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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노동 ㅣ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체사레 파베세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피곤한 노동', 이 표현에 함축된 의미는 다양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인간의 삶과 노동의 관계이다. 삶이란 바로 노동으로 이루어지고 유지되는데, 노동은 결과적으로 우리 자신과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삶은 피곤할 수밖에 없다는 관념이 함축되어 있는데, 그것은 파베세의 다분히 비관론적 인생관과 연결된다.
그의 시에서 묘사되는 시골 창녀, 포도나 호박을 훔치는 늙은 노인, 과부, 마차꾼,술 취한 노파, 거지, 집에서 달아난 소년, 혼자 쓸쓸하게 저녁식사를 하는 사내, 종이담배를 피우는 친구들, 감옥에 갔다온 남자 등은 대부분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한 삶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는 삶의 피곤함 또는 무의미함을 극복하기 위한 파베세의 부단한 노력이 숨어 있다.
그런 노력은 주로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와의 사랑이다. 먼저 파베세는 어린 시절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고향 세계를 그리워하는데, 그것은 자연 상태에 가까운 시골의 삶과 토리노로 상징되는 도시의 명백한 대비를 통해 드러난다. 자주 등장하는 시골의 이미지는 언덕, 나무, 포도밭, 강물, 바다, 안개, 풀밭 등으로 집약되고, 반면 도시의 이미지는 거리, 가로등, 공장, 노동자, 창녀, 감옥 등으로 표현되는데, 거기에는 도시생활에 대한 거부감이 서려 있다. 도시의 삶은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요구하며 종종 갖가지 경쟁과 싸움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그런 곳에서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파베세는 소외와 외로움을 발견했을 뿐이다.
반면 자연은 삶의 원동력으로 가득한 곳이고, 따라서 언덕을 배회하거나 풀밭에서 뒹굴고, 강물에서 목욕하고, 땅을 일구고, 포도밭 사이를 걸어가는 것은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고 자연과 동화되는 것을 뜻한다. '풍경'이라는 제목의 단시가 8편이나 실려 있는 것도 상징적이다. 물론 자연 풍경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풍경화처럼 바라보는 것이지만, 그 내면에는 생명의 모태가 되는 자연의 따뜻한 품에 대한 그리움이 담뿍 담겨 있는 듯하다.
이렇듯 도시의 삶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파베세는 고향과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위안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 뿐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고향은 마치 잃어버린 신화의 세계처럼 아득하고 붙잡을 수 없는 곳이었고, 현실의 삶은 더욱 '피곤'해질 수밖에 없었다. p.20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