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강설 사서삼경강설 시리즈 4
이기동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關雎  (관저)

 

끼룩끼룩 노래하는 저 징경이는   關關雎鳩,(관관저구)

황하 강가 모래톱에 놀고 있네요  在河之洲.(재하지주)

그윽하고 아리따운 요조숙녀는    窈窕淑女,(요조숙녀)

일편단심 기다리는 이 몸의 배필  君子好逑.(군자호구)

 

들쭉날쭉 돋아 있는 마름 풀들을 參差荇菜,(삼치행채)

이리 저리 헤치면서 찾아가듯이  左右流之.(좌우유지)

그윽하고 아리따운 요조숙녀를   窈窕淑女,(요조숙녀)

자나 깨나 그리워서 찾아봅니다. 寤寐求之.(오매구지)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 없어    求之不得,(구지부득)

자나 깨나 애태우며 생각합니다   寤寐思服.(오매사복)

잠 아니 오는 밤을 길고 긴 밤을   悠哉悠哉,(유재유재)

이리 저리 뒤척이며 지새웁니다   輾轉反側.(전전반측)

 

들쭉날쭉 돋아 있는 저 마름 풀을  參差荇菜,(삼치행채)

이리 저리 헤치다가 뜯어오듯이    左右采之.(좌우채지)

이제사 요조숙녀 님을 만나서       窈窕淑女,(요조숙녀)

금과 슬을 뜯으면서 벗이 됩니다   琴瑟友之.(금슬우지)

 

들쭉날쭉 돋아 있는 저 마름 풀을  參差荇菜,(삼치행채)

이리 저리 다듬어서 담아 두듯이   左右芼之.(좌우모지)

아리따운 요조숙녀 님을 얻어서    窈窕淑女,(요조숙녀)

즐거워서 종을 치고 북을 칩니다.  鍾鼓樂之.(종고낙지)

 

 

<소학>에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있다. 남자와 여자는 일곱 살이 되면 한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가? 만물의 삶은 대자연의 법칙에 따른다. 초목이 봄에 싹이 튼 뒤에는 열심히 성장을 한다.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일곱 살 정도 되면 성장을 위해 전력을 투구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초목이 성장을 하기 전에 꽃을 피우면 그 꽃은 결실을 맺을 수가 없다. 사람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다. 채 성장하기도 전에 남녀가 어울려 연애에 빠지면 사람으로서 제대로 성장을 할 수 없다. 이때는 오로지 성장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바로 이를 의미한다.

 

초목은 성장을 마칠 때쯤 꽃을 피운다. 이때는 또 꽃을 피우기 위해 온 힘을 다 기울인다. 있는 힘을 다해 꽃을 피우고 꿀을 생산해 벌과 나비를 기다린다. 그래야만 결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다. 성장을 하여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가까워져도 남녀 간의 사랑을 모른다면 그것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때는 또한 사랑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때의 사랑의 마음을 읊은 것이 이 시의 내용이다.

 

남녀 사이의 사랑은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지만, 꼭 상대가 있어야만 사랑의 감정이 솟아나는 것은 아니다. 때가 되면 샘물이 솟아 나오듯 사람의 감정이 저절로 솟아나온다. 사랑의 감정이 속에서 솟아나오기에 상대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자연의 이치다. 쌍쌍이 놀고 있는 새들이나 짐승들을 보면 이 감정은 불이 붙는다.

 

마음속에서 그리는 님은 언제나 100점짜리다. 이 시에서 사나이가 그리는 님은 요조숙녀,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리는 님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다. 마음속에서 그리는 님을 만나지 못해 잠을 이루지 못해야 정상적인 사람이다. 사랑의 감정이 솟아나지 않은 채 쿨쿨 잠만 자고 있다면 그야말로 비정상적인이라 할 것이다. 그러다가 꿈에 그리던 님을 만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쁘다. 그렇다고 해서 둘이 늘 붙어 있으면서 각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면 서로의 삶에 해를 끼치는 잘못된 관계로 전락할 수도 있다.

 

사람이 사랑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긍정적인 방식으로 충족시키고, 나아가 삶을 한층 고양시키는 삶의 동반자로서 도움을 주고받으며, 원한다면 자녀를 낳아 삶을 이어가게 하기 위한 하늘의 뜻이다. 이는 밥을 먹는 생리적인 현상과도 같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하늘은 사람에게 생명을 이어가게 하기 위해 음식을 먹을 때 맛을 주었다. 그런데 사람이 맛을 준 의미를 모르고 그 맛만을 과도하게 추구하다가 과식하면 맛의 의미를 망각한 것이고 하늘의 뜻을 어긴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도 이와 마찬가지다. 사람에게 사랑의 기쁨을 주는 것도, 성적 결합에 쾌감을 주는 것도 하늘의 뜻이요, 자연현상이다. 그런데 사람이 그 기쁨과 쾌감만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망각한다면 자연현상에서 벗어나 그 기쁨과 쾌감을 과도하게 추구한다. 그래서 음란하게 되고 그 때문에 몸을 상하게 된다.

