독특하게 설명하는데, 경제계의 야당파라 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선진국이 지지하는 신자유주의 무역에 대한 자세한 분석과 신랄한 비판이 눈여겨 볼만하다. 한국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물론 장하준 교수의 관점이 다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응 우리 경제 당국에서 받아들여야 할 중요한 조언도 많다. MB정부의 경제부양을 위한 인위적 고환율정책과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 등 우리나라 경제 정책이 임시미봉책으로 나아가는 것을 비판하면서 기초를 탄탄히 하기 위한 근본적인 개혁과 거시적인 경제플랜을 펼 것을 주장한다.
 
그가 써 온 책을 보면 주로 강대국의 경제정책의 어두운 이면을 속속들이 파헤치며,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결코 약소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 등의 책을 통해 경제계의 신선한 바람을 몰고온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선진국에서는 장하준 교수의 시각이 곱게만 보일리 없겠지만 진실의 편에 서서 그들의 경제정책 이면의 불평등성을 낱낱이 적시함으로써 약소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정치나 학문이 그렇듯 다수의견에 동조하지 않고 소수파로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만큼 자신의 신념이 굳어야 하고, 어떤 주장에도 대응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세계를 지배하는 요즘 시류에 편승하여 곡학아세하는 사이비 경제학자도 일부 있다. 장하준 교수는 약소국의 입장에서, 진실의 편에 서서 자신의 소신에 따라 경제의 패턴을 설명한다. 앞으로도 이런 소신있는 학자가 많이 나와서 전 세계인들에게 올바른 경제 흐름과 지식을 제공해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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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인으로 세상을 경영하라 공자처럼 - 적도 내 편으로 만드는 사람경영법 인문고전에서 새롭게 배운다 5
신동준 지음 / 미다스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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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이 물었다.

만일 백성에게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습니까.

가히 어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어찌 어질다고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는 반드시 성인일 것이다. 요순(堯舜)도 오히려 그리 하지 못한 것을 근심했다. 무릇 인자(仁者)는 자신이 서고자 하면 남을 세우고, 자신이 통달하고자 하면 남을 통달하게 만든다. 가까운 데서 능히 취해 비유할 수 있다면 가히 인을 이루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子貢曰, “如有傳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具猶病諸.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誓, 可謂仁之方也已.“ <논어> 옹야 제28

  

공자는 여기서 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을 논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여기서 요순(堯舜)의 이름이 처음으로 나오고 있는 점이다. 현존하는 유가 경전 가운데 요순을 드러내 놓고 표창(表彰)한 것은 <맹자>이다. 일본의 저명한 동양학자 기무라 에이이치는 <공자와 논어>에서 요순도 오히려 그리 하지 못한 것을 근심했다.’의 뜻인 요순기유병저(堯舜具猶病諸)’ 구절을 후대인이 끼워 넣은 것으로 보았다.

 

일찍이 자공은 공자 사후에 삼년상이 끝난 후 다시 3년 동안 홀로 공자의 묘 옆에 초막을 짓고 시묘(侍墓)했다. 이후 제나라로 가 유학을 가르치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제나라에 유학이 전해진 것은 바로 자공의 덕이었다. 원래의 <논어>인 노나라 <논어>, <노론(魯論)>은 자공이 죽은 이후 맹자가 제나라로 가기 이전의 어느 시기엔가 제나라에 전해졌다. 제나라의 <논어><제론>이 나온 배경이다. <제론><노론>에 부기(附記)>와 윤색을 가했다.

 

상대의 마음을 빼앗고자 하면 먼저 그가 원하는 것을 내줘라.

<옹야> 28장에 나오는 욕립입인(欲立立人), 욕달달인(欲達達人)‘ 구절은 <안연> 2장의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 차원을 뛰어 넘는다.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 은 소극적으로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을 남에게 강요치 않는다는 취지에 그치고 있다. 이에 반해 <옹야> 28장은 적극적으로 주변 사람을 먼저 일으켜 세우고 통달하게 만들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는 여러모로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이타행(利他行)과 닮았다. ‘이타행은 남에게 공덕과 이익을 베풀어주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대승불교는 개인의 성불(成佛)을 지향하는 해탈행(解脫行)에 방점을 찍은 석가 당시의 소승불교에 중국 전래의 도가사상을 덧씌운 게 특징이다. ‘도가 사상의 연원은 노자의 <도덕경>이다. <도덕경> 36장에 이타행의 배경을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 나온다.

