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유 시선 지만지 고전선집 22
왕유 지음, 박삼수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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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月九日憶山東兄弟 (9월9일 중양절에 산동에 있는 형제를 생각하며)

 

                                             당. 왕유(王維. 699~759)

 

獨在異鄉為異客 (독재이향위이객)  홀로 타향에서 나그네 신세 되니

 

每逢佳節倍思親 (매봉가절배사친)  매번 명절만 되면 가족들 생각이 더 나네.

 

遙知兄弟登高處 (요지형제등고처)  멀리에서도 형제들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을 알 수 있으니

 

徧插茱萸少一人 (변삽수유소일인)  모두들 수유 꽂을 때 한 사람이 모자라리라.

 

 

요즘은 유치원생들도 졸업여행을 가고, 조기 유학이다 뭐다 해서 예전 세대들보다는 가족 간의 헤어짐 내지는 별거(別居)가 익숙해진 듯하다. 예전에는 먹고 살기 바빠 마음 놓고 여행 한번 제대로 가기 어려웠다. 기껏해야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가는 것이 고작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대학교에 들어가면 술타령, 친구타령에 여관방 전전하기 일쑤고, 또 그러다 군대 가면 3년을 가족과 헤어져 있어야 했다.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면 이 시가 금세 다가올 것이다. 어쨌거나, 이 시는 설날이나 추석, 생일 등으로 해서 가족들이 모여 있을 때 읽으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는, 명절용(?) 애송시라고 할 수 있다.

 

식구가 하나 늘면 별로 표가 나지 않는데, 하나가 빠지면 금세 표가 나기 마련이다. 이런 예는 비단 인간의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냉장고 안에 식료품이 더 들어간 것은 표가 나지 않은데, 누군가 한 두개라도 빼먹으면 주부는 금방 알아챈다. 책꽂이에 책을 몇 권 사다놓으면 책이 별로 는 것 같이 않은데, 누가 주인 몰래 한두 권이라도 빌려 가면 왠지 책꽂이가 허전하다. 지갑도 몇 만원이 들어오면 두둑하지가 않은데, 적은 돈이 나가도 금세 홀쭉해지는 것만 같다. 이렇듯 나는 것에 신경이 쓰이는 것처럼 우리는 늘 사라지는 것에 대해 마음이 간다. 언제 나는 존재가 될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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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 오르기’, 즉 등고(登高)는 고대 중양절의 주요 행사였다. 이날 사람들은 높은 곳에 올라서 반드시 수유(茱萸)를 머리에 꽂고, 국화주(菊花酒)를 마셔야 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전하는 바에 의하면, 동한(東漢)시대 여남(汝南)사람, 환경(桓景)은 방사(方士) 비장방(費長房)을 따라 다니며 도술(道術)을 배웠다고 한다. 어느 날 비장방이 환경에게 일렀다.

 