 

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은 자연현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온 힘을 다해서 사랑을 추구하지만,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거나,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과도하게 쾌락에만 몰두하지 않아야 한다. 기뻐도 기쁨에 빠지지 않고 슬퍼도 슬픔에 빠지지 않는 그런 감정을 유지해야 한다.

 

이 시는 인간의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형태의 시를 ‘흥(興)’이라고 한다. ‘모전(毛傳)’과 주자는 다 같이 이 시에 대해 문왕과 그의 부인의 덕을 어떤 시인이 노래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시란 씌어 진 순간에는 시인의 감흥이나, 읽히는 순간에는 독자들의 감흥에 따르기 때문이다. p.37~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시를 알면 중국이 보인다 1 - 오 PD의 한시여행
오성수 지음 / 청동거울 / 200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옛 벗을 만나(逢舊)

 

                                백거이(白居易. 772~846)

 

久別偶相逢 (구별우상봉) 오랫동안 헤어져 있다 우연히 다시 만났거니

俱疑是夢中 (구의시몽중) 이것이 꿈인가 서로 의심하네.

卽今歡樂事 (즉금환락사) 지금 이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지마는

放盞又成空 (방잔우성공) 술잔 놓으면 다시 부질없이 되는 것을.

 

 

옛 친구에게

 

이렇게 비 내리는 날엔

우산도 없이 어디론지 떠나고 싶어 비를 맞으며

옛날 작은 무대 위에서 함께 노래한

정다웠던 친구를 두고 난 떠나왔어

서로를 위한 길이라 말하며

나만의 길을 떠난 거야

지난 내 어리석음 이젠 후회해

하지만 넌 지금 어디에

이렇게 비가 내리는 밤엔

난 널 위해 기도해

아직도 나를 기억한다면 날 용서해 주오.

 

 

서정적이고 약간은 토속적인 노래로 젊은 층에게 인기를 모았던 ‘여행스케치’의 노래다.

사람에게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해주는 말들이 있다. 고향, 어머니, 외가, 초등학교, 친구.....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면 괜스레 푸근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진다.

 

살면서 많은 친구를 만나고 사귀게 된다. 장은 묵을수록 맛있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친구일수록 흉허물 없이 지낸다. 무슨 양복 광고에 ‘일 년을 입어도 십 년을 입은 것 같고, 십 년을 입어도 일 년을 입은 것 같은 옷’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오래된 친구가 바로 그렇지 않나 싶다. 오랜 친구는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거나 쑥스럽지 않다. 만나서 그냥 씩 한번 웃으면 그 동안의 회포가 금세 풀린다.

 

커피를 마시면서 쉬엄쉬엄 얘기를 나누고, 술 한 잔 걸치면서도 띄엄띄엄 대화를 주고받아도, 가슴속에 있는 이런저런 할 말들이 다 전해진다. 그래서 혹 못다 한 얘기들이 있어도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다. 굳이 말로 다 안 해도 오랜 친구는 다 알겠거니 하는 느긋함이 생기기 때문이다.

 

친구는 역시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 회사에서 실직을 하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혼을 하거나, 상을 당했거나,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 상대가 되어 주고, 한걸음에 달려오는 게 바로 오랜 친구다. 군대 있을 때 꼬박 하루가 걸려야 찾아올 수 있는 그 먼 길을 찾아와 주는 사람은 부모와 친구밖에는 없다. 애인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데 부모와 친구는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아무리 바빠도 친구들을 위한 시간과 마음의 공간을 비워 둬야 한다. p.200~2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 이덕무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9
이덕무 지음, 강국주 편역 / 돌베개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덕무가 박제가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한 편이다. 아홉 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지기(知己)로 지냈던 두 사람의 우정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다. 이 글에서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박제가(朴齊家. 1750~1805)에게 선비의 참된 뜻을 잃지 말 것을 간절히 당부하는 한편, 박제가와 같은 벗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문예미가 넘쳐나는 편지로 오래도록 기억될 법하다.

