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 있다 - 기나긴 싸움, 그리고 기적에 관하여
전범석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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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결코 끝나지 않을 기나긴 싸움 그리고 기적에 관하여...

 

신경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자부하던 한 의사가 쓰러져 전신마비인 상태로 재활한 과정을 엮은 9개월 간의 기록을 책으로 냈다. 그 책의 주인공은 바로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전범석 교수. 남한산에 등산하러 갔다가 정상에 다 와서 아무 이유도 없이 통나무가 넘어가듯이 쓰러져버린 그는 의식은 멀쩡하고 말도 할 순 있지만 오른쪽 새끼손가락과 엄지발가락만 조금 움직일 뿐 사지를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 상태로 평생을 갈 수도 있었던 상태였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합병증을 예방하고,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재활훈련을 통해서 조금씩 어려움을 이겨내가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손을 쓸 수 없으니 간병인이나 동생에 받아적으라고 해서 정리해둔 책이란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로 평생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감해보고자 했던 것일까. 하여간 그는 그렇게 이겨냈다.

 

사실은 그가 그렇게 쓰러진 것부터가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다. 교통사고가 났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전신마비가 온 것도 아니고, 울퉁불퉁한 바위를 헛딛어서 그런 것도 아닌 정상에 아무 것도 걸릴 것이 없는 상황에서 픽 하고 쓰러져버린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정작 당사자는 담담하게 주어진 상황을 감내한다. 자신이 원래 혈압이 조금 낮은데다가 평소보다 땀도 많이 흘린 상태이고, 가방의 무게를 좀 무겁게 해서 가지고 다녔다고 나름 상황정리를 끝냈다. 그러나 어쨌거나 기적은 기적이다. 넘어질 때 앞니로 돌멩이를 들이받아 넘어질 때 머리부터 충격이 가해지지도 않았고, 쓰러진 곳이 산 정상이어서 헬기를 띄워 금방 구조할 수 있었던 데다가, 환자 자신이 신경과에 대해 박식하게 알기 때문에 미리부터 조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고가 났을 때 목을 잘못 움직이게 되면 평생을 전신마비로 살아야 하는데, 그 사실을 주변사람들에게 주지시켜서 들 것에 실을 때도, 엎어진 것을 돌릴 때도 조심하게 했다. 아, 그러고 보니 그가 의식이 깨어있어서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것이 가장 기적 같은 일이겠구나!

 

그런 과정을 기록할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그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자신의 역사고 경험이지만 기록해놓지 않으면 안개처럼 사라져버리고 말 것임에, 그는 기록을 시작한다. 전신마비는 스스로 밥을 먹을 수도, 세수를 할 수도, 소변을 받아낼 수도 없다. 게다가 자율신경계가 고장이 나서 누우면 혈압이 높아지고, 서면 혈압이 내려가 졸도할 위험조차 있으니 완전히 진퇴양난이다. 그런 절망적인 생활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일반인이 겪었다면 망연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전문가였기에, 이런 사고는 재활훈련을 얼마나 빨리, 얼마나 지속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예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을 따름이다. 처음에는 배 위에 놓인 손에 공이나 봉을 잡아보는 훈련과 팔로 미는 훈련 등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스스로 앉고, 일어서고, 걷고, 체조까지 할 수 있을 만큼 호전되었다. 그러나 사고를 당하고 6개월이 지났으면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어야 한다고 봐야 한다. 약간씩 어눌하고 부정확한 그런 모습을. 하지만 머리는 멀쩡하니, 대학으로 복귀하라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로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았다. 아이들도 가르치고, 환자도 치료하고, 책도 내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다고 격려하는 사람도 많았다. 처음엔 퇴원을 하는 것에 공포감을 느꼈지만, 차차 마음을 바꿔서 아직까지도 오라고 하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학교와 집을 오가는 생활이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 묵묵히 한 걸음씩 걸어간다면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을까. 욥도 아픈 다음엔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자녀나 아내가 아닌 자신에게 그 병마를 오게 하신 것을 생각한다면 그마저도 감사하니까.

