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김홍도. 비단에 채색. 90.4cm X 43.8cm. 호암비술관 소장.

 

조선 범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의 하나다. 그 조선범을 그린 천하명품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를 볼 적마다 나는 두 글귀를 떠올린다. 하나는 <논어(論語)>위이불맹(威而不猛)’ , “위엄이 있으되 사납지 않다.“는 말이다. 그림 속 범의 위용과 걸맞은 이 위이불맹이란 말은 본래 바른 정치를 하기 위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가운데 하나다. 또 하나는 박지원(朴趾源. 1737~1805)<호질>에 나오는, 범이 썩어빠진 가짜 선비를 꾸짖으면서 나의 본성이 너희 인간들의 본성보다 오히려 더 어질지 아니하냐!“고 호통을 치는 장면이다. 박지원은 김홍도보다 여덟 살 위의 문인으로 자기 시대를 반성하고 새 시대의 전망을 앞장서 제시했던 큰 선비다.

 

아래 일화는 <예기(禮記)>에 나오는 것인데, 역시 호랑이를 이끌어 정치를 말하고 있다.

    

공자가 태산 곁을 지나는데 어떤 부인이 무덤 앞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공자는 수레의 횡목(橫木)을 잡고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한 다음, 제자를 시켜 연유를 물었다. “부인이 곡하시는 모양이 분명 큰 슬픔이 겹친 듯합니다.”

 

부인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옛날 저의 시아버님께서 범에게 물려 돌아가셨습니다. 또 제 남편도 범에게 물려 세상을 떴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 아들마저 범에게 물려 죽었답니다.”

  

공자가 말했다. “어째서 다른 곳으로 가지 않으십니까?” 부인이 답하였다. “여기는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돌아보며 말했다. “제자들아, 명심하거라. ‘가혹한 정치는 범보다 더 무서우니라!(苛政猛於虎)’”

   

후대의 한 학자가 글 말미에 주석을 달았다. “범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덫이나 함정으로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가 사람을 해치는 것은 제어할 수단이 없다. 범은 높은 집과 굳게 닫은 문으로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가 사람을 해칠 때는 도망할 곳이 없다. 그러기에 태산 기슭의 저 부인은 가혹한 정치가 없는 그곳을 차마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양운(BC53~AD18)이란 사람은 가렴주구(苛斂誅求)하는 벼슬아치를 빗대어 이렇게 탄식했다. “범이로구나, 범이로다. 진정 뿔이 나고 날개가 돋친 범이로구나.....”

   

율곡 이이(李珥.1536~1584) 선생도 그의 <석담일기>에 다음 기사를 남겼다. “겨울에 경기 지방에 호랑이가 자주 나와 장수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호랑이를 잡게 하니, 군사들이 촌마을에서 노략질하여 백성들은 호랑이보다 군사들을 더욱 괴롭게 여겼다.”

   

이 땅에 호랑이가 등장한 내력은 겨레의 건국 신화만큼이나 오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겨레의 한아바님 되시는 단군왕검(檀君王儉)보다도 한 세대가 위다. 왜냐하면 옛적에 곰 여인 웅녀(熊女)가 자신과 혼인해주는 사람이 없어 날마다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을 때 환웅이 잠깐 사람으로 변해 그녀와 혼인해 낳은 아들이 바로 단군이기 때문이다. 곰이 단군 어머니가 된 이야기, 뒤집어 말해서 호랑이가 단군어머니가 될 수 없었던 신화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옛날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어 사람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헤아려 아래를 내려다 보니 널리 사람들을 유익하게 해줄 만하였다. 이에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고, 가서 다스리라 하였다.

 

환웅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가 그곳을 신시(神市)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황이시다....

  

그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속에 살면서 줄곧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런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쪽을 주고는 너희가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일렀다. 곰과 호랑이가 그것을 받아먹고 근심한 지 삼칠일(21)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호랑이는 참아내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이처럼 호랑이는 이 땅의 터줏대감이며 단군 어머니와 같은 세대에 속하는 어른이다. 다만 타고난 거친 야성을 순화하지 못하고 결국 어두운 동굴을 뛰쳐나가 영영 맹수로 머무른 점이 다를 뿐이다. 당시에 호랑이가 끝내 참고 견뎌내지 못했던 마늘의 독한 냄새는 훗날까지도 효력이 있다고 믿어져 호환(虎患)을 물리치기 위한 묘약으로 사용되었으니, 옛날 밤을 도와 산길을 넘어야 했던 나그네들은 미리 마늘을 먹고 트림을 하였다고 전한다.

