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광복이후 70여년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해왔다.

라인강의 기적에 비견될 정도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적어도 1990년까지는 그렇게 경제도 잘 돌아갔고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4룡으로 선진국의 스포트라이터를 받았다. 1988년 올림픽을 치르며, 타고르가 예언했던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그 말이 실현되는 줄 알았다. 광복이후 우리는 너무 빠르게 달려왔다. 일제강점기 35년간 온갖 핍박과 설움에서 벗어난 민중들은 나라를 되찾은 기쁨에 환호하고, 재건의  희망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좌우익이 서로 다투는 사이 6.25 전쟁이 일어나 동족상잔의 피맺힌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부모형제, 친척들이 하루아침에 죽고 뿔뿔이 흩어져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겨났다. 전쟁이 끝나고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잿더미 속에서 우리는 새출발을 했다. 온갖 모진 고난과 고통을 극복하고 밤낮없이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민중들은 이렇듯 하루하루 연명하기 위해 초근목피로, 국에서 보내준 밀가루 배급으로 연명하며 버텼지만 이런 험난한 시기에도 경제유착의 맹아는 싹트기 시작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 속담처럼 국민이 피땀흘려 낸 세금도 경제유착과 부정부패로 엉뚱한 곳으로 새어 나갔다. 그래도 당시 유행했던 잘 살아보세 구호처럼 국민들은 정부주도의 국가재건 운동에 아무 말 없이 따라 주었다. 독일 탄광촌과 간호사 파견, 월남전 파병 등 국민들의 노동력과 핏값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보릿고개의 상흔을 지워 나갔다.

 

이제 식량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동서고금의 어느 왕조나 정권이든 배고픔에 시달리던 민중들의 배고픔만 해결해도 자자한 칭송과 함께 역사적인 영웅으로 부각되었다.  박정희 정권이 독재정치를 편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성장을 이뤄 국민들을 배고픔에서 구해냈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그래서 현재의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하는 단초가 되었다. 마을을 잘 다스리고 돌아간 원님을 위해 송덕비를 세워주듯 우리 국민들은 정에 약하다. 배고픔을 해결해 준 박정희의 고마움에 보답하듯 60대 이상의 노인들의 대다수가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다. 시비판단을 떠나 경제적 선정을 베푼 아버지에 대한 보답에서 나온 온정의 결과다.

  

우리의 바람대로 어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정치를 잘 했더라면 독재정치의 멍울을 다소 지울 수도 있었을텐데시대의 정치풍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강권적이고 불통정치를 고집하여 비극을 맞았다.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돌이켜보면 사상누각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 10대 강국이라는 허울좋은 명분보다 속을 들여다 보면 속빈 강정처럼 빚더미에 올라 있다. 이는 모든 기본을 무시한 성과위주의 정책과 풍토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곡식이나 과일이 맛있게 익으려면 충분한 햇볕과 시간이 필요하듯, 우리 경제가 탄탄한 반석 위에 올라서려면 그만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 선진국의 수백 년에 걸친 노력과 경험을 몇 십 년에 달성하고자 난리법석을 피웠다. 그 부작용으로 대기업과 정경유착,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횡행하게 됐다. 허가권이나 인가권을 얻기 위해 급행료를 줘야 했고, 정치자금을 두둑히 대야 대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결국 대기업의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수시 때때로 제품의 가격 인상을 통해 이윤을 챙기고, 각종 담합을 통해 자기 배를 불려 왔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이후 더욱 심화되어 이제 세계 1%의 부자들이 전세계재산의 75%를 차지하고 있다니 인간이 태어난 이래 이렇게 부의 불평등이 심했던 적도 없을 것 같다. 헌법에 보면 만민은 평등하다고 적시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엄연히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나뉘며, 앞으로도 이런 현상은 더욱 고착화될 것이다. 부의 불평등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선진국의 어떤 나라보다도 우리나라가 빈부격차가 더 심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러한 불평등을 시정할 책임이 정치인에게 있다. 각종 제도를 정비하여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작금에도 보듯이 재벌과 정치권이 짜고 국민들의 목을 조르고 있으니 힘없는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하다.

  

기본이 바로서는 나라, 선진국, 외국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는 선입관 때문에 우리는 서구문명을 맹종하며 받아들였다.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하는데, 우리의 훌륭한 미풍양속조차 모두 외국문화로 대체되었다. 유교가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한 것은 맞지만 예의나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그 역할이 컸다. 그런데 예의범절이라는 것을 가르치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만 귀하다는 서구의 개인주의 사상의 흐름이 팽배해 있다보니 사회 질서가 엉망이 되어 버렸다. 남녀노소의 구분도 없어지고 어른들이 젊은 세대의 잘못을 보고도 충고도 함부로 할 수 없다. 기본이 지켜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온갖 탈법이 난무하고 예의범절이 무너진 사회는 언젠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우리는 너무 성과 위주의 삶을 살아왔다. 오로지 돈만 잘 벌면 성공한 사람이고, 훌륭한 사람으로 대우받는다. 그 돈의 출처가 어디에서 나왔든 따지지 않는다. 교육이 돈을 잘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래서 신성한 학문의 장이 되어야 할 대학이 취업을 위한 살육경쟁의 장이 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전 국민이 고르게 잘 사는 나라, 이는 유사이래 어떤 나라도 이루지 못한 유토피아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정부의 역할은 공정하게, 균등하게 개인이 잘 살 수 있도록 정책을 펴고 뒷바라지를 해주는 것이 중요한 책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이제 대한민국도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구폐와 악습을 청산하고 좀 더디게 가더라도 기본이 서는 바른 나라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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