---------------

어제 저녁에 그대가 문밖에 나서자 섭섭함을 이기지 못하였는데, 그때 마침 하늘을 올려다보았더니 검은 구름이 모여들어 어느새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듣더이다. 그래서 곧장 동자(童子)를 시켜 그대 뒤를 쫓아 만류해 보려 하였지요. 동자가 철교(鐵橋)까지 나가 봤다고 하는데 그대를 만나지 못한 채 돌아왔소. 이에 내 오랫동안 홀로 안타까워하였습니다.

 

나는 재주도 없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이 ‘아이처럼 어리석고 처녀처럼 조용한 사람(嬰妻)’으로 세상 물정에 어둡고 쓸데없이 뜻만 큰 오활한 선비에 불과하거늘, 우연히 그대를 만나 예전부터 알았던 듯 친밀하게 될 줄이야 어찌 알았겠소? 인연이라면 참으로 뜻밖의 인연이외다. 그런데 그대가 먼저 나같이 가난한 사람의 집을 찾아 주고 또 이처럼 정성 어린 편지를 보내 주었구려.

 

그대가 보낸 편지에는 5백여 글자마다 그대의 진심이 드러나 있으니, 나같이 재주 없고 변변찮은 이가 어떻게 그대의 편지를 받을 수 있을지 알지 못하겠소이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 부끄러워하였고, 중간에는 찬탄하며 칭찬하였고, 종장에는 기뻐하며 더할 수 없이 즐거워하면서, 이처럼 훌륭한 사람을 얻게 된 것을 참으로 고맙게 생각했다오.

 

그대는 아직 나이 어린 청년이건만 성인(成人)처럼 엄전해 그 정신은 강건하고 심지는 굳으며 말 역시 명료하구려. 억지로 문장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질박함을 따르는 사람으로, 저 옛날 기걸(奇傑)한 군자의 풍도가 있었기에, 내 그대를 두고 “일찍이 없었던 미증유의 일이도다!” 라고 감탄하곤 했지요. 그러니 내가 그대를 후생(後生) 가운데 빼어난 인물로 추앙하는 건 당연한 일이외다. 그런데 이런 그대가 변변찮은 나 같은 사람을 이처럼 추어주니 감격스러운 마음을 이길 수 없사외다. 아마도 그대가 진실한 마음 하나로 오래도록 벗을 사귀려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오. 요즘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그대 홀로 실천하고자 하니, 내 어찌 진심으로 화답하지 않을 수 있겠소.

 

내 일찍이 “말은 금쪽같이 아끼고 자취는 옥(玉)처럼 갈무리하라. 그 빛남을 흉중에 간직하니 오래되면 밖으로 나타나 빛날 터이다.”라는 잠(箴)을 지어 스스로 경계한 바 있고, 또 “지조(志操) 없이 마냥 속세에 어울리면 그 자취가 비루해지고, 궁벽한 것을 캐고 괴이한 일만 행하면 그 뜻이 오만하게 된다. 비루해지면 남에게 아첨하게 되고, 오만하면 자신을 해치게 된다.”라고도 말한 적이 있소이다. 게다가 옛사람도 “특별히 남과 달리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구차하게 남에게 부합할 필요도 없다.”라고 말했으니, 내 이를 읽으며 ‘참으로 시원한 말이구나.’라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여러 친지들에게 써 준 적이 있다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아아! 사특한 기운이 날로 강해지고 부박하고 방탕한 습속에 물들어 올바른 길을 회복할 줄 모르니 이를 어찌해야 좋단 말이오. 순박하고 진실하며 밝고도 지혜로워 옛사람과 짝할 사람은 오직 그대 같은 사람이니 그대는 부디 힘써 주시오. 내 비록 나이는 그대보다 많지만 “덕망도 나보다 높고 재주도 나보다 낫다.”라는 그대의 말만큼은 감당할 수 없구려. 해가 길어졌으니 언제 한번 한가한 날을 틈타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는 듯이 찾아주지 않겠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골향기 2015-08-19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종로2가에 있는 탑골공원 안의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중심으로 글과 사상이 비슷한 연암 친구(제자)들을 ‘백탑파’라 불렀다. ‘백탑파’는 18세기 한양의 진보적 북학파 지식인인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홍대용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학파다. 하얀 대리석으로 탑을 만들었기에 백탑이라고 명칭 했고, 이 사내들은 탑 주위에 모여 살면서 한번 집을 나서면 한잔 술에도 시 문답을 하며 여러 친구 집을 전전했고, 심지어는 몇 달씩 어울려 풍류로 시대의 울분과 아픔을 공유하며 향기로운 그들만의 첨예한 문화를 만들어갔다.