    

호랑이는 명실공히 백수의 왕이다. 전체길이 3m에 무게 250kg에 가까운 덩치로 평지에선 5m를 펄쩍 뛰어오르고, 가파른 절벽은 10m나 뛰어내리며, 한번 내달으면 하룻밤에 100km 이상을 주파한다고 한다. 힘 또한 엄청나서 큰 송아지를 한입에 덥석 물고 담장을 훌쩍 뛰어넘으니, 땅위에서는 가히 그 용맹 앞에 맞설 상대가 없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은 곧 바보가 아니고서는 모두가 호랑이를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그런 호랑이이지만 어린 새끼의 무게는 1kg밖에 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새끼 호랑이가 일곱 달을 넘으면 사냥을 배우기 시작하고 두 살까지는 어미와 함께 살면서 삶의 다양한 지혜를 습득하게 된다. 이후에는 점차 독립해 단독생활을 하게 되는데, 세 살이 되면 자기만의 영역을 확보하고자 여기저기 방랑하며 다섯 살이면 완전히 성장을 마친다고 한다. 평균수명은 사육된 호랑이의 경우 25년 전후지만 야생에서는 훨씬 더 오래 산다고 알려져 있다.

   

옛적엔 호랑이가 참 많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인왕산 성 밖에서 호랑이가 나무꾼을 잡아먹었다. 그 호랑이가 인경궁 후원까지 넘어 들어왔으므로 군졸들을 거느리고 발자국을 되밟아 잡았다.”는 인조 4년의 기록이 있고, 영조 28년 정월에도 호랑이가 경복궁 후원 터에 들어왔다.”는 내용이 보인다. 지금의 남태령이며 이화여자대학교 앞 아현동 고개 역시 호랑이 출몰지역이었으니, 성질 못된 사람을 가리켜 저 남산 호랑이는 무얼 먹고 사나?”하는 속담까지 있었던 것이다.

   

산삼을 캐는 심마니들은 멸종됐다는 호랑이를 아직도 깍듯이 산신령으로 섬긴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옛적엔 아무리 호랑이가 사람을 해치는 맹수라 해도 이를 죽이면 그 지방에 화가 생긴다는 미신이 있었다. 게다가 호랑이가 흉포한 동물이긴 하지만 언필칭 산군(山君, 산의 임금)’이기 때문에 감히 임금을 잡았다는 죄목이 추가되었다. 따라서 포수가 호랑이를 잡아 고을 수령에게 바치면 비록 형식적인 장난이었지만 형틀에 묶어 세 차례 매질을 한 다음에야 상금을 주는 관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호랑이는 원래 대단히 조심성이 많은 동물이라 여간해서는 먼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을 덮치는 경우는 새끼와 함께 있거나 뜻밖에 갑자기 사람과 마주쳐서 제가 먼저 놀랐을 때, 혹은 너무 늙었거나 큰 부상을 입어 오래도록 먹이를 먹지 못했을 때뿐이다. 특히 사냥꾼에게 부상을 입어 사람에게 원한을 품은 호랑이 반드시 사람에게 복수하는 무서운 식인호가 되고 마는데, 그렇게 한번 사람 고기 맛을 본 뒤로는 상습적으로 포악성을 떨친다고 한다.

   

옛날 스님들은 호랑이가 활동하는 밤길을 다닐 적에 육환장(六環杖), 즉 쇠고리가 여섯 개 달린 지팡이를 호기롭게 짤랑거리면서 걸었다. 그러면 그 날카로운 금속성을 싫어해서 호랑이 쪽에서 먼저 피했다고 한다. 호랑이는 사람이 자기 영역 안으로 무심결에 접근해 오면 위협적으로 아악-’하는 벼락같은 포효를 발한다고 한다. 이때 온 골짝을 뒤흔드는 천둥 같은 울음소리, 그리고 시퍼런 화광(火光)이 줄줄 흐르는 주먹만 한 두 눈빛은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이 끼치게 하고 오금이 저려서 한발 짝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실제로 보통 사람이 호랑이와 갑자기 맞닥뜨리면 심하게 놀란 나머지 중추신경이 마비되어 부지불식중에 대소변을 싸고 만다고 한다.