 

추천하는 글에 보면 전 교수의 지기이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인 이왕재 교수의 증언이 있다. 전 교수가 얼마만큼이나 비상하고 얼마만큼이나 진지하고 단단한 사람인지를. 그런 그였기에 인간의 최대 위기 앞에서조차 그렇게 당당하게 살 용기를 얻었을지 모른다. 특별해보이진 않더라도 꾸준히 무언가를 이룬다면 누구나 그런 기적을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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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코넬 울리치 지음, 이은경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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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면, 누군가가 자신의 죽을 날을 예언했다면... 그랬다면 어떤 삶을 살아갈까...?

 

만약 누군가가 나타나서 자신에게 6개월 후에 죽을 거라고 말한다면 그저 공상이라고 마냥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그렇게 강심장인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딸과 단 둘이 살면서 부모 자식 간에 나눌 수 있는 가장 애틋한 감정을 나누며 살았던 남자, 스물다섯 살 이후부터 점점 더 말쑥해지고 강건해지고 단정해지고 사내다움이 넘쳐흐르는 남자, 반짝 빛나는 듯한 흰머리와는 대조적으로 훨씬 젊은 얼굴이 돋보이는 남자, 고집스럽지만 독선적이진 않은 그런 모든 점에서 완벽한 한 남자가 말이다. 그런 이성적인 남자가 말도 안되는 생각과 미신들로 가득차 좀비처럼 보내고 있다면 그것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런 그에게 누가 비웃을 수가 있을까....

 

요즘에 출간되는 자기계발서 등에서는 생각이든 말이든 긍정적으로 갖고 내뱉으라고 하는 책이 많다. 굳이 그런 책을 찾아서 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속담에 ‘말이 씨 된다’라는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속담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것만 봐도 옛부터 ‘말’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했다는 것을 증거해준다. 몇 년 전에 『물은 알고 있다』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물이 든 컵에다가 ‘감사합니다’라는 단어를 쓴 종이를 붙이고 ‘싫어’란 단어를 쓴 종이를 붙이고 그 물의 결정을 현미경으로 찍어서 펴낸 것이다. 그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긍정적인 말은 아름다운 결정을 갖고 부정적인 말은 결정이 깨진 모양이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물조차도 그럴진대, 우리같이 고등 생물에겐 얼마나 말에 대한 영향이 더 클까 생각하니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강하게 해주는 말이 아니라면...?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고, 심지어 우리를 해치는 말이라면...?

 

실제로 예언이 있다 하자. “넌 몇 달 있다 죽을거야” 누군가에게 친절하게도 이런 정보를 미리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천상에서만 알 수 있는 금기의 정보를. 그랬다면 인간은 어떻게 반응할까. 두려움에 떨다가 죽을까, 아니면 마지막까지 열심히 살아낼까. 글쎄, 이렇게 쓰고 있는 나조차도 확답을 할 순 없다. 하지만 두려움에 떨다가 죽으면 무슨 소용일까. 그런 예언에 꼭 얽매어야 할까. 진짜 예언이라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날에 꼭 죽을 수 밖에 없다면 그 죽음에게 도망가기 위해서 미리 자살을 시도할 수도, 골방에 틀어박혀서 하루하루 시계만 쳐다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더라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는 행복하게,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살아보면 어떨까. 평소에 부끄러워서 하지 못했던 것도 해보고, 진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끝까지 가보는 거다. 얼마나 멋질까.

 

그런데, 그 예언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저 누군가의 말장난이었다면? 그렇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내가 공포에 질렸던 것도, 내 삶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것도, 이 모든 것에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 그저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 뿐.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절망과 나쁜 소식에 대처해야 할 우리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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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가슴 -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100가지 질문 프로젝트
리즈 베스틱 외 지음, 강나은 옮김 / 홍시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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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각 가정이라면 한 권씩은 꽂혀있어야 할 천만점짜리 실용서이다. 어디 가서 물어보기도 어렵고, 쉽사리 말하기도 껄끄러운 내용에 대해서 가장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머니든, 아내든, 누이든, 딸이든, 며느리든 각 가정에 여성이 한 명이라도 없는 집안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바로 구입해서 모셔두어라~. 그러면 요긴하게 쓰일 테니.

