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부 한국적 행서 시리즈 7
황성현 지음 / 서예문인화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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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부>는 송의 신종(神宗.1068~1085) 원풍(元豊) 5년(1082년) 7월 16일에 소식(蘇軾. 1037~1101)이 친구 양세창(楊世昌)과 더불어 황주성(黃州城) 밖 적벽에서 놀고, 그해 10월 15일에 다시 곽구(郭遘), 고경도(古耕道)와 함께 놀 때 지은 두 편의 글이다. 천지(天地)의 장구(長久)함과 인생의 짧음을 대비시키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환희와 감동을 읊었다. 앞의 것을 <전 적벽부>, 뒤의 것을 <후 적벽부>라 한다.

 

흔히 ‘적벽’하면 <삼국지(三國志)>를 연상하고, 적벽대전(赤壁大戰)이 벌어진 적벽을 떠올린다. 그 적벽은 호북성(湖北城) 적벽시(赤壁市) 부근 양쯔강 남쪽 강변에 있는 곳을 말한다. 유감스럽게도 소식의 <적벽부>에 나오는 <적벽>은 그 적벽이 아니다. 같은 호북성이지만 좀 더 양쯔강 하류에 위치한 황주(黃州)ㅡ오늘날의 황강현(黃岡縣)ㅡ부근의 명승지를 가리킨다. 송대 황주성 서북쪽 장강(長江)가에는 적갈색의 바위 절벽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붉은 코와 비슷하여 ‘적비산(赤鼻山)’이라 부르기도 하고, 절벽이 담처럼 서 있어 ‘적벽(赤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적벽 위에는 서하루(棲霞樓), 죽루(竹樓), 월파루(月波樓), 함휘루(涵輝樓) 등의 누대가 있어 경치를 감상하는 유람지가 되었다.

 

임술(壬戌) 가을 7월 기망(旣望)에 소자(蘇子)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절벽 아래서 노니, 맑은 바람이 서서히 불어와, 물결조차 일어나지 않네.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우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니,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떠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는데, 흰 이슬은 강물 위에 비껴 있고, 물빛은 하늘에 닿았네.

 

일엽편주(一葉片舟)를 물결에 내맡기고, 만경창파(萬頃蒼波)를 끝없이 흘러가니, 마음이 시원한 것이 마치 허공에 떠올라 바람을 타고 한없이 날아갈 듯하여 그칠 바를 모르겠고, 마음이 들떠서 세상일을 모두 잊고 홀로 서서 날개를 달고 신선이 되어 오르는 기분이네.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櫓)와 목란(木蘭) 상앗대로 맑은 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쳐서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네. 아득하고 아득한 내 마음이여! 미인을 바라보니 하늘 한쪽에 있도다.‘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연하는 듯, 여음(餘音)이 가늘고 길게 이어져 끊어지지 않음이 마치 실과 같으니,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게 하고, 외로운 배를 의지해 살아가는 홀어미를 울게 하네.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여미고 똑바로 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하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날아간다.”는 것은 조맹덕(趙孟德)의 시가 아닌가?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이 서로 얽혀 빽빽하게 푸른데, 여기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을 치른 데가 아니던가?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격파하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 제,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가니 배는 천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네. 술을 걸러 강가에 서서 창을 비껴들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일진대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를 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하고 있음에랴. 한 척의 조각배를 타고서 술잔을 들어 서로 권하고, 하루살이 삶을 천지에 의지하니 넓고 큰 바다에 떠 있는 좁쌀 한 알 같은 존재로다. 우리네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장강(長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나는 신선과 더불어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오래도록 즐기다가 마치는 것을, 불현듯 얻지 못할 것임을 알고, 여운을 슬픈 바람에 맡기네.“

 