“9월 9일 여남 땅에 전염병이 돌 것이다. 어서 가서 주머니를 만들어 수유를 넣고, 온 가족의 팔에 맨 다음에 높은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게 하라. 그리하면 전염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날이 되자, 환경은 비장방이 일러준 대로 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보니 집에서 기르던 가축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환경은 죽은 가축들을 보고 비장방의 탁월한 예견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리하여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오르는 풍습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수유 열매를 머리에 꽂으면 잡귀(雜鬼)를 쫓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수유 열매가 붉은 자줏빛으로 예로부터 붉은 색이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지(冬至)에 팥죽을 쑤어먹음으로써 온갖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려는 우리나라의 풍습도 이와 통한다. 한 마디로 붉은색은 벽사(辟邪)의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국화주는 예로부터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약용주로 애용해왔다. 옛날 중국 고서(古書)에는 국화주를 상용(常用)하면 혈기를 더해주고 몸을 가뿐히 해주며 명이 길어진다고 씌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 국화주를 마셨다. 술을 좋아하지 않거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무병장수(無病長壽)를 위해서라면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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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업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법륜 지음, 유근택 그림 / 휴(休)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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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때는 의욕적으로 일하다가 어느 순간 일이 재미없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습관처럼 왔다갔다하다보니 생활에 활력이 없고 삶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일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일에서 활력과 재미를 얻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이 기쁨을 얻는 데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원해서 일을 할 때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는 있는데 지나놓고 보면 좀 무의미할 때가 있습니다. 젊을 때 술 먹고 매일 놀 때는 참 재미있는데, 10년 지나서 돌아보면 아무것도 한 게 없고 낭비한 것같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술집에 가서 막 떠들고 웃고 재미있게 놀았는데 문을 열고 나오면 뭔가 허전합니다. 남는 게 없고 유익함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인생에서 너무 재미만 좇다보면 나중에 허전함이라는 후회가 뒤따라올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사람은 또 남에게 뭔가 쓰임이 있었을 때, 어떤 유익한 일을 했을 때 기쁨을 느낍니다. 그때는 굉장히 힘들었지만 되돌아보면 그때 한 일에 대해서 자부심이 생깁니다. 참 의미가 있었다, 참 유익했다, 참 잘 했다, 힘들었지만 참 잘 했다, 싶은 게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주로 재미만 갖고 인생의 즐거움을 삼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뒤에 후회나 허전함, 공허함 같은 것이 생기게 됩니다. 한편 또 너무 삶의 의미 같은 것만 찾으면 현재의 삶이 힘들어지고, 스트레스도 많아져 지치기 쉽습니다.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어우러지면 가장 좋은데, 바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곧 자기 일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가장 조화로운 상태가 되는데, 우리는 보통 이 둘이 분리된 삶을 삽니다.

 

예를 들면 사회운동가들은 의미 있는 일을 하지만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치면 좀 쉬면서 자기 욕망을 위해서 일해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너무 남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소망도 충분히 수용하고 여유를 가지는 거예요. 그러면 다시 생기가 도록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사회에 관심이 가기도 합니다.

 

반대로 개인 일에만 충실했던 사람은 약간 지쳤을 때 자기 존재가 세상에 유의미한 존재라는 걸 자각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다시 생기가 돕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자기 원하는 대로 재미나는 것을 좇았는데, 조금 나이가 들어 허전함이 왔을 때는 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 해보는 게 좋습니다. 자기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에 쓴다든지, 직장일과 다른 성격의 육체노동 같은 봉사를 해보면 생기가 돌 수 있습니다.

 

저는 20대 때 슬럼프에 빠지면 주로 단식을 했습니다. 문 닫고 들어가서 일주일을 굶었습니다. 생명체라는 건 단식을 하면,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활기를 되찾는 것 같습니다. 일이 재미없고 활력이 없다 싶을 때는 지금까지 해 온 습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에서 시작해 보면 다시 생기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p.216~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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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진보 전집 - 제2판 을유세계사상고전
황견 엮음, 이장우.우재호.장세후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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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長恨歌 (장한가 : 긴 한탄)

 

                                               백거이(白居易. 772~846)

 

 

漢皇重色思傾國 (한황중색사경국)  한나라 황제 여색 중히 여겨 나라를 기울일 만한 미인 생각하며,

 

御宇多年求不得 (어우다년구부득)  천하를 다스리며 오래도록 구하여도 얻을 수가 없었네.

 

楊家有女初長成 (양가유녀초장성)  양씨 집안에 갓 장성한 딸이 있었는데,

 

養在深閨人未識 (양재심규인미식)  깊은 규방에 자라 남들은 아무도 몰랐네.

 

 

天生麗質難自棄 (천생여질난자기)  하늘이 낸 아름다운 바탕 그냥 버리기 어려운 법이니

 

一朝選在君王側 (일조선재군왕측)  하루아침에 뽑혀 군왕의 곁에 있게 되었네.