 

여성이라면 가슴에 대해 한 번쯤 의문을 가졌음직한 질문을 100가지나 선정해두고 그 질문에 맞는 맞춤식 답변을 준비해둔 책이다. 그것도 한 번에 찾아볼 수 있게 각 영역별로 구별해두어 목차로 쭈욱 나열해두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잘 맞는 브래지어를 고르는 일이 왜 중요한가요? 란 질문은 「건강한 가슴을 위한 상식」에 들어가있고, ☞직장에 복귀해야 하지만 1년 동안은 모유를 먹이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란 질문은 「임신과 모유수유」란 영역에 위치해 있으며, ☞가슴보형물의 종류에 대해 알려주세요. 란 질문은 「가슴을 위한 신중한 선택, 유방성형수술」에, ☞얼마나 가슴 크기를 줄일 수 있나요? 란 질문은 「또 다른 유방성형, 축소수술」에, ☞처진 가슴을 되돌리고 싶어요 란 질문은 「가슴의 영광을 회복하다, 유방거상수술」에, ☞가슴에서 덩어리가 만져집니다. 병원에 가야할까요? 란 질문은 「유방암은 어떤 병인가요?」영역에 들어가 있어서 알기 쉽고 빠르게 찾아볼 수가 있다. 나는 아직까지 모유수유에 신경 쓸 일도 없고, 수술은 관계없으며, 유방암도 머나먼 일로만 여겨져서 다른 것은 그다지 흥미가 없었는데, 처음부터 쭉 읽다보니 어느새 다 읽어버렸다. 그 정도로 아주 친절하게, 섬세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쓰여있다. 실은 이런 분야에 대한 책이 처음이다 보니까, 읽는 족족 너무 새로워서 좋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일단 아름답고 건강한 가슴을 위해서 브래지어부터 바르게 착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더불어 정확하게 자신의 사이즈를 재는 방법과 브래지어 고르는 방법까지도 선별해주는데 글과 그림이 같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알기도 쉽고 따라해보는 재미까지도 쏠쏠하다. 어젯밤에 책을 읽으면서 줄자를 가지고 재본다고 난리를 쳤지만, 예전의 사이즈와 별다른 게 없어서 아쉬웠다. 에이, 사이즈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던데... 어쨌거나 자신이 재보는 것이 믿음직하지가 못하다면 백화점에 가서 판매원에게 부탁해도 된다고 한다. 백화점에는 전문적으로 치수를 재는 법과 바르게 착용하는 법까지 알려주는 노련한 분이 한 분씩은 계신다고. 사실은 예전에도 누군가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저 대충 착용하지 말고 숨겨진 살들을 다 쓸어올려서 착용해야 하는데 그러면 모양이 바르고 예쁘게 잡히고 작았던 가슴도 커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정 안되면 백화점에 가서 도움을 받으라고 하면서 자신도 해봤는데 정말 알지 못했던 새로운 방법이라고 말이다. 흐음, 가고는 싶은데 아직 부끄럽다.

 