소자가 말하되, “손도 대저 물과 달을 아는가? 강물이 흘러가는 것은 이와 같지만, 일찍이 아주 흘러가버린 적이 없으며, 만물이 변한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천지도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고, 불변한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만물과 내가 모두 무궁무진한 것이니 또 무엇을 부러워 하리요? 또한 대저 천지 사이의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면 비록 터럭 하나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위에서 불어오는 청풍과 산과 산 사이에 뜬 명월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면 아름다운 빛을 이루어서, 이를 가져도 금함이 없고, 이를 써도 다함이 없으니, 이는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이상이 바로 <전 적벽부>의 전문(全文)이다. 글 전체가 풍경과 감정이 어우러져 있고, 철학적 의미가 가득하다. 소식은 유배생활이라는 역경 속에서도 낙관적인 자세를 잃지 않고 이와 같이 드넓은 사상을 가슴에 품었다. 역시 위대한 문인들은 유배지에서도 걸작을 남긴다. 우리의 경우만 해도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이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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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부 한국적 행서 시리즈 7
황성현 지음 / 서예문인화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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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 신종(神宗.1068~1085) 원풍(元豊) 5년(1082년) 10월 소식(蘇軾)은 친구들과 다시 적벽을 다녀와 <후 적벽부(後赤壁賦)>를 지었다.

 

이 해 음력 10월 15일에 설당(雪堂: 황주에 있는 소식의 별당 이름)으로부터 걸어서 임고(臨皐 : 소식의 거주지인 임고정 臨皐亭을 말함)로 돌아가려고 할 때 두 손(客)이 나를 따라서 황니(黃泥 : 누른 진흙)의 고개를 지나가게 되었네.

 

서리와 이슬이 이미 내리고, 나뭇잎은 모두 떨어졌네. 사람의 그림자가 당에 길게 끌리기에 우러러 밝은 달을 보았네. 달을 보니 즐거운 마음이 되어 걸으면서 노래 부르며 서로 화답했네.

 

얼마 후 내가 탄식하며 말했네. “손님이 있어도 술이 없고, 술이 있다 하되 안주가 없구나! 달은 밝고 바람은 시원한데, 이처럼 좋은 밤에 어찌하면 좋을까?”

손이 말하기를, “오늘 해질 무렵에 그물을 들어 올려 고기를 잡았는데, 입이 크고 비늘이 가느다란 모습이 흡사 송강(松江: 송강의 농어는 맛이 좋음)의 농어와 같았네. 그런데 어디에서 술을 얻을 수 있을까?”

 

돌아와 아내와 상의하니, 아내가 말하기를, “저에게 한 말의 술이 있는데, 그것을 간직한 지 오래 되었사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이 불시에 필요할 것에 대비했던 것이옵니다.”

 

이렇게 해서 술과 물고기를 가지고 다시 적벽 아래에서 놀게 되었네. 갈물은 소리 내어 흘러가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은 대단히 높아, 산은 높고 달은 작게 보이며, 물은 줄어 바닥의 돌이 드러났네.

 

일찍이(7월 기망 이후 지금까지) 세월이 얼마나 지났기에 강산을 다시 알아볼 수 없단 말인가! 이에 옷소매를 걷어 올리고 강 언덕 위에 올라, 험준한 바위를 밟고, 수북하게 자란 잡초를 해치기도 하고, 호랑이와 표범 모양의 바위에 쪼그려 앉기도 하고, 용 모양처럼 꾸불꾸불한 나무에 오르기도 하고, 송골매가 서식하는 위태로운 둥지에 오르기도 하고, 풍이(馮夷 : 水神 하백을 말함)가 산다는 물 속 깊숙한 궁전을 내려다보기도 했네. 두 손(客)은 따라올 수 없었네.

 

때는 바야흐로 한밤중이 되어 사방을 둘러보니, 아무런 기척도 없이 조용해졌네. 때마침 외로운 학이 있어서 강을 가로질러 동쪽에서 날아왔으니, 날개는 수레바퀴만 하고 몸은 하얗고 꼬리는 검었는데, 길게 울면서 내 배를 스쳐 지나서는 서쪽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네. 잠시 후 손도 떠나고 나 역시 잠자리에 들게 되었네.