 

回頭一笑百媚生 (회두일소백미생)  머리 돌려 한 번 웃으면 백 가지 아름다움 생겨나,

 

六宮粉黛無顔色 (육궁분대무안색)  육궁의 화장한 미녀들 낯빛 잃고 말았네.

 

 

春寒賜浴華淸池 (춘한사욕화청지)  봄추위 때 화청지에서 목욕하게 하니,

 

溫泉水滑洗凝脂 (온천수활세응지)  온천 물 매끄럽게 엉긴 기름 때 씻어내네.

 

侍兒扶起嬌無力 (시아부기교무력)  시녀들 부축하여 일으키니 아리따워 설 힘도 없는 듯한데,

 

始是新承恩澤時 (시시신승은택시)  이때부터 새로이 황제 사랑 받기 시작하였네.

 

 

雲鬢花顔金步搖 (운빈화안금보요)  구름 같은 머리, 꽃 같은 얼굴, 금 보요 머리 장식

 

芙蓉帳暖度春宵 (부용장난도춘소)  연꽃 수놓은 휘장 따뜻하여 봄 깊은 밤 헤아리네.

 

春宵苦短日高起 (춘소고단일고기)  짧은 밤을 한탄하며 해 높이 떠 일어나셨으니

 

從此君王不早朝 (종차군왕부조조)  이로부터 군왕께선 이른 조회 보지 않았고

 

 

承歡侍宴無閑暇 (승환시연무한가)  총애 받아 연회에 모시느라 한가할 겨를 없었네.

 

春從春游夜專夜 (춘종춘유야전야)  봄을 좇는 춘정을 즐겨 온밤을 지새우니

 

後宮佳麗三千人 (후궁가려삼천인)  후궁에 아리땁고 고운 미녀 삼천 명이나 있었지만,

 

三千寵愛在一身 (삼천총애재일신)  삼천 명에 쏟을 총애 이 한 몸에 쏠렸네.

 

 

金屋粧成嬌侍夜 (금옥장성교시야)   금 같은 방에 단장하고 교태로 밤 시중들어

 

玉樓宴罷醉和春 (옥루연파취화춘)   옥루 잔치 끝나면 춘정을 이루었네.

 

姉妹弟兄皆列土 (자매제형개열토)  그녀의 자매 형제들 그녀 덕에 봉지(封地)를 나눠 받아

 

可憐光彩生門戶 (가련광채생문호)   부럽도다. 광채가 집 문에서 생겨났네.

 

 

遂令天下父母心 (수령천하부모심)  이로 하여금 세상 모든 부모들 마음이

 

不重生男重生女 (부중생남중생녀)   아들보다 딸 낳기를 중히 여기게 되었네.

 

驪宮高處入靑雲 (여궁고처입청운)  화청궁 높이 솟아 구름 속에 들어 있고

 

仙樂風飄處處聞 (선악풍표처처문)  신선의 풍악은 바람 타고 어디서나 들려오네.

 

 

緩歌慢舞凝絲竹 (완가만무응사죽)  느린 노래와 고요한 춤이 비단결과 피리에 맺히니

 

盡日君王看不足 (진일군왕간부족)  종일토록 군왕께서 구경하며 싫증내지 않으셨네.

 

漁陽瞽鼓動地來 (어양비고동지래)  어양에서 북소리 땅을 흔들며 들려오니,

 

驚破霓裳羽衣曲 (경파예상우의곡)  예상우의곡에 깜짝 놀라도다.

 

 

九重城闕煙塵生 (구중성궐연진생)  구중궁궐에 연기 먼지 솟아오르고

 

千乘萬騎西南行 (천승만기서남행)  수천수만 관군들은 서남으로 가네.

 

翠華搖搖行復止 (취화요요행부지)  천자의 기 흔들리며 가다가 서곤 하며

 

西出都門百餘里 (서출도문백여리)  도성문 서쪽 백 여리 마외역에는

  

 

六軍不發無奈何 (육군불발무내하)  6군의 병사들 발걸음 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宛轉蛾眉馬前死 (완전아미마전사)  누에 같은 눈썹 미인 병사들 말 앞에서 죽었네.

