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강설 사서삼경강설 시리즈 4
이기동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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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關雎  (관저)

 

끼룩끼룩 노래하는 저 징경이는   關關雎鳩,(관관저구)

황하 강가 모래톱에 놀고 있네요  在河之洲.(재하지주)

그윽하고 아리따운 요조숙녀는    窈窕淑女,(요조숙녀)

일편단심 기다리는 이 몸의 배필  君子好逑.(군자호구)

 

들쭉날쭉 돋아 있는 마름 풀들을 參差荇菜,(삼치행채)

이리 저리 헤치면서 찾아가듯이  左右流之.(좌우유지)

그윽하고 아리따운 요조숙녀를   窈窕淑女,(요조숙녀)

자나 깨나 그리워서 찾아봅니다. 寤寐求之.(오매구지)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 없어    求之不得,(구지부득)

자나 깨나 애태우며 생각합니다   寤寐思服.(오매사복)

잠 아니 오는 밤을 길고 긴 밤을   悠哉悠哉,(유재유재)

이리 저리 뒤척이며 지새웁니다   輾轉反側.(전전반측)

 

들쭉날쭉 돋아 있는 저 마름 풀을  參差荇菜,(삼치행채)

이리 저리 헤치다가 뜯어오듯이    左右采之.(좌우채지)

이제사 요조숙녀 님을 만나서       窈窕淑女,(요조숙녀)

금과 슬을 뜯으면서 벗이 됩니다   琴瑟友之.(금슬우지)

 

들쭉날쭉 돋아 있는 저 마름 풀을  參差荇菜,(삼치행채)

이리 저리 다듬어서 담아 두듯이   左右芼之.(좌우모지)

아리따운 요조숙녀 님을 얻어서    窈窕淑女,(요조숙녀)

즐거워서 종을 치고 북을 칩니다.  鍾鼓樂之.(종고낙지)

 

 

<소학>에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있다. 남자와 여자는 일곱 살이 되면 한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가? 만물의 삶은 대자연의 법칙에 따른다. 초목이 봄에 싹이 튼 뒤에는 열심히 성장을 한다.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일곱 살 정도 되면 성장을 위해 전력을 투구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초목이 성장을 하기 전에 꽃을 피우면 그 꽃은 결실을 맺을 수가 없다. 사람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다. 채 성장하기도 전에 남녀가 어울려 연애에 빠지면 사람으로서 제대로 성장을 할 수 없다. 이때는 오로지 성장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바로 이를 의미한다.

 

초목은 성장을 마칠 때쯤 꽃을 피운다. 이때는 또 꽃을 피우기 위해 온 힘을 다 기울인다. 있는 힘을 다해 꽃을 피우고 꿀을 생산해 벌과 나비를 기다린다. 그래야만 결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다. 성장을 하여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가까워져도 남녀 간의 사랑을 모른다면 그것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때는 또한 사랑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때의 사랑의 마음을 읊은 것이 이 시의 내용이다.

 

남녀 사이의 사랑은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지만, 꼭 상대가 있어야만 사랑의 감정이 솟아나는 것은 아니다. 때가 되면 샘물이 솟아 나오듯 사람의 감정이 저절로 솟아나온다. 사랑의 감정이 속에서 솟아나오기에 상대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자연의 이치다. 쌍쌍이 놀고 있는 새들이나 짐승들을 보면 이 감정은 불이 붙는다.

 

마음속에서 그리는 님은 언제나 100점짜리다. 이 시에서 사나이가 그리는 님은 요조숙녀,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리는 님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다. 마음속에서 그리는 님을 만나지 못해 잠을 이루지 못해야 정상적인 사람이다. 사랑의 감정이 솟아나지 않은 채 쿨쿨 잠만 자고 있다면 그야말로 비정상적인이라 할 것이다. 그러다가 꿈에 그리던 님을 만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쁘다. 그렇다고 해서 둘이 늘 붙어 있으면서 각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면 서로의 삶에 해를 끼치는 잘못된 관계로 전락할 수도 있다.

 

사람이 사랑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긍정적인 방식으로 충족시키고, 나아가 삶을 한층 고양시키는 삶의 동반자로서 도움을 주고받으며, 원한다면 자녀를 낳아 삶을 이어가게 하기 위한 하늘의 뜻이다. 이는 밥을 먹는 생리적인 현상과도 같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하늘은 사람에게 생명을 이어가게 하기 위해 음식을 먹을 때 맛을 주었다. 그런데 사람이 맛을 준 의미를 모르고 그 맛만을 과도하게 추구하다가 과식하면 맛의 의미를 망각한 것이고 하늘의 뜻을 어긴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도 이와 마찬가지다. 사람에게 사랑의 기쁨을 주는 것도, 성적 결합에 쾌감을 주는 것도 하늘의 뜻이요, 자연현상이다. 그런데 사람이 그 기쁨과 쾌감만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망각한다면 자연현상에서 벗어나 그 기쁨과 쾌감을 과도하게 추구한다. 그래서 음란하게 되고 그 때문에 몸을 상하게 된다.

 

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은 자연현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온 힘을 다해서 사랑을 추구하지만,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거나,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과도하게 쾌락에만 몰두하지 않아야 한다. 기뻐도 기쁨에 빠지지 않고 슬퍼도 슬픔에 빠지지 않는 그런 감정을 유지해야 한다.

 

이 시는 인간의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형태의 시를 ‘흥(興)’이라고 한다. ‘모전(毛傳)’과 주자는 다 같이 이 시에 대해 문왕과 그의 부인의 덕을 어떤 시인이 노래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시란 씌어 진 순간에는 시인의 감흥이나, 읽히는 순간에는 독자들의 감흥에 따르기 때문이다. p.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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