 

꿈에 도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새의 깃으로 만든 옷을 입고서 춤추듯이 펄럭이며 날아서 임고정(臨皐亭) 아래를 지나다가 나에게 읍(揖)하면서 말하기를, “적벽에서 노는 것이 즐거우셨습니까?” 이름을 물었으나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네. “오호라! 내가 그대를 알겠소이다. 지난밤에 울면서 내 배를 스쳐 지나간 학이 바로 그대가 아니시오?” 도사가 돌아보면서 웃는 순간, 나 또한 놀라 깨어나, 문을 열고 내다보았지만 그가 있는 곳을 알 수가 없게 되었네.

 

이 글은 풍경을 주로 묘사했다. 초겨울 밤 강상(江上)의 경물(景物)을 잘 묘사했고, 세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작자의 심정이 멋들어지게 표출되었다. 그의 탁월한 문장력은 읽는 이로 하여금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별히 꿈속에서 도사로 변한 학의 모습을 묘사하여 글의 신비감을 한층 더하고 있다.

 

이렇듯 <전․후 적벽부>는 비록 부체(賦體)로 씌었으나, 한(漢), 위(魏), 육조(六朝)시대 사륙병려체의 장편 부(長篇賦)와 크게 다르다. 오히려 산문에 가까워 글자 수가 일정치 않고 압운(押韻)에 매이지 않아 참신하면서도 유창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예술적으로 매우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두 편의 <적벽부>는 이후, 희곡, 회화, 조각 등에 창작 제재를 제공함으로써 중국문학과 예술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청대(淸代)의 어느 문인은 아예 황주의 적벽을 동파적벽(東坡赤壁)이라 명명하고, 이를 누대(樓臺)의 편액(扁額)에 새겨 그 명성을 천하에 전했다. 오늘날에도 황강(黃岡)의 동파적벽에 ‘이부당(二賦堂)’, 뇌강정(酹江亭)‘, 파선정(坡仙亭)’ 등의 명승지가 남아 있는 것은 중국문학 속에 이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을 실감나게 한다. 한편 소식은 이 시기에 많은 시문을 썼는데, 적벽을 시로 읊지 않은 점은 특기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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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 전세계가 주목한 코넬대학교의 "인류 유산 프로젝트"
칼 필레머 지음, 박여진 옮김 / 토네이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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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방이면 자녀 양육과 관련한 온갖 문제들이 거짓말처럼 해결되는 '마법의 특효약'은 없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게 될 문제들을 미리 경고해 주며, 평생 아이와 유대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특별한 비법 말이다. 인생의 현자들은 그 비법이 바로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귀띔한다. 그들은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필요하다면 희생도 감수하라고 말한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이리저리 방법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인생의 현자들은 말한다. 자녀와 평생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도록 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오직 시간이라고.

 

아이가 부모에게 원하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부모가 곁에 있어주는 것이다. 특히 함께 있고 싶을 때는 더욱 그렇다. 가족을 부양하느라 밤낮으로 일하는 부모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좀더 비싼 물건을 사고 휴가를 좀더 즐기기 위해 일에 빠져 지낸다면 시간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훗날 가장 후회스러운 것이 있다면 바로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라고 인생의 현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그리고 아이들 역시 부모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자녀들이 자신과 도통 시간을 보내려 하지 않는다며 불평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런데 상당수의 부모들이 뭔가 잘못 알고 있다. 실제로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부모가 무언가 함께 하자고 명령하는 것이 문제이다. 대안은 있다. 관심이 있건 없건 자녀들의 관심사를 함께 하는 것이다.

 

나는 상당히 일찍부터 이 전략을 이용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나는 남자형제만 넷인데, 지금은 한나와 사라, 딸만 둘 둔 아버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두 딸들이나 나와 함께 하길 원했던 것들 중 대부분은 도대체 왜 그것을 하고 싶은지 도통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찌감치 아이들이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있으면 기꺼이 하리라 마음먹었고, 그것이 무엇이든 나도 관심을 가져보기로 결심했다.

 

예컨대 쇼핑이 그중 하나다. 몇 년 동안 나는 뉴욕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딸들과 함께 갔다. 다른 부모들이라면 억지로라도 딸들을 박물관에 데려가려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대신 딸들이 원하는 대로 신발 가게를 수십 군 데나 돌아다녔다. 옷가게나 액세서리 가게도 셀 수 없이 다녔다. 그리고 딸들이 15센티미터가 넘는 힐이나 파격적인 복고풍 장신구를 보고 감탄하는 동안 앉아서 맞장구를 쳐주곤 했다. 웬만한 여자들보다 여성화나 여성의류에 대해 더 많이 아는 아빠라고 너스레까지 떨면서 말이다.