 

花鈿委地無人收 (화전위지무인수)  꽃 비녀 땅에 버려져도 줍는 사람 없었고

 

翠翹金雀玉搔頭 (취교금작옥소두)  물총새 꼬리 깃이며, 금 빛 참새, 옥 머리 장식 널렸네.

 

 

君王掩面救不得 (군왕엄면구부득)  군왕께선 얼굴 가린 채 구할 수 없어

 

回首血淚相和流 (회수혈루상화류)  차마 돌린 두 눈에 피눈물이 줄줄 흐르네.

 

黃埃散漫風蕭索 (황애산만풍소삭)  누런 흙먼지 일고 바람 쓸쓸히 부는데

 

雲棧縈紆登劍閣 (운잔영우등검각)  구름 걸린 굽은 잔도로 검각산을 오르네.

 

 

峨嵋山下少人行 (아미산하소인행)  아미산 아래엔 오가는 이도 드물어

 

旌旗無光日色薄 (정기무광일색박)   천자 깃발 빛을 잃고 해마저 저물었네.

 

蜀江水碧蜀山靑 (촉강수벽촉산청)  촉강 맑게 흐르고 촉산은 푸르건만

 

聖主朝朝暮暮情 (성주조조모모정)  황제는 아침저녁 양귀비 생각에 잠겨

 

 

行宮見月傷心色 (행궁견월상심색)   행궁에서 보는 달은 마음을 아프게 하고

 

夜雨聞鈴斷腸聲 (야우문령단장성)  밤비에 들리는 방울소리는 애간장 끊어지게 하네.

 

天旋地轉回龍馭 (천선지전회룡어)  천하 정세 변하여 황제 돌아오는 길에

 

到此躊躇不能去 (도차주저불능거)  마외역에 이르러서는 걸음 뗄 수 없었네.

 

 

馬嵬坡下泥土中 (마외파하이토중)  마외역 언덕 아래 진흙더미 속에는

 

不見玉顔空死處 (불견옥안공사처)  고운 얼굴 어디 가고 죽은 자리만 남아

 

君臣相顧盡沾衣 (군신상고진첨의)   임금 신하 서로 보며 눈물이 옷깃 적시네.

 

東望都門信馬歸 (동망도문신마귀)   동쪽 도성문 향해 말에 길을 맡겨 가니

 

 

歸來池苑皆依舊 (귀래지원개의구)  돌아와 본 황궁의 정원은 변함없어

 

太液芙蓉未央柳 (태액부용미앙류)  태액지의 부용도 미양궁의 버들도

 

芙蓉如面柳如眉 (부용여면유여미)  부용은 양귀비 얼굴, 버들은 눈썹 같으니

 

對此如何不淚垂 (대차여하불루수)  이것을 대하고도 어찌 눈물 흘리지 않으리.

 

 

春風桃李花開夜 (춘풍도리화개야)  봄바람에 복숭아며 살구꽃 핀 밤이요

 

秋雨梧桐葉落時 (추우오동엽락시)  가을비에 오동잎 떨어질 때라네.

 

西宮南苑多秋草 (서궁남원다추초)  서궁과 남원에 가을 풀 우거지고

 

宮葉滿階紅不掃 (궁엽만계홍불소)  궁전 낙엽이 섬돌을 덮어도 쓸지 않으니

 

 

梨園弟子白發新 (이원제자백발신)  이원의 자제들은 백발이 성성하고

 

椒房阿監靑娥老 (초방아감청아로)  양귀비 시중들던 시녀들도 늙었네.

 

夕殿螢飛思悄然 (석전형비사초연)  반딧불 나는 저녁 궁궐 더욱 처량하여

 

孤燈挑盡未成眠 (고등도진미성면)  등불 심지 다 타도록 외로이 잠 못 드니

 

 

遲遲更鼓初長夜 (지지경고초장야)  느릿한 시각을 알리는 북소리에 밤이 길다는 것 알았네.