 

범의 아름다움은 뭐니뭐니해도 가죽이다. 그래서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는가. 조선 범의 터럭은 열대 호랑이의 그것보다 길고 촘촘하며 색상은 다소 옅지만 촉감이 지극히 부드럽다. 범 구경을 하자더니 웬 가죽타령이냐고 한다면 우선 <호질>의 한 대목부터 소개하겠다. 호랑이가 말한다. “우리 몸의 얼룩무늬 한 점만 엿보더라도 족히 문채(文彩. 인문적 교양이 어우러진 것을 말함)를 천하에 자랑할 만하며, 또 발톱과 이빨의 날카로움만 가지고 한 자 한 치의 칼날도 빌지 않고서 천하에 무용(武勇)을 빛내고 있다.”

    

<논어> 옹야편(雍也編)에 이런 말이 있다. “속의 질박함이 바깥 꾸밈을 압도하면 촌스러워지고, 바깥 꾸밈이 속 바탕을 압도하면 얄팍해진다. 속과 바깥, 바탕과 꾸밈이 서로 잘 어우러진 다음에야 군자다.” 또 같은 책 안연편(顔淵編)에서는 바깥 꾸밈도 속 바탕만큼 중요하고, 속 바탕 역시 바깥 꾸밈만큼 중요하다.(만약 외형을 완전히 무시한다면) 범과 표범의 털 뽑은 가죽이 개나 양의 털 뽑은 가죽과 전혀 다름없는 꼴이 될 것이라하였다.

   

<주역> 대인호변(大人虎變) 기문병야(其文炳也)”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온 세상을 진정 새롭고 훌륭하게 고쳐나갈 큰 인물은 호랑이가 가을철에 털갈이하듯 한다.”는 뜻이다. 군자의 크나큰 덕을 입어 온 세상이 범 가죽에 어룽진 무늬같이 아름답게 변해서 빛이 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 <송하맹호도>의 호랑이가 바로 그러하니, 몸에는 보기 좋게 살이 올랐고 겉모습은 휘황찬란한 터럭으로 환하게 빛난다. 그러고 보니 소나무 이파리 일부가 드문드문 갈색으로 시든 것이 눈에 뜨인다. 가을이 온 것이다...

   

오늘날 호랑이라면 우리는 별수없이 동물원 철장이나 텔레비전 화면 속의 모습만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사육되는 호랑이는 호랑이가 아니다. 우리 단군 신화의 주인공은 정말 멸종되고 말았는가? 호랑이 연구가 임순남 씨는 아직도 남한 지역에 몇 마리에 불과하지만 분명히 호랑이가 살아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호랑이가 워낙 영물(靈物)이기에 쉽사리 사람 눈에 뜨이지 않을 뿐 여러 차례 직접 채집한 조선 범의 발자국과 배설물, 그리고 그림 속에서처럼 소나무에 영역 표시를 한 흔적에서 범의 터럭까지 채집했다는 것이다.

   

호랑이는 드넓은 지역을 호령하는 산어른이다. 그러나 남북한을 두 동강낸 철책이 사람뿐 아니라 호랑이 가족 또한 영영 오갈 수 없게 굳게 막은 채 반세기를 넘겼다. 그 때문에 몇 마리 안 되는 호랑이가 근친간에 번식할 수밖에 없어 쉽사리 병원체에 감염된 채 스스로 멸종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시베리아 호랑이 연구가인 유진 빅토르 박사는 야생 동물들의 남북한 이동 통로를 마련하기 위해 강원도 휴전선의 일부 철책만이라도 반드시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 백 미터의 철책선 만이라도....

   

하늘은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미물일지라도 이 세상에 불필요한 생명체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우리나라를 빼앗자마자 곧 철저하게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호랑이 박멸 작전에 나서 우리 겨레의 상징, 그 크고 씩씩하며 아름다웠던 조선 범을 전멸시키고자 했다. 호랑이가 상징하는 조선 혼의 부활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 후 오래도록 이어진 삼림의 벌채와 전쟁 탓으로 잣나무는 시들고, 덩달아 먹이를 잃은 멧돼지가 사라졌다. 사슴들마저 자취를 감추었다. 호랑이는 결국 우리의 곁을 떠났다.