그런데 유방암이 머나먼 일로 여겨졌던 내게 얼마전에 읽었던 소설 속 여주인공이 유방암으로 죽는 것을 보곤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유방암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예전에는 정히 안 되면 유방을 잘라내기라도 하면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였다. 금방 전이될 수도 있고, 조기에 발견을 하지 못하면 아주 위험한, 말 그대로 ‘암’이었단 사실을 이제서야 체감을 한 것이다. 질문의 내용도 우울한 내용도 많고, 걱정스러운 내용도 많은데, 초지일관 친절함을 잃지 않고, 너무 겁을 주거나 너무 안일하지도 않게 잘 설명해주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가장 새롭게 알게 된 것은 평소부터 자신의 가슴을 꼼꼼하게 만져보고 들여다 봐서 어떤 이상 징후가 드러나면 바로 병원에 갈 수 있는 채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유방암은 유전으로 발병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이유도 없는 병이기에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병이다. 빨리 발견하면 조금만 절개해도 되고, 그다지 아프지도 않다니까 충분히 알아두어야 하겠다. 사실 우리에게 당연히 있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소중함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것을 잃고 나면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기 마련인데, 미리미리 가슴에 대해서도 소중함을 느끼면서 마사지도 해주고 관찰도 해줄 필요가 있겠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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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김성민 글, 이태진.조동성 글 / IWELL(아이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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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뭔가 범상치 않아 보인다. 이토 히로부미야 안중근 장군에게서 처단을 당했는데, 왠 엉뚱한 제목일까 의아해졌다, 처음엔. 그러나 다 보고난 지금은 무슨 의미인지, 우리의 비극적인 역사적 현실이 어떻게 사람을 개, 돼지로 만들었는지 확연하게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가로 세로가 대략 12cm × 17cm 정도밖에 안 되는 조그만 판형에다가 분량도 117페이지밖에 안 되는 더없이 간단한 단편 역사소설이다. 마음을 먹고 진중하게 읽어내려갈 필요도 없이 여느 수필집을 읽는 것처럼 부담없이 휘리릭 읽어내려가면 될 만한 아주 간단하다. 처음엔 어떤 끔찍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걱정되어 쉽사리 펼치지 못했는데 어느 날 그저 이 책을 옮겨놓으려다가 그 와중에 30분도 안 걸려서 다 읽어버렸다. 그런데 정말 빨리 읽을 수 있는 만큼 그 내용을 만만하게 보기가 쉽지만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해선 안 될 책이다.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에다가 실날 같이 가느다란 상상력만 덧붙였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겪었던 처절하고도 절절한 고통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한 줄로 "우리가 어떻게 살았을 것 같아요? 상상할 수 있겠어요?" 가 다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절제된 표현 속에서 드러나는 끔찍한 상상 때문에 너무나 힘들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이름인 ‘안중근 의사’의 ‘의사’란 표현은 안중근 독립군 장군의 신분으로 전쟁 중에 적장을 사살한 행위를 단순한 개인의 행위로 끌어내리기 위한 일본측의 만행이었을 뿐, 실제 안중근의 직책은 ‘대한의군 참모중장 특파독립대장’이었다 한다. 안중근 독립군 대장은 히토 이로부미를 사살하고 전쟁 포로 신분으로 자신을 대우해주길 주장하고, 국제법에 따라 판결하기를 희망했지만, 대외적으로 무력으로 한국을 침범한 사실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일본으로써는 절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 그럴 바에야 도망쳐서 다른 더 큰 일을 도모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어쨌거나 ‘군인’ 안중근을 인정하지 않았던 일본 법정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을 받아놓고서도, 항소를 포기하라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를 받고 항소를 포기한 그는 자신이 저술하고 있던 『동양평화론』을 집필할 수 있도록 며칠 간의 말미를 달라고 하지만 그것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끝내 사형을 당하고 만다. 이 소설은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안중근 독립군 대장이 죽고 난 후 개나 소, 돼지 같은 짐승처럼 살아와야 했던 그의 아내와 그의 아들, 안중생의 이야기가 말이다.

 

중생의 형은 일곱 살의 나이에 마을 사람들이 준 독 탄 과자를 먹고 어이없이 죽었고, 여기 저기서 숨어다니며 굶주리는 생활을 몇 년 하다가 그제서야 임시 정부가 있던 상해에서 이들을 불러주어 중국으로 건너간다. 영웅의 아들이라고는 하지만, 영웅의 아내라고 하지만 짐승보다 못한 생활을 하는데 그런 감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오히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서 자신의 기도 한 번 펴고 살지 못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처음에는 좋았다. 하지만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일어나고 일본의 강경대응이 이루어지면서 갑작스럽게 상해를 빠져나가야 했던 임시 정부 사람들은 아무도 안중생 가족들을 거두지 않고 갔던 것이 문제였다. 아버지가 목숨을 다 바쳐 영웅일을 하면 무언가. 이렇게 버림 받는 존재인 것을. 사실 처음부터 버림 받았다 생각하지 않으면 좀더 견디기 쉬웠을지 모른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처럼 의연하게 죽음을 맞으라고 처음부터 교육하고 알려주었다면 그렇게 안중근 장군처럼 영웅이 될 수도 있었을지도.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었던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 여사는 남편 덕에 모진 고생을 하고 아들까지도 똑같은 고생을 시키는 게 안쓰러워서 절대 그렇게까진 생각할 수 조차 없었으니 이를 어쩌란 말인지. 그렇다고 그를 욕할 수나 있나. 우리가? 절대 그럴 순 없다. 아무도. 독립이 무엇인지, 일본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른 채 태어나고 나니 모진 생활이 계속되었다면, 만약 그런 생활을 안중근 장군이 했었다면 그도 견디기는 힘들었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 모두도.