 

耿耿星河欲曙天 (경경성하욕서천)  은하수 반짝이며 새벽은 다가오고

 

鴛鴦瓦冷霜華重 (원앙와랭상화중)  원앙같이 금슬 좋은 기와는 차고 서리꽃이 심해지니

 

翡翠衾寒誰與共 (비취금한수여공)  함께 덮을 이 없는 싸늘한 비취금침

 

 

悠悠生死別經年 (유유생사별경년)  생사를 달리한 지 아득하니 몇 년인가.

 

魂魄不曾來入夢 (혼백부증내입몽)  꿈속에 혼백마저 만나볼 수 없네.

 

臨邛道士鴻都客 (임공도사홍도객)  임공의 도인이 도성에서 머무는데

 

能以精誠致魂魄 (능이정성치혼백)  정성으로 혼백을 불러올 수 있다 하니

 

 

爲感君王輾轉思 (위감군왕전전사)  양귀비 그리워 잠 못 드는 군왕을 위해

 

遂敎方士殷勤覓 (수교방사은근멱)  방사시켜 양귀비 혼백 찾게 하였네.

 

排風馭氣奔如電 (배풍어기분여전)  바람타고 구름 몰고 번개처럼 내달아

 

升天入地求之遍 (승천입지구지편)  하늘 끝에서 땅 속까지 두루 찾아

 

 

上窮碧落下黃泉 (상궁벽락하황천)  위로는 벽락 아래로는 황천까지

 

兩處茫茫皆不見 (양처망망개불견)   두 곳 모두 망망할 뿐 찾을 길이 없는데

 

忽聞海上有仙山 (홀문해상유선산)  홀연 들리는 소문 바다 위에 선산 있어

 

山在虛無縹緲間 (산재허무표묘간)  그 산은 아득한 허공 먼 곳에 있고,

 

 

樓閣玲瓏五雲起 (누각영롱오운기)  누각은 영롱하고 오색구름 일어

 

其中綽約多仙子 (기중작약다선자)  그 곳에 아름다운 선녀들이 사는데,

 

中有一人字玉眞 (중유일인자옥진)  그 중 옥진이라 하는 선녀 하나 있으니

 

雪膚花貌參差是 (설부화모참차시)  눈 같은 피부와 고운 얼굴 그인 것 같다 하네.

 

 

金闕西廂叩玉扃 (김궐서상고옥경)  황금 대궐 서쪽 방의 옥문을 두드리고

 

轉敎小玉報雙成 (전교소옥보쌍성)  소옥 시켜 쌍성에게 알리도록 말 전하니  

 

聞道漢家天子使 (문도한가천자사)  한황제의 사자가 왔다는 말 전해 듣고

 

九華帳里夢魂驚 (구화장리몽혼경)  구화전 장막 안에서 꿈꾸던 혼 놀라 깨었네.

 

 

攬衣推枕起徘徊 (남의추침기배회)  옷을 들고 베개 밀고 일어나 서성이더니

 

珠箔銀屛迤邐開 (주박은병리이개)  길게 이어진 구슬발과 은 병풍 열리니

 

雲髻半偏新睡覺 (운빈반편신수교)  구름 같은 머리 한쪽으로 드리우고 막 잠에 깬 듯

 

花冠不整下堂來 (화관부정하당래)  머리장식 안 고친 채 당에서 내려오네.

 

 

風吹仙袂飄飄擧 (풍취선몌표표거)  바람 부는 대로 소맷자락 나부끼니

 

猶似霓裳羽衣舞 (유사예상우의무)  예상우의무를 추던 그 모습인 듯

 

玉容寂寞淚欄干 (옥용적막루난간)  옥 같은 얼굴 수심 젖어 눈물이 난간에 흐르니

 

梨花一枝春帶雨 (이화일지춘대우)  활짝 핀 배꽃 한 가지 봄비에 젖은 듯하구나.