   

사람은 자연을 닮고, 동물도 사람을 닮는다. 우리나라 야담에서 호랑이는 사람에게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되갚는 보은(報恩)의 존재였다. 아니 그 자신이 산신령이었다. 우리가 그를 위해 철책을 뜯는 정성을 기울일 때 어찌 이 땅의 영험한 산신령께서 겨레의 통일을 이루도록 도와주시지 않겠는가? 기운 생동하는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를 보면서 다시금 박지원의 <호질> 속 천둥 치는 호랑이의 포효를 듣는다. “너희 사람이 사물의 이치며 본성을 논할 적에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이거니와, 하늘이 명하신 것으로 보면 범이나 사람이나 똑같은 만물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虎與人 乃物之一也)”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2.  p.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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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광복이후 70여년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해왔다.

라인강의 기적에 비견될 정도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적어도 1990년까지는 그렇게 경제도 잘 돌아갔고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4룡으로 선진국의 스포트라이터를 받았다. 1988년 올림픽을 치르며, 타고르가 예언했던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그 말이 실현되는 줄 알았다. 광복이후 우리는 너무 빠르게 달려왔다. 일제강점기 35년간 온갖 핍박과 설움에서 벗어난 민중들은 나라를 되찾은 기쁨에 환호하고, 재건의  희망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좌우익이 서로 다투는 사이 6.25 전쟁이 일어나 동족상잔의 피맺힌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부모형제, 친척들이 하루아침에 죽고 뿔뿔이 흩어져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겨났다. 전쟁이 끝나고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잿더미 속에서 우리는 새출발을 했다. 온갖 모진 고난과 고통을 극복하고 밤낮없이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민중들은 이렇듯 하루하루 연명하기 위해 초근목피로, 국에서 보내준 밀가루 배급으로 연명하며 버텼지만 이런 험난한 시기에도 경제유착의 맹아는 싹트기 시작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 속담처럼 국민이 피땀흘려 낸 세금도 경제유착과 부정부패로 엉뚱한 곳으로 새어 나갔다. 그래도 당시 유행했던 잘 살아보세 구호처럼 국민들은 정부주도의 국가재건 운동에 아무 말 없이 따라 주었다. 독일 탄광촌과 간호사 파견, 월남전 파병 등 국민들의 노동력과 핏값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보릿고개의 상흔을 지워 나갔다.

 

이제 식량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동서고금의 어느 왕조나 정권이든 배고픔에 시달리던 민중들의 배고픔만 해결해도 자자한 칭송과 함께 역사적인 영웅으로 부각되었다.  박정희 정권이 독재정치를 편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성장을 이뤄 국민들을 배고픔에서 구해냈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그래서 현재의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하는 단초가 되었다. 마을을 잘 다스리고 돌아간 원님을 위해 송덕비를 세워주듯 우리 국민들은 정에 약하다. 배고픔을 해결해 준 박정희의 고마움에 보답하듯 60대 이상의 노인들의 대다수가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다. 시비판단을 떠나 경제적 선정을 베푼 아버지에 대한 보답에서 나온 온정의 결과다.

  

우리의 바람대로 어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정치를 잘 했더라면 독재정치의 멍울을 다소 지울 수도 있었을텐데시대의 정치풍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강권적이고 불통정치를 고집하여 비극을 맞았다.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돌이켜보면 사상누각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 10대 강국이라는 허울좋은 명분보다 속을 들여다 보면 속빈 강정처럼 빚더미에 올라 있다. 이는 모든 기본을 무시한 성과위주의 정책과 풍토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곡식이나 과일이 맛있게 익으려면 충분한 햇볕과 시간이 필요하듯, 우리 경제가 탄탄한 반석 위에 올라서려면 그만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 선진국의 수백 년에 걸친 노력과 경험을 몇 십 년에 달성하고자 난리법석을 피웠다. 그 부작용으로 대기업과 정경유착,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횡행하게 됐다. 허가권이나 인가권을 얻기 위해 급행료를 줘야 했고, 정치자금을 두둑히 대야 대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결국 대기업의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수시 때때로 제품의 가격 인상을 통해 이윤을 챙기고, 각종 담합을 통해 자기 배를 불려 왔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이후 더욱 심화되어 이제 세계 1%의 부자들이 전세계재산의 75%를 차지하고 있다니 인간이 태어난 이래 이렇게 부의 불평등이 심했던 적도 없을 것 같다. 헌법에 보면 만민은 평등하다고 적시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엄연히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나뉘며, 앞으로도 이런 현상은 더욱 고착화될 것이다. 부의 불평등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선진국의 어떤 나라보다도 우리나라가 빈부격차가 더 심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러한 불평등을 시정할 책임이 정치인에게 있다. 각종 제도를 정비하여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작금에도 보듯이 재벌과 정치권이 짜고 국민들의 목을 조르고 있으니 힘없는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하다.

