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코넬 울리치 지음, 이은경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면, 누군가가 자신의 죽을 날을 예언했다면... 그랬다면 어떤 삶을 살아갈까...?

 

만약 누군가가 나타나서 자신에게 6개월 후에 죽을 거라고 말한다면 그저 공상이라고 마냥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그렇게 강심장인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딸과 단 둘이 살면서 부모 자식 간에 나눌 수 있는 가장 애틋한 감정을 나누며 살았던 남자, 스물다섯 살 이후부터 점점 더 말쑥해지고 강건해지고 단정해지고 사내다움이 넘쳐흐르는 남자, 반짝 빛나는 듯한 흰머리와는 대조적으로 훨씬 젊은 얼굴이 돋보이는 남자, 고집스럽지만 독선적이진 않은 그런 모든 점에서 완벽한 한 남자가 말이다. 그런 이성적인 남자가 말도 안되는 생각과 미신들로 가득차 좀비처럼 보내고 있다면 그것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런 그에게 누가 비웃을 수가 있을까....

 

요즘에 출간되는 자기계발서 등에서는 생각이든 말이든 긍정적으로 갖고 내뱉으라고 하는 책이 많다. 굳이 그런 책을 찾아서 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속담에 ‘말이 씨 된다’라는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속담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것만 봐도 옛부터 ‘말’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했다는 것을 증거해준다. 몇 년 전에 『물은 알고 있다』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물이 든 컵에다가 ‘감사합니다’라는 단어를 쓴 종이를 붙이고 ‘싫어’란 단어를 쓴 종이를 붙이고 그 물의 결정을 현미경으로 찍어서 펴낸 것이다. 그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긍정적인 말은 아름다운 결정을 갖고 부정적인 말은 결정이 깨진 모양이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물조차도 그럴진대, 우리같이 고등 생물에겐 얼마나 말에 대한 영향이 더 클까 생각하니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강하게 해주는 말이 아니라면...?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고, 심지어 우리를 해치는 말이라면...?

 

실제로 예언이 있다 하자. “넌 몇 달 있다 죽을거야” 누군가에게 친절하게도 이런 정보를 미리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천상에서만 알 수 있는 금기의 정보를. 그랬다면 인간은 어떻게 반응할까. 두려움에 떨다가 죽을까, 아니면 마지막까지 열심히 살아낼까. 글쎄, 이렇게 쓰고 있는 나조차도 확답을 할 순 없다. 하지만 두려움에 떨다가 죽으면 무슨 소용일까. 그런 예언에 꼭 얽매어야 할까. 진짜 예언이라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날에 꼭 죽을 수 밖에 없다면 그 죽음에게 도망가기 위해서 미리 자살을 시도할 수도, 골방에 틀어박혀서 하루하루 시계만 쳐다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더라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는 행복하게,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살아보면 어떨까. 평소에 부끄러워서 하지 못했던 것도 해보고, 진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끝까지 가보는 거다. 얼마나 멋질까.

 

그런데, 그 예언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저 누군가의 말장난이었다면? 그렇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내가 공포에 질렸던 것도, 내 삶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것도, 이 모든 것에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 그저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 뿐.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절망과 나쁜 소식에 대처해야 할 우리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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