 

그런 상황에서 일본의 경감이 타나타 그를 한국에 있는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에게 데려갔다. 그것은 그에게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히로쿠니를 만나게 해주기 위함이었다. 공개적으로 이토 히로쿠니에게 사죄하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앞으로 살기 편하게 돈을 줄 것이고, 그렇지 않는다면 지금 여기서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협박을 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내가 그런 처지에 있었다면, 당연히 “죽이시오.” 할 수 있었을까? 난 사실 자신이 없다. 중국, 일본, 한국이 똘똘 뭉쳐서 호시탐탐 침투해오는 서양 세력들을 막아내고 동양의 평화를 이루어내자고, 그러기 위해 자신은 중국, 일본, 한국 세 나라 모두를 위해 싸운다고 말했던 안중근 장군의 의식을 따라잡을 수 없음을 고백한다. 난 범인이니까. 그래서 난 안중생을 욕할 수가 없다. 오히려 그를 동정한다. 나는 그런 힘겨웠던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그런 고달픈 선택의 기로에 놓여본 적이 없었는데, 그는 후대에 태어날 나를 위해 그런 모진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온통 뒤집어 쓰고 살았어야 하니까. 그래서 고맙다. 그렇게라도 살아줘서. 그가 말하길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지만, 그도 어찌 한국인인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을까. 당연히 매일 같이 용서를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고 있을 아버지께. 하지만 난 안중근 장군이 아들을 쉽게 용서했을 것이다. 그는 평화를 사랑하고 인간애를 아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난 오히려 김구 선생이나 안중생의 할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들이 짐승처럼 살 것을 뻔히 알면서 어찌 그 위험한 상해에 버려두고 온 것이며, 그랬으면서도 나중엔 안중생을 암살하려고 했던 것은 정말 말도 안 된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이 맞고, 그렇기에 우리가 이만큼이나 살아왔지만, 안중생 가족은 결단코 소가 아니였던 것이 문제가 아니였을까. 독립군들이야 그만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무장이 되어 있던 사람들이지만, 중생 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도구로 쓰일지 모르는데, 자기 백성 하나 챙기지 못했던 자신을 탓하지는 않고, 어쩜 그럴수가~. 그리고 전쟁 포로로 대우하지도 않는 일본측의 불의를 항거하기 위해서라도 사형에 대해서 항소를 했어야지, 일본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는 이유만으로 항소를 포기하라고 했던 조마리아 여사도 말도 안 된다. 왜 목숨을 구걸하나. 어떻게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될 수 있나.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일이 아닐까. 그들이 대단한 인품과 열정과 의지를 지닌 인물임에는 틀림 없고, 또한 존경도 하지만 그 부분에만큼은 잘못된 것은 잘못된 일이다.  

 