  

기본이 바로서는 나라, 선진국, 외국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는 선입관 때문에 우리는 서구문명을 맹종하며 받아들였다.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하는데, 우리의 훌륭한 미풍양속조차 모두 외국문화로 대체되었다. 유교가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한 것은 맞지만 예의나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그 역할이 컸다. 그런데 예의범절이라는 것을 가르치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만 귀하다는 서구의 개인주의 사상의 흐름이 팽배해 있다보니 사회 질서가 엉망이 되어 버렸다. 남녀노소의 구분도 없어지고 어른들이 젊은 세대의 잘못을 보고도 충고도 함부로 할 수 없다. 기본이 지켜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온갖 탈법이 난무하고 예의범절이 무너진 사회는 언젠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우리는 너무 성과 위주의 삶을 살아왔다. 오로지 돈만 잘 벌면 성공한 사람이고, 훌륭한 사람으로 대우받는다. 그 돈의 출처가 어디에서 나왔든 따지지 않는다. 교육이 돈을 잘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래서 신성한 학문의 장이 되어야 할 대학이 취업을 위한 살육경쟁의 장이 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전 국민이 고르게 잘 사는 나라, 이는 유사이래 어떤 나라도 이루지 못한 유토피아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정부의 역할은 공정하게, 균등하게 개인이 잘 살 수 있도록 정책을 펴고 뒷바라지를 해주는 것이 중요한 책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이제 대한민국도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구폐와 악습을 청산하고 좀 더디게 가더라도 기본이 서는 바른 나라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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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법석 - 법륜 스님의 지구촌 즉문즉설 야단법석 1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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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법석(野壇法席)의 뜻의 변화를 보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설법하는 신성한 자리가 오히려 설법을 들으려고 모인 중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로 야단법석이라니...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면 고승들의 선문답이나 고귀한 말씀이 아니라 원효가 외쳤던 불교의 대중화를 연상케한다. 그래서 스님의 소속이 정토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우리나라 불교가 삼국시대 처음으로 전래되어 150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로라하는 고승들의 설법은 대부분 난해하고 귀족들만을 위한 불교로 흘렀다. 고려후기에 접어들어 불교의 대중화로 민중에게까지 널리 불교가 퍼져나갔지만 하층민들이 불교의 교리를 배우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법륜스님은 현대판 원효스님 같다. 대중들의 삶의 애환이나 난제들을 속시원하게 해결책을 말씀해 주시니 불교가 한층 민중가까이 다가오고 친근해진 느낌이다. 과학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발달하는 시대에 사람의 정신 영역은 그것을 따라갈 수 없어 더욱 혼란스럽다. 복잡다기한 요즘의 삶은 고민이나 번뇌도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인간이란 원래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항상 갈증을 느끼면서 욕망을 추구하는데 고민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스님의 설법은 지구촌에 사는 우리 교포들에게 똑같은 고민이 있음을 알고 115개국을 돌며 여러 가지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며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고민의 근본적인 문제는 마음이다. 내 마음이 불행을 만들기도 하고 행복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런데 마음을 다스리기가 웬만해선 어렵다. 스님이 들려주시는 고민해법도 결국은 마음 다스리는 것이다. 내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큰 고민도 아무것이 아닌 것이 될 수 있고, 훌훌 털고 새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예로 들면서 쉽게 설법을 하시는데 마음 한켠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낄 때도 있다. 스님의 설법은 어렵지 않아서 좋다. 듣고 있으면 자꾸만 얘기 속으로 빠져들고 평범한 말 속에 웃음과 진리가 담겨 있다. 불교서적은 대부분 난해하고 딱딱하다는 선입견을 말끔히 해소해 주신 분이 법륜스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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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정착될 것인가?
‘이번 정권에는 뭔가 달라지겠지’ 매번 그런 마음으로 기대하고 투표장으로 가서 투표했다.
우리나라 정치체제는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매번 선거철만 되면 나라를 구하겠다고, 도탄에 빠진 국민을 내가 웃게 만들겠다고 화려한 공약을 내세운다. 언론에서는 항상 앵무새처럼 여당위주의 대선후보에다 포커스를 맞추어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생업에 바쁜 국민들은 언론의 정보나 말만 믿고 그대로 유력후보를 선출한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되면 요란한 취임식과 함께 대대적인 사정작업과 보여주기식 개혁을 시도한다. 복지부동이니, 복지안동이니 하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이때다.
   