오죽하면 정조는 이러한 선비들의 글이 정통 문체에 위배된다하여 벌을 주고 책망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몇몇 배포 큰 사내들은 더 큰 반항심으로 글들을 써 세상을 향해 일갈을 가하곤 했다. 철저한 출신 신분주의 차별로 벼슬길이 차단된 서얼출신들의 생활은 비천하고 가난했지만, 기백들만큼은 대숲의 바람처럼 청청했고 기존 중화사상에 물들어 있던 보수 선비들의 구시대적인 답습이 아닌 새로운 문체로 참신한 글들을 후대에 남겼다.
 
상군서 - 부국강병의 공격경영 전략서
상앙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상앙의 법치는 ‘농전(農戰)’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나온 것이다. 한비자가 법치를 주로 신하들을 제압하는 수단으로 간주한 것과 대비된다. 진(秦)나라가 문득 최강국으로 등장한 것은 그의 변법이 차질 없이 성사된 데 있고, 이는 한 치의 착오도 없이 강력한 법치가 시행됐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자신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사마천은 <사기> ‘상군열전’에서 상앙을 이같이 평해놓았다.

 

“상앙(商鞅,: ?~BC338)은 성품이 원래 각박했다. 위나라 공자 앙을 기만하고, 태자의 스승에게 형을 가한 것 등이 그렇다. 그가 마침내 진나라에서 악명을 떨쳐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나름 일리가 있는 지적이기는 하나 정곡을 찌른 분석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상앙은 물론 그와 유사한 행보를 보였던 오기가 유사한 최후를 맞이한 것은 변법이 지닌 이중적인 성격에 기인한 것이다. 날카로운 칼이 칼자루를 놓치자마자 이내 자신을 벤 것으로 풀이하는 게 옳다. 진효공과 초도왕의 뒤를 이은 진혜문왕과 초숙왕이 뛰어난 인물이었다면 부왕의 유지를 받들어 상앙과 오기를 더욱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이들의 비참한 최후는 악명을 떨쳤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후사왕이 태자 시절에 받은 작은 수모를 잊지 못하고 앙갚음을 한 결과로 보는 게 옳다. 그만큼 어리석었다는 얘기다.

 

주목할 것은 상앙의 비참한 최후에도 불구하고 그의 엄정한 법치 덕분에 진나라가 최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 점이다. 이게 진시황의 천하통일의 기반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세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상앙은 혁명적인 변법을 과감히 밀어붙였기에 가능했다. 이는 상앙이 시행한 일련의 법치가 궁극적으로는 천하통일을 겨냥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획책’의 해당 대목이다.

 

“명성이 존귀하고 영토가 광활한 덕분에 마침내 천하를 호령하는 왕자로 군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명성이 비천하고 영토가 줄어들어 마침내 패망하는 망자의 신세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쟁에 패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이기지 않고도 천하의 왕자 노릇을 하거나, 전쟁에서 패하고도 망자의 신세가 되지 않은 경우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다. 백성이 용감한 나라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패한다. 백성을 전쟁에 전념하게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백성들이 용감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백성들이 용감하지 않다. 성왕은 천하의 왕자 노릇을 하는 것이 전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거국적으로 백성들에게 전사(戰士)가 될 것을 고취한 이유다. 강대한 나라의 백성은 아비가 자식을 전쟁터로 전송하고, 형이 동생을 배웅하고, 아내가 남편을 떠나보낼 때 이구동성으로 말하길 ‘법을 어기고 명을 위반해 죽으면 나도 죽는다. 마을에서 우리를 처벌할 것이다. 군대에서는 도망칠 곳이 없다. 도망을 쳐 다른 곳으로 옮겨갈지라도 발을 들여놓을 곳이 없다.‘고 한다. 도주하면 몸 둘 곳이 없고, 패하면 살 길이 없다. 삼군의 군사들이 흐르는 물처럼 명에 복종하고, 전투에 임해 죽어도 물러서지 않는 이유다.”

 

엄정한 법치가 ‘농전’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상앙의 법치는 엄한 형벌과 신중한 포상으로 요약되는 이른바 중벌소상(重罰少賞) 위에 있다. ‘중벌’에 대해서는 별다른 오해가 없으나 ‘소상’에 대해서는 적잖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 이는 포상을 남발하지 말라는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결코 포상의 내용을 빈약하게 하라는 게 아니다. <상군서>의 전체 맥락에서 보면 ‘소상(少賞)’은 모든 병가가 역설했듯이 ‘박상(薄賞 : 빈약한 포상)‘이 아닌 후상(厚賞)을 강조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구절이 <상군서> ’수권‘에 나온다.