 

 

含情凝睇謝君王 (함정응제사군왕)  정어린 눈길 돌려 군왕에게 사뢰니

 

一別音容兩渺茫 (일별음용양묘망)  헤어진 뒤 옥음, 용안 듣고 뵙지 못하여

 

昭陽殿里恩愛絶 (소양전리은애절)  소양전에서 받던 은총도 끊어지고

 

蓬萊宮中日月長 (봉래궁중일월장)  봉래궁에서 보낸 세월이 오래건만

 

 

回頭下望人寰處 (회두하망인환처)  머리 돌려 저 아래 인간세상 보아도

 

不見長安見塵霧 (불견장안견진무)  장안은 보이지 않고 짙은 안개와 먼지 뿐  

 

唯將舊物表深情 (유장구물표심정)  장차 오래 지닐 물건으로 깊은 정을 표하려니

 

鈿合金釵寄將去 (전합금차기장거)  자개 상자와 금비녀를 가져다 드리시길.

 

 

釵留一股合一扇 (차류일고합일선)  비녀 반쪽 상자 한 짝 남겼으니

 

釵擘黃金合分鈿 (채벽황김합분전)  황금 비녀 가르고 자개 상자 나눴네.

 

但令心似金鈿堅 (단령심사금전견)   두 마음 이처럼 굳고 변치 않는다면

 

天上人間會相見 (천상인간회상견)  천상이든 인간 세상이든 다시 보게 되리니.

 

 

臨別殷勤重寄詞 (임별은근중기사)  헤어질 즈음 간곡히 다시 하는 말이

 

詞中有誓兩心知 (사중유서양심지)  그 말에는 두 마음 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네.

 

七月七日長生殿 (칠월칠일장생전)  칠월 칠석 날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 (야반무인사어시)  인적 없는 깊은 밤 속삭이던 말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서는 원컨대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서는 원컨대 연리지가 되자고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  천지가 영원하다 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  이 슬픈 사랑의 한은 끊일 때가 없으리.

 

 

 *雲髻半偏新睡覺 (운빈반편신수교) : 覺 ⇒ 깨닫다는 뜻일 때는 각/ 깨다의 뜻일 때는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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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 전
이노우애 야스시 지음, 김유동 옮김 / 시와진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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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楊貴妃.719~756)의 본명은 옥환(玉環)으로, 현종의 열여덟 번째 아들인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비(妃)였다. 736년 현종은 사랑하던 무 혜비(武惠妃)를 잃고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리따운 후궁이 3천 명이나 있었지만 누구 하나 현종의 마음을 끄는 여인이 없었다. 이럴 즈음 현종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자신의 아들인 이모의 부인이 절세 미녀라는 소문이었다. 이 여인이 바로 양귀비였다. 풍만하고 미색이 뛰어난 데다 가무에도 능한 그녀는 과연 현종의 눈에 들 만했다. 문제는 그녀가 자기 아들, 그것도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무 혜비가 낳은 아들의 비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사랑에 눈이 먼 56세의 황제에게는 결코 문제가 될 수 없었다.

 

현종은 양귀비를 후궁으로 삼기 위하여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곁에 두었으며, 아들 이모에게는 위씨(韋氏)라는 여인을 비로 삼게 하여 위무했다. 그리고 5년 뒤인 천보(天寶)4년(745년) 61세의 현종은 27세의 옥환을 귀비(貴妃)로 정식 책봉했다. 현종은 오직 양귀비에게만 정신이 팔려 정치에 대해 흥미를 잃고 말았다. 현종은 모든 정무를 간신 이임보(李林甫. ?~752)에게 맡기고, 양귀비와의 유흥에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임보는 음험하고 교활하며 악랄한 자였지만, 아주 너그럽고 선량한 체하며 입에 꿀을 바른 것처럼 감미롭게 말하여 사람들은 그를 좋은 사람으로 여겼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줄곧 다른 사람들을 음해했으며, 특히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이나 자기 밑으로 들어오지 않는 사람, 자기 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비방하고 참소(讒訴)하여 멀리 귀양 보내거나 죽이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당시 사람들은 이임보를 “입으로 내뱉은 말은 꿀 같지만,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외면(外面)으로는 친절한 듯하나, 내심으로는 해칠 생각을 품음을 비유한 '구밀복검(口蜜腹劍)'이란 성어가 여기에서 생겨났다.