대통령의 권력이 막강하다 보니 누구하나 대통령의 정책에 쓴소리를 못하고 대통령의 지시를 받드는 허수아비 역할을 잘도 수행한다. 무조건 대통령의 말씀은 옳은 것이고, 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맞다고 맞장구를 친다. 옛날 중국의 진시황제가 죽고난 후 환관 조고가 유명한 고사를 남겼다. 지록위마(指鹿爲馬) 즉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호해황제에게 고했다. 환관 조고의 힘이 워낙 막강했기에 신하들은 '사슴'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황제앞에서 ‘이것은 '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지금 한국의 정치형세가 그렇지 아니한가? 대통령 앞에서 누구도 바른말을 못하고 비서진들은 모두 대통령 말에 맞장구나 칠뿐 누구 한사람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최순실은 환관 조고나 다름이 없다. 대통령 옆에서 온갖 아양을 떨며 환심을 산 뒤 자기가 장, 차관, 비서실의 인사까지 주물렀으니 환관 조고나 다를게 뭐 있는가?
   
‘나라를 세우기보다 지키기가 어렵다’고 정관정요에서 당태종은 말했다.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잃고 수많은 애국지사와 독립투사가 목숨을 버려가며 되찾은 대한민국이 아닌가? 그 후손들은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면서 친일파 후손들은 자기 선조들이 찾은 나라처럼 온갖 요직을 다 차지하고 정권을 주무르며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싱가폴의 이광요 수상처럼 독재를 하더라도 나라라도 잘 다스리면 국민들은 지지를 해줄 것인데, 이들은 나라를 자기 개인의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지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러 왔다. 말로는 늘 안보를 들먹이며 나라를 걱정하지만 실상 이권개입이나 낙하산인사로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온통 뒤흔들어 놓고 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정권을 잡으면 국회의원들은 자기당의 거수기로 전락한다. 민의를 대변해 행정부를 잘 견제하여 훌륭한 정치를 펴라는 국민들의 준엄한 목소리는 한쪽 귀로 흘려버리고 오로지 당리당략에만 몰입한다. 물론 차기 국회의원의 공천권을 당에서 쥐고 있기 때문에 당의 뜻을 거스르는 발언이나 행동을 할 수 없는게 문제인데, 국민의 대표라면 과감하게 쓴소리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참에 정당공천제도가 부패의 온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과감한 개혁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그것도 힘이 떨어지는 4년차에 비리가 터져나오는 것은 대통령중심제에 따른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나 막강하기 때문이다. 권력이 한사람에게 집중되면 부패의 늪으로 빠지기 쉽다. 
    
작금의 모든 문제는 대통령의 힘이 너무 막강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모든 국정이 바뀌고 모든 요직들이 바뀐다. 대통령의 권한을 막을 대책이 필요한데, 헌법 개정을 않고는 견제가 힘들다. 과거 대통령들의 국정농단으로 40여년간 9차례나 헌법이 개정되어 자기 정권의 입맛에 맞게 윤색되었듯이 잦은 헌법 개정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헌법 개정에 대해서 신중하다. 옛날의 전철을 밟을까봐 가급적이면  손을 안 대려고 한다. 그런데 요즘 현실을 보면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가 대통령 중심제를 택하게 된 것은 순전히 남북분단 때문이다. 남북분단을 빌미로 전시에 신속한 대처를 위해 대통령에게 모든 힘을 실어주었다. 6.25이후 근 7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통일이 되지 않고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위험이 상존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대통령은 국가의 수호자로서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망각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 힘을 다른 곳에 악용을 하니, 지금쯤 대통령 중심제를 내각책임제로 개헌하는 것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예부터 정치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이 문제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나라는 정치인들이 문제다. 
   
