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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부 ㅣ 한국적 행서 시리즈 7
황성현 지음 / 서예문인화 / 2011년 11월
평점 :
<적벽부>는 송의 신종(神宗.1068~1085) 원풍(元豊) 5년(1082년) 7월 16일에 소식(蘇軾. 1037~1101)이 친구 양세창(楊世昌)과 더불어 황주성(黃州城) 밖 적벽에서 놀고, 그해 10월 15일에 다시 곽구(郭遘), 고경도(古耕道)와 함께 놀 때 지은 두 편의 글이다. 천지(天地)의 장구(長久)함과 인생의 짧음을 대비시키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환희와 감동을 읊었다. 앞의 것을 <전 적벽부>, 뒤의 것을 <후 적벽부>라 한다.
흔히 ‘적벽’하면 <삼국지(三國志)>를 연상하고, 적벽대전(赤壁大戰)이 벌어진 적벽을 떠올린다. 그 적벽은 호북성(湖北城) 적벽시(赤壁市) 부근 양쯔강 남쪽 강변에 있는 곳을 말한다. 유감스럽게도 소식의 <적벽부>에 나오는 <적벽>은 그 적벽이 아니다. 같은 호북성이지만 좀 더 양쯔강 하류에 위치한 황주(黃州)ㅡ오늘날의 황강현(黃岡縣)ㅡ부근의 명승지를 가리킨다. 송대 황주성 서북쪽 장강(長江)가에는 적갈색의 바위 절벽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붉은 코와 비슷하여 ‘적비산(赤鼻山)’이라 부르기도 하고, 절벽이 담처럼 서 있어 ‘적벽(赤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적벽 위에는 서하루(棲霞樓), 죽루(竹樓), 월파루(月波樓), 함휘루(涵輝樓) 등의 누대가 있어 경치를 감상하는 유람지가 되었다.
임술(壬戌) 가을 7월 기망(旣望)에 소자(蘇子)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절벽 아래서 노니, 맑은 바람이 서서히 불어와, 물결조차 일어나지 않네.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우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니,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떠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는데, 흰 이슬은 강물 위에 비껴 있고, 물빛은 하늘에 닿았네.
일엽편주(一葉片舟)를 물결에 내맡기고, 만경창파(萬頃蒼波)를 끝없이 흘러가니, 마음이 시원한 것이 마치 허공에 떠올라 바람을 타고 한없이 날아갈 듯하여 그칠 바를 모르겠고, 마음이 들떠서 세상일을 모두 잊고 홀로 서서 날개를 달고 신선이 되어 오르는 기분이네.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櫓)와 목란(木蘭) 상앗대로 맑은 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쳐서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네. 아득하고 아득한 내 마음이여! 미인을 바라보니 하늘 한쪽에 있도다.‘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연하는 듯, 여음(餘音)이 가늘고 길게 이어져 끊어지지 않음이 마치 실과 같으니,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게 하고, 외로운 배를 의지해 살아가는 홀어미를 울게 하네.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여미고 똑바로 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하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날아간다.”는 것은 조맹덕(趙孟德)의 시가 아닌가?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이 서로 얽혀 빽빽하게 푸른데, 여기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을 치른 데가 아니던가?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격파하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 제,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가니 배는 천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네. 술을 걸러 강가에 서서 창을 비껴들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일진대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를 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하고 있음에랴. 한 척의 조각배를 타고서 술잔을 들어 서로 권하고, 하루살이 삶을 천지에 의지하니 넓고 큰 바다에 떠 있는 좁쌀 한 알 같은 존재로다. 우리네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장강(長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나는 신선과 더불어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오래도록 즐기다가 마치는 것을, 불현듯 얻지 못할 것임을 알고, 여운을 슬픈 바람에 맡기네.“
소자가 말하되, “손도 대저 물과 달을 아는가? 강물이 흘러가는 것은 이와 같지만, 일찍이 아주 흘러가버린 적이 없으며, 만물이 변한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천지도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고, 불변한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만물과 내가 모두 무궁무진한 것이니 또 무엇을 부러워 하리요? 또한 대저 천지 사이의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면 비록 터럭 하나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위에서 불어오는 청풍과 산과 산 사이에 뜬 명월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면 아름다운 빛을 이루어서, 이를 가져도 금함이 없고, 이를 써도 다함이 없으니, 이는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이상이 바로 <전 적벽부>의 전문(全文)이다. 글 전체가 풍경과 감정이 어우러져 있고, 철학적 의미가 가득하다. 소식은 유배생활이라는 역경 속에서도 낙관적인 자세를 잃지 않고 이와 같이 드넓은 사상을 가슴에 품었다. 역시 위대한 문인들은 유배지에서도 걸작을 남긴다. 우리의 경우만 해도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이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