 

궁중의 법도 상 귀비의 지위는 황후 다음이었지만, 양귀비는 사실상 황후 이상의 권세를 떨쳤다. 그리고 그녀의 일족들도 차례차례 고관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양귀비는 원래 고아 출신으로 양씨 가문에 양녀로 들어간 것이었는데, 현종은 양귀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양씨 가문을 특별히 배려했다. 양귀비의 세 언니를 한국부인(韓國夫人), 진국부인(秦國夫人), 괵국부인(虢國夫人)에 봉하고, 그들도 몹시 총애했다. 그녀들은 자유롭게 황궁을 출입했으며, 그들 면전에서는 어느 누구도 마음대로 앉지 못했다. 양귀비의 육촌 오빠 양소(楊釗.?~756)는 품행이 좋지 않았는데도 현종의 신임을 얻어 국충(國忠)이라는 이름까지 하사 받았으며, 승승장구해서 요직이란 요직은 다 거쳤다. 이로써 양씨 집안 세력은 만조백관을 압도했으며, 신분상승을 노리는 사람들은 앞 다투어 양씨 집안에 뇌물을 바치고 아첨을 일삼았으니,양씨네 문 앞이 마치 시장판처럼 북적댔다.

 

한편 남방 출신인 양귀비는 과일 중에서 특히 여지(荔枝)를 좋아했다. 여지는 잔가시처럼 꺼칠꺼칠한 진홍색 껍질에 아기 주먹만 한 반투명 과육(果肉)이 제법 맛있는 과일인데, 사천산(四川産)의 맛이 특히 뛰어났다. 덜 익은 여지는 제 맛이 안 나고, 익은 것은 쉽게 상하기 때문에 멀리 사천에서 장안까지 제 맛 나는 여지를 수송하기 위해 역마(驛馬)는 쉬지 않고 달려야 했다.

 

현종은 대외적으로 병사들을 혹사시키면서까지 무공(武功)을 지나치게 중시했고, 변방의 장수를 총애했다. 또한 국비를 소모하면서까지 권위를 과시하려 했는데, 이는 야심만만한 무신, 장군들의 세력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종은 정사를 이임보와 양국충에게 위임하고, 상소의 심사, 비평은 환관 고력사(高力士. 684~762)가 결재토록 하는 등 자신은 정무를 등한히 하고 오로지 후궁에서 향연을 즐기며 사치와 방탕을 일삼았다.

 

이렇게 되자, 개원(開元)24년(736)부터 천보(天寶) 연간에 걸쳐 조정에서는 간신들이 제멋대로 정사를 농락했고, 현종은 양귀비에게 정신이 팔려 당 왕조는 쇠퇴 일로를 치닫고 있었다. 농촌에서는 균전제(均田制)가 무너져 국가의 세입원이 위협받았고, 이에 따라 조정의 재정은 점점 궁핍하게 되엇다. 군사체제의 토대가 되었던 부병제(府兵制)도 무너져 군의 사기와 전투력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변경에서 군대를 지휘하던 절도사(節度使)들은 강력한 군사력을 장악해 당 왕조를 위협할 만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마침내 천보 14년(755) 안녹산(安祿山.705~757)이 양국충을 토벌한다는 이유를 들어 반란을 일으켰다. 현종은 양귀비가 총애하는 안녹산을 친자식처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모반을 일으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안녹산의 반란을 보고받은 현종은 처음에는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잇달아 들어오는 보고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황한 현종이 수도 장안을 수비할 병력을 찾았으나, 이미 전투를 할 만한 군사가 전무했다. 한편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은 안녹산군은 진격을 계속해 파죽지세로 낙양을 함락했다.