어쨌거나 그런 많은 분들 - 안중근, 윤봉길, 김구, 조마리아, 심지어 안중생까지 - 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오늘날에 내가 살아있다. 오늘의 하루가 더없이 소중함을 느끼며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 분들의 후손이라는 자랑스러움을 잊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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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철학 스케치 1 - 이야기로 만나는 교양의 세계
김선희 지음 / 풀빛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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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철학은 어렵기만 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내게, 그런 잘못되고도 고루한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려준 아주 훌륭한 책을 만났다. 아, 깨달음의 세계가 바로 이런 걸까. 이제껏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다니... 그렇다고 이전까지 내가 철학을 싫어했다면 동양 철학이 어렵다고 생각한 것이 당연한 일이었겠으나 또 그건 아니였기에 서양 철학에 편중된 독서를 했었던 나였다. 이제 생각하는 것이지만 정말 아까운 시간이었음에 틀림없다. 골고루 봤었어야 했었는데... 그런데 내가 동양 철학이 어렵다고 느끼게 된 것은 아주 단순하게 고3 때의 경험 때문이다. 윤리 과목을 배우다가 깨알같은 글씨로 적혀있는 프린트를 외워야 하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서양 철학과는 달리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는 동양 철학은 정말 끔찍했다. 대충 부처를 섬기는 종교라고 알고 있었던 불교에 대해서도 고성제니, 집성제니 하는 어려운 용어가 나오는 것도 내 공포에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외워도 쉽게 기억되지 않는 모호한 구석이 있었던 동양 철학은 진저리치도록 싫어하게 되었고, 그 대신 합리적으로 딱딱 나누어 떨어지는 서양 철학만 재미있게 외워댔다. 물론 그 때부터 철학 관련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 때의 유쾌했던 기억이 어른이 된 내게 서양 철학책으로 손을 뻗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어쨌거나 동양 철학보다는 훨씬 정리가 잘 되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그런 내 고정관념을 확실히 깨버렸다. 더욱이 더 좋았던 것은 이 책을 우리 나라 사람이 썼다는 것이다. 많은 철학 책이 외국 저자를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내심 서운하게 생각했던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다. 물론 전공이 동양 철학이니까 서양에 한 번 나갔다 오지 않고도 좋은 강의를 하실 수 있고(순전히 내 추측이다) 좋은 책을 쓰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동양 철학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중국에도 유학을 안 가신 것을 보니 완전 토종 철학자가 아닐까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할 수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김선희 교수님, 멋져요~ 김 교수님께서 동양철학 그 불멸의 문제들』, 『철학, 문화를 읽다』, 『맹자 등의 책도 내셨다니 꼭 찾아볼 일이다. 나는 소설도 전작주의를 고집하긴 하지만(읽진 않아도 사두긴 하니까), 이렇게 철학 같은 인문 분야에서 더 전작을 고집하는 편이다. 그것은 인문 분야에서는 내게 맞는 어투와 문체, 사고방식을 가진 저자를 찾아내기가 쉽진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렇게 “철학~ 철학~”노래부르고 있어도 대학 때는 아주 유명한 철학 책을 읽다가 심하게 데어버려서 철학이라면 다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하다, 자신에게 맞는 저자를 찾는 일은. 가만 보아하니, 내 입맛에 맞는 철학 책은 절대 어렵지 않은 책이다. 철학에 조예가 있으신 분들이 추천해주신 책들은 입맛에 안 맞아서 - 사실, 어려워서 - 읽다가 포기하기를 여러 번 했었다. 그러니 내가 추천해주는 책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난 절대로 어려운 책은 읽지 않거든~~.

 

그런 이유로 동양 철학에 관해서는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사실 모호한 구석이 많은 것이 동양 철학 아닌가. 그럼에도 물 흐르듯이 설명을 해주는데 귀에 쏙쏙 들어온다. 중국의 문명과 국가를 상징한다는 전설적인 제왕들 즉 삼황오제의 시대에서 중국 고대에 형성된 사유들로 포석을 깔아두고, 주나라가 어떻게 통일을 하면서 왕권을 유지했는지를 파악해서 천명을 통해 보편적인 질서를 어찌 세웠는지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춘추시대 때 등장했던 공자와 노자의 사상으로 1부를 마감한다. 공자의 인(仁) 사상은 형체가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아 정말 쉽사리 알 수 없는 개념인데 - 사실 동양 철학 전반이 다 그런 편이다 - 그것을 다른 설명과 곁들여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려준다. 처음에 그냥 그런 개념을 알려주면 머릿속으로 정리가 딱딱하게 되지만 이렇게 청산유수 같은 이야기로 이끌고 가니까 아주 쉽다. 중간 중간에 공자에 관한 일화도 곁들여져 있어서 지루할 틈도 없고 말이다. 노자의 사상도 마찬가지다. 노자는 공자의 사상보다 더 모호하면 모호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인데, 노자의 사상 자체가 공자의 사상을 비판하면서 형성되었기에 공자의 사상과 비교해주면서 이야기해주니까 아주 간단명료해졌다. 어쩜, 정말 김 교수님은 천상 이야기꾼인 듯 싶다. 이 책이 「이야기로 만나는 교양의 세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 정말 이야기로 만날 수 있다.

