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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평점 :
故 신영복 교수님 별세 1주기를 맞았다.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멀어진다.'는 말처럼 교수님이 돌아가시고 출판물도 없고 해서 한동안 교수님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1주기가 된 요즘, 방송이나 인터넷 매체에 고인을 추모하는 소식이 올라와 다시 교수님을 상기하게 되었다. 법정스님도 돌아가신 후 한동안 세간의 관심을 받으시다 어느 순간 잠잠해졌다. 아무리 유명한 분도 결국 현생에 없으니 대중들의 관심에서 서서히 잊혀 가는게 세상의 이치인가 보다.
교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펴낸 '담론'을 진작에 사두었다가 이 핑계 저 핑계로 읽는 것을 미루어 두다가 근래 고인의 소식을 듣고 책을 꺼내 읽었다. 작가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좋은 책을 펴내려고 심혈을 기울이겠지만 나는 많은 작가 중에 유시민 씨와 신영복 교수님의 글을 가장 좋아한다. 유시민 작가의 글은 읽으면 글맛이 있다. 깊이도 있고 책을 들면 손에 놓기가 어려울 정도로 재미에 빠져 책에 몰입한다. 약간 진보적이고 사회비판적인 시각에서 글을 쓰지만 그게 저급하지 않고 논리정연해서 작가의 주장에 수긍하게 된다.
그런데, 신영복 교수님의 글은 더욱 내공이 깊다. 작가의 장단점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신영복 교수님의 글은 어떤 작가보다도 묵직하고 깊이가 있다. 물론 인생과 관련한 거창한 화두를 주제로 삼고, 심오한 동양철학을 강의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처음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 아주 딱딱하고 무미건조하다. 고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읽으면 정말 난해하고 재미가 없지만 몇 번을 되새기며 읽다보면 교수님의 진가가 드러난다. '강의'가 그랬다.
교수님의 삶이 고단해서 그런지, 글에 인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20년의 감옥생활이 없었다면 독자들이 깊이 있는 교수님의 글을 접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후의 문학작품이 고난과 슬픔 속에서 창작되듯이 교수님도 혹독한 감옥생활을 겪었기에 글이 더욱 중후하고 사색적이 된 것 같다. 고인의 말처럼 감옥에서 최대한 적은 책으로 오랫동안 읽을 책을 구하다 보니 동양고전을 읽게 되었는데, 그게 오히려 평상시에 접하기 어려운 동양고전을 섭렵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담론'도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가 붙었듯이, 평소 강의했던 내용을 다듬은 글에다, 감옥생활 이야기를 덧붙여 펴낸 책이다. 보통 사람같으면 감옥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조차 하기 싫을 것인데, 고인은 감옥생활을 통해 삶을 오히려 한 단계 승화시켰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어떻게 그토록 긴 세월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올곧게 살 수 있었는지, 범상치 않은 삶에 숙연해진다.
나라가 혼란한 이 때, 이제 세상의 큰 스승들이 하나, 둘 떠나고 시대의 스승이라 불릴 분들이 많지 않다. 소인배들이 온통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도, 최소한의 수오지심조차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아 개탄스럽다. 인문학을 배우는 가장 큰 목적은 '정직하고 양심있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고도의 청렴성과 양심을 가진 분들이 맡아야 한다. 국민을 행복하게 하려는 소양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것은 나라의 불행이요, 국민의 불행이다. 책임자의 지위에서 국민을 리더하는 정치인들이 교수님의 주옥같은 글을 많이 읽어서 정말로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공직자가 되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