 

다급해진 현종은 양귀비와 그 자매, 황족, 측근 신하들을 데리고 피란길에 올랐다. 무장한 천 명의 병사가 이들을 호위해 서남쪽 촉(蜀) 땅으로 향했다. 다음날 장안에서 백여 리 떨어진 마외역(馬嵬驛)에 도착했는데, 굶주림과 피로에 지친 병사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말았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 재상 양국충 때문이라고 생각한 병사들은 양국충의 목을 베고 현종의 앞길을 막았다. 그리고 소리 높여 현종에게 양귀비를 죽여야 한다고 외쳐댔다. 병사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자 현종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현종은 눈물을 삼키며 양귀비에게 목을 매라고 명했다. 이렇게 해서 양귀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당나라의 태평성대는 두 번 있었다. 한번은 태종의 ‘정관의 치(貞觀之治)’이고, 또 한 번은 현종의 ‘개원의 치(開元之治)‘이다. 개원의 치는 현종이 즉위한 후 현명한 재상들을 써서 내치에 힘쓰고, 변경에 절도사를 설치하여 국위를 펴서, 학예가 발달하고 국력이 부강하고 천하가 태평했던 시절이다. 그러던 현종이 50대가 되자 정무에 싫증을 내기 시작하면서 불행을 자초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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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강설 사서삼경강설 시리즈 5
이기동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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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유괘 상구上九의 효사)에서 말하기를, “하늘로부터 도와 길(吉)하고 이롭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우(祐)란 돕는다는 것이다. 하늘이 도와주는 것은 하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의 경우이고, 사람이 도와주는 것은 미더운 사람의 경우이다. 미더움을 실천하고 하늘의 뜻에 따를 것을 생각하며, 또한 그러한 마음으로 어진 사람을 숭상하므로 그 때문에 하늘에서부터 도와주어 길(吉)하고 이롭지 않음이 없다.”

 

易曰自天祐之라 吉无不利라하니 子曰祐者는 助也니 天之所助者 順也오 人之所助者 信也니 履信思乎順하고 又以尙賢也라 是以自天祐之吉无不利也니라.

 

 

하늘은 모든 존재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며 ‘삶의 의지’이다. 배고플 때 먹도록 유도하고. 피곤하면 쉬도록 유도하며, 밤이 되면 자도록 유도하는 것 등등은 모두 궁극적으로 하늘의 뜻이오, 자연의 원리이다. 이러한 자연의 원리에 따라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 삶이 충만해진다. 이것이 바로 ‘하늘이 돕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삶의 모든 양상에 적용될 수 있다. 모든 삶의 과정에서 하늘의 뜻을 따르면 삶이 충만해지고, 그렇지 않으면 위축된다.

 

사람은 서로 돕고 살기 마련이다. 혼자 힘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삶이 순조롭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고달프다. 그렇다면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어떠한 경우인가?

 

인간의 삶은 사랑받고 인정받을수록 충만해진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해 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에게로 마음이 기울게 마련이다. 마음이 가면 도와주고 싶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은 그 만큼의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게 된다. 남을 사랑하고 인정하는 마음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신(信)이다. 신의가 있는 사람은 남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러나 도움을 받을 목적으로 남을 사랑하고 인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사랑을 베푸는 경우라면 상대가 강도(强盜)이거나 매국노라 해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러한 사람들은 미워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니, 그것이 의(義)이다.

 

남을 사랑하고 인정하는 마음이 그 대상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갈등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일정 수의 학생만을 수용하는 학교에 그 이상의 지원을 했거나, 마찬가지의 상황에 있는 조직에 그 이상이 지원한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개인적 감정이나 대상의 배경 등에 의거하여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공평하게 시험을 치러 현명한 사람 순으로 선발해야 한다. 그래서 ‘신의를 실천하고 하늘의 뜻에 따르면서도 현명한 사람을 숭상해야 한다.’고 했다. p.92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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