 

2부에서는 전국 시대의 혼란기에서 노자의 사상을 잇는 장자와, 공자의 사상을 잇는 맹자가 등장한다. 장자의 책에는 황당하고도 어이없는 상상력이 들어간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흔히 들었던 몇 천 리나 되는 ‘곤’이란 물고기와 그가 변해서 된 새 ‘붕’이야기도 거기에 있었던 이야기다. 이렇게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상식적 수준의 굳어진 판단을 넘어설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이 책의 설명이 없었다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이유였을 것이다. 원래 황당한 이야기는 질색인 나도 다음에는 꼭 장자 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얼마나 설명을 잘 해주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성선설을 주장하는 맹자 이야기와 공리주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묵자도 2부에서 나온다. 묵자는 국가의 존속이라는 질서 체계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들의 차별없는 사랑을 주창했는데, 그것이 만인에 대한 평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가 말하는 상동과 상현의 방법이 지배 권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몰고 갈 수 있는 맹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그의 사상이 진보적인 것은 그가 말하는 지배 계급은 신분에 관계없이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했다고 했기에 참으로 독특하다. 완전히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중립을 잘 지켜서 예리하게 생각을 발전시킨 것 같아 매력적이었다.

 

3부에서는 인도에 날라가서 인도의 전통적인 사상과 그 안에서 형성된 불교에 대해 알려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카스트 제도가 내재된 힌두교가 어떤 방식으로 퍼져갔는지, 어떤 역사 안에서 형성되었는지 설명해 주면서 불교와 힌두교가 다른 점도 쉽게 설명해줘서 헷갈리기만 했던 인도의 사상에 조금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힌두교에서도, 불교에서도 윤회사상이 내재되어 있는데, 힌두교에선 우주 전체의 근원인 브라흐만과 나의 참된 존재인 아뜨만이 같은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하고, 불교에서는 진정한 나라는 존재는 없다고, 그 어디에도 우주 전체의 근원은 없다고 가르친다니, 완전 새로웠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유일하게 윤회밖에는 없었는데 그것 말고도 아주 깊은 사상이었다. 또한 불교에서는 가장 독특했던 것은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섬기는 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불교란 ‘붓다가 얻은 깨달음’이기에 우주가 형성된 근원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무시했다. 그래서 불교는 서구인들에게서 철학일 뿐, 종교가 아니라고 오해되어지지도 했다고 한다. 이런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것은 통일 왕조 한나라 때부터지만 그 때는 거부감이 일었다가 남북조 때부터 수, 당나라 때 강성해졌다. 그런데 아주 신기했던 것은 인도의 전통 사상인 「베다」는 수천 년 동안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상에 불교가 자연스럽게 덧붙여진 것이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불교 사상을 정리하지 않아도 많은 제자들이, 많은 백성들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수입해 들여온 중국에서는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불교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않아서 많이 혼란스러워지다가 중국에 본격적인 사상가들이 등장해서 중국 나름의 학풍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것이 화엄종이고 선종이고 신유학이라니, 정말 재미있고 유기적으로 보인다. 사상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복합적인 생각일 것인데, 개별적인 한 사람이 어떤 논리를 생각해내고 고안해내어 책을 출판하는 식의 서양 철학에만 익숙해져 있다가 보니, 동양 철학의 흐름이 상당히 성숙해보인다. 한 사람이 생각해내는 것도 물론 무시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집적물보다야 덜 하지 않을까. 이제껏 서양의 것에만 열광했던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진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임에는 더 찾아 읽어보면 좋을 책 목록들이 나열되어 있다. 물론 철학 책을 한 권 보는 것도 대단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자세하게 나와있는 책을 두엇 더 골라 본다면 동양 철학에 대한 이해가 더 빠르지 않을까 싶다. 동양인이니, 우리의 사상과 사고 방식을 좀 더 연구하는 것이 결단코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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