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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세우는 옛 문장들 - 언어의 소금, 《사기》 속에서 길어 올린 천금 같은 삶의 지혜
김영수 지음 / 생각연구소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부귀하면 선비가 모여들고, 가난하고 천해지면 친구가 줄어든다.”
부귀다사(富貴多士) 빈천과우(貧賤寡友)
수천 명의 식객을 거느리고 있던 맹상군이 어느 날 제나라 왕에게 파면을 당하자 식객들은 모두 맹상군 곁은 떠나 버렸다. 다행히 풍환(馮驩)이란 식객이 남아 맹상군에게 제나라 왕의 의심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풍환의 도움으로 복직하게 된 맹상군은 떠났던 식객들이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오자 풍환에게 기회주의적인 그들에 대한 원망을 풀어 놓는다.
맹상군 이 몸이 늘 빈객을 좋아하여 손님을 대우하는 일에 실수가 없었고, 때문에 식객이 3,000여 명에 이르렀던 것은 선생이 잘 아시는 바요, 그런데 내가 파면되자 빈객들은 나를 저버린 채 모두 떠나버리고 돌보는 자 하나 없었소. 이제 선생의 힘을 빌려 직위를 회복했는데, 빈객들이 무슨 면목으로 나를 다시 볼 수 있단 말이오? 만약 나를 다시 보려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자의 낯짝에 침을 뱉어 욕보이고 말겠소이다.
풍환 대체로 세상의 일과 사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과 본래부터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맹상군 이 몸이 어리석어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소.
풍환 살아 있는 것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은 사물의 필연적인 이치입니다. ‘부귀할 때는 선비가 모여들고, 가난하고 천하면 친구가 줄어드는 것’은 본래부터 일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군께서는 아침에 저자로 몰려가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이른 아침에는 어깨를 비벼가며 서로 저 먼저 가려고 다투어 문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해가 저문 뒤에는 팔을 휘휘 저으며 저자는 돌아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갑니다. 아침에는 좋았는데 저녁에는 싫어서가 아닙니다. 기대하는 물건이 거기에 없기 때문입니다. 군께서 벼슬을 잃었기 때문에 손들이 다 떠난 것입니다. 이를 두고 선비들을 원망하여 빈객이 돌아오려는 길을 막는 것은 안 됩니다. 군께서 빈객들을 전처럼 대우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진시황을 도와 진나라를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이사(李斯)는 철저한 출세 지상 주의자였다. 그는 스승 순자(荀子)의 곁을 떠나면서 “비천함보다 더 큰 부끄러움은 없고, 가난보다 더 깊은 슬픔은 없습니다.”라는 말로 가난과 비천함에 대한 경멸을 드러냈다. 또한 그는 “사람의 잘나고 못남은 자신을 어디다 두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하기 했다. 권력과 부귀가 보장된 자리에 따라 사람의 처지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의리란 단어의 의미가 많이 변질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것이 우리의 마음 언저리를 여전히 맴도는 이유는 그것보다 기본적인 인간관계의 변질이 더 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제대로 보려면 부귀할 때 무엇을 하는지, 가난하고 천할 때 무엇을 하지 않는지 보라고 했나 보다. 의리와 지조 따위는 내팽겨 친 채 오로지 권력과 부귀를 향해 달려들었던 출세 지상 주의자 이사는 끝내 허리가 잘리는 형벌을 받고 죽었다.
어려울 때는 떠나갔다가 좋아지자 다시 돌아오려는 기회주의적인 빈객들을 다시 대우하라는 풍환의 말에서 문득 비애(悲哀)가 느껴진다. 학문이 깊어질수록 도는 얕아지고 세상을 겪을수록 인심은 야박해진다는 말이 있듯이, 사마천은 인간의 얄팍한 의리를 두고 ‘세상사가 참으로 다 그렇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권75 <맹상군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