 

“포상은 후하면서 신뢰성이 있어야 하고, 형벌은 엄중하면서도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 포상할 때 관계가 소원한 사람을 빠뜨리지 않는 부실소원(不失疏遠)을 행하고, 형벌을 내릴 때 친근한 사람을 피하지 않는 불위친근(不違親近)을 행해야 한다. 신하가 군주를 덮어 가리지 않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속이지 않는 이유다.”

 

포상의 내용을 두텁게 하는 ‘후상’은 포상을 신중히 하는 ‘소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포상을 남발하면 사람들이 아무리 ‘후상’을 실행할지라도 이를 천시하게 된다. 중벌과 함께 ‘소상’을 역설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농전(農戰)’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p.384~387.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선약수 2023-04-15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국이 되려는 것은 권력자의 사적 욕망.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기술 묵자 - 고전에서 배우는 지혜 01 고전에서 배우는 지혜 1
친위 지음, 이영화.송철규 옮김 / 예문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만일 천하의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한다면 불효가 있을 수 있는가?

若使天下兼相愛, 愛人若愛其身, 우有不孝者 <묵자·겸애 상>  *우 : 犭+尤

 

묵자는 자신을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한다면 이 세상에 전쟁과 원한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남을 더 사랑한다는 의미다. 자기만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진정으로 사랑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없다. 사랑의 마음이 있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며 박애사상을 소유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평등하게 대하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권하지 않으며, 자기를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하는 것이다.

 

전국시대 양나라와 초나라는 서로 인접해 있었다. 두 나라는 서로 적의를 품고 있어 국경에 초소를 설치했다. 두 나라의 병사들은 각자의 경계에 수박을 심었다. 양나라 병사들은 부지런하여 자주 김을 매고 물을 주어 수박 덩굴이 무성하게 자랐지만, 초나라 병사들은 게을러 김을 매지 않고 물을 주지 않아 수박 덩굴이 약하고 엉성하여 보기가 흉했다.

 

초나라 병사들은 양나라 병사들이 가꾼 수박을 보고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하여 어느 날 밤, 몰래 양나라 초소로 건너가 수박 덩굴을 다 뽑아 버렸다. 양나라 초소 병사들은 이튿날 이를 발견하고 화가 치밀어 올라 현령인 송취(宋就)를 찾아가 “초나라 병사들의 저희 초소에 건너와 수박 덩굴을 다 뽑아버렸습니다. 저희도 쳐들어가 앙갚음을 합시다.”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송취는 “초나라 초소 사람들의 이러한 행실은 물론 부당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릇되었다 하여 우리가 따라 한다면 그것은 너무 편협하고 속 좁은 행동이 아니겠느냐? 너희들은 내 분부에 따르라. 오늘부터 저녁마다 그들의 수박에 물을 주어 그 사람들의 수박이 우리 것보다 더 잘 자라게 하여라. 그리고 이 일을 그 사람들한테 비밀로 해야 한다.”고 하였다.

 

양나라 초소 병사들은 현령의 분부대로 실행했다. 초나라 초소 병사들은 자기네 수박 덩굴이 하루가 다르게 잘 자라자 수박 덩굴을 주의 깊게 살폈다. 결과 그들은 수박 덩굴에 누군가 매일 물을 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느 날 초나라 병사들은 마침내 양나라 병사들이 밤마다 몰래 건너와 자기들의 수박에 물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초나라 현령은 이 일을 들은 후 한편으로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감탄하여 이 일을 초나라 왕에게 고했다. 초나라 왕은 이웃나라에 대한 양나라 사람들의 진심을 깨닫고 특별히 예물을 갖추어 양나라 왕에게 보냈다. 그 결과 이전까지 적대적이었던 두 나라는 우호적인 사이가 되었다.

이처럼 모순이 생기면 큰일은 작게, 작은 일은 없던 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일 원한을 원한으로 갚게 된다면 끝도 없다. 옛사람들도 이 도리를 알았거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남이 나에게 잘 대해주지 않는다고 원망치 말라. 왜냐하면 당신이 상대방을 대하는 마음가짐 그대로 상대방도 당신을 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호적으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은 궁극적으로는 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잘못도 만회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중국 고대철학자가 지녔던 ‘덕으로 원한을 갚는’ 마음가짐을 모든 사람에게 요구할 수 없다. 물욕이 넘쳐흐르는 요즘, 이러한 처세방식은 젊은 세대에게 너무 각박한 요구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선견지명이 있었다. 참된 인간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만일 모든 일에서 자기를 대하듯이 남을 대하고 적을 친구로 대한다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을 것이다. p.271~2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