 

그런데 딸뜰과 함께 보냈던 그 시간의 대가는 실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했다. 내가 딸들과 함께 한 것은 어떤 행위가 아니라 바로 시간이다. 우리는 시간을 나눈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다. 일과 중 생긴 자투리 시간이거나 어쩌다 갖게 된 짧은 휴식 시간이 다였다. 그러나 그 시간에 딸들과 나는 대화를 나누고, 신뢰를 쌓고,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소통의 기적을 맛보기도 했다.

 

일곱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전 재무부장관 로버트 라이시가 한 잡지에 썼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이 생각난다. 그는 자녀들에 대해 제대로 알려면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조개를 비유로 들었다. 그는 아이들이란  조개 같아서 평소에는 껍데기를 꽉 닫고는 딱딱한 모습을 보여 주지만 그 속은 더없이 연약하고 상처받기 쉽다고 설명한다. 예기치못한 순간, 아이들이 단단한 껍데기를 열 때가 있다. 바로 그 순간 부모가 그 자리에 없다면 "달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는 말한다.

 

어느 날 자녀가 불쑥 이런 이야기를  툭 꺼내놓을 수도 있다. "요즘 영어 선생님이 나만 미워해." 혹은 "그 여자애가 수업 시간에 어떤 남자 애한테 고백을 했다니까." 자녀와 시간을 더 보내지 못했던 탓에 이런 순간들을 놓친 현자들은 후회한다. 반면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이들은 그것이야말로 살면서 내린 가장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p.126~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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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어야 할 때 나아가야 할 때 돌아봐야 할 때
쑤쑤 지음, 김정자 옮김 / 다연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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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세상, 험악하고 흉흉한 인심...., 많은 이가 이러한 현실을 원망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에서나 조심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며 사는 것은 정말 피곤하다. 그런데 사실, 복잡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늦봄의 어느 해 질 무렵, 우전 지역의 오래된 거리를 여행하다가 독특한 액세서리 가게를 발견하고 들어갔다. 안에는 목걸이, 팔찌, 비녀 등의 액세서리가 진열되어 있었는데 정교한 디자인에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이 많았다. 그중 연꽃 모양의 은팔찌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나는 바로 점원과 흥정을 시작했고, 68위안에 타협을 보았다. 그리고 팔찌를 손목에 차고 100위안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점원은 전대를 뒤지더니 웃으며 말했다.

“죄송한데 지금 잔돈이 부족하네요. 잠시 기다리시면 돈을 바꿔서 드릴게요.” 점원은 가게를 나가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나도 점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가이드가 어서 오라고 재촉했다. “빨리 오세요. 팀에서 이탈하지 마세요!” 동행한 친구가 말했다. “네가 기다려줄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늦게 나타나는 걸지도 몰라. 그냥 팔찌만 챙기고 나가자.” 나는 점원을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이드가 친구의 말이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거들자 한순간 동요되었다. 가이드는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주는 사람이니까!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발길을 돌렸다.

 

“오래된 거리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순박하지 않구나!”

팀에 합류한 나는 가이드를 따라 다리를 건너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저기요. 손님! 잠깐만요!” 뒤를 돌아보니 아까 그 점원이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점원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관광 성수기라서 잔돈을 바꾸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바꿔 오니까 이미 안 계시더라고요. 자, 여기 거스름돈 삼십이 위안입니다. 세어보세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겸연쩍은 웃음을 흘렸다. 점원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시원하게 말했다.

“설마요. 제가 이 거리 명성에 먹칠을 할 순 없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점원을 보자, 근거도 없이 그를 의심했던 내가 부끄러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점원의 태도는 오래된 거리의 체면을 세워주고도 남았다. 나는 세월이 흘러 해 질 무렵이 되면 지금의 풍경이 떠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때의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한 노인이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이 먼저 단순해진다면 세상도 단순해질 것이다.”