제도는 좀 미흡해도 정치인이 국정을 잘 운영하면 큰 문제가 없다. 미국같은 강대국도 약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대헌법이 많이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조령모개식으로 수시로 새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행정기구의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정치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면서 돈만 낭비하지 별로 바뀌는 것은 없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태도 바른말을 하는 충신이 없어서다. 오로지 자리에만 눈이 멀어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을 해도 간언을 하지 못하고 심지어 민간인이 국정을 농단해도 누구하나 대통령께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권력이 좋은 것일까? 미운 털이 박혀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무서워 불의를 보고도 입다물고 있다가 막상 사건이 터지면 자기는 몰랐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니 이 나라에 과연 진정한 정치인이 존재하는가 의문이다.
     
국민들의 책임도 일부 있긴 하다. 선거로 뽑은 대통령이니 국민의 다수가 그 사람에게 권력을 위임한 거나 다름없다. 그러니 선거때 투표할 때 정말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 진실로 참된 정치인은 스스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맘에 들지 않는 후보자만 있어도 우리는 투표는 해야 한다. 대통령 후보자 중에 그나마 괜찮은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우리는 매번 문제 있는 대통령을 뽑았다. 정치시스템이 대통령을 타락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과거를 돌이켜 깨끗하고 바르게 살아왔고 애국심이 있는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도 이제 지겹다. 정권말기만 되면 터져 나오는 비리에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신자유주의가 우리 국민들을 잘 살게 하고 우리 경제를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TV만 켜면 떠들어 되던 언론사나 정치인, 결국 우리의 삶이 옛날보다 월등히 나아졌는가?
나라에 빚만 잔뜩 늘고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아 가계부채가 1000조를 훨씬 넘어선 요즘 그 부채가 또하나의 경제파탄의 뇌관으로 작동하고 있다. MB정권때 대기업을 살리면 낙수효과로 국민의 삶도 동반성장할 것이라는 말에 우리는 철저히 속지 않았던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후 대기업 위주의 정책이 일자리를 빼앗고 빈부격차를 심화시켜 국민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를 위한 정책과 부자감세가 경제성장에 얼마나 보템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차기 정권에서는 진정 서민을 위한 대통령이 나와서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이 나라를 재건하고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주는 소통 잘 하는 대통령을 뽑았으면 싶다. 권불십년이라는 옛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다. 부패한 권력은 반드시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고 그 권력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우리는 역사적 교훈을 거울삼아 차기 선거에서는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참 일꾼을 뽑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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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 법정 잠언집
법정(法頂) 지음, 류시화 엮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법정스님의 산문집이다. 옛날에 읽을 때도 내용이 좋았지만 지금 읽어도 결코 그 가치가 바래지 않았다. 스님의 글은 군더더기가 없고, 화려한 수식이 없고, 담백하고 무미한 글이지만 읽을수록 글에 담긴 뜻이 진중하고 따뜻하다.

 

스님이 입적하신지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 스님의 글은 남아서 우리에게 크나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소비로 일관하는 현대문명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 것을 강조한다. 과소비로 인해 쓰레기가 넘쳐나고 환경오염에 각종재난까지 겹쳐 지구가 서서히 망가지고 있다는 지적은 날카롭다. 하지만 우리가 당장 현대문명을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향후 친환경적인 에너지 사용으로 지구오염을 줄이려고 신기술을 개발하겠지만 이는 세계 각국의 협조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나마  현재로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은 적게 개발하고  적게 소비하는 것이다. 자연을 아끼고 아껴서 후손들에게 청정한 자연을 보전하여 물려줄 수 있도록 화학제품이나 연료를 최대한 적게 소비하는 것이다. 지금 현대문명을 도외시하고 원시시대로의 복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스님이 늘 강조하시는 '무소유'의 신조도 참으로 좋은 슬로건이다. 그러나 욕망의 존재인 인간이 무소유를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먹고 살기 위해 태어나  더 많이 얻기 위해 경쟁하고, 그걸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쉽게 무소유로 돌아설 수 있을까?

 

스님의 무소유는 실생활에서 최대한 필요치 않는 물건을 적게 가지자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다.

불필요한 낭비나 사치를 줄이고, 남는 것이 있으면  이웃을 도와주며 살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연인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현실에 충실하되 물질에 집착하여 헛되이 살지마라는 말씀일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과소비를 삼가고 내 생활방식에 잘못된 점이 있는지 반성하면서 스님의 가르침을 조금이나마 실천하고 싶다.스님의 글은 담박하지만 스님의 성격처럼 올곧고 옹골차다. 읽고나니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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