  

상대를 가까이 끌어들이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상대의 날개를 활짝 펴주어야 하고, 상대의 힘을 약화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상대를 더욱 강하게 해주어야 하고, 상대를 뒤로 물리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상대를 흥하게 해주어야 하고, 상대의 마음을 빼앗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상에게 내주어야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상대를 가까이 끌어들이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상대의 날개를 활짝 펴주는 욕흡장지(欲翕張之)’ 정신으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상대에게 베푸는 게 관건이다.

  

사상사적으로 보면 이는 원래 도가 사상에 한정된 게 아니다. 공자보다 약 100년 앞서 활약한 제나라 재상 관중(管仲)의 저서인 <관자><목민(牧民)><도덕경> 36장의 욕흡장지정신을 연상하도록 만드는 대목이 나온다.

  

정치가 흥하는 것은 민심(民心)을 따르는 데 있고, 폐해지는 것은 민심을 거스르는 데 있다. 백성은 근심과 노고를 싫어하는 까닭에 군주는 그들을 평안하고 즐겁게 만들어야 하고, 빈천을 싫어하는 까닭에 군주는 그들을 잘 보호하여 안전하게 만들어야 하고, 후사가 끊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까닭에 군주는 그들을 잘 길러야 한다. 백성을 평안하고 즐겁게 만들면 백성은 군주를 위해 근심과 노고를 감수하고, 부귀하게 만들면 군주를 위해 빈천을 감수하고, 잘 보호해 안전하게 만들면 군주를 위해 위험에 빠지는 것을 감수하고, 잘 기르면 군주를 위해 후사가 끊어지는 것을 감수한다. 형벌은 민의(民意)를 두렵게 만들기에 부족하고, 살육은 민심을 복종하도록 만들기에 부족하다. 형벌이 빈번할지라도 민의가 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군주의 명령이 시행되지 않고, 많은 사람을 살육할지라도 민심이 이에 복종치 않으면 군주의 자리가 위태롭게 된다.

  

백성이 바라는 네 가지 욕망을 다루면 먼 곳의 사람도 절로 다가와 친해지고, 백성이 싫어하는 네 가지 혐오를 행하면 가까이 있는 자조차 배반하게 된다. 그래서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임을 아는 것이 다스림의 요체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주는 것이 얻는 것임을 명심하라.

정치의 근본적인 목적은 백성을 의도한 바대로 부리는 사민(使民)을 통해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아는 문화대국을 건설하는데 있고, ‘사민은 백성이 바라는 일락(佚樂)과 부귀와 존안(存安) 및 생육(生育)의 네 가지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서 출발하고, 네 가지 욕망의 충족은 백성을 부유하게 만드는 부민(富民)에서 나오고, ‘부민의 요체는 백성을 이롭게 만드는 이민(利民)에 있고, ‘이민의 기본 이치는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임을 아는 것이 다스림의 요체라는 사실을 숙지하는 데 있다는 게 <관자>의 기본 입장이다.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이다.’라는 이치를 깨닫는 것을 통상 취여지도(取予之道)라고 한다.

취여지도<관자>를 관통하는 키워드이다. 사상 최초의 정치경제학파인 이른바 상가(商家)의 효시인 관중은 <도덕경> 36장과 취지를 같이하는 취여지도에서 치국평천하의 기본 이치를 찾은 셈이다.

 

<옹야> 28장의욕립입인, 욕달달인정신은 <도덕경> 36장의 욕흡장지<관자> 목민취여지도정신과 취지를 같이 하는 것이다. 유가와 도가 및 상가를 비롯한 제자백가 모두 먼저 베풀어 백성을 이롭게 만드는 이른바 선여이민(先予利民)사상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옹야> 28장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자공은 이를 박시어민(博施於民), 공자는 욕립입인, 욕달달인으로 풀이한 셈이다. ‘욕립입인, 욕달달인정신은 이후 인도에서 전래한 소승불교가 대승불교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이타행의 사상적 뿌리가 됐다.

 

<논어>가 역설한 인정(仁政)은 곧 <도덕경> 36장의 욕흡장지<관자> 목민취여지도와 취지를 같이하는 욕립입인, 욕달달인정신에 뿌리를 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게 바로 선여이민사상이다. 공자와 노자 및 관자 모두 치국평천하의 방략을 놓고 같은 곡을 서로 달리 연주하는 동공이곡(同工異曲)에 지나지 않는다. p.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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