인생에는 세 가지 경지가 있는데 해탈한 선승의 말을 인용해 표현해 보면, 첫 번째는 산은 산이라 하고, 물은 물이라고 하는 경지다. 두 번째는 산은 산이 아니라고 하고, 물은 물이 아니라고 하는 경지다. 세 번째는 산은 여전히 산이고, 물은 여전히 물이라고 하는 경지다. 세상에 태어날 때는 누구나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모든 것이 새로우며, 눈에 보이는 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누가 이것이 산이라 하면 산으로 받아들이고, 저것이 물이라 하면 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세상 경험을 쌓아가면서 많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 문제는 많아질수록 복잡해지며, 옳고 그름이 뒤섞인다. 이치에 맞지 않은 사람은 세상을 누비는데 이치에 맞는 사람은 오히려 한 걸음도 떼지 못하며, 착한 사람은 보상을 받지 못하는데 나쁜 사람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 단계에서는 격정적이고, 걱정이 많고, 우울해하고, 의심과 경계심이 많아지고, 머리가 복잡하고, 뭐든 쉽게 믿지 못한다. 이때는 산을 봐도 탄식하고, 물을 봐도 한숨 쉰다. 다시 말해 이것을 가리키며 실제로는 저것을 욕하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때 산은 더는 단순한 산이 아니고, 물도 더는 단순한 물이 아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에 달렸다. 그러니 계속 두 번째 경지에 머물러야 한다면 삶은 고통의 연속일 것이다. 이 산을 오르면 저 산이 높아 보이고, 저 산을 오르면 다시 다른 산이 높아 보인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온갖 지혜를 짜내고, 신경 써야 해서 영원히 만족할 수 없다. 세상은 하나의 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람 밖에 또 사람이 있고, 하늘 밖에 또 하늘이 있으니 계속 돌고 돈다. 하지만 인생은 짧고 유한한데 어찌 영원히 따지고 계산하겠는가? 그래서 많은 사람이 두 번째 경지에서 죽음 을 맞이한다. 평생 목표를 향해 바쁘게 달려오며 스스로 자부심도 느끼지만, 결국 원하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원망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자기 수양을 통해 세 번째 경지에 도달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깨달음을 얻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때는 최선을 다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주변 사람을 대하면서 계산하지 않는다. 번잡한 속세에 있어도 시원한 바람과 맑은 달을 즐기며, 힘든 일에 직면해도 웃어넘기며 어떤 상황에서도 너그럽게 이해한다. 그리고 산을 보면 여전히 산으로 보고, 물을 보면 여전히 물로 본다.

 

요컨대 사람은 본래의 사람이고, 억지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세상 역시 본래의 세상이고, 사회에서 너무 잘 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렇게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 P.168~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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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그 길을 묻다 -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안희경 지음 / 이야기가있는집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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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문명, 과연 그 문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인가? 세계적인 석학 11인에게 오늘날의 문명에 대해 그 나아갈 길을 묻는다. 이대로 지속되면 앞으로의 미래는 희망이 있는가? 애석하게도 석학들은 현대 문명을 위기로 진단한다. 멈출 줄 모르고 끝없이 개발하는 지하자원은 향후 50년이면 바닥날 것이고, 환경오염 문제로 50년 내 지구에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 예언한다. 이 문명을 조금이라도 오래 지속시키려면 개발의 속도를 조금씩 늦추고 자원개발을 늦추어야 후손에게 희망이 있는 세상을 물려줄 수 있다고 충고한다. 끝없이 치닫는 핵무기 경쟁이나 살상무기개발,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무자비한 자원 채취와 소비문화는 지구의 미래를 암울하게 할 것이다. 지구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시키려면 세계 각국이 협상을 통해 환경오염을 줄이고, 강력한 인명살상무기의 개발을 자제하며, 씨를 말리는 어류의 남획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인류는 이 난제를 원만하게 풀어갈 것인가? 석학들에게 그 해답을 물어보고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지금은 문명의 앞날을 가늠하는 기로에 서 있다. 첨단문명이 오히려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지 모를 위험한 시대, 석학들의 의견에 귀 기울일 때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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