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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강설 ㅣ 사서삼경강설 시리즈 5
이기동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6년 9월
평점 :
버스를 타고 굴곡이 심한 길을 가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멀미를 하게 된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차를 타고 가면서 고정관념에 빠지기 때문이다. 차가 오른쪽으로 갈 때는 사람들은 차와 함께 오른쪽으로 가고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앞으로 계속 오른쪽으로 갈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빠진다. 그러다가 차가 갑자기 왼쪽으로 가면 미처 거기에 대처하지 못하고 혼자서 오른쪽으로 가고 만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몸을 가다듬지만, 이번에는 또 왼쪽으로 갈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차가 다시 오른쪽으로 갈 때 또 거기에 대처하지 못하고 왼쪽으로 가고 만다. 이렇게 하여 자꾸 좌우로 쏠리다 보면 적응을 하지 못해 어지럽게 된다. 그래서 멀미가 난다.
일직선으로 된 길을 갈 때는 멀미가 나지 않는다. 멀미는 변화가 많은 길에 대처하지 못해서 나는 것이다.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당하는 것을 봉변(逢變)이라 한다. 멀미는 봉변을 당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변화가 복잡한 길을 갈 때에는 반드시 멀미가 나는 것일까? 이 멀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런데 달리는 차안을 자세히 보면 멀미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운전자와 자고 있는 사람들이다. 운전자는 좌우회전을 할 때에 핸들을 꺾으면서 동시에 몸을 좌우로 기울임으로써 몸이 쏠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다. 그래서 어지럽지도 않고 멀미도 하지 않는다. 운전자는 복잡한 길에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봉변당하지 않는다. 그는 능변(能變)하는 자이다.
그러면 자고 있는 사람들은 왜 멀미를 하지 않는가? 자고 있는 사람은 몸이 버스의 의지와 혼연일체가 되어 함께 움직인다. 자는 사람은 변화와 하나가 되어 있다. 봉변을 당할 일도 없고 능변할 일도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 순리다. 그래서 자는 사람은 차멀미를 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깨어있다 해도 서 있는 사람보다는 앉아 있는 사람이, 또 그냥 앉아 있는 사람보다는 의자에 기대어 혼연일체가 되어 있는 사람이 멀미를 줄일 수 있다.
지구는 우주라는 차를 타고 있고, 각 나라는 지구라는 차를, 각종 집단들은 나라라는 차를 타고 있다. 또 개인은 각기 가정이라는 차와 학교라는 차, 회사라는 차를 타고 있다. 이 차들의 흐름에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 개인의 삶에 멀미라는 저항을 줄일 수 있는 비결이다. 그리고 가장 이상적인 것은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우주라고 하는 모든 차의 흐름이 혼연일체가 되어 함께 흐르는 것이다.
인생길도 이와 마찬가지다. 변화무쌍한 인생길에 능동적으로 잘 대처하면 순조롭게 살아갈 수 있지만, 자꾸 봉변을 당하면 고통스러운 삶이 된다. 사람들이 인생길에서 봉변을 당하는 이유 또한 고정관념 때문이다. 고정관념은 사람의 성격을 만들고 욕심을 만든다. 소극적인 사람은 만사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적극적인 사람은 소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려움을 당한다. 또 욕심이 많은 사람은 욕심의 방향으로 달려가다가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인생길에서의 멀미에서 벗어나려면, 욕심에서 벗어나야 하고, 성격에서 오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하여 외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때 비로소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한 삶이 바로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고, 먹어야 할 때 먹고, 쉬어야 할 때 쉬고, 자야 할 때 자고, 와야 할 때 오고, 늙어야 할 때 늙고, 죽어야 할 때 죽는 시중(時中 : 적절한 때)의 삶이다.
그러나 욕심을 버리고 고정관념을 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수양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수양을 완성하여 고정관념을 완전히 버리기 전까지는 계속 삶의 여정에서 멀미를 해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운전자의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앞에 놓인 인생의 길과 그 대처 방안을 파악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길에는 어떤 것이 있고 그 대처방안은 무엇인가? 인생의 길에는 크게 두 가지 양상이 있다. 객관적, 외형적으로 ‘일반화될 수 없는 경우’와 ‘일반화될 수 있는 경우’이다. 예컨대 무슨 전공을 해야 하는가, 이사를 가야 하는가 등의 문제는 전자에 속하지만, 어른에게 어떤 방식으로 인사를 해야 하는가, 교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은 후자에 속한다.
이 두 가지 인생의 길을 원만하게 가는 방법은 그러한 인생길에 가장 잘 대처하는 사람에게 그 비결을 배우는 것이다. 인생길에 가장 잘 대처하는 사람을 우리는 성인(聖人)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선 객관적, 외형적으로 일반화될 수 있는 삶의 방식은 성인의 삶의 방식에서 배우면 된다. 그것이 이른 바 예(禮)이다. 그러므로 예를 배워 실천하면 타인과의 조화를 이룰 수 있고 멀미 없는 인생의 길을 갈 수 있다.
그러면 남은 문제는 전자의 경우이다. 삶의 과정에서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가 하는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개인에 국한된 문제이기 때문에 성인의 삶에서 그 모범을 찾을 수 없다. 이런 경우에 대처하기 위하여 제작한 비결서가 바로 <주역>이다.
인생의 길은 복잡하다. 그러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알기 어렵다. 이를 걱정한 옛 성인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인생의 길을 크게 예순 네 가지 유형으로 정리를 해 놓았다. 그것이 <주역>이다. 이제 주역으로 말미암아 복잡한 인생길에서 멀미를 하는 사람들은 길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각자의 상황이 <주역>의 예순 네 가지 유형 중 어디에 속하는지 찾아내어 그 대처방안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길이 찾아질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고정관념이나 집착이 점차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주역은 학문을 완성하기 전의 사람이 바람직한 인생길을 찾아내는 비결서이면서 동시에 수양을 완성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인생의 길을 가는 사람이 예법에 관한 책과 주역을 갖는다는 것은 운전자가 운전면허를 갖는 것과 같다. 운전면허 없이 도로에 차를 몰고 나갈 수 없듯이, 예법과 주역을 모른 채 인생의 길을 제대로 갈 수 없다. p.1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